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음 앞에 매번 우는 의사입니다 - 작고 여린 생의 반짝임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스텔라 황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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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사람을 낫우는(=치료하는) 본분을 천직(天職)으로 아는 의사야말로 활인지불(活人之佛)이라 할 만합니다. p26을 보면 소아과병동에 들어서서 저자께서 하시는 첫마디가 "아름다웠다"입니다. 저자는 버니 시걸(예일대 의대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고칠 수 없는 병이란 없고, 다만 치유할 수 없는 사람만 있다."고도 합니다. 뭐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말이긴 하나 이를 문언대로 받아들일 건 아니고, 저자처럼 어머니의 마음으로 환자를 봐 왔던 분의 입에서는 과연 나올 만한 말씀입니다. 

벨라, 브라이언. 저자의 두 자녀 이름입니다. 어느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봐 주었으면 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마치 저자처럼, 진정성으로 아이를 대하는 책임감있는 교사의 자세입니다. 어머니의 답도 비슷하게 진정성 가득하고, 사람 냄새가 풍기는 그런 답변입니다. 읽기, 산수(수학)를 당부하는 다른 학부형들의 반응 부분을 읽으며 순간 여기가 미국 아닌 한국이었나 싶기도 했습니다. 뭐 교육열이 높고 환경이 윤택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비슷한 반응이기는 합니다. 

시골 외양간에서는 암소가 낳은 몸집 큰 송아지가 태어난지 얼마 안되었는데도 잘만 뛰어다니는 풍경을 보며 생명의 신비에 새삼 경탄하게도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어떻습니까? 너무나 취약한 겉모습이며, 누가 옆에서 숨만 잘못 쉬어도 저 작고 약한 생명체에 큰 해라도 입히지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p83에서 저자가 말씀하듯, 신생아는 알 수 없는 어떤 원인 때문에 돌연사하기도 합니다. 어떤 아기는 건강하다가 갑자기 아파지고 목숨을 잃으며, 어떤 아기는 미숙하게 태어나서 모두의 걱정을 사다가도 건강하게 회복합니다. 이처럼 생명의 이치는 인간이 쉽사리 예측하기 어려우며, 그만큼 부모의 정성어린 돌봄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도 팬데믹 때 의사분들, 또 간호사분들이 일선에서 엄청난 수고를 하셨고 어떤 분들은 순직하기도 했습니다. 꼭 팬데믹 같은 비상사태가 아니라도, 의료진은 사람의 생명을 최일선에서 다루는 통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p64에는 로나 브린 법이 미국에서 어떻게 제정되었는지 그 경위가 설명됩니다. 사랑이 부족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저자도 p66에서, 아이를 키우던 엄마로서 자신도 육아 번아웃(burnout)을 겪었다고도 합니다. "누군가의 비일상이 나에게는 일상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불행은 나의 절망으로 바뀌기도 한다.(p77)."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말씀입니다. 

의사는 그저 지식만 많다고 그 직무가 수행가능한 그런 직종이 아닙니다. 이 책 중반부에는 신생아에게 응급 싱황이 생겼을 때 저자 같은 의사들이 어떻게 현장에서 대처하는지 아주 상세하게 서술됩니다. 이 과정을 보면 의사란 정말, 순간적인 판단력, 과감한 실행력, 무엇보다 저 사람에게 지금 필요한 최선의 조치가 무엇인지를 우선 생각하는 양심이 필요한 직업입니다. 우리는 과연 수고하는 의사들에게 그에 합당한 존중, 사의(謝意)를 갖고 살아가는 중일까요? 그들이 받는 수가가 그들의 노고에 비추어 정당한 수준이 맞을까요? 그들의 서비스가 과연 타 직역에 의해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성격일까요? 

신생아들의 상태는 다양합니다. 수십 년 전에는 신체 상태 어디가 결손되면 영양 상태가 안 좋거나 환경의 비위생 상태에 기인한다고 알았습니다. 그러나 p172에 한 예로 나오듯 21세기 미국에서 태어난 아기 벤저민은 항문 없이 세상에 나와 많은 이들을 걱정하게 합니다. 엄마가 이름난 외과의사였는데도 태어난지 이틀이 지나서야 겨우 알았다고 하니 더 놀랍습니다. 설마 했겠지요. 예전 같으면 꼼짝없이 목숨을 잃었겠으나(유명한 예로 고종황제와 민자영 사이의 원자가 있습니다) 현재는 수술법이 있어서 해결이 됩니다. 책에도 간단한 수술 후 퇴원이 가능했다고 나옵니다. 제3자 입장에서도 휴 하고 안도가 되는 장면입니다. 

어느 문화권이라 해도 죽음을 상서롭지 못하게 생각하는 건 똑같습니다. 그래서 We lost him(her)라든가, He(She) didn't make it 같은 우회적인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p207에 나오듯, 의사에게는 심지어 그럴 자유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죽음은 그저 죽음이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해야 제 할 일을 다하는 것입니다. 의사의 본분이 무엇이며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 엿볼 수 있었고, 저자께서 의사이시면서도 한국의 평범한 워킹맘들이 공유하는 소박한 정서를 갖고 계신 분이라서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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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골든타임을 잡아라
김피비.그레이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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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은 이제 금이나 달러, 주식, 채권처럼 하나의 투자자산으로 확실히 자리잡았습니다. 통화, 법화(legal tender)라고 해도 정부의 신인도가 낮으면 그 화폐의 가치가 극히 불안정해지는 마당에, 아무런 가치, 실물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하는 암호화폐가 어떻게 존속할 수 있겠냐고들 했으나, 블록체인 기술 발전이 나날이 향상되면서 이런 우려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이미 심판을 받다시피했습니다. 암호화폐 중에서도 비트코인은 그 인지도나 보급, 거래 활성화 면에서 타 코인을 압도합니다. 이제는 그저 저점을 다지는 구간이다 싶으면 무조건 들어가서 일정물량을 확보했다가 주기적으로 이익실현을 하는 게 현명한 투자자의 패턴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나 코인 투자 고수가 일러주는 기법, 인사이트가 있다면 이를 참고하는 게 하나의 지혜일 것입니다. 

p33에 나오듯이 블록체인을 가장 블록체인답게 만들어 주는 건 탈중앙화입니다. 신중한 정책 결정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제멋대로인 민간이 채굴하여 세상에 나오는 화폐가 어떻게 화폐 구실을 할 수 있느냐, 이런 우려를 씻어 주는 것이 바로 블록체인입니다. 사실 이미 통화론자들이 준칙주의라는 걸 오래 전에 내놓아서 법정통화라고 해도 현명한(?) 정책당국자들이 일일이 마사지하는 것보다 기계적인 원칙에 따라서 화폐정책이 운용되는 편이 훨씬 낫다는 주장을 하긴 했습니다. 이제 수학적, 공학적으로 입증된 원리에 의해 채굴되고 무결성이 검증되는 블록체인 기술이 나왔으니, 저 통화론자들의 오랜 이상(理想)이 전혀 예측 못한 방법으로 실현이 되어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트코인과 알트코인 중 무엇을 사야할까? 저자는 다양한 알트코인들의 장점을 거론하면서도 결론은 역시 비트코인이라는 쪽으로 이끌어갑니다. 물론 알트코인들 중에서는 기존 비트코인 설계자가 채 짚지 못한 장점을 갖추거나, 유저들에 의한 개량이 꾸준히 이뤄지는 플랫폼을 갖춘 우수한 것들이 꽤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에 널리 알려지고 이미 시장의 신뢰를 얻은 비트코인만한 암호화폐가 과연 앞으로 나올지, 이더리움이나 리플 같은 runner-up이 이 비트코인을 과연 추월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저자는 기술주 위주의 트렌드가 가치주 중심으로 곧 전환되고, 암호화폐 섹터도 혹독한 조정을 거칠 것으로 전망합니다. 그러나 진정 기술적으로 우수한 코인 시스템은 살아남을 테고, 그렇다면 미리 이를 매수해 두는 게 가치를 우선시하는 현명한 투자자의 선택이 아니겠느냐는 게 저자의 취지인 쪽으로 저는 읽었습니다.   

설령 무책임한 정보와 루머를 퍼뜨리는 악성 채널이라고 해도, 역시 사람은 책임회피가 가능할 때 본심이 솔직하게 나옵니다. 그래서 모 어플이 정보의 보고(寶庫)라고도 불리는 듯합니다. 뭐 저도 자주 접속해서 필요한 정보를 탐색하기도 하니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자는 암호화폐 시장이 매력적인 이유로 첫째 변동성이 크다는 점을 듭니다. 우선 코인은 상/하한가 제약이 없습니다. 또 24시간 거래가 이뤄집니다. 이러니 오르면 미친 듯 오르고, 내리면 바닥도 없습니다. 위험천만하지만 고수익을 노리는 이들, 리스크 러빙 성향자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죠. 다음으로 주식시장은 내부자가 정보를 악용할 우려가 크고 정보의 비대칭성이 극복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코인은 공부하는 만큼 정보가 얻어지고, 모르면 다 같이 모르는 판이니 그 점에서 공평합니다. 물론 거래소가 과연 투명하게 운용되는지, 사기꾼들이 대놓고 시세조종을 해도 이를 제재할 수단이 있는지 여전히 의심스럽기는 합니다. 판단은 각자가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정보를 어디서 얻는가? p159 이하에 여러 곳이 소개됩니다. 이래서 코인 책도 항상 최신 도서를 봐야 한다는 건데, 저자께서 여러 곳을 소개해 줘서 이미 알던 건 재확인을 하고, 모르던 곳은 앞으로 자주 들러 보게 다짐도 하게 되죠. 듄은 책에도 나오듯이 커뮤가 활성화되어서 유저들의 자유로운 의견이 오가고, 유익한 아이디어가 빠르게 공유되는 점이 좋습니다. 한국어 지원이 안 되는 곳이라 해도 본인이 알아서 개척, 적응해 나가야지 남이 떠먹여주길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p185 이하에는 지표 소개가 나오는데 이 대목도 타 코인책에서 잘 안 다루던 내용이라서 좋았습니다. 지표 맹신도 곤란하지만 주어진 정보는 모두 참고하는 버릇을 좀 들여야 합니다. 

NFT는 한때 큰 기대를 모았으나 지금은 열기가 죽었고 관련 자산에 물린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책 p239에 나오듯이 저자는 이를 긍정적으로 보며 앞으로 응용 범위가 거의 무한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3년 전인 2021년 양산 통도사를 방문한 홍라희-이재용 모자의 행보는 앞으로 NFT 기술이 얼마나 널리 쓰일지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제스처이기도 했습니다. p263의 거래소 코인 이야기도 귀기울일 만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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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집으로 간다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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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시인 나태주님. 얼마 전에 김지수 에디터와의 대담집 <나태주의 행복수업>을 리뷰도 했었습니다. 그 책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게, 국민적으로 사랑받는 시인은 과연 마음에 삿된 구석이 없어야 한다, 마음 속에 오로지 진실만을 간직하고, 거짓을 몸서리치며 부끄러워하는 선비의 정신이 깃들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대중에게 공감하고, 그들의 감정을 대신 표현한다는 점에서 광대 기질도 다분해야 한다는 걸 시인 자신의 입을 통해 들었습니다. 이 신작 시집도 언제나처럼, 노시인의, 맑고 직관적이고 쉬우면서도 삶과 감정의 정곡을 찌르는 아름다운 구절들이 가득합니다. 

쥘 마스네가 작곡한 <타이스의 명상곡>은 정말로 명상을 위한 피스라기보다 마음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사랑(혹은 육욕)에의 격정을 달래는, 어떤 필사적인 노력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아나톨 프랑스의 원작 소설을 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저 곡에서 독특한 느낌을 받으셨는지, "끝날 듯 끝나지 않는"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곡의 예라면 라벨의 볼레로 같은 것도 있겠죠. 그런데 시인은 이 짧은 작품(p49)의 마무리를 "강물 하나/내일까지 마르지 않겠다"로 짓습니다. 곡 전체를 강물로 보고, 아마도 내일까지 이어질 기세라서 그리 말씀하신 듯합니다. 아니면 말입니다,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밤길 예놋다"라고 노래한 조선 시대의 누구처럼, 자신의 노래(詩)도 강처럼 이어지리라고 다짐하시는 말일까요? 우리말 선어말어미 "겠"이 추측, 의지, 미래 등 여러 기능이 있기에 저렇게 생각도 해 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첫 기적을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이뤘다고 기록은 전합니다. 그 육신의 모친께서 간곡하게 청했기에 그는 썩 내키지 않으면서도(저는 그렇게 읽혔습니다) 기어이 힘든 일을 행했습니다. 예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장삼이사들과 잔치든 궂은 일이든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굉장히 서민적인 인품이었을 듯합니다. 시인도, 예배를 보러 다니시는 교회(p70)지만, 국수를 같이 어울려 드시기 위해서라도 나간다며 재미있게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 그냥 계시는 게 아니라, 부활하고, 세상 끝날에 다시 와야 그게 메시아인데, 다시 오시더라도 우리들과 함께 소탈하게 국수를 함께 드시리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구태여 안 그러신다면 시인인 자신은 실망할 것 같다는 귀여운(죄송합니다) 투정으로도 읽혀 재미있습니다. 

미세먼지가 너무 많고 요즘은 일기도 불순하여 먼 데 풍경이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p112의 <가을 감상>은 아마 어느 맑은 가을날에 쓰인 듯합니다. 제가 이 시에서 독특하게 느낀 점은, 분명 청명한 가을날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저 어린이들뿐 아니라, 노시인께서도 함께 현장에 참여하고 계셨을 텐데, 왜 어조가 저들을 그냥 부러워하기만 하는 듯 들릴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아직 정정하신데 구태여 "맑은 날 눈 감음"을 언급하실까 하는 점도 말입니다. 시인은 본인의 소회뿐 아니라, 본인의 작품을 읽는 다른 독자, 그 중에는 훨씬 연치 높으신 분들도 있을 텐데, 이 작품은 그런 독자를 대변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부제가 붙은 작품들이 곧잘 있습니다. 잘은 몰라도 지인들께 특히 헌정하는 의도 같은데 전작들에서도 이러셨는지는 제가 잘 생각이 안 납니다. p120의 <첩첩산중>은 분명하게 엄홍길씨에게 헌정하는 의도입니다. <돌비 하나(p127)>는 제목부터가 (무산 스님의) 시비 제막 기념입니다. p50의 <사람을 안는다는 것>은 전진영님이라는 분께 바치는 듯 부제가 달렸습니다. "나는 사막이 아니고 절벽이 아니다/쉽게 떠나랴고 하지 말아라." 같은, 박력 있으면서도 담백한 구절은 뭐 나태주 시인의 시그니처 스타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p148의 <지나가는 길> 외 1편은 허미정이라는 분께 드리는 시인 것 같습니다. 

저는 지우펀(p102)이라는 지명을 처음 들어봐서 인터넷에서 찾아 보고 알았습니다. 이 시집에는 시인께서 다녀온 외국지명이 이곳 말고도 여러 번 언급되네요. 우리들 범상한 사람들은 고작해야 사진 몇 장 남기는 게 큰 보람인데, 시인은 그때그때 떠오른 영감(inspiration)을 바탕으로 이렇게 작품을 남길 수 있으니 부럽습니다. 우리가 다 알듯 시인께선 교사이셨는데 후배들을 향해 덕담만 하시는 게 아니라 교직이라는 게 전쟁터(p176)임을 잊지 말라는, 너무도 뜻밖의 말씀을 하셔서 전율이 일었습니다. 진정성과 걱정하는 마음이 지면밖까지 전하는 듯했습니다. 교직과 아무 관계 없는 독자도 이런데 현장의 젊은 스승들은 어떤 느낌이었겠습니까.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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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과 불안을 이기는 작은 습관들 - 우울과 불안을 끌어안는 심리학
임아영 지음 / 초록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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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년 전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제목의 영화도 있었습니다만 사람은 참 독특하게도 알아서 자신을 들들 볶는 동물입니다. 야생의 짐승은 생존에의 위기에 직면하여 물론 스트레스를 받지만 사람은 그게 아닌데도 순전히 스스로 빚은 망상에 의해 불안해지고 우울해지기도 하니 특이하다고 하겠습니다. 여튼 우울과 불안이 사람을 망치게 그냥 두면 안 될 일이며, 이 분야에서 한국 최고의 전문가라 할 저자분이 쓰신 책이라서인지 확실히 도움이 되는 대목이 많았습니다. 

사실 저는 전에 읽었던 다른 책에서, 정서적 고통을 피하려고 어떤 특정 생각에 의도적으로 빠져 보라는조언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임아영 박사는 "이는 정서를 고립시킬 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생각은 그 주체인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지만 그럴수록 정서적 고통은 심해지며 결국 심리적 파산에 직면한다(p61)"고 합니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려는 핵심은, 특정 감정이 당사자를 괴롭힐 때 이를 회피해서는 역효과만 빚어지며, 그 감정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서인국 박보영 주연의 드라마 하나를 예로 드는데, 저는 해당 컨텐츠를 안 봐서 모르겠지만 시청한 이들이라면 저자의 설명에 더 공감할 수 있겠네요. 

매 챕터 끝마다 워크북이 하나씩 나옵니다. 학교 다닐 때도 교과 한 단원이 끝나면 익힘책으로 실력을 더 다지듯, 심리 문제는 (물론 이미 규명된 이론적, 학문적 성취도 대단하지만) 어떤 이론으로 아는 것보다(그건 학자들의 몫이고) 자신의 실제 문제, 현실에 대입하여 실천적 의의를 되새기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이 책 곳곳에서 강조되는 건, 통제가 안 되는 걸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대해 환상을 가지면 가질수록, 불행을 더 키우고 우울감을 더 악화할 뿐이라고 합니다. 왜 어떤 사람은 같은 조건에서도 더 쉽게 행복해지고, 혹은 반대로 더 쉽게 불행해지는가? 남과 내가 본래 다른데 구태여 비교해서 남처럼 못되는 걸 한탄하는 게 더 불행을 키우는 길입니다.  

남의 취항을 구태여 꼬집어 비판하는 사람도 뭔가 문제가 있습니다만, 지나가듯 한 말을 두고 뭔가 있는 양 문제를 키워 자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도 현명한 건 아닙니다. 여기서도 저자는 현실을 구태여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려 들 게 아니라, 그냥 이게 나다, 이게 현실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어떻냐고 제안합니다. 왜 직장에서 깨지면 그러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게 다 내가 못난 탓이라고 받아들이라고. 꼭 우스개만은 아닙니다. 원시인, 동물은 굳이 에고를 갖지 않고, 집착하지도 않습니다. 생긴 대로 있는 대로 마음편하게 쿨하게 수용하는 건 어찌보면 노장 사상과의 핵심과도 통합니다.  

내가 실패한 지점만 우울하게 바라볼 게 아니라, 야 내가 그래도 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빠져나오려고 이렇게까지 노력하는구나, 기특하다, 이렇게 자신을 대견하게도 봐 주라고 합니다. 세상에 내가 내 자신을 이쁘게 보고 기를 살려 주고 격려하고, 이렇게 안 하면 누가 대신 그걸 해 주겠습니까? 아무도 안 해 주면 나라도 나서서 나를 치켜줘야 합니다. 해도 된다가 아니라, 아예 내가 나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p159를 보면 이런 행동이야말로 심리적 죽음이요, 동시에 심리적 소생이라고 합니다. 

"말해 줘도 해 줄 게 없네. 그래도 말해요.(p202)" 이건 드라마 <비밀의 숲>에 나오는 대사라고 합니다. 어떤 신념, 가치관 같은 것에 괜히 지배당하지 말라고 합니다. 물론 그 신념을 끝까지 관철하는 아주 드문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이제는 어떤 강박, 당위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일단 내가 내 감정이 편해져야, 행복의 최소 조건이 달성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원래 긍정적인 성향이 아닌데 애써서 긍정적으로 변하려고 노력한다고 사람 타고난 성격이 변하지 않습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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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Leadership 빅 리더십 - MZ세대 직원들과 함께 강력한 팀을 만드는 방법
김경수 지음 / 라온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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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이끌어가는 중추, 주력이 되는 세대는 단연 MZ입니다. 좋건 싫건 간에 이들이 현재이고 미래입니다. 이들을 거북해하고 자기 기준에 억지로 맞추려하는 편협하고 소견 좁은 관리자는, MZ 아니라 자신이 먼저 도태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실제로 같이 일을 해 봐도, 비록 경험이 적을망정 그들은 덜 감정적이고 더 냉철하며 특정 선입견이나 프레임에 덜 좌우됩니다. 심지어 더 어른스럽기까지 합니다. 기성세대는 먼저 나도 과연 젊었을 때 저 정도가 되었는지 자신을 반성해 봐야 합니다. 아무튼 애써도 쉽게 잘 되지만은 않는 MZ와의 협업, 융화, 공감을 위해 이 책은 쓰였다고 저는 읽었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과연 MZ는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해도 먼저 3차가 있고 가능했듯이, MZ도 지금 기성세대가 있고 나서 있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리더는 먼저 이 점을 분명히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p72). 니가 밑이고 내가 위라는 걸 따지려는 게 아니라, 우선 세대간의 기여 포션을 정한 후에야 책임도 그에 합당하게 배분할 수 있어서입니다. 이 점은 개별 조직의 상황에 따라 다 다르겠으며, MZ가 현재에도 중요한 비중인 그런 조직이라면 과감하게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 주고 대신 책임도 물으라고 합니다. 무조건 MZ에 영합하는 건 리더십도 뭣도 아니니 말입니다. 

"오히려좋아"라는 밈이 유행하게 된 건 그만큼 상황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걸 일단 전제로 하고, 그렇지만 좌절하지는 않는다는 "중꺾마" 밈하고 연결시켜 해석하는 게 저자의 입장(p106)입니다. 독자인 저는 개인적으로는 저 오히려좋아 밈이, 세대 간 가치관 차이가 엄청나다 보니 위에서는 나를 불이익주려는 의도였는데, 돌고돌아 나한테는 오히려 예상외의 이익을 준다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만 상황이 그리 나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은 같습니다. 그만큼 MZ는 기본적으로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성향이 있다는 건데, 관리자는 이런 MZ를 잘 다독일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내면이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잘 버틴다 해도 젊은이는 젊은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젊은 인력에게 부족한 부분은 그것대로 잘 채워주면서 나의 조직에 도움되는 자원으로 성장시키는 게 관리자의 몫이 또한 맞지 않겠습니까.    

영화 <타이타닉>에서 많은 이들이 인상깊게 본 건 배가 침몰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자신들의 본분을 다한다며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의 모습이었습니다. MZ는 보통 자신의 이익만을 관철하려 드니 조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시도는 안 하지 않냐는 게 일반의 선입견입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의외로 순수한 면이 있어서, 대(大)를 위해 자신의 창창한 인생을 순간의 결단으로 던지기도 하는 게 또한 사실입니다. 오히려 볼썽사나운 건 능력도 없고 비굴한 처신 하나로 조직에서 운 좋게 관리직까지 올라간 주제에 그저 파워라인 동향에만 눈치를 굴리고 비루한 몇 푼 이익에 목숨을 거는 구질구질한 중년들입니다. 능력에 부치는 일을 하며 윗선 비위만 맞추다 생을 다 보냈으니 남은 건 당뇨밖에 없습니다. 리더는 자기가 솔선하여 배와 함께 죽으려는 모습을 보여야 이에 감화된 MZ가 그를 따른다(p125)는 게 저자의 말입니다. 

MZ의 등장이 사회에 끼친 가장 큰 충격은 회식 문화의 퇴장 추세(p160)입니다. 이러다 보니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건 회사의 과장 부장 들이 아니라 자영업자들입니다. 불경기가 아니라 해도 장사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회식만 없앤다고 MZ가 좋아하고 회사가 척척 잘 돌아가는 게 아니라 그 회사의 팀웍이 잘 맞춰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라고 합니다. 만약 기어이 회식이 필요하다면 MZ가 싫어해도 밀어붙이라고 합니다. 본질은 우리 회사가 하나로 잘 뭉쳐 돌아가는지의 여부이며, 회식을 하고 안 하고가 아니지 않냐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볼 게 자율근무 유연근무(p176)입니다. 뭔가 직원 재량이 많고 느슨한 것 같아도 일단 일이 터지면 칼 기강으로 시스템이 돌아가는 회사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충신이 있고 양신(良臣)이 있다는 게 저자의 말입니다. 이 말은 <정관정요>가 그 출전인데, 충신은 자신만큼은 천고의 유방백세로 남아도 군주는 끝내 폭군으로 만드는 사람이며, 양신은 적절히 처신하여 군주에게도 좋은 평판이 퍼지게 돕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위징이 일단 한 번은 훼절을 한 사람이고 그를 품었던 당태종이 큰 그릇이며 이 말 또한 끝까지 자기 합리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좋게 보지 않지만 여튼 무슨 뜻인지는 수긍이 됩니다. 관리자 역시 자기 잘난맛에 융통성없이 일하다가 사장 욕이나 먹이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되고 사장도 나도 잘되는 중용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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