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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한정판 세트 - 전5권 ㅣ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8월
평점 :
tvN에서 이 교양예능 프로그램을 야심차게 론칭한 게 어언 4년 전입니다. 처음에는 약간의 잡음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런 소동 덕에 인지도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내용을 계속 알차게 유지하여 이제는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어디에선가는 재방송 중인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굳힌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한정판은 전 5권 구성인데, 여태 <벌거벗은 세계사>는 총 열 권이 교보문고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그 중 권력자 편, 사건 편 둘째 권 같은 건 이 세트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세트의 책등 부분을 보면 프로그램에서 로고화한 "벌거벗은 세계사" 제목이 예쁘게 이어진 형태로 인쇄되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한정판으로서 소장가치가 충분합니다.
이 한정판에서 제1권(래핑 상태에서 맨오른쪽)은 사건편이며, 그 처음에 나오는 게 그리스 신화 에피소드입니다. 이 회차는 김헌 선문대 교수가 진행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봤었습니다. 김헌 교수는 제우스, 테세우스, 페르세우스 등을 설명하며 그들의 신성(神性), 혹은 반신성(半神性)을 쉽게 풀어 주는데 이때가 시즌2였습니다. 유럽 출신 외국인들이 주축이 된 패널들이 주제가 더 잘 부각되게 적절한 리액션이 따라 줘서 시청자들도 더 흥미롭게 본 듯합니다. 해당 대목에 컬러 사진 등이 자료로 보강되어, 가뜩이나 재미있게 봤던 독자들에게 멋진 리마인더 미디어 노릇을 해 줍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은 무대가 동아시아였고 그래서 한국사 강의 씬에서 인기가 높은 최태성씨 등이 이 코너를 맡았습니다. 청일전쟁은 특히 한반도를 전역으로 삼았고, 처음에는 일본 측에 승산이 없다고 봤던 게 유럽 쪽의 대세적 시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적, 물적 전력의 우위상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지리멸렬상을 보인 게 청나라였고 사실상 집정을 맡았던 이홍장은 참패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그저 정해진 운명처럼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향해 달려가는 징검다리 돌 하나쯤으로만 알았지만, 사실 그렇게 전쟁의 경과상이 간단치만은 않았음을, 특히 이렇게 잘 정리된 텍스트본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역사적 사건이건, "벌거벗겨 봐야" 그 실체가 제대로 드러남을 다시 수긍하게 됩니다.
이 세트 인물편에서, 벌거벗겼을 때 그 실체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물은 아마도 콜럼버스일 것 같습니다. 그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이보다 더 서유럽 중심적인 시각도 드물 것입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발견"하기 전에도 이미 선주민이 그 나름의 세련된 문명을 발전시키며 정주하는 중이었고, 나중에 무력을 동원하여 기존 문명을 말살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던 죄악상은 그동안 은폐되었습니다. 적절하게도 두 패널이 가해자(?), 피해자에 각각 속하는 이들로 섭외되어 교육적으로 더 유익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사는 이런 프로그램이 그 어떤 책이나 보고서보다 더 입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소재이며, 이미 방송 포맷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 정리된 내용이, 이렇게 도판이 보강된 텍본을 통해 다시 안정적으로 독자를 만나니 우리 독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미디어 체험이 됩니다. 이 중에서 제가 집중하여 시청하고 읽었던 대목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파트였는데, 전남대 사학과 박현도 교수가 프로그램도 잘 진행하시고 유익한 정보도 많이 전달했었습니다. 저때로부터 1년 7개월여만에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에 전면전이 터져 오늘에 이르니 시의성 또한 뛰어납니다.
경제편도 아주 유익한데, 피렌체와 그를 둘러싼 토스카나 일대에서 세력을 떨쳐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들었다놓았다 한 메디치 가문이 책 처음에 다뤄집니다. TV에서는 이대 사학과 교수 남정국씨가 풍부한 경제 지식을 동원하여, 왜 이때 메디치 가(家)가 유럽과 지중해 무역을 쥐락펴락할 수 있었는지 시청자들에게 조감시켜 주었습니다. 제가 특이하게 본 건 고대 조영헌 교수가 진행한 "국제도시 상하이" 편이었는데, 상하이는 일찍 영국 조계에 든 채 20세기 초에도 대단히 경제적으로 번성했었으며, 공산 혁명 후 수십 년 간 닫혔다가 덩샤오핑, 장쩌민 등 훌륭한 지도자들의 활약으로 다시 과거의 영광을 회복했음을 멋지게 브리핑해 주었으며, 책에도 상당히 깔끔하게 잘 정리되었습니다.
아마 <벌거벗은 세계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기있는 에피소드가 많이 포함된 게 잔혹사 편이겠으며 책도 이 세트에서 제5권으로 편입된 잔혹사 편이 가장 많이 팔린 줄로 알고 있습니다. 체르노빌 폭발 사고는 사실상 소련 붕괴의 트리거가 되었으며, 다만 최근 MS사의 조치가 뉴스를 탔듯 미국의 스리마일 원전은 다시 가동에 들어가니 역사의 아이러니를 실감합니다. 이란의 히잡 혁명은 여성의 표현 욕구, 자립을 위한 몸부림은 아무도 말릴 수 없음을 다시 확인하게 하며, 미국의 서부 개척사는 저돌적인 산업의 확장세 속에 이름없는 희생자들이 얼마나 많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독자의 맹성을 촉구하기도 합니다.
한정판 세트가 정말 예쁘게 뽑혀서 시청자들이 두고두고 기념으로 간직할 만합니다. 보기만 해도 뿌듯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