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B는 없다 - 오로지 하나의 목표에 전념해서 인생의 성취를 이루는 법
맷 히긴스 지음, 방진이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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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오로지 하나의 목표에 전념해서 인생의 성취를 이루는 법." 보통 우리는 누구나 플랜B라는 걸 예비해 두고, 프라이머리 플랜이 좌절하고 난 후의 대안으로 삼아야 한다는 식의 충고를 듣습니다. 전쟁에서 적국에 상륙해도, 그 공략이 여의치 않게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퇴각, 귀환을 위한 배를 항구에, 해변에, 잘 묶어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맷 히긴스는 그런 우리의 온건한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주장을 합니다. "모든 배를 불태워라!" 전쟁의 신 한신이 정형에서 배수의 진을 칠 때에도 아마 이 비슷한 심정이었을 겁니다. 사실 애초부터 부실한 플랜A를 만들어 놓고서는, 면피성으로 혹은 합리화를 위해, 플랜B, 플랜C를 거창하게 정교하게 내건들, 목표(무엇이든 간에)가 달성될 리 없습니다. 계획의 완결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처음에 목표로 내걸었는지를 기억하고, 그를 달성하는 데 진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타당한 게, 애초에 플랜A가 완벽하면 플랜B가 왜 필요하겠으며, 멋있게 질 생각을 할 게 아니라 모양새가 좀 빠지더라도 이길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메인 목표가 뻐그러지면, 부대 타겟이 적중되어도 이미 그 의미가 퇴색하는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이 세상에는, 무엇을 이루려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쓰는 사람이 따로 있고, 윗사람에게 아부하며 제 한심한 잇속만 챙기려 들고, 조직을 위한 진짜 기여는 내심 신경도 안 쓰는 분자가 따로 있습니다. 남 눈에 안 띄는 일은 무엇이든 대충대충입니다. 누가 조직에 기여를 하면 그 사람의 창의성이나 재능, 노력은 평가하지 않고, "쟤는 원래 일하기를 좋아하나 보지." 정도로 깎아내립니다. 이런 말을 하는 심리는, 큰 노력을 기울이려 들지 않아서 성과가 이 정도일 뿐 마음만 먹으면 자신도 저렇게 못할 바 없다는 허풍이 깔린 건데, 전혀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은, 어리석고 미숙한 정신을 오히려 자체 폭로하는 꼴입니다. 고작 몰두한다는 게 게임인데, 게임에 그렇게 많은 정력과 시간을 쏟지만 심지어 게임 실력, 레벨조차 변변치 못합니다. 어디 가서 게임한다 소릴 떠들기가 민망할 정도입니다. 

비방꾼(p60), 훼방쟁이 등은 조직에 암적인 존재인데, 안타깝게도 제법 큰 규모의 기업에도 꼭 이런 분자가 한둘은 끼어들어 물을 흐리기도 합니다. CEO와 관리자는 이런 아무 쓸모없는 직원을 내몰아야 합니다. 이런 자가 혹 서투르지 않게 다루는 분야가 있다 해도, 십 수 년 동안 반복되어 못할래야 못할 수가 없는 극 루틴, 먼데인 워크(mundane work)일 뿐입니다. 본인이 쿠사리먹어가며 고생스럽게 익혔던 과정은 생각도 않고, 이제 알량한 감투 하나 썼다고 신참들한테 야비한 소릴 해 가며 닦달하는 꼴이란 가관도 아닙니다. 저자는 이런 쓸모없는, 어디가 고장난(p61) 직원들에 대해서도, 세상에 이런 인간들이 설치는 건 어쩔 수 없으니 거꾸로 이런 자들을 데이터삼아 자신의 프로젝트를 더 치밀하게 밀어붙일 의지를 다지라고 충고합니다. 

미국 최고 인기 스포츠인 NFL의 로고는 우리들도 알듯, 또 이 책 p118에 나오듯, 방패 모양입니다. 이 로고가 진짜 그런 뜻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아니라, 저자는 이미 잘나가는 부유한 리그의 타성, 관성을 비판하기 위해, 이 조직이 자체 관습, 관행에 대해 과도하게 보호(방패를 뜻하는 shield가 원어이겠습니다. 우리도 시쳇말로 "실드친다"는 표현을 간혹 쓰죠)하려 든다고 풍자합니다. 아무리 현재 잘 풀리는 사업이나 회사라고 해도 혁신이 없으면 결국은 뒷걸음질치게 되어 있습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했던 경영자가 있었기에 세계 정상에 올랐었으나, 그가 쓰러진 후 10년 동안 혁신을 게을리하여 지금 위기설이 도는 모 대기업을 보십시오. 그가 살아있었을 때는 대만의 TSMC 같은 것은 존재감조차 미미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나, 플랜B가 없는 삶은, 경영은, 너무 무모하지 않은가? 저자도 그 점을 모르고서 하는 주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최고의 경영자들이야말로 확신과 망상의 경계선상(p140)을 아슬아슬하게 걷는다며 그들만의 고충을 대변합니다. 주제 파악이 안 되는 아첨꾼, 기회주의자, 요령꾼들과, 이런 고독하면서도 단호한 CEO의 차이가 있다면, 후자의 경우 자신의 비전이 한순간에 환상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인지하고, 위태위태한 현실의 곡예를 아슬아슬하게 이어간다는 점입니다. 플랜B라는 도피구에 유보할 자원이 있다면, 그 정력과 관심을 오롯이 플랜A에 쏟아 처음의 목표를 전심전력으로 맹수처럼 나꿔채야 맞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더 유리한가? 유명한 몬티 홀 프라블럼도, 결국 특정 조건 하에서는 늘어난 선택지가 내게 더 확률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p190 이하에 소개되는 배리 슈워츠의 실험은 우리에게 의외의 결론을 일깨우는데, 선택지가 지나치게 많으면 소비자는 오히려 "마비"된다는 것입니다. 하버드의 프란체스카 지노 교수의 실험 결과는 더 놀라운데, 콜센터 직원 A그룹(여기 아니라도 갈 데 있음)과 B그룹(여기서 실직하면 갈 데가 없음) 중 오히려 후자의 단기 성과가 더 좋았다는 것입니다. 하긴 이래서 대기업 일부 부서에서도 기본 바탕이 부실한 자가 더 오래 버티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간혹 벌어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p276을 보면 저자는 선구자, 촉매자와 집행자의 기능과 자질을 구분합니다. 선구자는 큰 스케일에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시나리오 작가와도 같은 사람입니다. 촉매자는 나무를 위해 숲을 보는 사람인데, 조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이른바 "차분한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집행자는 거꾸로, 나무를 위해 숲 정도는 무시할 수 있는 추진력이 있어야 합니다. 각 구성원을 적시 적소에 배치하여 단번에 플랜A의 목표로 점프할 수 있는 조직이라야 이 험한 경쟁에서 최후의 생존자가 될 수 있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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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변의 코인투자 100문 100답
조성근 지음, 김동은 외 감수 / 진서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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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엔비디아 주가가 급등한 건 여러 산업적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원래는 코인 채굴 때문에 GPU 수요가 수직상승한 게 그 시초였습니다. p49에 보면 코인 채굴에 드는 전력량이 스웨덴 1년 전기 소비보다 많다고 하는데 사실 스웨덴은 본래가 인구 천만명밖에 안 됩니다. 코인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건 2014년 정도이지만 처음에는 반응이 미지근했다가 몇 년 후에 중국인들이 본격적으로 관심 가지면서 급격히 자산 포지션을 잡았습니다. 교환에 유리하고 불법복제 가능성만 차단되면 안 쓸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특정 정부의 변덕이나 부정한 의도에 좌우될 우려도 없겠고 말입니다. 아무튼 여기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코인이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일반의 견해(p52)에 반박하는 취지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우선 과거에는 작업증명 방식이어서 그냥 계산량으로만 때우던 게 이제는 지분증명 방식으로 바뀌어서 전력을 무한정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을 듭니다. 다음으로, 세상에 어떤 산업이건 전력을 소비하지 않는 분야는 없습니다. 친환경 자동차 제조라든가 2차 전지 생산은 전력을 소비하지 않습니까? 다만 기업주나 이해관계자가 각성하면 넷제로(net zero) 생산으로 이행하여, 나무를 더 심는다거나 환경 친화적인 사업을 펴서 기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해악을 다른 방법으로 중화할 수 있습니다. 책에 보면 코인 산업계도 그런 수단을 써서 얼마든지 친환경에 기여할 자세가 되어 있다고 하네요. 

몇 년 전만 해도 거래소 파산이 거의 일상이었습니다. 무슨 몇 군데 되지도 않는 거래소가, 며칠 전에는 어디 파산, 오늘은 어디 파산 하는 식인... 거래소에서 이뤄지는 거래도 과연 투명한 것인지 의심스럽고 출금할 때 출금이나 해 줄지도 걱정이었죠. 요즘은 실명인증도 하고 이런저런 보완 장치가 있어서 좀 안심이지만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직거래를 하면 안전한가? 두어 달 전에 직거래하러 찾아온 이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금품까지 뺏은 일이 있어서 큰 논란이 되었죠. 코인이 완전히 사회의 제도권으로 들어오지 못했다는 증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게 정 마음에 걸리면 "대안 투자"를 하는 방법도 있다면서 저자는 몇 가지를 소개해 줍니다(p77). 

어떻게 보면 코인이 한국에 도움을 주는 면도 있는데 이상하게 김치 프리미엄(p72)이라고 해서 한국에서만 코인이 비싸게 거레됩니다. 그래서 차익거래를 노려 중국인들이 한국시장에서 대거 이익실현을 하고 재미를 많이 봤죠. 예전에 제주도 땅 투기 바람도 그렇고 한국인들이 중국인들 호구 노릇을 참 많이 하는 느낌입니다. 뭐 세상 이치에 어둡고 머리가 둔하면 당하고 사는 거지 어쩌겠습니까. 그런데 워낙 김치 프리미엄이라는 게 유명하다 보니 코인시장에서는 달러보다 원화가 더 존재감 있다는 게 저자의 말(p74)입니다. 그런데도 환율이 이 모양이니... 여튼 한국인들의 (대체 왜인지 알 수 없는) 코인 사랑은 알아 줘야 합니다. 중국이야 정부가 개인의 사정을 워낙 잘 알고 악착같이 뜯어가서 그렇다고나 하지만. 

나카모토 사토시(일단 실존인물이라 치고)가 애초부터 지분증명 방식을 채택 않은 것은, p251에 나오는 대로 51%의 지분을 누가 점유해 버리면 그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였습니다. 그래서 반 우지한 측 개발자들이 또 조치를 취한 건데... 이처럼 탈중앙화 시스템의 문제점이라는 게 사실상 중앙화의 위험을 안고 산다는 겁니다. 민주주의도 중우정치에의 타락, 데마고그의 출현을 경계해야 하듯 말입니다. 앞에서 제도권으로 코인이 완전히 들어왔는지 여부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하나의 가늠자가 될 수 있는 게 ETF 승인입니다. p276에서 그레이스케일, 블랙록, 피델리티(ㅋ)의 예를 듭니다. 이들 Big 3의 이름은 코인 안 하는 사람들도 들어는 봤을 것입니다. 

이더리움은 후발 주자지만 시스템이 더 우수하다는 평가가 분명 있었습니다. 저도 이더리움 출현 초창기에 이 주제를 다룬 책을 읽고 독후감을 올린 적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 p316에 나오는 대로 하드포크를 둘러싸고 잡음이 이는 바람에, 세월이 지난 지금도 어째 평판이 완전히 나아지는 기미가 안 보입니다. 자산의 신인도라는 건 엄밀한 어떤 기준이 있다기보다 참여자, 투자자들의 센티에 좌우되는 게 많습니다. 게다가 이 책에도 나오지만 스마트컨트랙트 관련 오류(?)가 터지기도 한 것이죠. 코인 관련이 아니라고 해도 스마트컨트랙트는 한국에서도 2018년에 여러 스타트업이 표준화해서 내놓았는데, 까딱 잘못해서 누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이런 일이 터질 수도 있으니 기술맹신만큼 위험한 태도가 또 없습니다. 

코인 관련해서 궁금한 토픽은 웬만해선 이 책에 다 담긴 듯합니다. 이래서 코인 책은 최신판을 읽어야 한다는 점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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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런던 - 최고의 런던 여행을 위한 한국인 맞춤형 가이드북, 최신판 ’24~’25 프렌즈 Friends 20
이주은.한세라.이정복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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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주은 저자 등의 프렌즈 시리즈 런던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프렌즈 시리즈는 이처럼 자주 개정이 이뤄지는 게 뭔가 독자한테 안심을 주는 느낌입니다. 장정도 깔끔하고 내용도 알차서, 이래서 스테디셀러 소리를 듣나 싶습니다. 제 솔직한 평가입니다. 

한국에 관광차 온 외국인 젊은 여성들이 올oo영을 찾듯, 혹은 중국인들이 명동을 찾듯, 우리도 외국에 가면 쇼핑 명소를 찾게 마련입니다. 관광의 기본 생리가 그렇습니다. 프렌즈 시리즈도 거의 모든 책이, 가성비 기준이건 럭셔리 레벨이건 그 나라의 쇼핑 명소들을 다룹니다. p96을 보면 테스코가 소개되는데 이 이름은 한국인들에게도 눈에 익습니다. 대략 18년 전,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형마트가 붐을 이뤘을 때, 삼성과 이 테스코가 협업하여 홈o러o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지금은 둘 다 지분철수했습니다). 뭐 간만에 런던을 들러 구태여 테스코를 찾을 일이 있을까 싶지만, 책에서 이곳을 소개한 이유는 "가성비 쇼핑" 때문입니다. 

저는 언제나 프렌즈 시리즈가 소(小) 인문서를 겸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p44 이하에서는 런던의 건축 명물들을 소개하는데, 선명한 컬러사진만 봐도 눈이 시원해지지만, 그 텍스트 설명들도 정확하고 유익합니다. 참 좋다, 다 알고 있던 내용을 다시 읽는 정도이지만 그래도 좋다, 이런 좋은 자료, 정보, 컨텐츠를 ₩22,000에 내가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다, 이런 느낌입니다(물론 저는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에서 당첨되어 출판사에서 공짜로 책을 제공받고 지금 쓰는 후기입니다만, 이건 뭐 돈 주고 사라고 해도 전혀 돈이 아깝지 않습니다). 런던의 이 멋진 건물들 역사, 내력... 깨끗한 사진들과 함께 정돈된 문장으로 감상하고 나니 마음의 티끌이 저 멀리 씻겨 내려간 느낌이라 할지. 

요즘은 한국도 저기 도산대로 같은 데에서의 파인 다이닝이 하나의 트렌드를 이룹니다만(물론 주머니 사정이 좋지 못하면 엄두를 내기 힘들죠), 이 책도 서유럽, 영국 상류 사회, 중산층의 오랜 전통인 파인 다이닝 명소를 여러 군데 소개합니다. p120 이하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책에도 그런 말이 나옵니다만 브레드 스트리트 키친 앤 바 같은 곳은 여행자들도 아주 큰 부담 없이 들러볼 만한 곳입니다. 사실 완전 고급인 곳은 거의 프라이빗 클럽(이 문화 자체가 영국이 원조입니다)이기 때문에 뜨내기 여행자로서는 불가능합니다. 

p176에는 세인트마거릿 성당이 소개됩니다. 영국 국교회는 이처럼 성인들을 모시고 공경하는 풍조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천주교, 정교회는 모두 구교이지만 모시는 성인의 범위가 다르며, 앙글리칸은 신교인데도 일정 범위의 성인을 자체 공경합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스코틀랜드에서 모셔 온 찰스 1세, 그를 왕관이 씌어진 상태에서(비유적 의미) 처형한 호국경 크롬웰, 이 두 사람의 동상이 경내에 나란히 세워졌다는 자체가 엄청난 아이러니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이자면, 정치적으로 대척의 위치였던 두 사람을 이후 승계하는 입장의 정치인들, 백성들도 양쪽에 다 있었겠으나, 어느 한쪽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 죽은 후에라도 강제 화해(?)를 시키는 영국인들의 저런 융통성, 합리적 처세야말로 이후 의회민주주의의 본산으로 오래 안정을 누린 비결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지금은 꼭 그렇다고 하기 힘듭니다). 

p208에는 프리메이슨 홀이 소개됩니다. 책에 나온 설명대로, 프리메이슨 조합은 18세기에 만들어져 전유럽을 범위 삼아 활동하던, 자유주의 신조 위에 활동하던 비밀조직입니다. 그런데 이후에는 이런저런 탄압도 받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소멸했다고 봐야 하며 지금 남은 조직은 그저 이름만 지닌 데 불과하죠. 간혹 인터넷상에 전지구적으로 은밀히 주요 사건을 막후 조종하는 실세 그룹이라며 음모론 비슷하게 떠도는 이름은 저 프리메이슨과는 그나마 1%의 연관도 없는, 완전한 허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맞은편 페이지에 나오는 서머셋 하우스는 그저 이름만 우연히 같을 뿐 20세기 대중소설가 서머셋 몸(W S Maugham)과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아아... 요즘 트리컨티넨탈로부터 유물 반환하라고 아우성에 시달리는, 우리가 대영박물관으로 알고들 있는, 더 브리티시 뮤지엄이 p216 이하에 소개됩니다. 역사적 곡절이야 안타깝지만, 무심한 여행자 입장에서는 한 장소에 모아 놓은 이런 멋진 구경거리를, 한때 세계의 수도였던 런던 관광차에 볼 수 있어 편하긴 합니다. 

영어 인명, 지명은 가끔 unconventional하게 발음되는 게 있어서 외국인을 당혹하게 만들죠. p264에 나오는 Southwark Cathedral이 그 한 예인데 이 발음은 책에도 나오듯이 [서더크]에 가깝습니다. 앙글리칸, 아메리칸 에피스코팔 모두 감독파에 속하기 때문에 이 대성당 명칭이 커시드럴, 카테드라입니다. 우리말로는 "주교좌"라고 옮기죠. 맞은편 페이지에는 런던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등장한 더 샤드(The Shard)가 소개되는데, 롯데하고 좀 닮기도 했으나 이건 현대 고층물의 특징이 두루 그럴 뿐이니 모방 시비가 일어날 성격은 아닙니다. 생긴 건 더 샤드가 먼저 생겼습니다. 

21세기 들어서는 해리포터 프랜차이즈의 세계적 히트 덕분에 런던에 볼거리가 하나 더 생겼고 그게 p368에 소개되는 해리포터 스튜디오입니다. 이래서 영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적 저력은 쉽게 저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대중적 인기를 끌었으나 설록 홈즈는 아직도 영화, 뮤지컬, TV 드라마로 현대인의 마음과 감성에 어필하지만, 아르센 뤼팽은 본토에서도 잊혀져가는 점과 대조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뤼팽이 더 좋지만, 이미 프랑스인들의 크리에이티브라든가 표현 양식 같은 게 화석화해서 전통(혹은 무엇이 되었든)을 현대에 되살리는 스타일이 현저하게 매력이 떨어져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뤼팽 아니라 뭐라도 프랑스 현대 컨텐츠는 재미가 없고 너무도 판에 박힌 클리셰들뿐입니다. 17세기 이래 문화강국의 위명이 무색할 만큼 말입니다. 

아름다운 런던, 배울 게 많은 런던에 대해 모든 걸 알려 주는 듯한 멋진 가이드북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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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의 실존의 미학, 내 삶의 예술가 되기 - 천경의 미셸 푸코 읽기
천경 지음 / 북코리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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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모든 학문의 어머니와도 같습니다. 철학의 유력한 학파는 다른 학문, 예컨대 정치학이나 역사학, 심지어 물리학 같은 자연과학에까지 영향을 끼치며, 반대로 다른 학문에서 어떤 충격적인 결론이 도출되거나 하면 거꾸로 철학에까지 귀납되어 새로운 경향, 사조가 탄생하기도 합니다(드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이 그러했듯이). 저는 개인적으로 경희대 정치학과 이동수 교수님이 지속적으로 펴내는 "다층적 통치성 총서"를, 새 권이 나올 때마다 읽고 리뷰하는 중인데, 그 총서 전체가 미셸 푸코의 체계 중 한 지류를 전제로 삼고 그를 바탕으로 편찬되는 중입니다. 철학자 한 사람의 위력이라는 게 이렇게나 거대합니다. 

하지만 우리 평범한 독자들은 위대한 철학자의 삶과 사상으로부터, 작고 미미한 내 인생의 긍정적인 면을 더 부각하고, 어떤 비전을 개척하며,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길을 모색할 수도 있습니다. 수백 년 혹은 수십 년 전의 철학자가 나처럼 평범한 독자 한 사람을 위해 어떤 생각을 표현하며 문장을 남기지야 않았겠지만, 나는 이 거인이 책을 통해 마치 내게 말을 거는 것처럼, 나를 다듬고 나 안에 있는 좋은 생각과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데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미셸 푸코의 철학이라고 하면 그저 난해하고 고답적이라 내 인생과 뭔 상관이랴 싶기만 해도, 이 책 저자 천미경 편집장님처럼 인문을 직접 내 삶의 정초 도구로 삼아 하나의 소중한 목표를 향해, 더뎌도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갈 수 있을 듯도 합니다. 

이 책 p46을 보면 아니나다를까 미셸 푸코의 수많은 업적 중 통치성 담론에 대해 저자는 설명합니다. 프랑스어 원어로 gouvernementalité(구베르너멍뜰리떼)인데, 이 어원이야 라틴어 gubernare이며, 정부 또는 통치라고 하는 gouvernement(구베르너멍. 영어의 government)이야 예전부터 있던 단어지만, 여기에 접미사 -ité를 붙여 완전히 새로운 개념 하나를 창조한 건 20세기 철학자 미셸 푸코입니다. 이 책 p47에서도 그의 기여에 의해 "정치학이 (비로소) 통치성 개념을 전유하게 된다"고까지 규정합니다. 

또 여기서 그 유명한 판옵티콘論이 도출되어, 대중이 권력의 통치성 기조에 따라 배치되고 통제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슈퍼베스트셀러였던 <감시와 처벌>을 단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바로 저 뜻이죠. 삶의 전영역에 개입하는 권력! 소박한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은 간데없고, 한술더떠 내 스스로가 권력에 순치되어 나의 사고와 행동을 내가 알아서 굴종시키기까지 하니 어찌 무서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1984>의 마지막 대목에서 주인공 윈스턴이 자발적으로 "나는 대형(빅브라더)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듯 말입니다. 

p76 이하에 나오는 것처럼 푸코는 규율권력과 생명관리권력 둘로 나눠 근대 통치체제의 새로운 생리를 꿰뚫어봅니다. 전자는 프랑스어 원어로 pouvoir disciplinaire이며, 후자는 biopouvoir입니다. 영어의 power도 바로 저 불어 원어에서 왔다는 게 모양만 봐도 티가 나듯(정확하게는, 서로 동계어), 수식어와 피수식어 순서만 바꾸면 이 경우는 영어 불어가 아무 차이도 없다시피합니다. disciplinaire(영어의 disciplinary)는 우리말 번역만 갖고서는 그 뜻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으며(저 번역어 "규율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매를 들고 혼내 준다는 이미지가 그 안에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학계 일각에서 저 개념어를 "기율권력"이라고도 옮기는 것입니다. 기강을 잡는다 같은 느낌이 살게끔 말입니다. 

근대권력기제에서 소름끼치는 점은, 규율권력의 세련화, 정밀화에도 있지만, 개체를 상대로 한 게 아닌 인구집단을 타겟으로 삼는 생명관리권력 부문입니다. 근대권력은 학문의 발전과 권력의지 자체의 집요한 수위 상승에 힘입어 인구집단 전체를 관리 대상으로 삼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세수(稅收)를 추출하고, 인적 자원의 생산성을 높여 정부 권력의 주된 동력으로 삼을지에 골몰합니다. 이 과정에서 전체 사회의 원활한 작동에 도움이 안 되는 개인의 경우 무자비하게 배제, 제거, 폐기 처분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멀리갈것도 없이 나치 독일이 장애인, 유대인, 집시, 성소수자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생명, 그 중에서도 특히 사람의 목숨은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으며 임마누엘 칸트 같은 철학자도 사람을 그 자체로 목적으로 대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석가모니, 공자 등의 가르침들에서도 예외가 없습니다. 근대권력의 통치성이 이런 방향으로 흐르는 건 명백히 수천 년 인류 문명이 흘러온 지향점이라든가 인류 통성,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것입니다. 

p146을 보면 에피쿠로스 학파의 쾌락주의가 설명됩니다. 우리는 쾌락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고대 에피쿠로스 학파가 말한 쾌락은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인간은 쾌락을 좇는 게 그 본성이니 억지로뭘 누르려고 하지 말고, 쾌락을 추구하는 마음 자체를 바른 방향으로 잡아 건전한 쾌락을 탐닉하라는 뚯이니 현대인이 보면 쾌락주의가 아니라 도리어 금욕주의로 오해할 만합니다. 푸코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에피쿠로스주의는, 개인이 권력의 도구가 되지 말고, 특히 생명조절권력에 휘둘리지 말고, 나라는 대체 불가능 개인이 뭘 진정으로 원하는지를 탐구하라는 겁니다. 특히 미디어에 세뇌되어, 내가 원하지도 않는 상업적 여성상(남성상)을 무작정 동경할 게 아니라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 줄 이성을 찾으라는 거죠. 

p183 이하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타인을 지배하(려)는 권력은 타인뿐 아니라 자신까지도 불행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왜? 남 위에 군림하려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고 결국 괴물이 되어 버리니 말입니다. 역대 얼마나 많은 왕, 독재자들이 말년에 정신이상이 되어 모두를 망쳤습니까. 그들도 누군가의 아빠, 엄마, 자녀, 베우자로 소박한 행복을 추구했다면 훨씬 좋았을텐데도요. 이처럼 권력은, 통치성은, 사람을 그 참된 인간성로부터 유리시켜 불행으로 치닫게 합니다.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을 주창한 루소의 깊은 뜻도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겠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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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 앞에 매번 우는 의사입니다 - 작고 여린 생의 반짝임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스텔라 황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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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사람을 낫우는(=치료하는) 본분을 천직(天職)으로 아는 의사야말로 활인지불(活人之佛)이라 할 만합니다. p26을 보면 소아과병동에 들어서서 저자께서 하시는 첫마디가 "아름다웠다"입니다. 저자는 버니 시걸(예일대 의대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고칠 수 없는 병이란 없고, 다만 치유할 수 없는 사람만 있다."고도 합니다. 뭐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말이긴 하나 이를 문언대로 받아들일 건 아니고, 저자처럼 어머니의 마음으로 환자를 봐 왔던 분의 입에서는 과연 나올 만한 말씀입니다. 

벨라, 브라이언. 저자의 두 자녀 이름입니다. 어느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봐 주었으면 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마치 저자처럼, 진정성으로 아이를 대하는 책임감있는 교사의 자세입니다. 어머니의 답도 비슷하게 진정성 가득하고, 사람 냄새가 풍기는 그런 답변입니다. 읽기, 산수(수학)를 당부하는 다른 학부형들의 반응 부분을 읽으며 순간 여기가 미국 아닌 한국이었나 싶기도 했습니다. 뭐 교육열이 높고 환경이 윤택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비슷한 반응이기는 합니다. 

시골 외양간에서는 암소가 낳은 몸집 큰 송아지가 태어난지 얼마 안되었는데도 잘만 뛰어다니는 풍경을 보며 생명의 신비에 새삼 경탄하게도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어떻습니까? 너무나 취약한 겉모습이며, 누가 옆에서 숨만 잘못 쉬어도 저 작고 약한 생명체에 큰 해라도 입히지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p83에서 저자가 말씀하듯, 신생아는 알 수 없는 어떤 원인 때문에 돌연사하기도 합니다. 어떤 아기는 건강하다가 갑자기 아파지고 목숨을 잃으며, 어떤 아기는 미숙하게 태어나서 모두의 걱정을 사다가도 건강하게 회복합니다. 이처럼 생명의 이치는 인간이 쉽사리 예측하기 어려우며, 그만큼 부모의 정성어린 돌봄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도 팬데믹 때 의사분들, 또 간호사분들이 일선에서 엄청난 수고를 하셨고 어떤 분들은 순직하기도 했습니다. 꼭 팬데믹 같은 비상사태가 아니라도, 의료진은 사람의 생명을 최일선에서 다루는 통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p64에는 로나 브린 법이 미국에서 어떻게 제정되었는지 그 경위가 설명됩니다. 사랑이 부족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저자도 p66에서, 아이를 키우던 엄마로서 자신도 육아 번아웃(burnout)을 겪었다고도 합니다. "누군가의 비일상이 나에게는 일상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불행은 나의 절망으로 바뀌기도 한다.(p77)."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말씀입니다. 

의사는 그저 지식만 많다고 그 직무가 수행가능한 그런 직종이 아닙니다. 이 책 중반부에는 신생아에게 응급 싱황이 생겼을 때 저자 같은 의사들이 어떻게 현장에서 대처하는지 아주 상세하게 서술됩니다. 이 과정을 보면 의사란 정말, 순간적인 판단력, 과감한 실행력, 무엇보다 저 사람에게 지금 필요한 최선의 조치가 무엇인지를 우선 생각하는 양심이 필요한 직업입니다. 우리는 과연 수고하는 의사들에게 그에 합당한 존중, 사의(謝意)를 갖고 살아가는 중일까요? 그들이 받는 수가가 그들의 노고에 비추어 정당한 수준이 맞을까요? 그들의 서비스가 과연 타 직역에 의해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성격일까요? 

신생아들의 상태는 다양합니다. 수십 년 전에는 신체 상태 어디가 결손되면 영양 상태가 안 좋거나 환경의 비위생 상태에 기인한다고 알았습니다. 그러나 p172에 한 예로 나오듯 21세기 미국에서 태어난 아기 벤저민은 항문 없이 세상에 나와 많은 이들을 걱정하게 합니다. 엄마가 이름난 외과의사였는데도 태어난지 이틀이 지나서야 겨우 알았다고 하니 더 놀랍습니다. 설마 했겠지요. 예전 같으면 꼼짝없이 목숨을 잃었겠으나(유명한 예로 고종황제와 민자영 사이의 원자가 있습니다) 현재는 수술법이 있어서 해결이 됩니다. 책에도 간단한 수술 후 퇴원이 가능했다고 나옵니다. 제3자 입장에서도 휴 하고 안도가 되는 장면입니다. 

어느 문화권이라 해도 죽음을 상서롭지 못하게 생각하는 건 똑같습니다. 그래서 We lost him(her)라든가, He(She) didn't make it 같은 우회적인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p207에 나오듯, 의사에게는 심지어 그럴 자유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죽음은 그저 죽음이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해야 제 할 일을 다하는 것입니다. 의사의 본분이 무엇이며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 엿볼 수 있었고, 저자께서 의사이시면서도 한국의 평범한 워킹맘들이 공유하는 소박한 정서를 갖고 계신 분이라서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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