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후에 오는 것들 세트 - 전2권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개정판)
공지영.츠지 히토나리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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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종종 잊지만 공지영 작가는 본래 달달한 로맨스도 잘 쓰는 분입니다. 공지영 작가가 이처럼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게 된 처음의 비결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공 작가가 츠지 히토나리와 함께 시점만 달리한 채 같은 사연을 소재삼아 이 멋지고 근사한 기획을 실현한 게 벌써 14년 전입니다. 요즘 나오는 소설들을 보면 챕터마다 번갈아가며 남녀 주인공 시점이 교차하게 하는 기교를 쓰곤 하는데, 독립된 두 개 작품 포맷이긴 하지만 벌써 14년 전에 이 두 분 작가가 시도했었다는 점도 이 작품을 다시 보게 하는 요소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멋진 작품의 사연은 진즉에 영상물로 옮겨졌어야 했는데 이제서야 OTT 쿠팡플레이가 과감하게 투자하여 드라마가 나왔다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9월 27일 금요일에 드디어 1회가 방영되었는데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던 분들은 반드시 봐야 할 명작의 스멜이 벌써부터 풍깁니다. 쿠팡이라는 기업의 구조를 생각해 볼 때, 이 회사가 추진력있게 기획을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과연 드라마가 이렇게 론칭되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いつかこの恋を思い出してきっと泣いてしまう>는, 우리말로 옮기면 "언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 정도가 됩니다. 이 드라마는 지니TV에서 서비스하며 이미 본 분들도 많을 텐데, 여기에 사카구치 켄타로가 조연 나카조 역으로 나왔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부쩍 주연을 자주 맡는 이  사카구치 겐타로가 바로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서 바로 아오키 준고 역을 맡는다고 발표되었을 때 그것참 잘 어울리겠다 싶었습니다. 또 최홍 역은 발랄한 이미지의 이세영이 캐스팅되었는데 이 역시도 그럴싸합니다. 

전 남성 독자인데도 개인적으로는 공지영판 최홍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최홍은 출판사 직원인데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는 못배기겠다는 듯 그저 지켜보기만 해도 즐거운 기운이 우리에게 옮는 에너자이저입니다. 반면 최홍이 바라보는 준고는 약간 "다큐"인 진지충입니다. 본래 남녀는 자신과 상당히 다른 이성에게 끌리는 법이라서인지, 최홍 시선에서 보는 이야기에서는 저 축 늘어지는 준고에게 먼저 최홍이 빨려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젊은이가 무서운 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무엇이 되어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준고는 정말로 7년만에 작가가 되어 한국의 최홍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의 컬러는 바뀌지 않아서 과거처럼 진지하고 또 무거운 분위기야 예전 그대로입니다. 

남녀 사이에 친구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 있을 수야 있으나, 여기서 김민준과 최홍 사이를 보면 그 유지가 참 힘들다는 생각입니다. 최홍은 아무리 애를 써도 민준이 남자로 보이지 않는데, 민준은 홍이를 기어이 자기 여자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홍이 성향을 고려할 때 이 결합은 참 이뤄지기가 힘들다는 점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안타까운 게 민준이었습니다. 

홍이 성격을 보면 어디서 이런 통통 튀는 기질이 나왔을지 살짝 궁금해지기도 했는데, 다니는 출판사 대표님인 아버지도, 또 그 점잖으신 어머님도 홍이의 저 못 말리는 스타일하고는 상당히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 동생인 록(綠)이는 홍이보다 더 현실적이고 계산적이면서도 더 성숙한 유형이며 이 사연에서 홍-준고 관계가 발전하는 데 만만치 않은 걸림돌입니다. 이 록이 캐릭터는 정말로 그 아빠 그 엄마 딸이라 할 만큼 성격의 일부씩을 잘 물려받았습니다. 공지영판에서 가장 생생하게 잡힌 인물이며, 순전히 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츠지 히토나리 판보다 공지영 판이 더 메인이 아닌가 싶었던 게, 이 록이 캐릭터가 주는 강렬한 존재감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준고의 성격에 그늘이 드리운 건, 냉정하고 다소 이기적인 어머니로부터 상처를 받아서도 있을 것입니다. 츠지 히토나리 판에서는 저런 섬세한 남성의 내면이 치밀하게 그려지며, 왠지 최홍의 가족들이 각기 자기만의 방식으로 한국인의 역사의식을 대변한다고 느껴진 반면, 준고의 가족들은 미국 백인이나 유럽인들처럼 철저한 개인들이기만 합니다. 이는 공지영과 츠지 히토나리의 작가 성향이 다른 데에서도 기인하는 결과이겠습니다. 

츠지 히토나리 판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가족들에게서 미처 받지 못한 관심이나 애정을, 준고는 이들 고맙고 다정한 주변 인물들로부터 하나하나 챙기려는 듯, 혹은 (서로끼리는 잘 모르는) 이들 인물들이 열심히 위대한 작가 한 사람을 만들어 내려는 듯 주변을 공전하며 각각의 따스한 파장을 준고의 주파수가 잘 접수하도록 뿜어냅니다. 다시 봐도 참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이 두 작품은 요철을 절묘하게 맞추면서 멋진 이중 우주를 형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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