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감에 압도될 때, 지혜문학 - 무의미한 고통에 맞서는 3,000년의 성서 수업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24
김학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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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입니다. 도전(혹은 응전)이 성공하려면 그저 뚝심이나 용기만으로는 부족하고, 최소 자원의 소비로 최대 성과를 도모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또, 아무리 힘을 써도 원하던 결과가 달성되지 않을 때, 공연히 멘탈 나가지 말고 자신을 잘 추스려 탄력적으로 회복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이때에도 우리는 성숙한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기독교의 성경에는, 삶의 고비마다 우리의 마음을 따듯이 보듬으며,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조용히 격려하는 지혜의 말씀이 담겨 있기에, 신앙이나 종교를 초월하여 많은 독자를 아직도 유지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인간이 흙과 먼지로부터 탄생했다는 발상은 언뜻 잘 납득이 되지 않기도 합니다. 피와 근육으로 이뤄진 신체에, 주변 환경을 평가하고 쉼 없이 작동하는 두뇌가 결합한 인간의 육신, 정신이 얼마나 생기 있고 경이로운 존재인데 고작 흙, 먼지에서 유래했다니! 그러나 현대과학은 코아세르베이트 등 물컹물컹한 단백질로부터 원시 생명체가 비롯했다고 하니, 이런 표현이 어떻게 보면 진실을 제대로 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사람이 죽고 나면 ashes, dust로 화한다는 건 누구라도 수긍하겠지만 말입니다. 이러한 흙과먼지에, 신이 고맙게도 자신의 형상을 담아 빚었다는 내력이 구약 창세기의 핵심을 이룹니다. 저자께서는 p51 이하에서, 존귀존엄하여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신과 하잘것없는 인간이 많은 점에서 닮았다는 구약의 발상이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이었다고 지적합니다. 

실존주의는 20세기 들어 하이데거, 사르트르 등에 의해 성숙한 꼴을 갖췄지만, 이 책 p47에도 나오듯이, 그로부터 수백 년 전 파스칼이 이미 "왜 거기가 아닌 여기, 저때가 아닌 이때 내가 존재하는지, 생각해 보면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실존에의 자각은 적어도 이미 이때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광활한 우주의 신비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신비의 아름다움을 찬양할 줄 알고 자연스럽게 압도될 줄도 압니다. 이래서 한낱 흙과 먼지에서 빚어진 인간이 미약하게나마 신성을 공유한다고도 보는 것인데, 이처럼 탐구욕이 왕성하고 지적인 존재라서 그 모든 지혜의 궁극인 야웨를 숭배하는 법이라고 저자께서는 말합니다. 

허무감에 압도되거나 거대한 시련이 기어이 우리 무릎을 꿇리려 들 때 가장 애독되는 글월이 아마도 구약의 욥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욥은 평생을 근면성실하게 살았으나 어느날갑자기 아무 잘못도 없이 모든 걸 잃고 심지어 건강에까지 치명적 타격을 입습니다. 그러나 욥은 처음부터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시련이든 죽음이나 치욕이든 모두가 신의 섭리라며 군말없이 순응합니다. 그에게 닥친 모든 불운과 곤경이란, 책을 읽는 독자가 다 분하고 치가 떨릴 정도인데 정작 당사자는 담담하기만 합니다. 이런 겸허함과 절제, 극기의 철학은 스토이시즘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저자는 p121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인용하며 평가합니다. 

주어진 운명이 있으니 무조건 순응하겠다는 생각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상충하며, 전근대적이고 퇴행적인 생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욥기에서 강조하는 정신은 그런 게 아니라, 세상의 이치는 인간의 얕은 지혜를 아득히 초월하며, 그 광대한 신비 앞에 우리는 겸손해질 필요도 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런 기술이 그저 신의 압도적인 힘이 인간을 깔아뭉개야 마땅하다는 취지가 아니며, 오히려 욥이 보여 준 품위와 떳떳함에 주목하라고 합니다. 대체 원치도 않던 나를 누가 태어나게 했나며 징징거리지 않고,고난은 고난대로 치욕은 치욕대로 의연하게 대처하는 욥의 저 쿨함 때문에 현대인들이 여전히 그를 지지하고 지혜의 원천으로 삼는 것 아니겠냐고 주장합니다. 

가벼운 말 몇 마디가 신세를 망친다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공감을 얻어 왔습니다. "빨리 듣되, 말은 천천히 하라"는 야고보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야고보의 authorship에 대해서는 저자께서 현대 신학의 성과를 인용하여 간결하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이 가르침을 모르지 않지만, 인간의 타고난 천한 본성이 이를 실천 면에서 쉽게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 가벼운 말은 대부분 분노, 격정 같은 거친 감정과 연결되며, 우리의 앞날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죠. 알고보면 모든 지혜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으며, 겸허함과 진실됨이 그 지혜를 일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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