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0 시대, 글로벌 패권전쟁의 미래
이철환 지음 / 메이트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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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0 시대가 한 달 정도 후면 개막합니다. 시중에 나온 책 중에는 트럼프가 11월 초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의 사정만을 반영하여 출간된 것도 있지만, 이 책은 p14:2에 나오듯 그가 카멀라 해리스 현 부통령을 적지 않은 차이로 꺾고 당선된 사정까지를 다 반영한 내용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저자 이철환 선생은 무협 자문위원, 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등을 역임한 경제고위관료 출신이며, 한국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이라는 행정고시 재경직을 대학 재학 중에 패스했던 엘리트입니다. 한국처럼 소규모 개방경제체제를 취하며 부존자원이 전무하다시피한 나라는 정부에서 경제정책을 수립할 때 대외정세를 면밀히 살필 수밖에 없으며, 저자처럼 정부 정책 결정 섹터에서 오래 봉직해 온 분의 갈고닦인 안목은 그만큼 날카롭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된 후 안정과 성장을 동시에 달성하는 골디락스 상태를 십수년 동안 이어온 게 세계경제였습니다(p53). 또 중국은 중국대로 세계 경제에 저물가라는 혜택을 간접 제공하면서 스스로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서는 등 국위를 강화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겪고 많은 보조금이 뿌려지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급상승하고, 팬데믹이 해제된 후에는 시중의 통화량을 회수하기 위해 미 연준에서 금리를 상향함으로써, 현재는 미국만 호경기일 뿐 다른 나라들은 금리역전현상(신흥국이 미국보다 금리가 높아야 함에도 오히려 낮아짐) 때문에 자본유출, 환율급등으로 고생 중입니다. 한국은 오늘만 해도 새로 1450원대를 터치했기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중이죠. 

2차대전 후에는 미국과 서유럽 중심으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을 마련하여 국제경제 분쟁을 조율하고 무역을 활성화하려 노력했습니다. 냉전이 끝나갈 무렵 우루과이라운드가 마련되어 더 포괄적인 범위에서(농산물 개방 등) 국제무역의 룰을 정했고, 1990년대 들어 당초 예정에는 없던 WTO까지 신설하였는데 이것은 유럽 측에서 미국의 일방통행에 대해 적당한 제동을 걸기 위해서였습니다. p110을 보면 이 WTO를 보완하기 위해 양국(혹은 다국)간 협정으로 등장한 게 FTA인데, 대표적인 게 빌 클린턴 시대에 체결된 NAFTA입니다. 한국도 21세기 들어 미국과 양자간 FTA를 맺은 바 있습니다. 

어제 환율이 급등하자 이창용 한은총재가 좌시하지 않겠다고 구두개입을 시도했는데 이렇게 하면 미국에서 환율조작하지 말라고 감시대상 리스트에 넣곤 합니다. p126을 보면 포치라는 말이 나오는데, 破七(파칠)을 중국식으로 이렇게 읽으며 중국 경제 당국이 환율을 달러당 7위안 이하로 떨어지게 용인하는 걸 가리킵니다. 강달러가 이처럼 일상화하면, 설령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고율관세를 부과해도 환율하락으로 인해 그 효과가 상쇄된다는 역설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습니다. 

2010년대 중반에는 기름값이 정말 싸져서 다들 차 몰고다니는 맛이 난다고도 했습니다. 이렇게 된 건 이른바 치킨게임, 즉 사우디 같은 나라에서 미국의 신생 셰일오일 업체들을 다 죽이려고 일부러 증산을 했기 때문(p146)입니다. 이때 한국은 수출경기도 정말 좋아져서 증시에서는 이른바 차화정(자동차, 섬유화학, 정유) 주식이 하늘높은 줄 모르고 올랐습니다. 책에 나오듯이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러시아가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을 잠가 버린 게 코로나 이후 경기회복 추세에 아주 관뚜껑을 박아 버렸는데 이후 세계경제 분업체제라는 게 아직 그 꼴을 제대로 못 갖춘 셈이라 경제전망에는 먹구름이 가득 낀 상태입니다.  

달러의 시대는 정말 저무는가? p192에 나오듯이 국제 거래에서 달러의 비중이 줄어드는 건 통계로도 이미 확인이 되는 사실입니다. p197에는 푸틴이 SWIFT에서 퇴출된 후 "위안화 사용을 지지한다"고 발언한 사실도 인용됩니다. 그런데 올해 10월말에 러시아 카잔(우리나라 축구 팀이 2018 FIFA 월드컵에서 독일을 이기기도 한 곳이죠) 있었던 브릭스 총회에서 푸틴은 마치 유로화처럼 생긴 브릭스 지폐 견양(시안)을 꺼내들기도 했는데 이건 중국한테 그리 기분 좋은 제스처가 아니었습니다. 브릭스는 국가들 사이에 너무도 이해관계가 다른데 단일통화는 고사하고 자유무역 단계라도 성사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매우 낮습니다. 

패권 경쟁의 마지막 스테이지는 우주(p308)입니다. 중국은 최초로 달 뒷면에 2019년 연착륙을 성공시켰고(p326), 이 우주선의 이름이 嫦娥(항아) 4호입니다. 중국어로는 창어라고 읽는데 고전 소설에서 선녀라든가, 혹은 왕의 궁궐에서 시중드는 자색 뛰어난 궁녀를 이르는 말이었죠. 한편 세계 최초로 우주군(宇宙軍)을 편성한 건 다름아닌 1기 트럼프 정부였는데, 이후 모든 나라들이 경쟁하듯 우주에서의 활동 에 박차를 가하는 바람에 말 그대로 전쟁이 벌어지는 판입니다. 과연 이 대결상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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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살인 계획
김서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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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장르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가 누군지 하는 요소는 작품의 재미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기도 합니다. 프레데릭 브라운의 <The murderers>라든가, 크리스티 여사의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또 ABC 살인사건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김서진 작가님의 이 작품은 이른바 경계선지능을 지닌 어떤 여성의 살인 완수를 위한 분투기(?)인데...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살인이라는 극한의 범죄,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최악의 악행을 꿈꾸는 화자(예비 범죄자)를, 미스터리 독자들은 간혹 응원하게도 됩니다. 시드니 셸던의 <내일이 오면(1980년대말에 MBC에서 원미경씨 주연 드라마로도 각색했었습니다)> 같은 걸 보면 젊고 아름다운 여성 주인공은 자기 인생을 망쳐 놓은 남자에 대해 복수를 꿈꾸는데, 이런 경우는 어느 정도 정당화의 근거가 마련됩니다. 그런데 때로는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악당이 계획, 실행하는 범죄마저 독자들이 은근 그 완수를 격려하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캐치 미 이프...> 같은 게 대표적인 예겠는데, 주인공 버프라는 게 그만큼이나 큽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피해자인데다가, 지능도 떨어지고(그렇게 태어난 건 그녀의 잘못이 아닙니다. p25), 살해의 타겟이 아주 나쁜 녀석(주인공의 말에 의하면 일단 그렇습니다)이기까지 하니 당연 독자들의 동정을 받습니다. 더 안타까운 건, 그 특정 가해자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인물들이 사회적 약자인 그녀를 돌아가면서("나라고 빠질 수 없지"라는 듯) 착취한다는 건데, 독자는 이 대목에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치 소설, 영화 <도가니>를 보듯 말입니다. 이런 사람이 운전을 할 줄 안다는 게 신기한데, 그 폭력적인 남편이 강요를 해서입니다. 

p17, p25에 나오듯 남홍진은 절에서 20년 가까이 밥 짓는 기계로 일했습니다. 가뜩이나 나쁜 머리로 태어났는데 그런 기계적 생활에 길들여졌으니 생각이라는 걸 하는 법을 잊을 만도 합니다. 그래서 남홍진은 작품 전체을 통해 끝없이 되뇝니다. "생각을 하자." 생각이 호흡처럼 습관이 된 사람한테는 어떻게 사람이 한 순간이라도 생각을 잊을 수가 있을까 싶어도 세상에는 의외로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p105에 나오듯 외모상으로도 봐 줄 것 하나 없는 그녀는 대형 전기밥솥 같은 취급을 받았을 뿐입니다. 

p120 이하에서도 알 수 있듯 서화인은 진중하고 유능하며 성실한 형사가 틀림없습니다(p38에서, 시청 직원이자 그의 연인인 오정미의 평가로는 "약간 둔한 아저씨"라고도 합니다). 이천식 목사를 만나러 가서 한 청년과 우연히 이야기하는데 뜻밖에도 목사의 아들 이동현입니다. 18년 전에 자살한 중학생(p87) 서현의 오빠이기도 한데, 아이들 이름이 하필이면 동현, 서현이라서 재미있기도 합니다. 물론 둘 다 한국에서는 최고로 흔한 이름이고, 동현이는 모를까 서현의 경우에는 서녘 서(西)가 이름자로 잘 쓰이지는 않기 때문에 여기에 어떤 의미가 들어간 건 아니겠습니다(뒤의 p253 참조. "현"자 돌림이라고 합니다). 사실 저는 남홍진은 일종의 맥거핀이고 진주인공은 이 서화인이라는 생각이, 작품을 다 읽고 나서 들었습니다. 

p146에 나오듯 이런 경계선 지능의 주인공 남홍진이라고 해도 일단 확실한 동기가 생기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어떻게 그런 거짓말이 술술 나오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저도 이런 사람을 눈앞에서 만나본 적 있는데, 그 한심하고 시커먼 속셈이 빤히 보이건만 거짓말이 부끄러움도 없이 술술 나오는 걸 보고 경악한 적 있습니다. 참... 인간이라면 최소한의 죄의식이라는 게 있을 만도 한데... 당대에 죗값을 받는다고 그래서 손자가 그모양그꼴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피해의식 가득한 인생은 자신이 가해자인 줄도 모르고 엉뚱한 사람 하나를 가해자로 망상 속에 세팅하고 죄를 뒤집어씌웁니다. 

남홍진이 계속 이지하를 죽이려 드는 건, 이미 죽은 소명(얘가 서현입니다)이 홍진에게 자신의 살해자가 이지하라고 자꾸 속삭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소설을 꼼꼼하게 읽은 독자들이라면 알겠지만, 죽은 소명의 혼(그런 게 있다고 쳐도. p269)은 애초에 홍진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한참 뒤, p225 쯤 돼서야 그 "근거"가 나옵니다). 그런데 p180 이하에 중요한 단서가 하나 드러나네요. 소명은 원래 성씨가 강이었고, 목사는 우리가 앞서 봤듯 이씨였기에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얘가 입양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소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이 설령 이지하가 아니라도, 뭔가 억울한 죽음이었기에 혼이 자꾸 꿈에 나타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 서화인을 자꾸 괴롭히는 불길한 예감의 근원은 (이유 없이 증거로 조작된 손톱 말고도) 무엇이겠습니까. 나쁜 놈(여자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은 반드시 그 죗값을 치러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믿음을 믿는 존재이며, 잘못된 믿음이 흔들릴 때 더 그에 집착한다(p257, p307, p332)." 이 말은 이 목사가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며 한 말이지만, 저는 김서진 작가가 미스터리 독자들을 향해 비판하는 걸로 들었습니다. 왜냐면, 소설 중반쯤에 이르러 이런저런 진상들이 드러났을 때, 아 그렇겠군, 이 작품은 이렇게 마무리되겠군, 타성에 젖은 독자가 성급한 결론을 내리려 들 때 작품은 기발한 반전을 마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간만에 기막힌 토종 걸작 한 편 읽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등장인물들도 낭비되지 않고 요모조모로 할 일 다 하고 들어가는 꼼꼼한 구성입니다. 전 처음부터 왜 oooo하고 그분이 서로 o이 같은지가 좀 이상하게 다가왔는데 역시(!) 결말에 가서 일종의 복선인 게 드러나, 저 자신의 빼어난 촉에 자가발전 감탄하며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네요 ㅋㅋ 마지막에 ooo과 ooo가 낡은 가게 지하를 빠져나오는 장면도 실제 답사라도 하신 듯 그 묘사가 박진감 넘치고 생생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기 때문에 헷갈릴 수 있지만 범인은 역시 ooo가 맞습니다. 이 세끼 아주 악질이죠. 마지막까지 거짓말을 지어내고 말입니다(악질이지만 그럴 만한 동기는 있었습니다). 악당은 본래 죄 없는 사람한테 너도 나와 다를 바 없다며 희한한 물귀신 세뇌를 하려 듭니다. 이런 독특한 빌런을 만들어낸 것도 김작가님의 대단한 재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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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방콕 : 파타야·깐짜나부리·아유타야 - 최고의 방콕 여행을 위한 한국인 맞춤형 가이드북, 최신판 ’25~’26 프렌즈 Friends 5
안진헌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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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태 중앙북스에서 나온 프렌즈 시리즈 중 방콕 편은 '23년 2월, 올해 3월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리뷰입니다. 특히 25년판은 이렇게 일찍 발매되어 예년에 비해 몇 달 앞선 시점에 서평을 등록하게 되었네요. 역시 여행서는 프렌즈 시리즈가 가장 무난하며, 최고의 동남아 여행 전문가 안진헌씨의 솜씨라서 그저 믿고 읽게 됩니다. 프렌즈 태국 편도 (같은 저자의 솜씨라서) 따로 나와 있으나 아무래도 방콕 일대만 둘러보려는 관광객이 우리 나라에는 많은 만큼 방콕 편을 집중 참조하는 게 더 효율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아시아 대륙 동부에 위치한 나라들은 아무래도 쌀농사 중심 문화라서인지 좁은 지역에 대량의 인구가 모여 사는 곳이 많습니다. 책 p79를 보면 방콕 인구가 천만명이라는 말이 있는데, 스웨덴 전체 인구가 1000만명, 노르웨이 모든 인구가 540만명대이니 방콕이라는 하나의 도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지 실감이 납니다. 물론 서울만 해도 900만명대이며, 중국에서 그냥 시골 비슷하게 여겨지는 흑룡강성 하얼빈 시만 해도 천만명이니 동아시아 여러 대도시에 비하면 평범해 보이기도 합니다.  

p81을 보면 쑤쿰윗 일대에는 한인(韓人) 업소가 밀집해 있다고 하니 한국인들이 얼마나 방콕을 자주 찾는지 알 수 있으며 방콕 일각에서 한국식 풍취를 즐길 수 있는 블록도 따로 발달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방콕은 짜오프라야 강이 남북으로 흐르는데 서울의 한강이 동서로 흐르는 것과 대비됩니다. p82를 보면 쑤쿰윗의 교통을 설명하면서 운하 보트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서는 물의 흐름이 잠시 동서로 바뀌고(사행천 비슷하게요) 그래서 책에서도 동서방향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운하 보트는 그저 교통 수단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현지 낭만 체험의 핵심 코스 중 하나입니다. 

방람푸 일대를 설명하는 섹션에서 p152를 보면 10월 14일 기념비가 나옵니다. 이때 태국은 타놈 장군이 사실상 다스리고 있었는데 1973년 10월 대대적인 학생 시위가 일어나 정권이 무너지고 라마 9세 국왕도 일시적으로 도피합니다. 잠시 민주 정부가 들어서지만 무능을 노정하여 2년 후 군부가 재집권하고, 19년 뒤인 1992년에도 유혈사태가 발생합니다. 이 과정 내내 라마 9세가 왕이었으며 다소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태국의 헌정질서 최소한을 지키는 데 크게 공헌했습니다. 10월 14일 기념비는 1973년의 그 사건을 기리는 뜻에서 제작되었습니다. 현재는 그의 장남 라마 10세가 재위 중입니다. 

영화 <왕과 나> 같은 고전을 보면 싸이암이라는 나라가 나오는데 바로 태국의 옛 이름입니다. p227을 보면 "싸얌"이라는 태국의 옛 이름이라는 정보가 박스편집되어 나오는데, 안진헌 선생의 책들은 관광 실용 정보 외에도 이런 인문지식이 독자에게 전달된다는 게 좋습니다. "싸얌"이 맞는 말인데 Siam이라는 로마자 표기 때문에 종종 시암이라 잘못 읽히는 것이라고 책에 자세히 나옵니다. 그렇다면 태국(泰國)은 어디서 온 말인가. 예전부터 자유인이라는 뜻의 타이 종족이 있었고 조송(趙宋) 시대에 수코타이 왕조가 성립하기도 했으며 이런저런 기록에서 타이는 한자로 泰라고 표기된 게 꽤 오래되었습니다. 

한국의 강북 일대처럼 다소 노후하고 골목이 즐비한 구역이라면 방콕에는 아리(p304)라는 블럭이 있습니다. 이런 곳에 은근 맛집이 많은데 p307에 보면 (프랜차이즈인) 나나 커피 로스터의 한 지점이 나오며 다음 페이지는 카민 퀴진이 소개됩니다. p299에는 쑥 싸얌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책의 설명대로 수상 시장의 푸드 코트 형태입니다. "쑥(สุข)"이 바로 행복이라는 뜻이라고 책에서는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태국 고유의 직조 제품 나라야 쇼핑을 위해서라면 p326을 참조할 만합니다. 

프렌즈 시리즈는 주제 지역 외에도 그 인근 명소를 간략하게 짚어 여행 계획에 도움이 되게 합니다. p417을 보면 전쟁 박물관, 죽음의 철도 박물관 등 2차 대전 관련 역사문화 시설이 소개되는데 여기에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제국주의의 한심한 흔적이 짙게 남아 있습니다. 또 여기도 방콕 인근이다 보니 ถนนคนเดิน(타논 콘 던)이 많은데, 방콕의 특징적인 워킹스트리트에 대해서는 제가 쓴 프렌즈 태국 25년판 리뷰를 참조하십시오. 

항상 느끼는 바지만 프렌즈 시리즈는 컬러사진들만 봐도 눈이 즐겁고, 텍스트도 텍스트지만 다양한 여행 지도들 자체가 보물 덩어리입니다. 너무 좋아서 껴안고 잠들고 싶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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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에 읽는 재클린의 가르침 - 다시 태어나고 싶은 당신을 위한 지적인 대화
임하연 지음 / 블레어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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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연 저자님의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저는 외국 서적의 번역인 줄로 잠시 착각했습니다. 두 대담자의 대화 형식이라는 게 일단 국내 자계서 중에서는 낯선 형식일 뿐 아니라,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도 마치 미국 현지의 연구서처럼 깊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국에서라면 재클린 케네디의 인생을 소재로 삼거나 그녀의 교훈을 조명 또는 인용하는 태도 자체를 보기 드뭅니다. 나이 드신 세대라면 1960년 그 남편 케네디 상원의원과 함께 혜성처럼 나타난 셀럽이었던 그녀의 독특한 개성과 자태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웬만한 연예인만큼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재클린 비셋이라는 배우까지 등장하여 그 후광을 입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재클린 케네디는 그 댄디한 남편과 함께 우아하고 과감한 스티일링으로 유명했고, 남편이 달라스에서 총격으로 암살당한 바로 그 현장에 같이 있었기에 비운의 영부인(장례식장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딸의 천진한 행동으로 더욱 큰 동정을 받았습니다)으로 세계인의 뇌리에 남았습니다. 그런가하면 사건이 터지고 나서 불과 5년 후에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나이 차가 이십 년 넘게 납니다)와 재혼을 발표하여 엄청난 논란을 낳았습니다. 지금이야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당시에는 영웅 JFK의 부인으로 영원히 남아 줄 것을 기대하던 지지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긴 경솔한 행동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오나시스라는 인물이 그리 좋은 평판을 가지지도 못했기에, 어느 매체에서는 캐멀롯의 귀니버 왕비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의 괴물, 성욕의 상징인 사튀로스와 야합(夜合)했다는 극단적인 평까지 나왔습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재클린의 그런 선택이 세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여성으로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주체적인 행동이었다는 평가가 오히려 우세해졌습니다. 아마 지금 같으면 이런 일이 터져도, 그냥 셀럽 하나가 돈 많은 스폰서(?)와 서로 이익인 결합을 이뤘나 보다 정도로 무덤덤하게 넘어갈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재클린의 이런 똑부러지는 기질과 결단은 1968년 선박왕과의 결혼뿐 아니라, 미국 사회에서 당시까지 비주류로 남아야 했던 로마 가톨릭 신앙인(아일랜드계, 따라서 비[非] 와스프) 집안 출신(p87)이었던 그녀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일관성 있게 보였다는 게 이 책 저자의 분석입니다. 

"모든 꿈은 계층 상승의 꿈이다(p88)." 대단히 속물적으로도 들리지만 우리 모두 까놓고 속마음을 말하자면 자신의 야망, 꿈 역시 저 한 줄로 요약될 수 있지 않을까요? 여자들이라면 집안 번듯하고 능력 있는 남자와 맺어져 화려하고 남 앞에 내세우기 좋은 인생을 살고 싶어할 겁니다. 남자들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좀 좋은 학교를 나와서 괜찮은 직장을 잡았다 싶으면 이제 재력가나 고위 관료의 딸과 어떻게 한번 엮여서 신분 상승을 꾀합니다. 사내 자식이 한심하게 여자와 집안에 기댈 생각이나 한다고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막상 이게 자신의 처지가 되고 보면 누구나 생각이 비슷해지겠죠. 반대로, 난 그딴 거 모르겠고 내 능력만으로 성공하겠다고 외길을 걷는다면 그거 참 당차고 대단한 자신감입니다. 

우리 사회는 과연 계급 사회일까요 아닐까요? 이 책 전체를 꿰뚫는 주제는,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는 이른바 "수저"의 계층 성분이, 후천적으로 가해지는 어떠한 자기계발의 노력 팩터보다 우선하여 그 개인의 출세 성공 여부에 작용한다는 비관적 인식을 일단 전제합니다. 무슨 "수저"냐가 큰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은 일단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게 전부이겠습니까? 저자가 재클린 케네디의 삶 그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 이처럼 다각도로 접근하는 건, 이 여성이 어려서부터 자신에게 부과되었던 온갖 장애와 제한을 몸부림치며 끊어내고 떨쳐내었던 아주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어내었기 때문입니다.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무기력했던) 자신의 죽음을 결심함(p134)." 멋지지 않습니까? 

이 책의 두 대담자 중 한 사람은 "상속자"라 불립니다. 상속자란 무엇입니까? 명성 높은 가문과 막대한 부를 물려받은 사람을 보통 상속자라고 하죠. 재클린 부비에가 평소에 지론처럼 말한 "상속자론"은 이와 결 이 좀 다릅니다. 그녀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내가 내 부모에게 물려받은 모든 장점과 조건을 잘 활용하 고 최대한도로 계발하여 내가 종전의 내 자신과 다른 존재로 거듭나는 게 참다운 상속자라고 주장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라도 지금 이 순간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금수저로 다시, 그것도 내 의지에 의해, 태어날 수 있는 거죠. 부모에게 좋은 출발점을 물려받고도 비생산적인 은둔의 토굴에서 분에 넘치는 사치를 부리며 허약한 자존을 애써 위로하는 절망적이고 한심한 금수저가 얼마나 많습니까? 재클린의 진짜 상속자 정신을 내 영혼에 새기면 당신도 오늘부터 금수저(그것도 진정한)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교훈도 교훈이지만 재클린 부비에의 삶 자체가 궁금한 독자가, 좀 색다른 전기라고 생각하고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잘 읽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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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연두 특서 청소년문학 38
민경혜 지음 / 특별한서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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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채아는 화가 날 만도 했습니다. 서주희가 채아의 현재 감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다분히 형식적인 위로를 건넸기 때문입니다(p42). 설령 주희한테 나쁜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도(과연 그런지는 p157에 나옵니다), 채아는 가뜩이나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아픈 지점을 그대로 긁은 셈이 되었으니, 저렇게 화를 낼 만도 합니다. 이 모든 게, 다름과 틀림이 곧 같은 게 아니라는 점, 많은 이들이 종종 잊고 사는 탓입니다. 아이들도 어른들한테 나쁜 영향을 받아서인지, 배려가 부족한 언행이 곧잘 나오곤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실 박채아는 성격이 좀 민감한 아이이긴 합니다. p22를 보면 정우빈에게 좀 과장되게 반응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물론 여자애들한테는 무조건 예쁘다고 해 줘야 하는데 눈치도 없이 기분나쁜 소리를 한 우빈이 잘못도 큽니다. 우빈이의 눈치없음과는 별개로, 자기 전에 화장을 잘 지우고 자야 한다는 말 자체는 틀리지 않습니다. 여튼, 이 챕터가 중요한 이유는 여기서 드디어 소연두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자폐스 펙트럼 특정 위치에서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고 박채아가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된 건, 죽은 오빠도 그런 처지였기 때문입니다. 서평 저 윗부분에서 언급했듯이 서주희와 싸운 이유도, 주희가 오빠에 대해 무신경한(채아에게 그렇게 들렸던) 말을 했기 때문이었죠. 

정우빈은 참 눈치가 없습니다. 저 앞에서도 채아가 괜히(괜히는 아니었지만) 소리를 지르고 했던 것도, 우빈이가 자기 마음도 몰라 주고 소연두(당시에는 우빈이가 그 이름도 몰랐습니다)에게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라도 채아는 연두에 대해 뭘 알아 봐야 했겠으며, 그게 아니었다 해도(죽은 오빠라는 연결고리가 있어서) 연두를 향해 이미 눈길이 쏠려 있었습니다. 아무튼 p74에서 우빈이는 연두한테 그런 문제가 있었던 줄 처음 알았습니다. 당연히 충격을 받았겠죠. 이 얘기를 해 주면서도 채아는 우빈의 관심이 자기에게 향하도록 무지 애를 씁니다. 우빈은 끝까지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며 무게를 잡는데 얘 다운 행동입니다. 

p105에서 드러나듯 채아 엄마, 우빈이 엄마는 애들보다 더 먼저 친구였습니다. 이렇게 친구 문제를 내 문제처럼 받아들이고 대단한 열정으로 같이 싸워 주는 의리 있는 분도 있죠. 이렇게 자기 엄마 피를 물려받아서인지 우빈이도 성격이 남자답고 정의감에 불탑니다. "우빈이는 엄마에게서 우정이 뭔지를 배웠다. 입에 발린 우정이 아니라 진짜 우정을." 제3자가 봐도 진짜 그런 것 같습니다. 마라탕을 매운맛(p125)으로 시켜먹으면서 둘은 그낭따라 유난히 꼬인 감정을 풀기 위해 애씁니다. 여자애들이 마라탕 더 잘 먹던데 채아는 그렇지도 못한가 봅니다. 

채아는 주희한테 불편한 일을 겪는 연두한테 가서 "싫으면 싫다고 분명히 말해!(p138)"라며 의사 표현에 괜히 머뭇거리지 말라고 격려합니다. 연두 엄마 입장에서 이런 채아가 당연히 고마울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채아가 아주 멋진 말을 합니다. "미안해하지 마세요. 그러시면 연두가 진짜 미안한 아이가 되잖아요." 인간이란 본래 남들을 잘 돕고 배려하는 본성이라는 게 있습니다. 단지 경쟁에 시달리다 보니 그런 자연스러운 마음씀이 잘 표현이 안 될 뿐입니다. 채아의 특수한 처지를 감안한다 해도 친구를 잘 챙기는 그 살뜰한 언행이 칭찬받아야 한다는 것 역시 당연합니다. 

서주희가 기어이 사고를 칩니다. 얘도 우빈이를 좋아해서 이러는 건데, 동기가 뭐든 간에 너무도 나쁜 짓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애가 생각이라는 게 없을까요? 자신이 뭔가 부족하니 남자애가 관심을 안 갖는 건데 자신을 고쳐 나갈 생각은 않고 엉뚱한 연두한테 분풀이를 합니다.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오를 때 그걸 다른 사람 하나를 표적 삼아 풀어대는 게 아주 못된 짓거리이며, 어른이 되어서도 이렇게 사는 한심한 인간이 꼭 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짓이 얼마나 끔찍한 범죄인줄(p148) 어른들이라도 좀 알게 해 줘야 합니다. 음... 그건 그렇고 쇼팽의 녹턴(p173)이 좋은 줄 아는 걸 보면 연두의 취향이 높은 수준이라는 데 동의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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