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너는 노땡큐 - 세상에 대들 용기 없는 사람이 뒤돌아 날리는 메롱
이윤용 지음 / 수카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단순히 늘어나는 숫자만을 의미하는 건 아닌 듯하다. 나 같은 경우 늘어나는 나이와 주름살이 슬프기도 하지만, 참기만 했던 것들을 말하는 것도 늘어났다. 눈치 보느라 집어넣어야 했던 감정을 표출하는 일이 많아졌다. 남의 인생을 함부로 재단하며, 일상의 시시콜콜함까지 관여하려는 사람에게 차디찬 말 한마디 건넬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는 거다. 물론 이런 경우도 항상 가능한 건 아니다. 상황과 자리에 따라,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참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아니까.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참아야 하는 자리가 그리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처럼 온갖 참견 다 하면서 말로 상처 주는 사람에게는 배려해야 할 예의 같은 건 챙길 필요가 없었다는 후회가 종종 있었으니까.

 

라디오 작가로 오랜 커리어를 쌓아온 저자가 세상을 향해, 자기 인생을 흔드는 사람을 향해 한 방을 날린다. 생각해보면 라디오라는 공간은 많은 사람의 온갖 사연이 몰려드는 곳 아닌가. 20년 동안 청취자들의 많은 이야기에 공감해 온 작가가 사연을 들으면서 차마 전파로 내보내지 못한, 꺼내고 싶은 말도 참 많았을 것 같다. 거기에 작가 자신이 겪은 일들에 하고 싶은 말을 더 보태고 싶었을 수도 있고. 방송에서나 사적이어서 말하지 못했지만, 자기가 쓰는 책에서는 마구 쏟아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공유하고 싶었겠지. 우리 이런 일로 가슴에 상처받는 일 더는 하지 말자고. 거절할 것은 거절하고, 차단할 것은 차단하면서 우리 인생 흔들리지 말자고 말이다.

 

내 앞에서 칭찬하는 사람은 뒤에서도 날 칭찬하는 줄 알았고, 나한테 잘해주면 그저 다 좋은 사람인 줄 알았고, 나에게 늘 자상한 남자는 다른 여자에게도 자상하다는 걸 몰랐고, 겉멋 부리기 좋아하는 남자는 인생에도 겉멋이 들어 성실하지 않다는 걸 몰랐으며 누군가는 내가 한 이야기를 토씨 몇 개 바꿔 뒤에서 아예 다른 이야기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걸 몰랐다. (122페이지)

 

생각해보면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쉬운 일도 아니지만, 하려고만 하면 가능한 일을 주저하면서 못 했던 거다. 내가 상처받는 것을 먼저 보지 않아서 그렇다. 내가 상처받고 내 감정이 아파하는 것을 인지하기 전에, 상대에게 밉보이면 안 된다는, 상대에게 싫은 소리 하는 건 안 된다는 판단이 앞서 나를 지키지 못했던 거다. 그렇게 나를 먼저 챙기지 못하고, 주변의 것을 보면서 착하고 괜찮은 사람 이미지를 챙기느라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냉정한 말을 건네지 못했던 시간을 소환한다. 그러면서 이제 인생에 독이 된 사람과 감정과 말들을 삭제할지 저장할지 선택해야 할 시간을 마주한다. 동시에 내 인생에서 힘이 되었던 사람과 따뜻한 말을 살포시 담아본다. 저자의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보자면, '소심해서 세상에 대들 용기도 없고 억울하지만 따지지 못하는 성격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과 감정들을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는 일'일 테니까. 이 작은 몸부림이 우리에게 주는 시원한 한방이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행복하게 해줄 것만 같다.

 

경제 위기 시절에 겪은 사회의 쓴맛, 여러 번의 연애가 만들어준 남자를 보는 시각, 중독자처럼 일하면서 부딪히는 사람과의 관계. 사람들 사이에서 생긴 상처가 숨통을 조일 때마다, 그들이 자기에게 버리고 간 쓰레기들을 처리하지 못해 켜켜이 쌓아두기만 했다. 쓰레기를 쓰레기인 줄도 모르고 안고 살아왔다. 좋은 것만 기억하고 떠올리며 나아가기에도 부족한 시간이고 인생인데, 그걸 이제야 알게 된 거다. 그렇다고 후회만 하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소중하니까, 아픈 일들은 하나씩 지우고 좋은 기억들 하나씩 품으면서 행복해질 생각만 하면 된다. 그중에서도 유독 마음에 오래 남은 구절이 있다. 우리가 찾았던 것은 거창한 말이 아닌, 그냥, 말 그대로, 마음을 다독여줄 단순한 한 마디의 위로였다는 것을.

 

승객 여러분,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소중한 사람과 따뜻한 저녁 보내시기 바랍니다.

 

순간, 아침부터 온종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나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나는 그만 울컥 눈물을 흘리고 말았던 것이다.

 

위로의 말이란 얼마나 단순하고 명료한 것인가.

우리가 언제 거창한 말을 바랐던가.

우리가 언제 잘했다는 칭찬을 원했던가.

 

그저 딱 한 번의 헤아림.

너의 고생을, 속상함을,

잘 해내고 싶은 부담감을, 간절함을

내가 알고 있다는 그 말 한마디면 되는 것을...

그저 그날 내 고생을 알아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되는 것을... (67~68페이지)

 

인생에서 독이 되는 관계를 티 안 나게 정리하는 방법이라고 말하지만, 그 방식이 참 소박했다. 그래서 더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정작 우리가 할 방법이 이거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싶어서 공감한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고등학교 동창이 저자의 늦은 결혼을 걱정하면서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라고 하고,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온 대학 동기는 대뜸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서 저자의 경제 상태를 나무란다. 분명 듣는 사람이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인데 저자는 사과부터 했다고 한다. 순간 나도 모르게 사과의 말이 나갔을 것이다. 내가 받은 상처가 보이기 전에 상대가 화를 내는 게 더 큰 일이라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우리가 이런 선택을 하면서 나의 마음보다 상대의 감정을 먼저 읽는 것은, 관계가 어색해지고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싫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자꾸만 나에게 부딪혀 오는 일들. 어쩔 수 없이 감당하는 게 답이 되어버린 상황들. 그때마다 상처를 가슴에 쌓아오던 방식이 잘못된 거였다. 이제라도, 하루라도 빨리 내 인생에서 그것들을 내보내야 할 때다. 버리고, 삭제하고, 당장!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될 일이었는데, 나에게 상처 주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을 더 봐야 할지 고민해볼 필요도 없는 일이었는데, 무례하고 부당하게 나를 대하는 사람을 삭제하는 일에 야무지게 대처하지 못해 대나무 숲을 찾아다니는 일을 그만하고 싶다면, 저자가 전하는 방식에 귀 기울여보자. 한 번씩 인생을 리셋하고 싶은 순간이 있지 않은가. 지금이 딱 그럴 때다.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과 부정적인 감정들을 정리하면서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만이 내 인생을 채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