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센트 와이프
에이미 로이드 지음, 김지선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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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흠뻑 빠져들고야 마는 상황이 있다. 서맨사가 사형수인 데니스 댄슨을 본 순간이 그랬다. 실제로 마주한 적 없는 사이, 여러 매체와 데니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단체의 다큐멘터리로 접한 게 전부이지만 그녀는 데니스에게 빠지고 말았다. 감옥에 있는 데니스에게 편지를 쓰고 답장을 받는다. 그렇게 화면 속 데니스와 사랑에 빠지고야 말았다. 문장으로 대화를 나누던 그와 사랑에 빠지는 일이 가능하냐고 묻고 싶겠지만, 그런 게 가능한 것이 또 우리 사는 곳에서 일어나기도 한다는 걸 모르지 않으니, 어쩌겠나. 인정하는 수밖에. 뭔가 투명하지 않은 관계에 빠지고, 두 사람의 행보가 불안해 보이지만, 어쨌거나 응원하는 것 말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은가. 그녀의 사랑을 지켜보는 것 말고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서맨사는 영국에서 교사로 일했다. 사회적인 관계가 원활하지만은 않았던 그녀였다. 게다가 애인인 마크가 그녀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녀는 마크와의 관계에서도 완전한 정리가 되지 못했다. 여전히 그에게 신경을 쓰고, 혹시나 그가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한다. 이미 끝난 관계, 그것도 가장 위험하고 안 좋은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였으니 서맨사가 기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녀에게는 데니스가 있으니까. 비록 감옥의 투명한 창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 사이지만, 그녀의 사랑이었고 데니스의 무죄를 믿었고, 곧 풀려날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데니스가 정말 무죄일까? 그가 외치는 것처럼 그는 누군가의 조작으로 연쇄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쓴 걸까? 데니스의 죄명은 살인이다. 그것도 어린 여자아이들을 죽였다. 하지만 그가 무죄를 외칠수록 그의 무죄를 믿는 여성들이 늘어만 갔다. 그의 외모, 그의 순진한 표정이 하는 말을 믿는 것일까? 하지만 그가 정말 무죄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의 무죄를 증명하려고 애쓰며 다큐멘터리 제작에 열을 올리는 캐리의 역할이 그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게 진실일 뿐.

 

사랑에 빠지는 일. 서맨사가 데니스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의아했다. 누군가의 사랑을 저런 방식으로 가능해지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뭐랄까, 인간의 마음을 흔들고 끌어당기는 게 꼭 얼굴을 마주하는 관계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보면서 호감을 느끼고 설레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그 사람의 팬이라고 말하지만, 마음은 어떤 우상을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작동할 때. 마치 그 사람이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착각하는, 나의 애인이라고 믿어버리는 이상한 상황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 하는 일들이 만드는 위험. 서맨사가 데니스와 하는 게 곧 터질 위험의 증조 같았지만, 그래도 무슨 일이 있을까. 데니스 역시 서맨사를 사랑한다고 말했고, 그녀가 믿어주는 그의 무죄에 힘을 얻게 되었다. 데니스의 생각을 다 읽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서맨사의 마음은 알 것 같다. 곧 데니스는 풀려날 것이고, 옥중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이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일만 남았다는 것만 믿으면 된다.

 

읽으면서 점점 궁금증이 커져갔다. 데니스는 정말 그 많은 살인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인지, 서맨사를 사랑하는 것인지,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인지 하는 것들.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상상해보지만,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을 앞에 두고 많은 것을 생각하고 상상하게 된다. 독자의 그런 상상에 서맨사가 느끼는 불안함은 날개를 단 것처럼 커졌다. 데니스의 무죄를 같이 외쳤던 서맨사. 그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믿었기에 가능했던 선택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믿음 앞에 왜 자꾸 불안함이 끼어드는지 알 수 없지만, 그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불안은 커진다. 달콤하기만 기대했던 신혼생활이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채워지기 시작하면서, 소설은 더 미궁으로 빠지는 것만 같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진실에 다가가면서 더 파헤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사랑을 다 표현하지 않는 남자와 그의 사랑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건 여자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기대되면서, 이들이 다 말하지 않고 감추려고 애썼던 것들을 듣는 재미가 상당하다. 살인자가 아니라고 믿으며 사랑을 주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 사랑이 무엇보다 잔인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소설의 도입부에서는 이렇게 사랑이 시작되는 게 가능한 일이었는지 싶은 궁금증이 있었다면, 중반부에서는 그들이 보는 게 전부 진실일까 싶은 호기심과 의심이 생기더라. 후반부에 다다르니 누군가는 밝혀낼 진실에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 싶은 기대가 피어올랐다. 마지막에 서맨사가 선택한 사랑의 방식은, 어쩌면 서로가 가장 안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닐까 싶었다. 서맨사가 처음 데니스를 사랑한다고 여겼을 때, 데니스가 처음 서맨사의 편지를 받고 매력을 느꼈던 그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도 이들에게는 사랑일 테니 말이다. 사랑하지만 서로가 같은 모습으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안전한 사랑이 된다는 것도 아이러니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일들이 넘쳐나니까 이들의 모습이 이상할 것도 없으리라.

 

이거 아니면 저거. 둘 중 하나의 결말만 생각하다가 의외의 결말을 맞이하고 보니 이 소설이 색다른 맛이 난다. 인간에게는 무수히 많은 모습이 있고, 그 모습이 내재한 본성 역시 한 가지일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우리가 보이는 많은 생각과 행동에는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이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여겼던 욕망일지라도, 그 욕망이 변이하고 색을 달리한다면 더는 순수하다고 말할 수 없다. 욕망이 일으키는 광기는 그 누구도 쉽게 잠재울 수 없다. 그저 인간이기에 드러내는 본성이라는 것밖에는...

 

인간의 심리를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사랑하니까 가능한 행동들, 상대에게 믿음을 주고 싶다며 동조하는 범죄들, 불안하고 의심되면서도 믿고 싶은 마음들, 진실을 마주하기가 두려워 자꾸만 밀어내고 싶은 회피. 사랑과 집착 사이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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