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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1 : 태조 - 혁명의 대업을 이루다 ㅣ 조선왕조실록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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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가장 탁월한 미래학이다.
미래의 길이 보이지 않을 때일수록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 과거를 돌아보는 목적은 미래의 길을 찾고자 함이다. 역사가 과거학이 아니라 미래학인 까닭이 여기에 있고,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도 여기에 있다. (10페이지)
이덕일의 『조선왕조실록 1』권을 읽다가 새로운 것을 보게 되었는데, (어디까지나 내가 느끼기에 새로운 장면이었다는 거다) 35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서 거의 250페이지 가깝게 서술된 게 조선의 건국 전 이야기다. 그러니까 나는, 고려 왕조가 끝나고 조선이 뚝딱 세워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거다. (부끄러움은 나의 몫... ㅠㅠ) 하긴, 멀쩡히 잘 굴러가는 나라가 갑자기 사라지고 새로운 나라가 생길 수가 없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동안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새로 등장하는 나라 사이의 일을 잘 듣지 않았던 거다. 왕과 왕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나라와 나라가 바뀌는 것인데 얼마나 커다란 일이었겠나. 그 일이 실행에 옮겨지기까지 그리 단순하지 않음을 아는데도 간과했다. 현재의 나라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누군가는 상황을 바꾸고 나라의 역할을 제대로 할 마음을 품는 것을. 고려와 조선의 바통 체인지가 그랬다. 고려 말 나라 안팎의 상황이 개혁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특히 흉흉한 민심은 고려가 그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못했다.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이 이성계였고, 그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이 조선의 건국을 이뤄낸 거였다. 그렇게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기 시작되었다.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이 잦아서 백성의 삶을 피폐하게 할 때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개혁이 아니고서는 해결 방법이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무렵이었다. 하지만 개혁을 하려는 사람들의 뜻은 둘로 나뉘었다. 고려를 기반에 둔 온건 개혁을 말하던 이색과 정몽주. 아예 왕을 바꾸어(왕의 성을 왕 씨에서 바꾸자는) 시작해야 한다고 급진 개혁을 말하는 신흥 무인 세력들. 이성계는 신흥 무인 세력에 속한 자다. 하지만 이 안에서도 뜻이 하나로 쉽게 모아지지는 않았던 듯하다. 개혁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가기도 했고, 뜻을 같이할 수 없는 사람들과 맞서기도 했다. 이성계는 명나라 정벌을 주장했던 최영과 우왕의 뜻에 반대하여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군대를 되돌린, 위화도 회군을 결정하기도 했다. 그건 곧 반역을 의미했다.
쉽진 않았지만, 이성계는 조선 건국과 함께 태조가 된다. 그의 나이 쉰이 넘어서 이룬 결과였고, 오랜 시간 함께해온 사람들과 더 나은 나라를 꿈꿨을 것이다. 고려 말의 상황과 같은 일은 만들지 않겠노라 속으로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왕위에 오르고 그가 조선을 통치한 건 6년여 정도였다. 아버지를 따라 고려로 귀순하고, 변방 촌뜨기에서 조선의 태조가 되기까지 그의 대서사시가 『조선왕조실록 1』권에서 펼쳐진다. 이성계가 조선 건국을 이뤄낸 것을 유심히 지켜봐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거였다. 민심을 읽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의 정책으로 파악할 수 있다. (오늘날의 정치나 선거 대책 방향과 다르지 않은 듯하다) 거기에 그의 리더십과 겸손이었다. 그의 겸손은 특히 이 책의 후반부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그는 조선 건국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만의 능력으로 조선을 건국한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조선 건국 이후 조선왕조를 더 탄탄하게 하려고 주변 사람을 이끄는 모습은, 리더라면 어때야 하는지 몸소 보여준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말년에는 왕자의 난을 지켜보면서 과오를 뉘우치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태조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혁명적 토지 개혁을 단행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랑과 고려를 멸망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 짊어질 수 있는 극도의 증오를 동시에 받으면서 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가는 저승에는 함께 이 왕국을 만들었으나 먼저 왕국을 떠난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미래는 언제나 그랬듯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이었다. (356페이지)
조선왕조실록이 독자에게 읽히는 건 이 책이 처음은 아니다. 78편의 사극 드라마가 조선을 배경으로 했다고 하니, 조선왕조는 충분히 흥미로운 소재이긴 하다. 조선왕조의 모든 왕을 드라마로 만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원작이라고 불러도 좋을 조선왕조실록을 완독하는 게 어떤 독자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나야, 나) 다양한 버전으로 나온 조선왕조실록을 읽는 맛이 있을 텐데, 이미 검증된 역사학자 이덕일의 목소리로 만나는 조선왕조실록은 사뭇 웅장한 느낌이다. 이제 시작인데 정통 조선왕조실록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기 때문이다. 구상과 자료조사에 10년의 시간이, 집필에 5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하니 믿고 읽어봐도 좋을 작품이다. 이미 2권(정종, 태종)까지 출간되었고, 곧이어서 계속 출간될 다음 왕들도 얼른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