소설의 순간들 - 박금산 소설집
박금산 지음 / 비채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글이든, 비슷한 기준이 있는 듯하다. 독후감이나 리뷰 같은 후기를 쓸 때도 간결하면서도 의미가 전달되는 글이 좋다고 하는데, 소설도 마찬가지다. 이 책의 단편 중에 나오는 말이 잊히지 않는다. 어느 교수가 자기 소설을 읽어봐 달라고 하는 학생에게 요구한 것은, 자기가 쓴 글을 요약하라는 것이었다. 한 줄로 말해보라고 말이다. 하나의 소설이 한 줄로 요약이 될까? 읽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 한 줄로 소설의 내용이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울 텐데, 독자가 읽기 위해 쓰인 글이 한 줄로 요약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를 가질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글이든, 그 글을 읽기 전에 마주할 혹은 그 글을 읽고 난 후에 남길 한 줄은 필요한 것 같다. 간단하지만 내용을 다 알 수 있는. 그렇게 듣고 좀 더 관심 있다면 읽어보게 되는 게 독자의 선택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주 짧은 단편들로 구성된 이 책은 조금 깊이 들어가면 소설의 구성을 설명하고자 배치한 단편들이기도 하다. 소설의 구성 요소인 발단, 전개, 절정(위기), 결말로 챕터를 나눈다. 짧은 소설 한 편에 소설의 모든 구성 요소가 그대로 담겨 있기도 했지만, 그 구성 요소의 특정 부분이 강조된 이야기로 배치하여 소설 작법을 설명한다. 소설의 발단 단계에서는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문장을 적어놓았다.

아내가 말했다.

“강물 속에 커다란 문이 있어.” (21페이지, 강물 속에 커다란 문이 있다는 말)

딱 봐도 소설의 시작이라는 게 눈에 보인다. 강물 속에 커다란 문이 있다는 화두를 던져놓고 그 후에 펼쳐질 이야기를 기대하게 한다. 아내가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뒤에 이어져야 하겠지. 아니면, 강물 속 커다란 문의 궤적을 찾아가는 흐름이라거나. 흥미진진한 단서를 툭 던져놓으면서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되고, 전개와 절정을 지나 결말을 향해 간다. 플래시 픽션(flash fiction, 콩트나 엽편소설(葉篇小說)로도 불림)이라고 불리는 형식의 소설 25편으로 작가의 소설론을 표현한다. 마냥 긴 설명이라면 자칫 지루해서 읽다가 덮겠지만, 작가가 앞서 했던 구성의 설명을 생각하면 이야기 자체보다는 그 이야기가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같이 보게 되는 게 신기해서 계속 읽힌다. 그러니까 이야기와 소설의 구성이 동시에 들려오는 기분이나 형식. 독특한 구성인 만큼 소설을 쓰고 싶은 이에게 일석이조의 효과를 내는 책이 아닐까 싶다.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은근히 소설을 나눠 읽는 느낌이 드는 건, 또 하나의 즐거움일지도 모른다. 부분을 설명하려고 배치한 소설들에서 이야기의 전과 후의 내용을 상상하게 하니까 말이다. 앞에서 던져놓은 작은 단서로, 뒷부분 읽다 보니 발견하는 전말 같은 거. ‘아하’ 하는 순간을 확인하는 즐거움이 소설 읽는 재미 아니겠나.

 

소설 작법서인 것 같으면서도, 독자가 즐길 수 있는 단편소설집이기도 하다. 작가는 여러 의미로 이 책을 구성했는지 모르겠지만, 독자인 내 시선으로 따라가는 건 이야기의 바탕에 깔린 소설 작법보다는 소설 그 자체로 즐기는 맛이 더 컸다. 단편 하나하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애써 그 의미를 표현하지 않아도 좋다. 단편을 읽는 재미는 그 짧은 이야기 속에서 발견하는 자기만의 공감일지도 모르니까. 그러면서 은근히 강조하는 소설 작법을 눈여겨봐도 좋겠다. 소설을 쓰려는 이가 아니더라도, 어떤 글이 읽는 이에게 편하고 즐겁게 다가오는지 아는 재미는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