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돌보는 일을 잘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조차 두려움을 가졌던 적이 있다. 어떻게 키워야 하나, 잘 돌보지 못하면 어쩌나... 엄마가 돌보는 작은 화분 몇 개에서 꽃이 피는 걸 지켜보면서도 내가 돌볼 몫으로 화분을 만든 적은 없다. 애완동물을 곁에 두지 않는 이유도 비슷했다. 이 녀석을 내가 잘 보듬어줄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니 내 곁에서 외로워하거나 홀대받다가 죽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고 그랬다. 그러니 내게 애완동물은 멀리서 거리를 두고 보는 대상이다. 누군가의 강아지 고양이를 그저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정도.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과연 누가 누구를 돌보는 게 인간과 애완동물 사이에 존재하는 전부였던가 싶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미유는 작은 상자 안에 있던 고양이 초비를 거둔다. 버림받은 고양이였지만 미유에게 속하게 된 초비. 오랫동안 유지한 친구와의 우정과 친구를 통해 알게 된 남자친구 사이에서 아픔을 겪는다. 그림을 그리는 레이나의 집에 드나들던 고양이 미미는 떠돌면서도 레이나의 곁을 찾아든다. 시니컬한 레이나 곁에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 고양이 미미는 길고양이와 집고양이의 중간쯤 행동으로 레이나 옆에 있는 듯 없는 듯 생활한다. 1년 동안 집안에서 나가지 않던 아오이에게 고양이 쿠키가 찾아온다. 아오이의 엄마가 분양받은 고양이다. 세상과 단절하고 싶고 밖으로 한발짝도 나갈 수 없는 아오이에게 대화 상대가 되고 친구가 된다. 노부인 시노의 곁에 까칠하고 힘센 고양이 구로가 애완견 존의 자리를 차지한다. 개인 존과 친구 아닌 친구 사이였던 구로는 어느 날 사라진 존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시노 부인의 활력소가 된다.

 

화자 '나'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세상의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별다른 걸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가 점점 드러나는 '나'는 고양이의 시선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묘했다. 고양이가 보는 세상의 모습, 고양이가 하는 말들, 고양이가 겪는 감정의 변화들까지. 어쩌면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감정으로 세상을 보고 고양이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간 세상과 다를 바 없는 고양이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들의 생태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지켜보게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화자 '나'는 인간의 시선이다. 연작소설처럼 이어지는 네 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인간은 모두 '그녀', 여자다. 젊은 여자 나이 든 여자. 세상 만만하게 살아가도 좋으련만, 각자의 상처와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신뢰가 없는 연애 아닌 연애를 했다가 친구도 애인도 잃은 여자, 자기 재능을 너무 믿고 있다가 뒤늦게 좌절하는 여자, 우정에 실패하고 1년 동안 집안에서 파묻힌 여자, 결혼생활에 지친 시집살이에 이제 혼자가 됐지만 외로운 여자.

 

"누가, 누가 좀."

나는 그녀가 소중한 사람과의 연결고리를 잃었음을 알았다.

"누가 좀 나를 구해줘."

그녀는 언제까지고 울었다.

우리를 실은 이 세상이 끝없는 암흑 속에서 계속 돈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46페이지)

 

처음 생각할 때는 이 여자들이 고양이를 집안에 들이면서 떠돌이 고양이를 거두는 것이 아닐까 했다. 길에서 흔히 보는 고양이들의 거처를 마련해주면서, 먹이를 주고 돌봐주는 일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다른 면이 조금씩 보이면서 누가 누구를 돌보는지 알 수 없게 됐다. 삶의 여러 가지 것들로 지키고 힘든 인간에게, 고양이는 돌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옆에서 공생하는 대상이었던 거다. 고양이의 언어로 하는 말을 인간이 알 수는 없지만, 서로 이야기가 통한다. 하고 싶은 말이 전달된다. 이게 가능할까? 등장인물들과 네 마리의 고양이, 한 마리의 개가 차근차근 풀어가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알겠다. 이들이 하고 싶은 말은 굳이 소리로 하는 말이 아니어도 괜찮았다는 것을. 표정과 마음으로 전달하는 말이 서로에게 전달되는 기적(?)을 몸소 보여주는 이들이었다. 인간이어도 동물이어도 상관없다. 서로의 마음을 읽고 감싸 안아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강하기만 한 인간은 없지만 계속 약하기만 한 인간도 없으니까."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99페이지)

 

네 마리의 고양이가 각자 다른 것 같지만, 고양이들은 또 고양이들과 함께하는 주인들의 사연은 조금씩 연결되어 있다. 그들의 슬픔이나 상황이 낯설지 않다. 살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가 이들의 이야기에 담겨 있는 듯하다. 진학 문제, 남녀 문제, 우정 문제, 결혼생활의 문제 등 여자들에게 공통으로 다가오는 고민이 그대로 전해진다. 지나고 보니 별일 아닐 수도 있는 이야기 앞에서는 어른 사람 마음을 흉내 내면서 읽게 되고, 내가 아직 감당하지 못한 문제 앞에서는 그들의 고충을 짐작하면서 읽게 된다. 사는 내내 우리가 털어내지 못할 삶의 힘겨움을 고양이와 여자의 일상으로 공감하게 하는 이야기다.

 

이미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인 적 있는 이야기라 그런지, 영화의 포스터나 스틸컷으로 장면들을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흥미로운 소재에 평범한 일상이 어우러져 판타지와 드라마 두 가지 장르를 만나는 기분이다. 특히 인간 세상과 다를 바 없는 동물들의 세상이 웃기면서도 씁쓸하다. 그냥 길고양이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길고양이들에게도 나름 관할 구역(?)이 있고 그렇게 정해진 구역에 발을 디디는 것은 남의 구역을 침범하는 게 된다. 바로 전쟁의 시작인 거다. 고양이들의 난투극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본 적이 없어서 다 알 수는 없으나, 인간 세상의 구역 싸움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지만 지역의 터주대감같이 그 구역의 오래된 노견 존의 지혜가 고양이들끼리의, 고양이와 인간의 교감을 이뤄내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달리고 달리다가 그제야 알아차렸다. 세상이란 내 생각과 다르다는 걸.

세상의 크기는 내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무서워.

아오이도 분명 이걸 두려워했던 거야.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141페이지)

 

단순히 인간의 시선으로 보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하면서 교감하고 성장하는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괜히 더 착해지고 싶은, 누군가를 더 이해하고 싶은, 내 인생을 조금 더 아껴주고 싶게 하는 이야기다. 내가 다 알지 못하는 반려동물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끈끈한 뭔가를 엿본 기분이다. 이제 길에서 마주하는 고양이들이 다시 보일 것 같다. 그들의 사연과 사정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길을 걷게 될 것만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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