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의 일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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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개, 언제나, 모든 일이 지나간 후에 다시 되짚으며 그날을 떠올린다.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고 후회하며,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게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거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직접 나서야 하고, 행동해야 하며, 때로는 위험도 무릅써야 한다.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더욱 간절히 그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그래야 끝난다. 뭐든.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41-42)

 

성경의 어느 구절로 시작하는 이 소설이 어떤 흐름으로 이어질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작가의 전작을 생각하면 또 한 번 강렬한 느낌일 거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시대를 건너 21세기의 이야기를 듣게 되니 좀 놀라웠다. 처음 듣는 성경 구절이 만들어낼 이야기가 심상치 않아 보여서 더 긴장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수아에게는 SNS 셀럽인 동생 리아(개명 전 이름은 경아다)가 있다. 일명 ‘봉사녀’라는 별명으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많은 봉사활동으로 그 이미지가 굳어졌다. 언니보다 예쁘고 날씬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어느 날부터인가 봉사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리아가 치르는 유명세는 톡톡했다. 그러던 중 수아에게 걸려온 경찰의 전화는 동생 리아의 죽음 소식이었다. 리아의 사망은 자살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생각한다. 리아가 자살을 할 사람인지를. 뭔가 자꾸 어긋나듯 리아의 죽음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장례식장에서 경찰에게 건네받은 리아의 휴대폰. 수아는 리아의 휴대폰 속 세상을 하나하나 꺼내 보며 미처 몰랐던 리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현재 상황의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시작한다.

 

‘경아’ 자살한 거 아닙니다.

 

동생의 SNS 다이렉트 메시지로 온 한 문장은 고요했던 수아의 일상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녀는 시간이 없다. 임용고시 통과를 위해 현재의 모든 시간과 인생을 걸었다. 그것만이 그녀가 그동안 겪어온 감정의 상처를 이겨내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런 와중에 리아의 죽음까지 파헤쳐야 하는 돌발 상황이 생겼지만, 어쩔 수 없는 운명처럼 그녀는 고시원의 한구석에서 이어가는 시험공부와 리아의 사망 사건을 파헤친다.

 

소설은 두 자매의 과거 시간과 현재 수아가 찾아내야 하는 리아의 시간을 들려준다. 연년생 자매의 성장기, 성격과 취향까지 달라서 티격태격했던 시간, 주변 사람들의 비교 아닌 비교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이었다. 공부를 잘했던 수아, 공부는 못했지만 봉사와 예쁜 외모로 언니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던 리아. 언니를 걱정하지만 언니의 말 한 마디에 그대로 상처받는 동생, 동생에게 쏟아진 부모의 관심에 외면당했던 언니. 차근차근 돌이키다 보니 알게 모르게 두 자매 사이에는 벽이 생기고 있었던 것 같다. 동생의 염려를 귀찮아하면서 보낸 언니의 답장, 묘하게 생긴 거리로 마음의 말들을 언니에게 할 수 없었던 동생. 갑작스러운 동생의 죽음이 그 거리를 좁혀줄 수 있을까?

 

리아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고 타살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수아는 진짜 범인을 향한 복수를 계획한다. 중간에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로 리아의 죽음이 억울하지 않게 했다. 그걸로 됐다. 그녀도 리아도 이제 자기만의 일상으로 돌아가, 서로를 염려하면서도 거리를 만들었던 그때는 잊은 채로 살아가겠지.

 

성경 속의 자매 마리아와 마리다. 어느 날 예수가 그 자매의 집에 방문했는데, 언니인 마르타가 예수와 다른 손님들을 대접할 음식을 준비할 동안 동생인 마리아는 예수 앞에 앉아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있었다는 이야기. 마르타가 마리아에게 이리 와서 언니의 일을 도와달라고 했더니 예수는 오히려 마르타를 나무라며, 마리아가 지금 하는 일이 마르타 당신의 일보다 덜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130페이지)는 내용이 어떤 식으로 해석되는지에 따라 자매의 입장과 마음이 다르게 보일 것 같다. 예수의 옆에서 그의 말을 경청하는 게 진정한 받듦인지, 아무리 자매여도 그 사람의 그릇이 다르므로 마르타와 마리아의 일이 다르다는 걸 나무라는 것인지, 아니면 동생 마리아를 질투하면서 불러내지 말라는 이야기인지... 수아가 받아들이는 성경 구절의 의미는 부정적이었다. 신데렐라의, 콩쥐의, 마리아의 자매는 나쁜 사람으로 기록된다고. 선하고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자에게는 악하고 게으르고 시샘이 많은 자매가 있다고 말이다. 이 소설은 그런 성경 구절의 의미를 비튼 것처럼, 조금 다른 의미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선하고 지혜로운 여자가 세상의 가십과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기 쉽다는, 보이는 것 이면의 감정을 숨기고 살아가면서 사회의 약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생의 죽음을 파헤치면서 알게 되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낯설면서도 안타깝게 들린다. 언젠가 수아가 했을 말에 상처받았음에도 수아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만 기억한다. 사람들에게 인기 있고 사회적인 이미지를 쌓으며 나름 유명한 사람이 되어있던 동생이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동생의 죽음의 실체에 한발씩 다가갈 때마다, 혹시 자기가 동생에 관해 착각하고 오해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기 시작한다. 외면받고 비교당하던 입장에서 마르타라고 생각했던 수아의 마음이 변한다. 그동안 못 봤던 리아의 시간을 보게 되면서 알게 된다. 마리아와 마리타는 너무 다른 자매의 모습이 아니라, 그저 서로를 아끼고 염려하며 사랑하는 자매였다는 것을. 두 자매를 보면서 비교하고 많은 말을 쏟아냈던 사람들 때문에 생긴 착각을 하나씩 정리해간다. 소설 속에서 수아에게 리아의 죽음을 직접 전달한 ‘익명’의 말이 내내 걸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예수의 옆에서 경청하던 제자들과 사람들은 남자였고 그 안에 마리아가 있었다는 게 어떻게 보였을지, 성경을 기록한 사람 역시 남자였다는 것에서 마리아와 마리타의 모습에 부정적인 시선의 해석이 있었다는 것을. 사랑받는다고 믿었던 모습 뒤에 있던 악몽이 여기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왜 비교 없는 삶은 없을까? 나부터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비교하는 게 익숙하다. 누구는 이랬는데 누구는 저랬다고, 사소한 것 하나에서부터 비교하는 삶은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다. 남들보다 먼저, 많이, 크게, 좋은 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비교인가 생각하다 보면, 우리가 바라는 행복하고 선한 삶으로 걸어갈 수 있을까?

 

마치 추리소설처럼 리아의 죽음을 밝혀가는 수아의 준비와 행동이 긴장감을 만든다. 그 사이사이 수아의 일상과 부모님의 몇 마디, ‘익명’으로 등장한 남자의 심리 파악하기, SNS 메시지가 밝혀낼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묻고 싶을 때마다 온라인 속이 아닌 현실에서 답을 찾아내는 수아의 추리력은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 같은 면모도 있다.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던 그 진실에서 하나씩 꺼내어가는, 우리가 보고도 못 본척했던 많은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오른다. 살아가는 어느 순간 또 위기가 찾아오겠지만, 마침내 답을 찾은 수아의 내일이 조금은 달라질 것을 믿는다. 동생의 죽음으로 찾아낸, 비극을 이겨내는 법을 알았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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