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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평점 :
한참 철이 없을 때는 이런 상상을 하기도 했다. 혹시 나는 어디서 데려온 아이가 아닐까, 우리 진짜 부모는 저기 어디서 굉장한 부자로 사는 분들이 아닐까, 학벌도 좋고 집안도 좋은 그런 사람이 내 부모는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너무 어렵게 자라던 시절의 상상 같은 일이기도 하고, 정말 힘든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때 막연하게 떠오르던 동화 같은 일이다. 조금 더 자라서는 뉴스에서 보던 부모 같지 않은 부모가 저지른 일들을 이해할 수 없었을 때도 생각했다. 부모가 되는 일에는 자격이 필요하다고, 혹시 어느 나라에서는 부모 자격시험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하고. 부모는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당연하게 주어지는 자격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누군가를 알아 간다는 건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거야말로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가장 필요한 것인지도 몰랐다. (146페이지)
내가 상상만 하던 일을 이야기로 내놓은 작가가 있다. 놀랍기도 했지만, 어떤 내용으로 독자의 궁금증을 채워줄까 하는 기대가 더 컸다. “부모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한 문장으로 이 소설은 이미 첫 페이지를 열게 하는 마법을 부렸으니까.
미래의 어느 시대. 부모가 버린 아이들을 국가가 보호하고 관리하는 기관이 생겼다. 아이들은 이 센터에서 같이 먹고 생활하며 자란다. 한 마디로 국가가 아이들을 키워주는 양육 공동체가 된 거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부모 선택을 못 하면 기관을 나가야 한다. 기관을 나가기 전까지 아이들은 두 가지 결정을 한다. 양부모를 만나서 나가느냐, 아니면 이대로 스무 살을 채우고 나가서 센터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회생활을 하느냐. 이게 무슨 차이인가 싶지만,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들만의 차별을 두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듯하다. 어쨌든, 센터에 있는 동안 아이들은 관리자가 특별히 선별한 부모 후보를 만날 기회가, 그 부모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쉽게 상상이 되는 일이던가? 아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니. 물론 이 아이들에게는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치명적인 과거가 있지만, 그런 과거가 그다지 단점이나 불편함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오직 지금 상황에서 그들에게 맞는 부모를 선택할 권리만을 가진다. 시뮬레이션으로 본 부모 후보의 모습, 직접 만나서 몇 분간 대화가 가능한 시간, 마지막 세 번째로 만날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고 최후 결정을 한다. 자기 부모로 선택할 것이냐 마느냐. 센터의 아이들은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을 페인트라고 부른다. 주인공 ‘제누301’에게도 페인트 할 기회가 왔다. 그동안 진심으로 페인트에 응한 부모를 만난 적이 없던 제누에게 이번은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상처가 많은 아이가 선택한 부모 후보는 어떤 사람들일까? 아이들을 입양함으로써 정부의 복지 혜택만을 욕심냈던 부모들과는 다를까?
읽다 보면 우리가 바라보는 온갖 현실이 다 담겨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센터의 아이들은 태어난 달의 이름을 따서 뒤에 번호를 붙인다. 1월에 태어난 아이는 제누, 제니. 그 뒤에는 아이들을 구분하려고 붙인 번호. 그래서 센터의 모든 아이는 똑같은 이름이 많다. 그중에서도 6월에 태어난 아이들과 10월에 태어난 아이들의 이름이 가장 많다고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아차’ 했다. 여름 휴가철, 겨울의 크리스마스 시즌.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 가볍고 설레기 좋은 그때 잉태된 아이들이 6월, 10월에 태어나고 버려졌다고. 어른들은 자기들의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지만, 그 후에 태어난 아이들을 책임질 수는 없었다. 그렇게 센터로 보내진 아이들의 인생을 한번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있을까 싶은 아쉬움이 계속 떠나지 않는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아이를 낳았다고 해도 아이를 양육하는 현실은 아주 많은 차이를 느끼게 할 것이다. 경제적인 형편, 산후 우울증, 육아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 아이가 자라면서 겪는 많은 일을 같이 경험해야 하는 감정적인 문제들까지. 더군다나 그게 다 처음 겪는 일이라면 얼마나 두렵겠는가. 하지만 그 두려움을 안고 겪어야 할 게 아이와의 공동 성장 아닐까? 그 경험이 이뤄지는 동안 우리는 더 많은 감정과 상황을 겪게 될 것이지만, 그래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단단하게 묶이는 기적을 맞이하게 되는 결말을 맞이하는지도 모른다.
하나가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한 가족이 된 것을 기뻐할 때도 있을 테고, 후회할 때도 있을 거야. 너도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거야. 얼굴 표정, 목소리만으로 서로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알 정도로 가까워지겠지. 그렇게 되기까지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야. 내가 친구들과 그랬듯이. 해오름과 부부가 되었을 때 또 그랬듯이.” (163페이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고. 또 모르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겪잖아요.”
모른다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모르기 때문에 배울 수 있고, 모르기 때문에 기대할 수 있으니까. 삶이란 결국 몰랐던 것을 끊임없이 깨달아 가는 과정이고 그것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긴 여행 아닐까? (196페이지)
부모를 선택하는 시대라는 설정으로 시작한 이야기지만, 차근차근 듣다 보면 결국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가족이 어떤 형태와 마음으로 가능한지 설명해주려고 애쓴 모습이 보인다. 더불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는지도 드러난다. 익숙해서 편하지만 당연하게 생각해서 상처받게 하는 존재가 되는 가족들, 사회에서 출신 성분을 따져가며 사람을 판단하는 시선들, 가족 중심의 사회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그러면서 다다르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부모는 어떻게 되는가, 자식은 어때야 하는가. 부모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부모가 되어가는 것’처럼, 자식 역시 부모에게 어떤 자식이어야 하는지 처음부터 정해진 건 아니다. 그걸 몰라서, 알면서도 자주 잊어서 무책임하고 상처 주는 일들이 생기는 거 아닐까. 준비와 노력만으로 가족이란 관계를 완벽하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가족이란 계속 서로 맞춰가야 같이 갈 수 있다는 의미를 다시 새기게 하는 소설이다. 혹시라도 멈춰있던, 같이 색을 칠하며 그림을 완성해가는 시간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