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아저씨 개조계획
가키야 미우 지음, 이연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출퇴근하며 돈을 벌기도 하고, 집안의 살림과 육아를 담당하기도 하고, 성장하는 나이에서 당연하게 학교 공부에 열중하기도 하고. 더 다양한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움직이고 있다. 누가 더 잘하고 누가 더 못하고 그런 걸 계산하기 전에, 그저 지금 자기 앞에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성장하던 시기에는 남자와 여자,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이 규정처럼 정해진 경우가 많았다. 아버지가 직장에 다니면서 가정의 소득을 책임지고, 어머니는 집안 살림과 아이들을 돌봤다. 혹시 일을 하던 여성이었다고 하더라도, 막상 임신을 하고 나면 출산 후에는 전업주부로 살아가기 일쑤였다. 직장에서는 복직의 기회를 주지 않았으며, 일할 기회가 생겼다고 하더라도 육아 문제를 해결해야 했을 텐데. 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지 않는다면, 육아는 여성이 직장에 돌아가지 못할 큰 이유가 된다. 지금보다 더 예전에는,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의 삶이 보편적이었던 때다. 지금 우리 어머니들 세대에 일하는 여성을 보는 건 어려웠다. 이 소설 속의 도시코 역시 그런 삶이었다. 남편과 같은 직장에서 일했지만, 결혼과 동시에 퇴사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살림과 육아의 시간이 계속되었고, 이제는 정년퇴직한 남편 쇼지까지 집에 있다.

 

쇼지의 생각도 틀리지 않았다. 가족을 위해 젊은 시절부터 일해 왔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 정년퇴직한 자신이 가족들에게 존중받는 게 틀리지 않았다. 아이는 집에서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사상(?)으로 성장했던 사람이다. 이제는 아이들도 다 성장했고 자기도 일을 마치고 퇴직했으니 시간도 생겼고, 아내와 둘이서 여행도 다녀야겠다고 계획하고 있다. 그런데 아내는 자기와 가까이 지내지 않는다. 딸 유리에 말로는, 엄마는 '후겐병'에 걸렸다고 했다. 후겐병이란, '남편이 원인이 되어 생기는 병'이라는 신조어란다. 하하하. 우리말로 하면 '남편 때문에 생기는 화병' 정도 되려나? 서로 같이 하나의 가정을 잘 꾸려가고자 만난 인연일 텐데, 배우자 때문에 마음의 병이 생기는 건 무슨 경우인가.

 

아니, 별거 아니다. 여기에 와서 도시코가 한 일이라고 해봤자 렌에게 기저귀를 채우고, 밥을 먹이고, 입가를 닦아 주고…… 그 정도야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게다가 이미 점심 식사는 끝났다. 저녁밥은 마이가 돌아와서 먹일 테니까 딱히 할 일은 없다. (140~141페이지)

 

문제는, 상대방의 진심을 읽지 못한 데서 시작한다. 쇼지는 아내 도시코의 그동안 삶이 편했을 거로 여겼다. 일도 안 하는 전업주부가 뭐가 지친다고, 종일 집에서 애들과 노는 인생 부러울 뿐이라고 말한다. 처음 쇼지의 생각과 말에 설명하고 반박하던 도시코도 어느 순간 말문을 닫아버렸다. 아마 처음에는 쇼지도 자기 말이 맞으니까 아내가 할 말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여겼겠지. 하지만 뒤늦게야 알게 된다. 아내가 자기와 말을 하지 않았던 건, 자기가 옳아서가 아니라 자기를 포기해서 그랬다는 것을. 더는 설명도 이해를 구하는 일도 필요 없는 상대라는 것을. 딸마저 자기를 '당신'이라고 부르며 상대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전업주부의 삶을 우습게 여긴다. 그런 쇼지에게 중대한 임무가 주어졌다. 아들 가즈히로 부부가 맞벌이하게 되어서 손주들을 돌봐주어야 했다. 거절하고 아내에게 떠넘기려고 했으나, 아내도 거절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이를 돌보는 게 뭐 어렵냐고 무시했던 그가 손주들을 어떻게 돌볼지 기대가 커진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아내와 여자들이 팔자 편하게 아이들과 집에서 뒹굴 거리는 인생이라고 여겼던 그가 겪을 일이 눈에 선하다. 육아와 가사가 여자만의 일이라고, 아이는 엄마가 돌보는 게 맞는다고 여긴 그가 여자의 그 일을 하고 있다. 얼마나 편할까. 손주들과 뒹굴뒹굴하면서 며느리가 올 때까지 한 시간만 있으면 되는데, 이보다 편하고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평생을 회사에서 일하고 퇴직한 남자의 모습은, 비단 이 소설 속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한 모습이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여자가 벌면 얼마나 버느냐고, 집에 들어왔을 때 누군가 있어야 한다고, 식사를 차려주고 집안의 모든 일을 하는 게 여자의 역할이라고 말하는 일들. 낯설지 않다. 그 방식이 아주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아이를 돌보는 게 부부이자 부모의 역할이다. 다만 그 책임을 다하는 게 각자가 원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거다. 전업주부를 원하는 이는 그렇게 하면 되고, 출산 후 업무로 복귀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된다. 다만 그 복직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강요된 선택을 하곤 했다는 게 많은 여성이 하는 말 중의 하나일 것이다. 쇼지가 생각하는, 여성은 가정에서 가족들을 돌보고 살림을 도맡아야 한다는 게 어떤 일상이라고 어떤 삶인지 그는 아마 몰랐을 것이다. 당연하게 보고 자란 삶의 방식을 자기 세대에서도 똑같이 적용하면 살아왔으니, 반세기를 건너온 현재의 세상을 그가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두 명의 손주와 고군분투하는 쇼지를 보면 고소하다. 그래, 당신 한번 겪어보시지. 애들과 노는 일상이 얼마나 편한 거냐고 말하던 당신, 그대로 한번 편하다는 걸 느껴보란 말이다. 막상 아내의 도움 없이 손주들을 돌보고, 며느리의 눈치를 보고, 친구의 푸념을 듣던 쇼지는 어느 순간 깨닫는다. 자기와 똑같은 사고방식에 휘둘리는 아들을 개조하지 않으면, 노년에는 자기와 같은 인생을 맞이할 거라고 걱정하면서 말이다. 자기 옆에만 오면 아내가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집안에 같이 있으면서도 각방을 쓰고 식사도 같이 안 하는, 집에 있는 남편을 피해 다른 곳으로 나가버리는 아내가, 아버지의 모습에 혀를 끌끌 차며 무시하는 딸의 말들이 얼마나 큰 충격을 주는지 알아버렸으니까. 구시대적 가부장제를 온몸에 장착하고 살아온 그가 지금 세상에 얼마나 적응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제대로 깨달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설거지를 해도 밥을 먹고 나면 또다시 설거지거리가 나온다.

청소를 해도 다음 날이 되면 희미하게 먼지가 쌓인다.

빨래를 해도 다음 날에는 엄청난 양의 빨래가 생긴다.

이 무의미한 작업을 죽을 때까지 계속 반복하지 않으면 청결한 생활은 불가능한 모양이다. (318페이지)

 

이 소설은 제목처럼 정년 아저씨 개조 계획에 목적을 두지는 않는다. 그가 살아온 시간은,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고 아내는 가정에서 살림과 육아를 책임져야 하는 역할 분담이 분명하게 있었다. 각자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간에 말이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이나 세상의 방식이 그랬을 것이다. 인제 와서 그 방식에 원망해도 소용없다. 지금 우리는 21세기, 2020년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다만, 전업주부의 삶이 어떤 건지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아이를 돌보고 가사를 책임지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쇼지가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아들에게 닥친 위기를 읽어낸 순간, 전업주부로 살아온 여성을 무시한 시간을 안타까워할 테니까. 세상이 얼마나 변해왔고, 지금까지 자기가 생각했던 게 얼마나 잘못되었던 건지 깨닫기 시작할 테니까. 밖에서 돈을 버는 일도 힘들지만, 육아와 가사노동 역시 그에 비할 바 없이 힘들고 중요한 일이라는 이해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쇼지는 아들 가즈히로를 개조하고, 주변에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왔던 남자들의 사고방식을 변화시켜야 하는 임무를 맡은 듯하다. 자기 세대와는 바뀐 현실에 적응하고, 좀 더 나은 세상과 가족을 위해서라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이미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