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여름 2019 소설 보다
우다영.이민진.정영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소설 보다’ 시리즈 2019 여름 편. 정영수 작가의 「내일의 연인들」이다.

주인공 ‘나’는 어느 날 걸려온 선애 누나의 전화에 주거지가 변한다. 선애 누나는 엄마 친구 딸인데, 이번에 이혼하면서 신혼집을 비우게 되었다. 집은 매매로 내놓았지만 빨리 팔리지 않았고, 선애 누나는 집이 팔릴 때까지 그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때 선애 누나는 ‘나’를 생각해내고, 집의 관리를 맡기게 된다. ‘나’가 선애 누나의 집으로 들어가기를 망설일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선애 누나의 제안을 수락했다. 학교 다니는 거리가 짧아졌고, 마침 지원과 연애를 시작한 ‘나’는 선애 누나의 집이 데이트 장소로 이용될 수도 있음을 생각했다.

 

처음 선애 누나의 집으로 들어간 순간은 마치 낯선 집의 방문객이 된 것 같았다. 당연하다. 오랜 세월 연락도 없이 지내던 사이였는데, 갑자기 맡긴 집 관리 때문이라고 해도 남의 집이다.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이 친근할 리 없다. 하지만 그런 낯선 감정도 잠깐이다. 어느 순간 그 집에 ‘나’는 익숙해졌고, 처음 조심스럽게 그 집에 드나들던 지원도 이제는 편하게 드나든다. 그 집에서 지원과 ‘나’는 처음으로 섹스를 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사랑을 접고 헤어지면서 떠나온 집일 텐데, 누군가는 그 집에서 새로운 사랑을 싹틔운다. 하긴, 아무리 친해도 남은 남이다. 각자의 인생과 사랑이 있다. 한 사람이 인생의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같은 경험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없으니까. 하지만 사랑과 이별을 경험하는 과정은 서로 다른 우리들의 인생이어도 비슷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지원과 ‘나’는 뜨겁게 사랑했다. 설레면서도 익숙해지는 시간을 거치고 제법 다정한 연인이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지원은 묻는다. 그 집의 주인은 왜 헤어졌는지 궁금해졌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궁금했을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두 사람이 결혼하고 더 행복해지고 싶었을 텐데 헤어졌다. 그런 집에 들어와 있는 애인을 만나러 지원은 찾아오곤 했고, 두 사람은 그 집에서 관계를 쌓아나갔다.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 자기 둘은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을 텐데, 그렇다면 언젠가 그 집의 부부처럼 헤어질 수도 있다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의 마음에 안정과 평화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완벽하고 완전해 보였던 사랑만큼 이별의 징후가 찾아온다고 해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이다.

 

지금 당장 이별을 하지 않더라도, 지금 눈앞의 사람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더라도, 우리는 생각한다. 상상한다. 언젠가 이 사람과 헤어질 수도 있겠다고. 지금 하는 연애가 너무 아름다운데도 그 사랑에 푹 빠져있기보다는, 언젠가 다가올 헤어짐을 상상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사랑에 젖어있기보다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이별을 먼저 상상하는 게 잘못된 생각은 아닌 듯해서다. 사랑의 끝이 두 가지 중의 하나 아니었던가. 계속 사랑을 이어가거나 이별하거나. 그런 두 가지 길에서 우리는 언제나 사랑만을 생각할 수는 없다. 동전의 양면처럼 행복과 불행을 같이 고민하며 살아가듯이, 사랑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끝까지 지키지 못할 때, 이별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미리 연습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불안을 잠재우는 노력도 해야 한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던 두 사람, 점점 침대의 양 끝으로 자리를 이동하면서, 등을 돌리면서, 각자의 사색에 잠겨 있는... 그 모습이 관계가 멀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사랑에도 편함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 싶어서다. 조금 떨어져서 누워 있는 게, 옆으로 돌아누워 있는 게 편하면 그걸로 된 거 아니겠느냐고. 그게 꼭 사랑이 끝나서만은 아니지 않겠느냐고. 그러다가 언젠가 사랑이 떠나가고 어쩔 수 없이 헤어짐을 인정하게 되더라도.

 

생각해보면 불안하지 않은 관계가 없고, 불안하지 않은 현실이 없다. 내일은 좀 괜찮을까 싶은 긍정적인 마음을 품다가도 금방 현실 앞에서 무너져 내린다. 때로는 경험으로 때로는 직감으로 그 불안과 불행을 알아차린다. 이들의 연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랑이었지만 사랑이 아닌 것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게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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