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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평점 :
소설의 배경이 되는 '사하맨션'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장소가 아이러니했다. 작가는 '사하'라는 이름은 러시아 사하 공화국에서 따왔다고 한다. 최저 기온과 최고 기온의 연교차가 100도나 되는 곳, 가장 추운 그곳의 지하에는 전 세계 다이아몬드의 절반이 매장되어 있다고. 영하 70도의 추위에 사람이 견딜 수나 있을까 싶은 그곳에 엄청난 양의 다이아몬드가 매장되어 있다는 얘기에 어떤 모순을 느꼈다.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은 그곳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다이아몬드의 존재는 무슨 의미를 가질까. 그리고 '사하맨션'은 홍콩의 구룡성채를 떠올리며 그렸다고 한다. 청나라 국경의 요새였다가 치외법권으로 남겨져, 홍콩의 옛 거주지로 무법지대였다고.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이 모여 생활했던 장소라고 하는 그곳의 설명이 딱 사하맨션이었다. 이렇게 우울하고 아프게만 느껴지는 곳이 역사상 실제 존재했던 곳이라는 게 놀랍기도 하면서, 현실의 세상과 또 얼마나 다를까 싶은 씁쓸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기업이 한 도시를 인수했다. 본국으로부터 독립해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시국가로 변모한다. 사람들이 타운이라고 부르는 그곳은 상당히 비밀스럽다. 타운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과 타운에서 인정하는 전문 능력을 갖추어 주민권을 가진 L, 주민의 자격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범죄 이력이 없고 간단한 자격 심사로 체류권을 가진 L2. L2는 2년 동안 타운에서 살 수 있고, 타운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주민권과 체류권 밖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사하'라고 불리며 사하맨션에서 산다.
사하맨션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비밀스럽고, 드러내지 못하는 과거가 있다. 주민권과 체류권을 갖지 못하는 건 당연하고, 앞으로도 타운에 소속되는 존재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피신하듯 모여든 사하맨션의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규칙과 예의를 지키며 살아간다. 고립된 사하맨션은 타운 안에서도 독립된 공간처럼 보였지만, 타운의 분위기를 해친다면 바로 조치가 취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어느 날, 타운에 살던 한 여자의 죽음에 사하맨션에 사는 도경을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한차례 소란스러워진다. 예상했던 것만큼 길게 끌지 않은 사하맨션의 감시와 경계가 오히려 수상할 지경이다. 그리고 사하맨션의 사람들은 고요하게 자기 몫의 하루를 견디듯이 지낸다.
인도를 따라 심긴 벚나무 가지가 자연스럽게 늘어지며 초록 잎들이 터널을 만들었다. 햇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잎들은 초록색으로도, 연두색으로도, 때로는 흰색이나 황금색으로도 보였다. 빛나는 벚나무 터널을 지나는 어린 연인. 꽃이 지고 열매가 떨어진 여름의 벚나무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봄이 아련한 줄 몰랐고 여름이 반짝이는 줄 몰랐다. 가을이 따사로운 줄 몰랐고 겨울이 은은한 줄 몰랐다. 아무것도 몰랐다. 이렇게는, 살았다고 할 수 없겠지. 살아 있다고 할 수 없겠지. 진경은 혼자 중얼거렸다. (325페이지, 701호 진경)
가상의 도시국가라는 데에서 SF 분위기를 풍기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상상 속의 국가에서마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그대로 비춘다. 최근 여러 작품으로 만난 작가의 글에서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세상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고발하듯 적어간 이 소설에서 마주하는 또 하나의 세상을 들여다보는 일이 편하지는 않았다. 본국에서 떨어진 작은 타운에서마저 등급이 나뉘듯 사람을 나누는 세상의 방식에 울컥하기가 여러 번, 그 계급의 격차를 줄일 수도 없다는 불행은 죽어서야 벗어날 수 있다. 애초에 왜 그런 계급이 존재해야만 하는지 알 수 없던 답답함은 이 소설에서 더 심각해지는 것만 같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시장 논리를 거부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그렇게 나뉘어가는 차이가 점점 커진다는 걸 지켜봐야만 하는 서글픔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계속 달려가도 안 되는 목적지를 오늘도 의미 없이 계속 가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다. 애초에, 살면서 주어져야 할 어떤 기회도 만나지 못하는 인생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인가 싶은 마음에, 소설이 소설로만 보이지 않은 까닭에...
현실에서 마주치는 너무나 닮은 이야기에 마치 지금 내가 사하맨션에 사는 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다. 두렵고, 우울하고, 절망적인 오늘을 간신히 견디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나마 위로가 되고 안심이 되는 건 사하맨션의 사람들 때문이다. 주류에서 밀려나고, 사회적 약자들의 집합소 같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음은, 한 번씩 끝에 다다르려는 마음을 붙잡는 힘이 된다. 이렇게 저렇게 꾸려온 사하맨션의 40여 년 세월이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면서 만든 인간적인 방식들 말이다. 꽃님이 할머니가 사하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을 받아주고, 관리실의 영감님은 은근하게 사하맨션 사람들의 마음을 읽으며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힘이 된다. 조금씩 변해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내일을 바꿀지 기대되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들은 견디는 것 이상의 오늘의 살아가고 있다. 상처받으면서 사하맨션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을 차별하는 시스템에 맞선다는 것, 그들이 이룰 수 있는 공동체의 연대를 만들어가는 희미한 모습들이 긴장된다. 마치, 내일 있을 시험을 잘 통과하고 싶어서 오늘 한 문제라도 더 풀고 싶은 간절함 같은 게 밀려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간절한 마음들이 묶이면서, 더 단단해지는 구성원으로 조금씩 거듭나는 걸 보면서, 이들이 언젠가 다시 일으킬 나비 혁명을 기대한다.
"괜찮아?"
"난 이제 지렁이나 나방이나 선인장이나 그런 것처럼 그냥 살아만 있는 거 말고 제대로 살고 싶어. 미안하지만 언니, 오늘은 나 괜찮지 않아." (112페이지, 214호 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