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읽는 재클린의 가르침 - 다시 태어나고 싶은 당신을 위한 지적인 대화
임하연 지음 / 블레어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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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연 저자님의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저는 외국 서적의 번역인 줄로 잠시 착각했습니다. 두 대담자의 대화 형식이라는 게 일단 국내 자계서 중에서는 낯선 형식일 뿐 아니라,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도 마치 미국 현지의 연구서처럼 깊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국에서라면 재클린 케네디의 인생을 소재로 삼거나 그녀의 교훈을 조명 또는 인용하는 태도 자체를 보기 드뭅니다. 나이 드신 세대라면 1960년 그 남편 케네디 상원의원과 함께 혜성처럼 나타난 셀럽이었던 그녀의 독특한 개성과 자태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웬만한 연예인만큼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재클린 비셋이라는 배우까지 등장하여 그 후광을 입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재클린 케네디는 그 댄디한 남편과 함께 우아하고 과감한 스티일링으로 유명했고, 남편이 달라스에서 총격으로 암살당한 바로 그 현장에 같이 있었기에 비운의 영부인(장례식장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딸의 천진한 행동으로 더욱 큰 동정을 받았습니다)으로 세계인의 뇌리에 남았습니다. 그런가하면 사건이 터지고 나서 불과 5년 후에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나이 차가 이십 년 넘게 납니다)와 재혼을 발표하여 엄청난 논란을 낳았습니다. 지금이야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당시에는 영웅 JFK의 부인으로 영원히 남아 줄 것을 기대하던 지지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긴 경솔한 행동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오나시스라는 인물이 그리 좋은 평판을 가지지도 못했기에, 어느 매체에서는 캐멀롯의 귀니버 왕비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의 괴물, 성욕의 상징인 사튀로스와 야합(夜合)했다는 극단적인 평까지 나왔습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재클린의 그런 선택이 세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여성으로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주체적인 행동이었다는 평가가 오히려 우세해졌습니다. 아마 지금 같으면 이런 일이 터져도, 그냥 셀럽 하나가 돈 많은 스폰서(?)와 서로 이익인 결합을 이뤘나 보다 정도로 무덤덤하게 넘어갈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재클린의 이런 똑부러지는 기질과 결단은 1968년 선박왕과의 결혼뿐 아니라, 미국 사회에서 당시까지 비주류로 남아야 했던 로마 가톨릭 신앙인(아일랜드계, 따라서 비[非] 와스프) 집안 출신(p87)이었던 그녀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일관성 있게 보였다는 게 이 책 저자의 분석입니다. 

"모든 꿈은 계층 상승의 꿈이다(p88)." 대단히 속물적으로도 들리지만 우리 모두 까놓고 속마음을 말하자면 자신의 야망, 꿈 역시 저 한 줄로 요약될 수 있지 않을까요? 여자들이라면 집안 번듯하고 능력 있는 남자와 맺어져 화려하고 남 앞에 내세우기 좋은 인생을 살고 싶어할 겁니다. 남자들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좀 좋은 학교를 나와서 괜찮은 직장을 잡았다 싶으면 이제 재력가나 고위 관료의 딸과 어떻게 한번 엮여서 신분 상승을 꾀합니다. 사내 자식이 한심하게 여자와 집안에 기댈 생각이나 한다고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막상 이게 자신의 처지가 되고 보면 누구나 생각이 비슷해지겠죠. 반대로, 난 그딴 거 모르겠고 내 능력만으로 성공하겠다고 외길을 걷는다면 그거 참 당차고 대단한 자신감입니다. 

우리 사회는 과연 계급 사회일까요 아닐까요? 이 책 전체를 꿰뚫는 주제는,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지는 이른바 "수저"의 계층 성분이, 후천적으로 가해지는 어떠한 자기계발의 노력 팩터보다 우선하여 그 개인의 출세 성공 여부에 작용한다는 비관적 인식을 일단 전제합니다. 무슨 "수저"냐가 큰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은 일단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게 전부이겠습니까? 저자가 재클린 케네디의 삶 그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 이처럼 다각도로 접근하는 건, 이 여성이 어려서부터 자신에게 부과되었던 온갖 장애와 제한을 몸부림치며 끊어내고 떨쳐내었던 아주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어내었기 때문입니다.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무기력했던) 자신의 죽음을 결심함(p134)." 멋지지 않습니까? 

이 책의 두 대담자 중 한 사람은 "상속자"라 불립니다. 상속자란 무엇입니까? 명성 높은 가문과 막대한 부를 물려받은 사람을 보통 상속자라고 하죠. 재클린 부비에가 평소에 지론처럼 말한 "상속자론"은 이와 결 이 좀 다릅니다. 그녀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내가 내 부모에게 물려받은 모든 장점과 조건을 잘 활용하 고 최대한도로 계발하여 내가 종전의 내 자신과 다른 존재로 거듭나는 게 참다운 상속자라고 주장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라도 지금 이 순간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금수저로 다시, 그것도 내 의지에 의해, 태어날 수 있는 거죠. 부모에게 좋은 출발점을 물려받고도 비생산적인 은둔의 토굴에서 분에 넘치는 사치를 부리며 허약한 자존을 애써 위로하는 절망적이고 한심한 금수저가 얼마나 많습니까? 재클린의 진짜 상속자 정신을 내 영혼에 새기면 당신도 오늘부터 금수저(그것도 진정한)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교훈도 교훈이지만 재클린 부비에의 삶 자체가 궁금한 독자가, 좀 색다른 전기라고 생각하고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잘 읽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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