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잠자는 미녀들 1
스티븐 킹.오언 킹 지음, 이은선 외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어떤 감염병이 여성에게만 접근한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마음이 들까? 왠지 여자라는 이유로 공격받는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리고 이유가 궁금해지겠지. 왜? 왜 어떤 병이 찾아올 때 인류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것일까? 그 원인을 찾고 싶기도 할 것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어하고 싶어지겠지. 스티븐 킹과 그의 아들 오언 킹이 만들어낸 한 편의 소설은, 인간이 맞이할 수도 있는 끔찍한 상황의 두려움과 인간의 기질을 보여줌과 동시에 잔인한 남성들에게 맞선 여성들의 방어가 얼마나 대단해지는지 보여준다.
‘오로라 병’이 전 세계를 뒤흔든다. 여성이 잠이 들면, 그 여성은 고치 같은 물질에 뒤덮여 다시 깨어나지 못한다. 이 병이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왔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미국의 애팔래치아 산맥에 인접한 소도시 둘링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오로라 병으로 고요했던 마을의 일상은 한 번에 흐트러진다. 모두가 긴장한다. 원인도 알 수 없어서 대책이 없다. 사랑하는 여성들이 잠들고, 잠든 후 둘러싸인 물질을 제거하려고 할 때마다 여성들은 폭력적으로 변하고 주변 사람들을 공격하기까지 한다. 처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병했다고 해서 ‘오스트레일리아 수면병’으로 불리다가, 동화 잠자는 숲속의 공주인 오로라의 이름을 따서 ‘오로라 병’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여성이 잠이 들면 거미줄처럼 얽힌 것이 여성의 몸을 덮어버린다. 이런 현상이 전 세계에서 보이고, 번지는 속도에 비하면 치료법이나 대응 방법은 없이 속수무책이다. 그 어떤 병보다 빠르게 번지는데, 현재로서 오로라 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여성이 잠들지 않는 것. 잠들지 않으면 이상한 물질이 여성을 감싸지도 않고, 여성이 폭력적으로 변해 공격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언제까지 잠들지 않고 견딜 수 있단 말인가. 하루 이틀, 짧은 시간의 단편적인 방법일 수는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해결책은 아니다. 인간은 활동하고, 먹고, 자고 하는 일상에 익숙해진 존재니까.
뭔가 익숙하지 않은가? 갑자기 들이닥친 병으로 일상이 마비됐다. 끔찍한 사건 사고들이 빈번해지고, 이 이상한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모여들어 병원은 붐빈다. 아직 발병하지 않거나 잠들지 않아서 병을 겪지 않은 여성들은 이 병에 대비하고자 몸부림친다. 잠들지 않기 위한 약이나 드링크를 사려고 약국을 습격하기도 하는 모습들. 오로라 병에 걸린 여성들을 감싼 물질이 병을 전염시킨다는 누군가의 말에 여성들을 불태워 죽이기도 한다.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 장면이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를 위협하는 ‘코로나19’ 상황과 닮았다. 치료제를 개발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현재 닥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대비해야 하는 사람들. 평소에는 흔하게 있어도 필요성을 잘 몰랐던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 앞에 줄을 서 있고, 비슷한 증상에 혹시 내가 감염된 게 아닐까 싶어 선별진료소에 달려가기도 하는 사람들. 온갖 가짜 뉴스에 혼란은 가중된다.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에 또 다른 것들이 공격하는 듯하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답을 찾아내는 것도 어려운데, 가짜 정보로 그 답을 찾아가는 길은 더 어려워졌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위기에서, 인간을 공포에 밀어 넣는 그 어떤 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현재 우리의 상황에 맞춰 일어난 일처럼, 소설은 그 생생함을 더한다. 무엇보다 지금의 위기를 미리 알아챈 것도 아닐 텐데, 이 소설을 구상하면서 작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의 눈이라도 가졌던 것일까? 상상력으로 시작된 이야기이지만, 이미 상상으로 멈추지 않을 이야기라는 것을 증명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1편은 그 상황의 시작을 보여주고, 집단 발병의 시작과 그 엄청난 공포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여주기도 하면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게 한다. 엄청난 몰입을 주는 전개와 예상하지 못한 사건들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 그 갈등 안에서 인간이 보여주는 욕망은 어디까지일지 궁금하게 한다. 남자와 여자의 성대결이라고 하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대조적으로 보이는 모습들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2편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 병이 다양하게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기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인간의 적나라한 민낯이 드러날 것 같다. 무엇보다 인간 전체가 아닌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감염병이라는 게 아이러니하고 차별 같지만, 끝까지 지켜보면서 이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와 가까워지길 바란다. 어쨌든 현재의 대한민국과 전 세계의 위기와 닮은 모습에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이야기다. 스티븐 킹과 그의 아들 오언 킹의 합작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주목받기 쉽겠지만, 이야기의 완성도 역시 뒤지지 않을 듯해서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