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 - 언제나 내 편인 이 세상 단 한 사람
박애희 지음 / 북파머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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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누구에게나 어머니가 계시고 아마도 그분은 세상 최후에까지 남아 내 편이 되어 줄 분이겠습니다. 박애희 작가님이 쓰신 이 책에는 정말 다양한 이야기, 어머니가 딸을 사랑하는 방식들이 담겨 있어 제3자가 엿보듯 읽어도 흐뭇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사연이 가득합니다. 아마도 이 책에 적힌 사연 중 적어도 몇몇은 우리 독자들이 매우 비슷하게 실제 체험해 본 일들이겠습니다. 혹 아니라고 해도, 사람 사는 세상에 부모와 자녀 간에 온당하게 오가야 할 교감이, 사랑이 이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멋진 교훈으로 가득하다는 점 누구나 동의할 만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위 사랑은 장모(p58)라는 말이 오래전부터 있었으며 이 말의 뜻이야 누구나 알지만, 책에서는 좀 더 깊이 의미를 파고듭니다. "남편도 나도 철없었을 시절..." 사실 예전에는 남의 댁 따님을 데려갈 때는 사회적, 경제적 기반이 얼추 다 갖춰진 후였을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정말 취업이 힘들고 사회화 기간이 길어졌기에, 나이 서른이 되어도 남자 위상이 뭔가 어설프고 위태로운 걸 많이 봅니다. 그러나 어쨌든 사위는 사위이며 내 딸의 배우자이며 내 딸을 끝까지 지켜 줘야 할 사람입니다. 저자께서는 "내 딸을 사랑해 줄 사람이라서 내 딸에게 보람이 가라고 내가 챙겨 준다"며 어머니의 배려를 해석하시지만, 전 좀 다른 의미도 여기서 읽었습니다. 딸 옆에 새로 둔 아들로까지 여기며, 어찌보면 친아들보다 더 소중한 면도 있다고 그 어머니께서는 생각하시는 거죠. 

박애희님처럼 작가분들이라면 이들이 쓰는 책 한 권 한 권이 다 자녀와 같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지금 이 책 같은 저자의 작품을 가리켜 "손녀딸"이라 부르셨다고 합니다(p124). 읽으면서 촌수가 과연 그렇게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은 과연 한번 세상에 힘들게 태어나 변치 않는 모습으로 그 부모를 대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어떻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관계의 유지와 형성입니다. 회사 등의 2차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관계 그 자체가 목적인 이런저런 친분도 사실 까다롭기가 그지없습니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그를 대하고 이렇게 말하지만 그 상대방은 전혀 다른 해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의 반응을 접수합니다. 아무리 친구라도 그는 남일 뿐 나의 부모처럼 날 챙기지 않고 그에게 그렇게까지 할 이유도 없습니다. 크게 충돌이 발생하여 파탄이 꼭 나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저런 오해가 쌓이고 쌓이면 슬슬 꼬이던 관계가 흐지부지되며 마침내 쌍방으로부터 잊혀집니다. 그러나 작가님은 그나마 상처를 누구한테 크게 남기지 않은 게 어디냐며, 이왕 상한 관계, 미련 갖지 말고 쿨하게 보내 주자고 합니다. 

부모님 세대는 자신의 몸 돌봄에 매우 소홀한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예외적인 분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집안 살림 알뜰하게 챙기느라 자녀분들 더 돌보느라 몸에 어디가 탈이 나도 그냥 무심히들 넘깁니다. 그러니 자녀분들이 어느 순간 부모님 몸에 탈이 난 걸 발견하고 속이 상하는(p177) 게 당연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무방비상태로 태어났을 때 몸 안 상하도록 세심하게 돌봐 준 분들이 부모님입니다. 그런 부모님도 그저 인간일 뿐이라서, 나이 드시면 서서히 무기력한 존재로 늙어갑니다. 성장 과정에서의 보은을 위해서라도 그때부터는 우리가 거꾸로 부모님을 지켜 드려야 합니다. p191을 보면 작가님이 "다음 세상에는 어머니가 제 딸로 태어나게 해 주세요"라고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들도, 지금 당장이라도 부모님께 잘하면 구태여 다음 세상을 기약할 필요도 없습니다. 

남녀 관계도 잘 들여다보면 어느 한쪽이 다른 쪽보다 사랑이 더 강합니다. 고르게 사랑하면 좋을 텐데 그게 아니라서 때로는 누가 바람이 나기도 합니다. 둘다 사랑이 시들해지면 쿨하게 갈라서면 되는데 이런 경우는 그게 아니라서 더 심각합니다. 그러나 천륜으로 맺어진 부모자식 사이는 그렇지가 않죠. 다만 치사랑은 내리사랑보다 훨씬 못한 경우가 많아서 세상에는 불효자가 사방에 밟힙니다. p220을 보면 엄마를 내가 더 사랑한다고 과감히 저자가 선언하시지만, 마치 거북이를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아킬레스처럼 자식의 사랑은 결국 어머니의 그것보다 한 발 더 뒤떨어집니다. 남자들이 결코 속속들이 이해한다고 감히 말할 수 없는 게 출산의 고통입니다. p276을 보면 여성들은 이 순간 그 누구보다 어머니를 찾게 된다고 합니다. 아들도 엄마 아빠를 애틋이 그릴 수 있지만, 그 애절함이 결코 딸을 따라갈 수 없지 않나, 그래서 요즘 젊은 부모들이 아들보다 딸을 더 선호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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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 캡슐 텔레포터
이재은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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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배경인 비주얼 시티는 어쩌면 우리가 사는 현실의 서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상대의 내면과 교감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겉모습만으로 모든 것을 재단해 버립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용한 의사와 시설을 찾아 외모를 아예 바꿀 생각마저 품고 실행에 옮기는데, 그 결과 거리에는 내가 아닌 남의 가면을 쓰다시피한 그로테스크한 풍경이 넘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소설에는 비주얼의 변형을 금지하라며 시위를 벌이는 대중도 등장하는데, 물론 우리의 현실에서 그런 이유로 집회를 열기까지 하는 이들은 없거나 극히 보기 힘들지만,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참모습을 감추려는 시도에 대해 곧잘 무시와 경멸감을 과장되이 표현하곤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표현과 자기신체 처분의 자유가 누구에게도 있으므로 성형 정도야 뭐 큰 문제삼을 게 있을까 싶지만, 때로 큰 배신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나 봅니다. 한국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플라스틱 서저리가 발전한 나라도 드물겠으므로, 과연 이 소설 같은 기발한 픽션이 나올 만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뭐 아줌마? 내가 어딜 봐서 아줌마로 보여? 어디 아줌만지 할머닌지 너도 한번 그 비주얼템을 벗어봐!(p18)" 이미 디지털 트윈이라는 게 개인의 생활 영역에서는 거의 구현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카카오페이지든 인스타든 유저는 자신의 계정에다 진짜 모습을 올릴 생각을 아예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필터를 사용하고, 동영상에까지 보정을 가하여 배경의 시공간을 왜곡시키는(?) 우스꽝스러운 효과가 속출합니다. 소설에서 사람들은 비주얼템이라는 걸 착용해 꿈 같은 외모를 하고 돌아다니는데, 이게 우리들이 가상 공간에서 온갖 허위의 치장을 하고 방문자들을 기만하는 행태와 대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런 것도 마스컬레이드 본능이라며 너그럽게 이해해 줘야 할지, 아니면 본격적인 존재의 타락 단계로 접어드는 시그널이라며 단호하게 제재를 내려야 하는지는 정말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떤 육감, 혹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느낌이라는 게 있어서, 아무리 먼 거리에서 누군가가 잔뜩 치장을 하고 다녀도 우리는 아 저 사람이 실제로는 나이가 많이 들었겠구나, 혹은 차마 감당 못할 무슨 힘든 일이 있나 보다, 이렇게 제법 확신을 갖고 판단합니다. 소설 p35를 보면, 비주얼템을 착용했음에도 선생님 눈에 빤하게 보이는 어떤 근심, 힘듦이 도은한테서 바로 풍긴다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실 성형수술이든 진한 화장이든, 이 픽션 속의 비주얼템이든 간에, 진짜 문제는 진실을 가리고 왜곡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결정적인 진실을 가려 주지 못하고 결정적으로 노출시킨다는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진실은 그만큼이나 힘이 세며, 우리들도 예상외로 다들 현명하기에 그 진실을 잘도 캐치합니다.  

"니가 차도은이라고 지금 광고하고 다니는 거야?(p50)" 정상적이고 당당한 정신이라면 차도은, 선예, 혜선, 모현이라고 나를 내세우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나 차도은 여기 있다며 광고할 만한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게 인생의 목적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이 픽션 속이건, 21세기의 현실이건 이제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게 오히려 금기 사항 중 하나가 되어 버렸습니다. 비주얼 시티에서는 누가 자신을 최대한 과장하고 미화하는 게 능력의 척도이기까지 합니다. 인플루언서의 파워(p58)는 얼마나 이 은폐 도구를 잘 활용하는지로 측정됩니다. 

소설에는 초반부터 저 비주얼템과 함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도구로 등장하는 게 여덟 자리의 커넥트키입니다. 도은이의 경우 엄마아빠, 학교출결시스템 등이 고작입니다(p50). 이건 우리의 현실에서라면 인친이나 팔로잉 시스템과 유사합니다. 넷상의 소셜 미디어처럼 unsocial한 공간도 없는데, 소설 속의 커넥트키도 사실은 진정한 세상으로부터의 디스커넥트 키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비주얼 시티가 익숙한 사람들은 다른 세상이 있는 걸 모르더라고(p62)." 이 말에 송모현은 벌써 시무룩해지는데 그나마 모현이 정도면 양반입니다. 인터넷에만 파묻혀 열심히 역할 놀이만 하느라 자신이 진짜 누구였는지 잊은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는 수두룩합니다. "그 주제에 뭘 믿고 리얼리티에 가입한다는 거야?(p107)" 아니, 내가 내 자신을 과감히 믿고 현실로 복귀하지 않으면 대체 누가 내 손을 잡아 주겠습니까? 망상과 허위의식에서 벗어나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길만이 유일한 구원의 통로임을 이 소설은 우리에게 깨우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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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감에 압도될 때, 지혜문학 - 무의미한 고통에 맞서는 3,000년의 성서 수업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24
김학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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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입니다. 도전(혹은 응전)이 성공하려면 그저 뚝심이나 용기만으로는 부족하고, 최소 자원의 소비로 최대 성과를 도모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또, 아무리 힘을 써도 원하던 결과가 달성되지 않을 때, 공연히 멘탈 나가지 말고 자신을 잘 추스려 탄력적으로 회복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이때에도 우리는 성숙한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기독교의 성경에는, 삶의 고비마다 우리의 마음을 따듯이 보듬으며,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조용히 격려하는 지혜의 말씀이 담겨 있기에, 신앙이나 종교를 초월하여 많은 독자를 아직도 유지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인간이 흙과 먼지로부터 탄생했다는 발상은 언뜻 잘 납득이 되지 않기도 합니다. 피와 근육으로 이뤄진 신체에, 주변 환경을 평가하고 쉼 없이 작동하는 두뇌가 결합한 인간의 육신, 정신이 얼마나 생기 있고 경이로운 존재인데 고작 흙, 먼지에서 유래했다니! 그러나 현대과학은 코아세르베이트 등 물컹물컹한 단백질로부터 원시 생명체가 비롯했다고 하니, 이런 표현이 어떻게 보면 진실을 제대로 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사람이 죽고 나면 ashes, dust로 화한다는 건 누구라도 수긍하겠지만 말입니다. 이러한 흙과먼지에, 신이 고맙게도 자신의 형상을 담아 빚었다는 내력이 구약 창세기의 핵심을 이룹니다. 저자께서는 p51 이하에서, 존귀존엄하여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신과 하잘것없는 인간이 많은 점에서 닮았다는 구약의 발상이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이었다고 지적합니다. 

실존주의는 20세기 들어 하이데거, 사르트르 등에 의해 성숙한 꼴을 갖췄지만, 이 책 p47에도 나오듯이, 그로부터 수백 년 전 파스칼이 이미 "왜 거기가 아닌 여기, 저때가 아닌 이때 내가 존재하는지, 생각해 보면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실존에의 자각은 적어도 이미 이때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광활한 우주의 신비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신비의 아름다움을 찬양할 줄 알고 자연스럽게 압도될 줄도 압니다. 이래서 한낱 흙과 먼지에서 빚어진 인간이 미약하게나마 신성을 공유한다고도 보는 것인데, 이처럼 탐구욕이 왕성하고 지적인 존재라서 그 모든 지혜의 궁극인 야웨를 숭배하는 법이라고 저자께서는 말합니다. 

허무감에 압도되거나 거대한 시련이 기어이 우리 무릎을 꿇리려 들 때 가장 애독되는 글월이 아마도 구약의 욥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욥은 평생을 근면성실하게 살았으나 어느날갑자기 아무 잘못도 없이 모든 걸 잃고 심지어 건강에까지 치명적 타격을 입습니다. 그러나 욥은 처음부터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시련이든 죽음이나 치욕이든 모두가 신의 섭리라며 군말없이 순응합니다. 그에게 닥친 모든 불운과 곤경이란, 책을 읽는 독자가 다 분하고 치가 떨릴 정도인데 정작 당사자는 담담하기만 합니다. 이런 겸허함과 절제, 극기의 철학은 스토이시즘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저자는 p121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인용하며 평가합니다. 

주어진 운명이 있으니 무조건 순응하겠다는 생각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상충하며, 전근대적이고 퇴행적인 생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욥기에서 강조하는 정신은 그런 게 아니라, 세상의 이치는 인간의 얕은 지혜를 아득히 초월하며, 그 광대한 신비 앞에 우리는 겸손해질 필요도 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런 기술이 그저 신의 압도적인 힘이 인간을 깔아뭉개야 마땅하다는 취지가 아니며, 오히려 욥이 보여 준 품위와 떳떳함에 주목하라고 합니다. 대체 원치도 않던 나를 누가 태어나게 했나며 징징거리지 않고,고난은 고난대로 치욕은 치욕대로 의연하게 대처하는 욥의 저 쿨함 때문에 현대인들이 여전히 그를 지지하고 지혜의 원천으로 삼는 것 아니겠냐고 주장합니다. 

가벼운 말 몇 마디가 신세를 망친다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공감을 얻어 왔습니다. "빨리 듣되, 말은 천천히 하라"는 야고보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야고보의 authorship에 대해서는 저자께서 현대 신학의 성과를 인용하여 간결하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이 가르침을 모르지 않지만, 인간의 타고난 천한 본성이 이를 실천 면에서 쉽게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 가벼운 말은 대부분 분노, 격정 같은 거친 감정과 연결되며, 우리의 앞날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죠. 알고보면 모든 지혜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으며, 겸허함과 진실됨이 그 지혜를 일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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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후에 오는 것들 세트 - 전2권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개정판)
공지영.츠지 히토나리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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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종종 잊지만 공지영 작가는 본래 달달한 로맨스도 잘 쓰는 분입니다. 공지영 작가가 이처럼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게 된 처음의 비결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공 작가가 츠지 히토나리와 함께 시점만 달리한 채 같은 사연을 소재삼아 이 멋지고 근사한 기획을 실현한 게 벌써 14년 전입니다. 요즘 나오는 소설들을 보면 챕터마다 번갈아가며 남녀 주인공 시점이 교차하게 하는 기교를 쓰곤 하는데, 독립된 두 개 작품 포맷이긴 하지만 벌써 14년 전에 이 두 분 작가가 시도했었다는 점도 이 작품을 다시 보게 하는 요소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멋진 작품의 사연은 진즉에 영상물로 옮겨졌어야 했는데 이제서야 OTT 쿠팡플레이가 과감하게 투자하여 드라마가 나왔다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9월 27일 금요일에 드디어 1회가 방영되었는데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던 분들은 반드시 봐야 할 명작의 스멜이 벌써부터 풍깁니다. 쿠팡이라는 기업의 구조를 생각해 볼 때, 이 회사가 추진력있게 기획을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과연 드라마가 이렇게 론칭되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いつかこの恋を思い出してきっと泣いてしまう>는, 우리말로 옮기면 "언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 정도가 됩니다. 이 드라마는 지니TV에서 서비스하며 이미 본 분들도 많을 텐데, 여기에 사카구치 켄타로가 조연 나카조 역으로 나왔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부쩍 주연을 자주 맡는 이  사카구치 겐타로가 바로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서 바로 아오키 준고 역을 맡는다고 발표되었을 때 그것참 잘 어울리겠다 싶었습니다. 또 최홍 역은 발랄한 이미지의 이세영이 캐스팅되었는데 이 역시도 그럴싸합니다. 

전 남성 독자인데도 개인적으로는 공지영판 최홍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최홍은 출판사 직원인데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는 못배기겠다는 듯 그저 지켜보기만 해도 즐거운 기운이 우리에게 옮는 에너자이저입니다. 반면 최홍이 바라보는 준고는 약간 "다큐"인 진지충입니다. 본래 남녀는 자신과 상당히 다른 이성에게 끌리는 법이라서인지, 최홍 시선에서 보는 이야기에서는 저 축 늘어지는 준고에게 먼저 최홍이 빨려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젊은이가 무서운 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무엇이 되어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준고는 정말로 7년만에 작가가 되어 한국의 최홍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의 컬러는 바뀌지 않아서 과거처럼 진지하고 또 무거운 분위기야 예전 그대로입니다. 

남녀 사이에 친구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 있을 수야 있으나, 여기서 김민준과 최홍 사이를 보면 그 유지가 참 힘들다는 생각입니다. 최홍은 아무리 애를 써도 민준이 남자로 보이지 않는데, 민준은 홍이를 기어이 자기 여자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홍이 성향을 고려할 때 이 결합은 참 이뤄지기가 힘들다는 점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안타까운 게 민준이었습니다. 

홍이 성격을 보면 어디서 이런 통통 튀는 기질이 나왔을지 살짝 궁금해지기도 했는데, 다니는 출판사 대표님인 아버지도, 또 그 점잖으신 어머님도 홍이의 저 못 말리는 스타일하고는 상당히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 동생인 록(綠)이는 홍이보다 더 현실적이고 계산적이면서도 더 성숙한 유형이며 이 사연에서 홍-준고 관계가 발전하는 데 만만치 않은 걸림돌입니다. 이 록이 캐릭터는 정말로 그 아빠 그 엄마 딸이라 할 만큼 성격의 일부씩을 잘 물려받았습니다. 공지영판에서 가장 생생하게 잡힌 인물이며, 순전히 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츠지 히토나리 판보다 공지영 판이 더 메인이 아닌가 싶었던 게, 이 록이 캐릭터가 주는 강렬한 존재감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준고의 성격에 그늘이 드리운 건, 냉정하고 다소 이기적인 어머니로부터 상처를 받아서도 있을 것입니다. 츠지 히토나리 판에서는 저런 섬세한 남성의 내면이 치밀하게 그려지며, 왠지 최홍의 가족들이 각기 자기만의 방식으로 한국인의 역사의식을 대변한다고 느껴진 반면, 준고의 가족들은 미국 백인이나 유럽인들처럼 철저한 개인들이기만 합니다. 이는 공지영과 츠지 히토나리의 작가 성향이 다른 데에서도 기인하는 결과이겠습니다. 

츠지 히토나리 판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가족들에게서 미처 받지 못한 관심이나 애정을, 준고는 이들 고맙고 다정한 주변 인물들로부터 하나하나 챙기려는 듯, 혹은 (서로끼리는 잘 모르는) 이들 인물들이 열심히 위대한 작가 한 사람을 만들어 내려는 듯 주변을 공전하며 각각의 따스한 파장을 준고의 주파수가 잘 접수하도록 뿜어냅니다. 다시 봐도 참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이 두 작품은 요철을 절묘하게 맞추면서 멋진 이중 우주를 형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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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한정판 세트 - 전5권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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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에서 이 교양예능 프로그램을 야심차게 론칭한 게 어언 4년 전입니다. 처음에는 약간의 잡음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런 소동 덕에 인지도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내용을 계속 알차게 유지하여 이제는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어디에선가는 재방송 중인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굳힌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한정판은 전 5권 구성인데, 여태 <벌거벗은 세계사>는 총 열 권이 교보문고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그 중 권력자 편, 사건 편 둘째 권 같은 건 이 세트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세트의 책등 부분을 보면 프로그램에서 로고화한 "벌거벗은 세계사" 제목이 예쁘게 이어진 형태로 인쇄되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한정판으로서 소장가치가 충분합니다. 

이 한정판에서 제1권(래핑 상태에서 맨오른쪽)은 사건편이며, 그 처음에 나오는 게 그리스 신화 에피소드입니다. 이 회차는 김헌 선문대 교수가 진행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봤었습니다. 김헌 교수는 제우스, 테세우스, 페르세우스 등을 설명하며 그들의 신성(神性), 혹은 반신성(半神性)을 쉽게 풀어 주는데 이때가 시즌2였습니다. 유럽 출신 외국인들이 주축이 된 패널들이 주제가 더 잘 부각되게 적절한 리액션이 따라 줘서 시청자들도 더 흥미롭게 본 듯합니다. 해당 대목에 컬러 사진 등이 자료로 보강되어, 가뜩이나 재미있게 봤던 독자들에게 멋진 리마인더 미디어 노릇을 해 줍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은 무대가 동아시아였고 그래서 한국사 강의 씬에서 인기가 높은 최태성씨 등이 이 코너를 맡았습니다. 청일전쟁은 특히 한반도를 전역으로 삼았고, 처음에는 일본 측에 승산이 없다고 봤던 게 유럽 쪽의 대세적 시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적, 물적 전력의 우위상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지리멸렬상을 보인 게 청나라였고 사실상 집정을 맡았던 이홍장은 참패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그저 정해진 운명처럼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향해 달려가는 징검다리 돌 하나쯤으로만 알았지만, 사실 그렇게 전쟁의 경과상이 간단치만은 않았음을, 특히 이렇게 잘 정리된 텍스트본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역사적 사건이건, "벌거벗겨 봐야" 그 실체가 제대로 드러남을 다시 수긍하게 됩니다. 

이 세트 인물편에서, 벌거벗겼을 때 그 실체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물은 아마도 콜럼버스일 것 같습니다. 그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이보다 더 서유럽 중심적인 시각도 드물 것입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발견"하기 전에도 이미 선주민이 그 나름의 세련된 문명을 발전시키며 정주하는 중이었고, 나중에 무력을 동원하여 기존 문명을 말살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던 죄악상은 그동안 은폐되었습니다. 적절하게도 두 패널이 가해자(?), 피해자에 각각 속하는 이들로 섭외되어 교육적으로 더 유익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사는 이런 프로그램이 그 어떤 책이나 보고서보다 더 입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소재이며, 이미 방송 포맷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 정리된 내용이, 이렇게 도판이 보강된 텍본을 통해 다시 안정적으로 독자를 만나니 우리 독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미디어 체험이 됩니다. 이 중에서 제가 집중하여 시청하고 읽었던 대목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파트였는데, 전남대 사학과 박현도 교수가 프로그램도 잘 진행하시고 유익한 정보도 많이 전달했었습니다. 저때로부터 1년 7개월여만에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에 전면전이 터져 오늘에 이르니 시의성 또한 뛰어납니다. 

경제편도 아주 유익한데, 피렌체와 그를 둘러싼 토스카나 일대에서 세력을 떨쳐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들었다놓았다 한 메디치 가문이 책 처음에 다뤄집니다. TV에서는 이대 사학과 교수 남정국씨가 풍부한 경제 지식을 동원하여, 왜 이때 메디치 가(家)가 유럽과 지중해 무역을 쥐락펴락할 수 있었는지 시청자들에게 조감시켜 주었습니다. 제가 특이하게 본 건 고대 조영헌 교수가 진행한 "국제도시 상하이" 편이었는데, 상하이는 일찍 영국 조계에 든 채 20세기 초에도 대단히 경제적으로 번성했었으며, 공산 혁명 후 수십 년 간 닫혔다가 덩샤오핑, 장쩌민 등 훌륭한 지도자들의 활약으로 다시 과거의 영광을 회복했음을 멋지게 브리핑해 주었으며, 책에도 상당히 깔끔하게 잘 정리되었습니다. 

아마 <벌거벗은 세계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기있는 에피소드가 많이 포함된 게 잔혹사 편이겠으며 책도 이 세트에서 제5권으로 편입된 잔혹사 편이 가장 많이 팔린 줄로 알고 있습니다. 체르노빌 폭발 사고는 사실상 소련 붕괴의 트리거가 되었으며, 다만 최근 MS사의 조치가 뉴스를 탔듯 미국의 스리마일 원전은 다시 가동에 들어가니 역사의 아이러니를 실감합니다. 이란의 히잡 혁명은 여성의 표현 욕구, 자립을 위한 몸부림은 아무도 말릴 수 없음을 다시 확인하게 하며, 미국의 서부 개척사는 저돌적인 산업의 확장세 속에 이름없는 희생자들이 얼마나 많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독자의 맹성을 촉구하기도 합니다. 

한정판 세트가 정말 예쁘게 뽑혀서 시청자들이 두고두고 기념으로 간직할 만합니다. 보기만 해도 뿌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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