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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의 어머니 박병선
공지희 지음, 김지안 그림 / 글로연 / 2011년 12월
평점 :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의 어머니
박병선
공지희 글
김지안 그림
출판 _글로연
162쪽
이 책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책이지만
성인인 나에게도 무척이나 감동을 준 책이었다.
국사책에서 많이 봐왔던 직지, 하지만 이것을 박병선박사님이 힘들게 찾아온것인지는
그당시엔 정말 몰랐다.
그리고 요근래에 많이 기사화되고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외규장각의 반환.
이 두 문화재의 중심에는 박병선박사님이 계셨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같은 한국인으로서 너무 부끄럽고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감정을
많이 느꼈다. 그리고 박병선박사님의 이야기에 대해서 간략하게라도
모든 교과서에 다 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걸고 우리 문화재에 대해 열정을 다 하신 분이다.
그 당시 지식인으로서 할 수 있는 한계점이 있었으면, 그녀는 이 한계점을 뛰어넘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낸것이다.
나는 한국보다 프랑스에서 더 오래 살았습니다.
그 덕분에 프랑스에 있는 한국의 고서들과 귀한 자료들을 발견하고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내 나라의 역사를 바로 알고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깨닫게 될 때의 그
즐거움과 뿌듯함은 늘 나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습니다.
또한 이곳 프랑스에서 직지심체요절을 고증하고 어두운 창고 안 먼지 속에 묻혀 있던
외규장각 의궤를 다시 찾았을 때, 나는 무한한 감동과 감사함으로 벅차오르는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한순간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묵묵히 내 길을 걸어왔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추천의 글 중
그 당시 여자홀로 프랑스에 건너가 유학을 하면서
박물관에 들어가 외규장각을 찾으라는 이병도선생의 말씀에 따라 몇년에 걸쳐서
외규장각을 찾으려고 노력을 한다.
그리고 직지의 발견과 외규장각의 발견에서 그녀는 한국에 있는 사학자들에게
의뢰를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어떻게 그런게 존재할 수 있느냐, 만약 그게 진실이라면
그 발견과 연구결과의 주체는 우리의 것으로 해달라'라는 어이없는 대답들 뿐이었다.
이 점에 대한 사실을 읽으면서 정말 화가났다.
그녀는 박물관에서 쫓겨난 후 생계를 걱정하면서 연구를 하고있는데
고국에서 돌아오는 대답이라고는 저러하니
만약에 내가 그녀였더라면 무한한 회의감과 함께 '내가 이걸 해서 무엇하겠어'라는 마음에
다 놓아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문화재반환과 관련하여 프랑스박물관과 사이가 안좋아지자 그녀는 마음껏 역사자료를
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줄기차게 한권이라도 보여달라며 요구했고
그녀의 정성에 도서관 사서들도 감동하고 그녀에게 책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정신력과 노력,열정,정말 존경하고 또 존경한다.
그리고 모든 한국인들이 박병선박사님의 열정을 꼭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일대기를 담은 도서와 영화,드라마가 만들어져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박사님을 기억하고 직지와 외규장각의궤를 생각할때
박사님을 바로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직지와 외규장각 의궤를 찾고 연구하는데 평생을 바친
박사님의 열정을 고스란히 담은 책,
그리고 박사님을 추억할 수 있는 책속의 그림들도 박사님의 열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나중에 자식이 생기면 아이에게 꼭 권해주고싶은 필독서이다.
아이와 함께 박병선박사님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정말 뜻깊은 시간이 될것같다.
+) 위키페디아로 본 박병선 박사님
링크 ; http://ko.wikipedia.org/wiki/%EB%B0%95%EB%B3%91%EC%84%A0_(%EC%97%AD%EC%82%AC%ED%95%99%EC%9E%90
박병선(1929년 ~ 2011년 11월 22일)은 대한민국의 역사학자이다. 1955년 한국여성 최초로 프랑스 유학을 떠나, 프랑스 유학 기간 중 1967년부터 13년 동안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근무하면서 직지심체요절과 외규장각 도서를 찾았으며, 직지심체요절이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라는 사실을 밝혀내었다.[1] 2008년 9월 직장암 4기 선고를 받았으나,[1] 2009년 12월 7일 장암 수술을 받은 뒤 중환자실에서 회복하여,[2] 이후 프랑스에 거주하였다.[3] 2011년 11월 22일,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하였고,[4][5]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6]
[편집] 수상
- 2011년 제7회 경암학술상 특별공로상[7]
- 2011년 국민훈장 모란장
- 2009년 26회 가톨릭대상 특별상
- 2007년 제7회 비추미여성대상 특별상
- 2007년 국민훈장 동백장
[편집] 같이 보기
[편집] 각주
- ↑ 가 나 직지대모 박병선 박사 '재조명' 《충청일보》
- ↑ 외규장각 보물과 박병선 박사 《제주일보》
- ↑ “<인터뷰> 외규장각 도서 첫 발견 박병선박사”, 《연합뉴스》, 2011년 4월 13일 작성. 2011년 4월 16일 확인.
- ↑ “‘외규장각 도서 반환 기여’ 박병선 박사 타계”, 《KBS》, 2011년 11월 23일 작성. 2011년 11월 26일 확인.
- ↑ “외규장각에 몸바친 30년…박병선 박사 타계”, 《SBS》, 2011년 11월 23일 작성. 2011년 11월 26일 확인.
- ↑ “故 박병선 박사, 현충원에 안치”, 《KTV》, 2011년 12월 1일 작성. 2011년 12월 14일 확인.
- ↑ 박병선 박사 등 제7회 경암학술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