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인 윈도 모중석 스릴러 클럽 47
A. J. 핀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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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는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집 안에서 창문 밖 세상을 보는 것뿐이었다. 자기가 절대 발 디딜 수 없는 공간에 오가는 사람들, 작은 공원을 사이에 두고 누군가는 들어오고 누군가는 나가는 이웃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 마치 갇힌 공간처럼 집 안에서 혼자 하루를 보내는 여자의 일상이었다.

 

광장공포증을 앓고 있는 애나의 유일한 세상은 집안이다. 밖이 보이지 않게 커튼으로 집안의 밝기를 차단한다. 필요하면 실내의 불을 켜기도 하겠지만, 그녀에게는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다. 가끔 컴퓨터로 접속해서 다른 이들의 정신적인 문제를 상담하는 그녀는, 지금은 쉬고 있지만, 소아정신과 상담의였다.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상담하고 아이들이 정상적인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애나가 마음의 병을 앓고, 다른 전문가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게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애나의 현실이 그렇다. 남편과 아이는 떠났고, 애나는 주치의가 처방해준 약을 언제나 와인과 함께 먹는다. 늘 술에 취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를 버틸 수 없는 그녀의 고통이 무엇인지 알기에 함부로 단정할 수도 없다. 그녀 주변에 있는 사람은, 아래층의 세입자와 정기적으로 찾아와 몸을 단련해주는 치료사와 주치의뿐이다. 그런 그녀가 살인 현장을 목격했다.

 

그녀의 일상 중 하나인 밖을 지켜보는 일에 고성능 카메라가 필요했다. 평소 자주 사용하던 카메라로 밖을 내다보던 그녀는 이웃집의 거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본다. 애나와도 안면이 있던, 이웃집 소년 이선의 엄마인 제인 러셀이 누군가가 휘두른 칼에 찔려 쓰러졌다. 누가 찔렀는지까지는 보지 못했고, 그 자리에서 쓰러진 제인의 모습만 봤다. 당장에 이웃집으로 달려갈 수 없던 애나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웃집에 사는 제인 러셀은 다른 외모의 여자였다. 물론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이웃들과 경찰은 애나가 본 것을 믿지 않았다. 믿을 수가 없었겠지. 여러 가지 정신적인 질환을 앓고 있는 여자, 온종일 와인을 들이켜며 사는 여자, 더군다나 애나가 봤던 장면의 주인공들이 증명해주지 못하는 살인의 현장. 누가 애나의 말을 믿어줄 수 있겠는가. 읽으면서 나도 착각할 정도였다. 애나가 계속 지켜보는 이웃집 사람들의 행동이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과 다를 것 없어 보이는데, 종일 집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애나의 눈에 목격한 것들이 사실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가 있지? 그녀가 술에 취해 생각한 것을 직접 본 것으로 여기는 것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애나는 외친다. 봤다고, 자기가 살인사건의 목격자라고, 자기가 상상한 게 아니라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라고, 미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애나가 본 것은 분명하다고 거듭 말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

 

절망적이지 않았을까? 자기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말이다. 그게 범죄 현장인데도 아무도 믿지 않았다는 거다. 게다가 형사부터 이웃 사람들, 그녀의 주치의까지 그녀가 하는 말을 정신이상자의 헛소리로 여겼다. 왜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못했을까? 그건 그녀가 보낸 1년이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보면 알 수 있다. 계속되는 심리 상담과 매일 복용하는 약, 끊이지 않는 술, 주변 사람들에게 하는 남편과 딸 이야기. 그리고 정신적인 문제로 한 번도 밖에 나가지 못했던 1년의 세월이 그녀의 말에 힘을 실어주지 못한다. 그녀는 다시 한번 집안으로 숨어든다. 이렇게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겠지. 직접 목격한 살인사건조차 그녀의 허상에 불과하다는 게, 더는 살아갈 의미를 잃은 것 아닐까? 이제는 그녀 스스로 자신을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녀가 본 것이 상상에서 나온 이야기일 뿐이라고 믿는다. 누구도 그녀를 도와줄 사람이 없고, 그녀 역시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혼자다. 그렇게, 혼자인 그대로 그녀는 삶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내가 타인을, 세상을 보는 시선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본 것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일까? 진실일까? 전부일까? 알 수 없다. 어쩌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진실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진실을 찾는다. 내가 본 것이 맞는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그렇게 우리 삶은 보는 그대로를 믿음으로써 흘러간다. 믿지 않으면 어쩔 텐가?

 

소설은 결말 부분에 이르러 이제껏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꺼내놓으며 더 깊은 의문에 빠지게 한다. 애나가 본 것이 정말일까 싶은 궁금증에 살인사건의 장면을 되돌려보고 싶게 만든다. 이대로 애나의 착각으로 머물 것인지, 애가 본 것이 사실일지 확인하고 싶은 간절함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하게 한다. 특히 이야기 틈틈이 애나가 즐겨보는 흑백 영화들, 추리 미스터리 영화들, 대부분 히치콕의 영화이거나 히치콕을 모방한 영화들을 볼 때마다 현재 애나의 상태나 숨겨진 진실들에 관한 힌트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소설 속 영화에까지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아마도 주변 사람들이 애나의 말을 더 믿지 못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영화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평소 즐기던 추리 미스터리한 이런 영화들이 애나의 착각을 더 심각하게 했겠지. 사실 처음부터 애나의 말을 믿을 수 없게 설정한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애나가 본 것이 진실인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누가 왜 살인을 저지른 것인지 독자가 찾아가게 하는 길을 만든 게 아니었을까.

 

창문을 통해, 온라인을 통해 애나가 만났던 사람들과 만들어가는 사건과 진실들이 무슨 퍼즐을 맞추듯이 하나씩 채워지는 느낌이다. 이미 에이미 아담스와 게리 올드만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니 더 흥미로운 이야기다. 소설의 끝부분에 애나가 봤던 영화들의 목록도 있으니 참고해서 소설에 푹 빠져들면 좋겠다. 어쩌면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모든 게 진실이 아닐 수도 있으니, 이 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조심해야 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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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유책방 2019-09-18 0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보고 싶네요

구단씨 2019-09-18 20:44   좋아요 0 | URL
푹 빠져들어서 읽기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