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알고, 바로 쓰는 빵빵한 어린이 세계일주 우리 아이 빵빵 시리즈 14
박빛나 지음 / 유앤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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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너무도 좋아하는 빵빵 시리즈 열네 번째 권입니다. 그림체도 귀엽고 세상 어떤 캐릭터들과도 닮지 않은 독특한 모습이죠. 만화를 재미있게 읽어 가는 중에 지식도 늘고 세상을 보는 시야도 함께 넓어지는 정말 좋은 책입니다. 앞으로도 백번째 권 넘게 계속 나와서 아이들과 함께 커나갔으면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다섯 개 대륙을 찾아다니는 내용입니다. 캐릭터들도 그대로인데 아빠, 엄마, 마리, 그리, 이렇게 네 명입니다. 아빠가 그새 나이가 드셨는지 눈이 나빠지셨는지 안경을 쓰셨습니다. 커다란 열기구에 올라 놀라움과 기쁨 가득한 표정을 한 나리와 엄마의 표정을 보면 우리 독자들도 빨리 이 가족이 떠나는 지면상의 세계일주에 동참하고 싶단 생각이 듭니다. 

첫번째 나라는 네팔인데 세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10개 중 8개가 이 나라에 있는 만큼, 왜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지 잘 설명해 줍니다. 석가모니도 이 나라에서 태어났으며 룸비니가 출생지로서 지구 도처의 불교 신도들에게 성지로서 존숭됩니다. 그런데 정작 이 나라 국민 대다수는 힌두교를 믿는다는 점도 독특합니다. 페이지 하단에는 네팔의 국기를 색칠할 수 있는 컬러링 코너도 있고, 본문에서 배운 지식을 초성 퀴즈로 테스트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요르단은 중동인데도 석유가 나지 않아 이웃 나라들로부터 원조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랜 왕가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나라를 안정적으로 이끄며,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매우 동질성이 큰 인구 구성이기도 합니다. 또 로마가 고대 지중해를 통일한 제국이었던 만큼 로마 유적도 많다고 합니다. 고대도시 페트라는 왕들의 무덤인데 요르단에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건물이며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는 아빠 엄마의 설명에 딸 마리와 아들 그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즐거워합니다. 확실히 부모님들은 어렸을 때 아이들과 이렇게 여행을 많이 다니며 추억을 만들어 줘야 애들이 나중에 커서 행복한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책 p78에 나오듯이 파키스탄은 인구 2억 2천에 이르는 매우 큰 나라입니다. 영국으로부터 인도 제국이 독립하면서 오히려 무슬림 지구가 분리되어 생긴 나라입니다. 그러나 인류 문명의 한 발상지인 인더스 강이 이곳을 관통하고, 인도 전체를 지배하던 제국의 심장부가 이곳에 위치했던 적이 많았기에 결코 무시할 수 없죠. 막내 그리는 모헨조다로 유적이 3천 년 넘는다는 아빠의 설명을 듣고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나라를 돌아보면서 지도도 함께 나오기 때문에 대략 이 나라가 어디에 위치했는지 어린 독자들이 감을 잡게 도와 줍니다. 책에는 안 니오지만 하라파 유적도 유명하죠. 

우크라이나는 세계적인 곡창지대인데 인구도 4천만이 넘어 우리나라보다 그리 적지도 않습니다. 화폐는 흐리브나를 쓴다고 합니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설명하길, 석탄, 철광석, 선철 등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이기도 하답니다. 전쟁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고, 수도는 키예프라고 나오는데 이것은 사실 러시아식 표기이죠. 마리는 우크라이나를 칭찬하길 "딱 나 같은 나라"라고 합니다. 그리가 그 이유를 묻자 마리는 "모든 것을 다 가졌으니까"라고 대답합니다. 마리는 본래 이렇게 애가 좀 자뻑입니다. 

리비아(p164)는 지중해에 면한 북아프리카의 나라입니다. 남부는 대부분 사막이며 가다메스란 도시는 사하라 일대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도시라고 하니 어린이들이 잘 알아 둘 만한 알찬 지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아시스와 도시 성립의 관게에 대해서도 엄마가 잘 설명해 줍니다. 또 이 나라는 여러 차례 침략을 당해서 다양한 문화 패턴의 유적이 남았다는 점도 아빠가 가르칩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참 오지랖도 넒고 똑똑하신 부부입니다. 호주(p206)은 인구밀도가 매우 낮고 해안선을 따라 도시가 형성되었다고 하며, 베네수엘라는 앙헬폭포가 유명하고 정치 문제 때문에 고생 중이라고 엄마가 일러 줍니다. 그리는 혼자 오버하며 자신이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되어 모든 걸 바꿔 놓겠다고 큰소리치는데 아빠는 "네 국적은 대한민국"이라며 현실을 일깨우는 장면이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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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첫러 120패턴 러시아어 회화 - 내 인생 첫 번째 러시아어
일리야 벨랴코프 지음 / PUB.365(삼육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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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는 글자 모양도 낯설고(끼릴 문자) 격변화도 까다로워서 글쓰기나 말하기나 문장을 구성하기가 힘들기에 학습자들이 많이 어려워하는 편입니다. 이 교재는 생애 처음으로 러시아어를 배우는 학습자들을 배려하여, p14에서 러시아어 알파벳부터 차근차근 가르칩니다. 제 경험상, 학습자들이 그저 단기간에 속성으로 빨리 말하고 쓰는 흉내부터 내려고 이런 기초를 후다닥 날림으로 넘어가면, 나중에 기초를 부실하게 행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됩니다. 이 책은 알파벳만 간단하게 가르치지 않고, 알파벳에 대한 해석까지 정성 들여 설명합니다. 이런 부분도 독자는 대충 넘어가지 말고, 꼼꼼하게 배워서 내면화해야 할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끼릴 문자에는 로마자에 없는 다양한 글자들이 있습니다. p18에는 й라는 글자가 나옵니다. 저자 일리야 벨랴코프 선생님은 글자 이름을 "이 끄라또꼬예"라고 일러 주는데, 그 뜻이 "짧은 이"라는 것까지 말해 주네요. 저는 이런 점이 특히 좋았습니다. 대부분의 대학 교재들은 알파벳을 가르치며 이런 내역까지 짚지는 않고 간략하게들 넘어가는데 그래서는 흥미가 안 생깁니다. 또 저자는 "발음은 '이'처럼 나지만 사실 저 발음은 모음이 아닌 자음 분류를 받는다"고, 존댓말로 정중하게 가르치십니다. 이런 대목만 봐도, 저자가 얼마나 기초부터 꼼꼼하게 가르치는 분인지 짐작이 가능합니다. 사실 이는 러시아어만의 특징은 아니고, 우리가 중학교나 초등 고학년 때 배운 영어에서의 반자음 [j]와 완전히 같습니다. 음성학적으로는 경구개 접근음입니다. 

ш의 경우 저자는 영어의 shelter라고 할 때의 그 발음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이 부분 설명할 때도 마치 앞에 학생들을 두고 말로 설명하는 것 같은데, 한국의 학교에서도 오래 공부하신 분이라서인지 말투가 한국의 엠지가 말하는 것과 매우 비슷합니다. 예로 드는 단어는 шапка인데, 발음은 [샵까]에 가깝다고 책에서 설명합니다(뜻은, 러시아 특유의 그 털모자입니다). 이 책의 인트로에서는 이처럼 모든 단어에 한국어 발음을 달았습니다(본문은 그렇지 않습니다). p24에서는 특히 러시아어 공부에서 주의해야 할 점을 가르치는데, 특히 4번, 한국어에서 목적격으로 말하는 문장성분을 러시아어에서는 여격(~에게)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는 부분은 직관적이면서도 매우 도움이 되는 설명입니다.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후기를 쓰는 11월 중순 기준, 출판사 pub365 사이트 자료실에 아직 음원 mp3가 업로드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유료든 무료든 조속히 올라오기를 독자로서 기대합니다. 

p108의 패턴35를 보면, "나는 축구를 하는 거 좋아해"라는 뜻의 문장이 나옵니다. Я любишь играть в футбол.라고 쓰며, 읽기는 "야 류비시 이그라찌 프 풋볼" 비슷하게 읽죠. 이 단원에서는 동사 любить의 활용법을 주로 가르친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대표 문장은 하나지만 그를 응용한 문장은 단원마다 열 개가 넘게 제시되었으므로 자신에게 필요한 걸 골라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습니다. Что ты любишь делать?라는 문장이 바로 밑에 나오는데, 뜻은 "넌 뭐 하는 거 좋아해?"라고 나옵니다. 발음은 "슈토 띄 류비시 젤라찌" 비슷합니다. 저자께서 항상 강조하는 것처럼, 러시아에서는 전치사의 활용과 격변화가 다른 언어와 매우 다르므로 조심할 필요가 있는데, p109 하단의 играть в에 대해 특히 자세하게 알려 줍니다. 

p156을 보면 Он раньше был студентом.이라는 문장이 제시됩니다. 발음은 "온 란셰 븰 스투젠톰" 비슷하며, 그 뜻은 책에 나오는 대로 "그는 예전에 학생이었다"입니다. 정말 특이한 건 동사 быть의 과거형 был을 쓰는 것까지야 쉽게 납득할 수 있는데, 보어로 주격이 오지 않고 무려 조격(助格. творительный падеж. instrumental case)이 온다는 점입니다. 이 러시아어에서는 시제와 격이 함께 변하며 의미를 나타낸다는 점이 몹시도 특이하며, 학습자들이 주의해야 할 포인트입니다. 어렵고 까다로운 러시아어를 최대한 쉽게 해설해 주는 점이 너무도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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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아제 바라아제
한승원 지음 / 문이당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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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한강 작가님의 부친이신 한승원 선생의 대표작입니다. 사실 한승원 선생의 향토적 미학이라든가 한국적 혼(魂) 그 근원의 탐구, 나아가 보편적 휴머니즘의 끈질긴 모색 등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은 이 장편 말고도 여러 걸작들이 있으며, 다만 다른 소설들보다 이 장편이 임권택 감독의 각색영화 덕분에 대중적으로는 더 잘 알려졌습니다. 이 작품만 읽어 봐도 선생이 달성한 문학적 성취의 가치라든가, 그 주제의식이 얼마나 깊이 있고 광범위한 시야를 지녔는지를 알 수 있으며, 마치 귄터 그라스와 토마스 만의 장점만 합친 듯한 공력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어쩌면, 따님이신 한강님보다 선생께서 노벨상 수상에는 더 적합한 작가 경력, 스타일이 아닐지 감히 독단적인 생각도 떠올려 봅니다. 잘 읽히는 소설 본연의 재미 면에서도 더 뛰어나기도 하고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문이당에서 2024년 개정판으로 펴낸 이 책은 소설 외적인 흥미도 끕니다. 일단 문이당이 워낙 오래된 출판사이다 보니 과거 한국 문단의 거물들(이문구 선생이라든가)이 쓴 명작들 판권을 많이 갖고 있으며, 이 소설도 그 중 하나입니다. 1980년대 초반에 이른바 "비구니 파동"이라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미 거의 완성된 영화였으나 승려들과 불교계를 비방했다 하여 격렬한 상영반대 운동이 일어났었습니다. 결국 영화는 공개되지 못했는데, 그 <비구니>는 원작 소설이 따로 있었던 건 아니고 이 한승원 선생이 각본 기초를 잡은 역할이었습니다. 이 책 p6 "초판 작가의 말"에 그 점이 작가님 본인의 입으로 진술됩니다. 

결국은 상호 소통이 안 되어 오해가 눈덩이처럼 커져 그 소동이 벌어졌던 건데, <비구니>의 확대 개작이라 할, 강수연 등 주연 <아제 아제 바라아제>가 1989년에 성공적으로 개봉, 흥행함에 따라 이 파동은 건설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판 작가 서문을 보면 당시로부터 4년 정도 후(1985)에도 여전히 선생이 이 일로 마음 고생을 크게 했음을 우리 독자들이 엿볼 수 있습니다.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1980년 신군부가 집권하며 이른바 10.27 법난이 발생했던 사실도 당시 불교계가 예민하게 나섰던 한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소설 초반은 진성(眞成)이라는 법명의 비구니, 강수남의 사연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오드리 헵번 주연의 1959년작 영화 <수녀 이야기>도 저는 잠시 생각났습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도 부유한 태생이며 타고난 두뇌가 총명하여 공학, 의학 등 어떤 학문 분야에 몸담았어도 성공했을 만한 재원이었으나, 뜻한 바 있어 세속과 연을 끊고 종신순결을 서원하죠. 강수남은 자신을 연모하던 병약한 소년의 연서를 받으나 그 자신도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영혼이었는데 이런 문제 앞에서 갈팡질팡 당황하는 게 당연합니다. 결국 소년은 어린 나이에 죽고 마는데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수남은 세상사 일체가 덧없음을 깨닫습니다. 약사가 되어 여성 엘리트로서 좋은 배필을 만나 멋진 한 세상을 살게 하기 위해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을 각오였던 그 양친이, 딸이 머리를 깎고 중이 되겠다는데 왜 억장이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젊은 남성이 일찍 죽는 설정 은 한수산의 <아프리카여 안녕>이 살짝 떠올려지기도 했는데 이때는 위생,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이런 일이 잦았나 봅니다. "돈 있어야 중질도 괄시를 덜 받는다(p69)."는 수남 부친의 대사도 <수녀 이야기>에 그 비슷한 말이 나옵니다. 

소설의 진주인공이라 할 순녀 이야기가 p77 이하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이미 소설 극초반에도 진성, 은선 스님들의 각별한 관심을 받던 행자이며, 묘하게 그 외모부터가 수도생활과의 이질감을 형성하는, 사연 많아 보이는 분위기였습니다. 현종 선생은 순녀에게 참 많은 것을 간접, 직접으로 가르칩니다. 생식과 그 열락의 이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여성은 방사의 예사로운 과정도 마치 남성이 여성에게 강제로 못된 짓이나 하는 양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현종 선생이 의도적으로 이 장면을 노출한 건 아니겠으나 뭐 모를 일이긴 합니다). 그런가하면 p114에서 백제멸망 당시 삼천궁녀 투신 설화의 허상을 냉철하게 지적하는 등(지금에서야 뭐 상식이긴 합니다만) 범상치않은 통찰력을 보이기도 합니다. 한승원 작가님 특유의 "저항하는 민초"에 대한 끈끈한 애정은 p117의 전봉준 장군 관련 언급(특이하게도 순녀의 시선에서입니다)에서도 드러납니다. 이 "여승과 도화살" 대목은 에로티시즘과 역사의식이 공히 잘 표현된다는 이유에서 한승원 문학 개성이 압축적으로 빚어진 명장면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는 진영미씨가 연기한 진성스님은 소설에서도 꽤 비중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p156 같은 곳을 보면 우종남이 끝까지 강수남을 찾아와, 그 부모님이 아직도 따님을 기다린다며 집요한 설득을 합니다. 갈데없는 이들(예컨대 고아 처지라든가)이야 산사에서 고된 수행을 할 때 한 번쯤은 자신도 가족이 있어 날 좀 데려가 줬으면 싶기도 하겠지만, 반대로 이미 세속 절연에의 심지가 확고한 진성 스님에게야 이런 만남이 늦가을 모기의 앵앵거림처럼 성가실 뿐입니다. 세상사가 이래서, 불공평하기에 되레 공평하다고들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현대사는 동족 상잔의 비극이 남긴 상처가 아직도 깊고 가득합니다. p192 같은 곳을 보면 낮에는 국군과 청년단 사람들이 와서 난리를 치고, 밤에는 빨치산이 패악을 부렸다던 당시의 시대상이 잘 서술됩니다. 사이에 끼여 죽어나는 건 아무 잘못도 없는 백성들뿐입니다. 대체 사람을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는 게 정치의 목적이 아니었습니까? "할머니는 큰딸의 몸에서 남자의 냄새를 맡았다.(p198)" 당시 몸 간수를 잘 못 한 건 무조건 여자의 탓이라 해서 이처럼이나 고된 봉욕을 그 일가로부터도 치러야만 했던 시대상이었습니다. 소설 저 앞에도 수학여행을 갔던 수남이 갑자기 사라져서 선생들이 여자애가 불량배들에게 끌려가 욕이라도 본 줄 알았다며 걱정하는 장면이 있는데 당시 시대상이 이러했습니다. 

"깨달음의 진주는 그걸 얻기 위해 억지로 뼈를 깎는 고행을 한다 해서 되는 게 아니며, 얻어진다 해도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p280)" 작가 서문에도 이 비슷한 말이, "해탈은 대승(大乘)에서 사부대중과 함께 오욕을 같이하고 뒹구는 와중에 얻어지는 것"이라고 했었습니다. 의외로(?) 석가모니 본인도 인위적인 고행(苦行)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도 남 보란 듯이 큰 목소리로 회개하는 시늉을 위선자들의 사기, 회칠한 무덤이라면서 호되게 나무랐습니다. 특히 선생의 이 작품에 비교적 잦은 성애 묘사가 등장하는 것도, 이승이라는 똥밭에서 열심히 굴러 본 자가 진정 업(業)의 사슬을 끊을 자격이 있다는 심오한 주제와 관련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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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태국 - 최고의 태국 여행을 위한 한국인 맞춤형 가이드북, 최신판 ’25~’26 프렌즈 Friends
안진헌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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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은 오래 전부터 천혜의 관광지로 꼽혀 왔고 그 번화한 거리, 고층 건물, 불야성의 풍경 등을 보면 절로 가슴이 설렐 만큼 매혹적인 나라입니다. 한국인들이 근래 자주 찾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서양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곳의 매력을 알아 숨겨진 attractions까지 널리 알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근래 한국인들도, 우리 눈에 특히 마음에 들었던 여러 명승지를 인터넷상에 공유한다든가 해서 우리만의 포인트를 찾아간다는 점입니다. 최고의 동남아 여행작가인 안진헌 선생의 이 책은 프렌즈 초창기부터 나왔었으나 꾸준히 최신 변경 사항을 업데이트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며, 동남아 애호가들의 눈을 이른 시기부터 틔워 준 공이 매우 크다고 하겠습니다. 저도 여태 여러 번 이 책의 구판들을 읽고 후기를 올렸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방콕처럼 오래된 도시는 구도심이 있고 새로이 개발된 곳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인도는 종래 영국령 동인도회사가 웨스트벵골의 캘커타(콜카타)에 그 중심지가 있었으나, 무굴의 황제를 몰아내고 델리에다 새로 인프라를 건설하여 뉴델리라 이름붙여 21세기까지 이어왔습니다. 그러나 태국은 서세동점의 시기에 외세에 의해 점렴된 적이 없었고, 신구도심의 개발은 주체적으로 이뤄졌으니 그 점도 감안할 필요는 있습니다. p98 이하에는 방람푸(Banglamphu) 일대가 소개되는데, 책에도 나오지만 여기가 방콕 안에서는 올드타운에 해당합니다. 인근 민족, 국가들과 항쟁을 거듭하며 영토를 차례로 넓혀 온 차크리 왕조는 이곳에 강고한 요새를 건설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곳이 프라쑤멘입니다. 우리도 한양 인근에 수원 등을 건설하여 정기적으로 순행했는데 p99의 람차담넌도 그 중 하나입니다. 프렌즈 시리즈의 최고 장점 중 하나인 미려한 지도가 딸려있어서 더욱 보기 편합니다. 

한국인들도 즐겨찾는 번화하고 현란한 카오산로드. 책 p160에도 설명이 있지만 이곳이야말로 여행자들이 찾아내고 발전시킨 명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한국이라면 이태원?). 프렌즈 시리즈의 최고 매력 중 하나인데 현지에서의 환전 정보, 교통편 등이 이 책에서도 자세히 설명됩니다. 현지에서 이용가능한 수상보트, 택시, 시내버스, 공항철도 등이 소개되는데, 이 책에서 자주 나오는 BTS는 방탄소년단이 아니고 Bangkok Transit System, 즉 방콕도시철도의 약자입니다. p169에는 한인업소들도 나오는데 요즘은 동남아 어딜 가도 이런 정보가 필수입니다. 디디엠, 홍익인간, 동대문 등이 있는데 저는 한 군데도 가 본 적 없습니다. 호텔 정보도 자세한데 제 눈에는 프라나콘 논렌이 바로 들어오네요. 클럽 중에는 아마 더원카오산이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겠습니다. 

파타야(p212)는 외국인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휴양지죠. 영화 <엠마뉴엘(1974)>에서도 이곳이 대사 중에 잠시 언급됩니다. 이곳은 본래 미군이 개발하다시피한 곳이며 방콕을 감싸안은 타일랜드걸프 동쪽편에 위치합니다. <엠마뉴엘>은 치망마이에서 그 상당 부분이 찍혔는데 파타야는 치앙마이에서도 가깝습니다. 파타야는 너무 풍경도 좋고 가불만한 곳이 많아, 기간이 한정되었다면 신중하게 일정을 짜야 나중에 후회를 안 할 텐데, p215에 저자 안진헌 선생이 추천하는 가장 모범적인 코스(8시간 정도)가 나옵니다. 인도차이나 반도라는 말 자체가 벌써 힌두이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뜻인데, 우리는 태국이 불교 문화의 압도적인 흔적을 지닌 줄만 알지만 그저 대승과 소승의 표피적인 차이 외에도 막상 현지에 가 보면 한국 불교와는 그 풍취가 무척 다릅니다. p216에 나오는 진리의성전(쁘라쌋 싸짜탐)도 힌두교가 알고보면 이곳 태국에도 그 침투를 깊이 행했음을 깨닫게 합니다. 

p276을 보면 타오 쑤라나리 기념비가 소개됩니다. 책에서 설명하듯 이곳은 태국인들의 영웅 타오 쑤라나리를 기리기 위한 곳인데, 위앙짠 왕국의 침략으로부터 1826년에 나라를 구한 "여성" 지도자입니다. 1797년 청 제국에 반항하여 포의족을 이끌고 봉기한 여성지도자 왕낭선, 나중에 비참하게 능지처참으로 목숨을 잃은 귀주(貴州)의 잔다르크도 잠깐 생각납니다. 참고로 위앙짠은 책에도 나오듯이 지금의 브양티얀이며, 우리는 라오스를 그저 조용한 불교국가로만 알지만 한때 이들이 이럴 때도 있었다는 게 놀랍습니다. 참고로 라오 족은 긴 역사 동안 거의 내내 전투민족이었죠. 

이 책에서 가장 잘 쓰인 대목이 치앙마이를 다룬 파트(p360 이하)이며 구판에서도 이미 그랬었습니다. 역시 프렌즈 시리즈답게 교통편에 대한 안내가 자세하며, 저자의 추천코스는 p365에 압축적으로 나옵니다. ถนนคนเดิน은 "타논 콘 던"이라고 읽는데, ถนน이 거리라는 뜻이며, คน이 사람들, เดิน이 걷는다는 뜻입니다. 이걸 영어로는 walking street라고 옮기며, 태국 환락가 하면 바로 떠오르는 워킹스트리트가 바로 이것입니다(이를 배경으로 삼은 2016년작 어떤 한국 영화 제목도 있죠). p378에는 이런 워킹스트리트 중 하나인 타논 우아라이가 소개되는데 책에도 나오듯이 은(銀)공예로 유명합니다. 

풍부하게 게시된 천연색의 멋진 사진들, 현지 사정에 달통한 전문가의 상세한 설명, 최신 사정들의 성실한 반영 등, 왜 프렌즈가 최고의 여행서인지 다시 확인할 수 있는 2025년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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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래보고서 2025-2035 - 미래 10년의 모든 산업을 뒤흔들 기후비상사태
박영숙.제롬 글렌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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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장기전망서로 이만큼 매년 신판이 오래 출간되고 대중의 사랑을 꾸준히 받는 책도 드물 것입니다. 이 책은 일찌감치 기후위기를 지적하며 UN 차원의 어젠다로 확고히 규정,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는데, 특히 올해판은 "기후비상사태"를 전면에 내걸고 각별한 주의와 즉각적인 행동을 촉구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호주 북동부에 자리한 그레이트배리어리프(p61)는 한국의 중학교 사회과부도 일반지형도에도 그대로 표시될 만큼 거대한 산호초더미이며, 여기에까지 백화 현상이 벌어진다는 건 그야말로 지구 표면이 변화하는 무서운 조짐입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산호가 백화한다는 건 산호 겉에 공생하는 해조류가 스트레스를 받아 죽어나가면서 산호의 하얀 껍데기만 드러나는 건데, 그 엄청난 푸름의 스트레치가 허옇게 죽음의 징후를 호소하며 지구에서 사라져간다는 건 여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책에서는 울런공(Wollongong. 시드니 근처에 있죠) 대학 교수 헬렌 맥그리거 등 최근에 이뤄진 대규모 연구의 주도자들의 견해를 인용, 소개합니다. 

에너지는 21세기 초만 해도 각국이 가장 싸게 들여올 수 있는 외국으로부터 자원을 자유롭게 수입했었습니다. 예를 들면 중국은 호주로부터 석탄을, 유럽 각국은 별 부담없이 러시아에서 가스를 사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정치적 이유로 이 무역이 중단되었는데, 중국은 호주와 관계가 나빠지자 석탄 수입을 중단했고 유럽 여러 나라는 러시아 외 다른 경로로 가스를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메르켈 때 거의 밀월관계였던 독-러는 지금 올라프 숄츠 사민당 총리 지도 아래에서 매우 악화했습니다. 책 p106 이하에서는 재생에너지 사용 급증 배경을 분석하며 이를 에너지 안보 추세와 연결시킵니다. 또 p107에서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으로 해당 국가 안에서 재생에너지 사용이 늘어날 것이라 전망하는데 이건 이제 10여일 전 트럼프가 당선되었기에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습니다. 

시멘트라는 건 20세기에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발전된 경이적인 건축재료입니다. 빨리 굳고 가소성, 내구성이 모두 뛰어난, 당시에는 기적적인 발전이었는데, 지금은 특히 콘크리트 성분 때문에 환경오염의 주범(p137)으로 꼽힙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탄소 제로 시멘트라는 게 나와, 건축효율과 환경보존의 두 가지 가치를 모두 달성하는 효자재료로 각광받습니다. 이미 용도가 다한 폐 플럭스를 통해, 강철도 정제하고, 잔여 슬래그 냉각 시에 포틀랜드 시멘트를 새로 만드는 놀라운 결과가 빚어짐을 시릴 뒤낭 박사가 발견했습니다. 특히 이 폐 플럭스가 강철 정제에 친환경적으로 쓰여서 탄소 저감 효과가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효율성과 환경보호가 트레이트오프 관계가 아님이 증명되기도 한 바람직한 혁신 사례라고 할 수 있죠. 

책의 제3부는 이제 우리들의 실생활에 성큼 다가서고 빠르게 침투하는 AI에 대한 분석입니다. 저는 십여년 전 박영숙 제롬글렌 두 분 저자의 이 책 당해년도판을 통해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라는 것의 개념을 처음 배웠는데요. 올해판에도 다시, 그러나 훨씬 진화한 개념으로 책에 등장합니다. 이 책 p179에서는 이렇게 환골탈태한 AI가 범죄의 패턴마저도 바꿔놓았다는 흥미진진한 분석이 나오는데, 물론 이에 대응하는 국가공권력 역시도 그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탈바꿈해 갑니다. p199에는 그 문제의 오픈AI社가 박사급 추론능력을 갖춘 엔진을 이미 개발했다고 내세운다는 말이 있는데, 해당 회사의 주가관리를 고려한 자체 어필의 인용인 만큼 독자들은 (저자들의 숨은 의도를 감안하여) 적당히 걸러 들어야 하겠습니다. 

화성에 식민지(p258)를 과연 건설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기술적 난점이 너무나 많이 남았지만, 생성형 AI는 이에 대해서도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여 전에 없던 성과를 안겨 주었고 지금도 계속 놀랄 만한 기여를 이어갑니다. 화성의 낮은 중력은 인간의 내장기관, 특히 호흡기와 순환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이를 회복하기 위해 얼마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지 적절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산출합니다. 과연 생명체의 흔적이 있기나 한지 더 치밀하고 체계적인 자료 수집, 결과 분석을 행할 수도 있습니다. 우주 개발뿐 아니라 의료, 화학공정, 시스템 아키텍처 등 전 분야에서 AI가 크게, 대체불가능할 만큼 공헌하는 게 바로 이런 시뮬레이션이라고 생각됩니다. 

최근 트럼프와의 연대로 더욱 주목받는 일론 머스크는 역시 십여 년 전부터 혁신적인 도시 교통 수단으로 하이퍼루프를 밀었는데 이 책 p318 이하에도 자세히 그 최근 동향이 나옵니다(머스크 이야기는 없습니다). 박, 글렌 두 분 저술 스타일이 항상 그렇지만 그저 현상 기술에 그치지 않고 원리적인 설명까지 자세히 해 주는 점이 좋습니다. 그리고 중국 미사일 개발업체 CASIC가 이 하이퍼튜브 기술을 응용하여 신기술 열차를 만들었다는 점도 흥미로운데 중국처럼 광대한 영토를 지닌 나라는 고속열차의 발전이 특히 긴요하기에 이런 혁신이 빠르게 일어나는 듯합니다. 

기술적 발전상의 최신 현황과, 인류공영의 바람직한 비전을 함께 배울 수 있는 유익하고 멋진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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