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 이도우 산문집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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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부피가 한 사람에게 포개지는 날짜의 순환이라면, 그날 다들 어디 있었을까 하는 질문은 곳곳에 흩어져 사는 이들이 겪은 시간의 총합적 부피일 거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어떤 부피를 쌓아간다고 생각하면,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이번 생이 조금은 덜 외롭다. (76페이지)

 

김일성이 죽었을 때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느냐고, 만약 작가가 나에게도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거라고 상상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충주에 있었는데, 처음으로 며칠씩 집을 떠나있던 때여서 신기했다. 방학이었다. 언니가 살던 곳에 놀러 갔다가 그냥 며칠을 더 눌러 있었는데, 갑자기 TV에서 김일성 사망 소식이 전해져 깜짝 놀랐다고. 언니는 출근했고, 혼자 있던 나는 무서웠다. 빨리 엄마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김일성이 죽었으니 곧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엄마랑 이산가족이 될 수는 없으니 당장 짐을 꾸리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그런데 언니에게는 연락할 방법이 없었고, 나는 종일 발을 동동 구르며 불안하게 지냈던 날이었다고 말이다. 그러고 나서 어땠더라? 저녁에 퇴근한 언니를 붙잡고 집에 가자고 말했는데, 언니는 콧방귀 뀌면서 잠이나 자라고 했던가?

 

누군가를 알고 싶고 친해지고 싶을 때는 공감의 기운이 필요하다. 굳이 공감을 찾지 않아도 친해질 계기가 생기지만, 좀 더 빨리 친해져야 할 때 공감을 찾을 수도 있다는 걸 안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김일성 사망한 날을 공감의 시간대로 찾는다. 누군가의 기억을 꺼내게 하는 거다. 그때, 그 시각.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공감대로 서로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소설을 읽을 때는 그 장면이 그렇게 깊게 다가오지는 않았는데, 처음 그 소설을 만나고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은 작가가 보여준 문장 하나하나가 새롭게 보일 때가 있다. 지금도 한 번씩 책장에서 꺼내 들춰볼 때가 있는데, 그때는 다 보지 못했던 감정이나 생각들이 하나씩 생겨나곤 한다. 아마 그때의 공진솔보다 나이를 더 먹어서일까. 아무리 와인잔을 들고 봐도 세상이 장밋빛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일까. 뭐가 됐든, 우리에게는 시간이 만들어낸 기억이 있고, 기억 속 이야기는 어디서든 꺼내어질 수 있다는 거. 그 이야기를 언제 꺼낼 수 있을까 고민할 때마다 생각나는 건 '밤'일지도 모른다. 작가가 이 산문집을 독자에게 보내온 이유도 이런 마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밤이라는 시간을 열어줄 테니, 그동안 다 하지 못했던 말을 다 꺼내도 좋다고 말이다. 어떤 이야기를 하기 좋은 시간, 무언가를 쓰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시간.

 

그런가… 쓸쓸한가. 새삼 삶에서 찾아오는 쓸쓸함에 대해 돌아본다. 어차피 가까운 이들과 무관하게 인생은 쓸쓸함이 기본값 아닐까.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래서 한 글자라도 더 쓰고 싶나 봐. 뭐라도 써놓아야 덜 쓸쓸하고 살아 있는 것 같고, 나중에 떠날 때 덜 억울할 것 같아서." (21페이지)

 

그렇게 꺼내놓은 말이 이 책으로 나온 것일 텐데, 작가의 말들은 간결하면서도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축약하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것만 같다. 시쳇말로 간단하게 말했는데, 하고 싶은 긴 이야기를 다 알아들은 것 같은 느낌말이다. 작가의 습작 시절 이야기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 교수가 내주었다는 과제, 책을 읽고 한 페이지 분량으로 줄이고, 다시 그 한 페이지를 절반 분량으로 줄이고, 다시 비교해서 줄이고... 처음 썼던 것과 같은 의미를 담으면서 문장을 줄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작가와 전혀 상관없는 삶인데도 알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을 간결하게 전하는 게 얼마나 시원하고 듣기 좋은지. 짧고 굵은 문장을 만들어내는 일, 아니면 이미 한 말을 줄여서 전달하는 일. 생각해보면 바로 알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말을 길게 하면 듣기 싫고, 아무리 설명이 필요한 일이어도 그 설명이 길어지면 지루해지고 핑계로 들린다. 그러니 하고 싶은 말이 아무리 길어도 요점만 간단히, 의미는 놓치지 않게 말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문장은 깔끔해지고 하고 싶은 말은 그대로 전달되고. 꼭 작가가 아니어도, 소설 속 문장이 아니어도, 우리가 일상에서 배워야 할 삶의 방식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읊조리듯 하는 말은 잔잔했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됐고, 어떤 이야기에서는 살아가는 방식 하나를 배우기도 한다. 누군가 수놓는 이야기를 하면서 보이던, 병풍을 만들기 위해 놓은 자수의 뒷면을 어쩌면 영원히 못 볼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보게 된다면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리라. 어떤 물건 어떤 사람의 보이지 않는 뒷면을 보는 일은 쉽지 않고, 영영 그 뒷면을 볼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살아가면서 그 뒷면을 보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다. 뒷면은 그 자체로 의미 없을 수도 있지만, 그 모습을 누구도 봐주지 않는다면 또 안쓰러울 테니까.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며 글 속에 녹아내는 이야기에는 미처 다 보지 못한 그 뒷면의 이야기도 있을 거다. 존재하고 있지만, 누구나 다 볼 수 없는 그 이야기들을 애써 들려주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또 이야기를 만나고 싶은 게 독자의 마음이 아닐까. 소설이 아닌 산문으로 만나는 작가의 말들은 소설에서 발견했던 막연한 추측을 확신으로 바꿔놓으면서, 작가의 기억, 생각, 경험들이 모여 써 내려간 흔적들이라는 것을. 그 흔적들로 누군가의 기억을 또 파고들 것을 알기에 쓸쓸하면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되는 거겠지.

 

언젠가 남동생이 집에 다니러 온 적이 있다. 늦은 밤, 출출하다면서 식구들이 치맥을 외치자 남동생과 나는 배달이 아닌 직접 치킨을 사러 갔다. 그때 마침 행사를 한다고, 포장 고객에게는 3,000원씩 할인해준다는 말에 산책한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그래봤자 걸어서 5분 거리. 그냥 다녀오겠다고 나선 사람이 나였고, 어두우니까 같이 간다고 따라나선 사람이 남동생이었을 뿐인데, 대문을 나서니 어색해지더라. 생각해보니 남동생과 단둘이 그렇게 걸어본 적이 없다. 둘이서 어딜 갔던 기억도 없다. 그렇게 혼자 마음속으로만 어색함을 떠올리고 있는데, 문득 들려온 남동생의 한마디.

"이 골목이 이렇게 좁았어? 어렸을 적에는 이 골목이 크고 넓어서 그렇게 무서웠는데..."

"니 덩치를 봐라. 이 골목이 좁을 수밖에 없겠다."

웃으면서 대꾸한다는 말이 고작 남동생 체격을 탓하는 거였는데, 이 책을 읽다가 생각해보니 우리 남매가 이런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이 '밤'이기 때문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아마 대낮에 그 길을 걸었다면 우리는 눈에 보이는 동네의 다른 풍경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싶었다. 하는 일 때문인지 원래 성격인지, 남동생은 냉정할 때가 많고 맺고 끊음이 분명한 아이인데, 뜬금없이 꺼낸 어릴 적 감정의 한 자락에 이상한 울림을 준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좋은 시절은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정말 지겨운 나날이고 사는 게 엉망진창이라고 투덜대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때가 지나면 비로소 알게 된다. 돌아보니 참 좋은 날들이었구나. 그땐 왜 몰랐을까 라고. 좋았던 시절은 그 무렵엔 느낄 수가 없지만, 한 시절에 이별을 고하려는 순간 새삼 좋은 날이었음을 알려주어 고맙고 서글프게 한다. (288페이지)

 

그동안 소설로 만나온 작가의 산문을 처음 마주하면서 느끼는 건, 어쩌면 이 책 속의 이야기는 출간된 소설의 연장선인 것만 같다는 거다. 출간작 중에서도 특히 자주 보이는 게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다. 문장이 너무 좋아서였는지, 건 PD와 진솔의 연애가 너무 평범하면서도 애틋해서였는지, 언제나 기억에 머물러 있는 문장 몇 개가 저절로 떠오르곤 했다. 여러 가지 부분에서 작가의 경험이 녹아든 생각들이 진솔의 대사로 거듭났고, 더 많이 하고 싶은 말은 작가의 또 다른 소설에서 문득 마주치게 된다. 한 권의 소설이 태어나기 위해 작가가 준비해왔던 시간은 이랬던가 싶기도 하고, 작가이자 독자로 살아가는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모든 게 어쩌면 밤에 태어난 싹들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하면서 슬쩍 웃어본다. 우리의 기억은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폭발하듯 뛰쳐나오기도 하니까.

 

작가가 기억하고 꺼내놓은 이야기에 온갖 감정이 묻어난다. 쓸쓸하기도 했던, 마냥 그 순간을 살아가던 청춘이기도 했던, 어느 동네의 풍경에 안착하기도 했던 시간. 그 기억들 속에 담긴 많은 이야기가 밤을 통과해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살아온 이야기가 하나씩 들려올 때마다 작가의 작품을 생각한다. 그 상황에서는 이런 경험이 담겼던 거라고, 그 문장은 이런 생각으로 써진 거라고. 하고 싶은 말이 소설 속 인물들의 입을 통해 나왔다고 생각하면, 소설가라는 직업은 정말 괜찮은 것도 있구나 하는 부러움이 살짝 들기도 했다.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살 수도 없고, 또 막상 그 말을 꺼내놓고 후회하기도 하는 게 현실 속 우리 모습이지 않은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지만 내가 한 말이 되지 않으면서도, 기어이 할 수 있는 말이 된다는 게 얼마나 신나. 하지만 또 작가로 살아가는 고충을 알 것도 같아서 마냥 부러워하지는 않으련다. 독자로, 좋아하는 문장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저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기다리는 즐거움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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