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집으로 간다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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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시인 나태주님. 얼마 전에 김지수 에디터와의 대담집 <나태주의 행복수업>을 리뷰도 했었습니다. 그 책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게, 국민적으로 사랑받는 시인은 과연 마음에 삿된 구석이 없어야 한다, 마음 속에 오로지 진실만을 간직하고, 거짓을 몸서리치며 부끄러워하는 선비의 정신이 깃들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대중에게 공감하고, 그들의 감정을 대신 표현한다는 점에서 광대 기질도 다분해야 한다는 걸 시인 자신의 입을 통해 들었습니다. 이 신작 시집도 언제나처럼, 노시인의, 맑고 직관적이고 쉬우면서도 삶과 감정의 정곡을 찌르는 아름다운 구절들이 가득합니다. 

쥘 마스네가 작곡한 <타이스의 명상곡>은 정말로 명상을 위한 피스라기보다 마음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사랑(혹은 육욕)에의 격정을 달래는, 어떤 필사적인 노력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아나톨 프랑스의 원작 소설을 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저 곡에서 독특한 느낌을 받으셨는지, "끝날 듯 끝나지 않는"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곡의 예라면 라벨의 볼레로 같은 것도 있겠죠. 그런데 시인은 이 짧은 작품(p49)의 마무리를 "강물 하나/내일까지 마르지 않겠다"로 짓습니다. 곡 전체를 강물로 보고, 아마도 내일까지 이어질 기세라서 그리 말씀하신 듯합니다. 아니면 말입니다,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밤길 예놋다"라고 노래한 조선 시대의 누구처럼, 자신의 노래(詩)도 강처럼 이어지리라고 다짐하시는 말일까요? 우리말 선어말어미 "겠"이 추측, 의지, 미래 등 여러 기능이 있기에 저렇게 생각도 해 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첫 기적을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이뤘다고 기록은 전합니다. 그 육신의 모친께서 간곡하게 청했기에 그는 썩 내키지 않으면서도(저는 그렇게 읽혔습니다) 기어이 힘든 일을 행했습니다. 예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장삼이사들과 잔치든 궂은 일이든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굉장히 서민적인 인품이었을 듯합니다. 시인도, 예배를 보러 다니시는 교회(p70)지만, 국수를 같이 어울려 드시기 위해서라도 나간다며 재미있게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 그냥 계시는 게 아니라, 부활하고, 세상 끝날에 다시 와야 그게 메시아인데, 다시 오시더라도 우리들과 함께 소탈하게 국수를 함께 드시리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구태여 안 그러신다면 시인인 자신은 실망할 것 같다는 귀여운(죄송합니다) 투정으로도 읽혀 재미있습니다. 

미세먼지가 너무 많고 요즘은 일기도 불순하여 먼 데 풍경이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p112의 <가을 감상>은 아마 어느 맑은 가을날에 쓰인 듯합니다. 제가 이 시에서 독특하게 느낀 점은, 분명 청명한 가을날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저 어린이들뿐 아니라, 노시인께서도 함께 현장에 참여하고 계셨을 텐데, 왜 어조가 저들을 그냥 부러워하기만 하는 듯 들릴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아직 정정하신데 구태여 "맑은 날 눈 감음"을 언급하실까 하는 점도 말입니다. 시인은 본인의 소회뿐 아니라, 본인의 작품을 읽는 다른 독자, 그 중에는 훨씬 연치 높으신 분들도 있을 텐데, 이 작품은 그런 독자를 대변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부제가 붙은 작품들이 곧잘 있습니다. 잘은 몰라도 지인들께 특히 헌정하는 의도 같은데 전작들에서도 이러셨는지는 제가 잘 생각이 안 납니다. p120의 <첩첩산중>은 분명하게 엄홍길씨에게 헌정하는 의도입니다. <돌비 하나(p127)>는 제목부터가 (무산 스님의) 시비 제막 기념입니다. p50의 <사람을 안는다는 것>은 전진영님이라는 분께 바치는 듯 부제가 달렸습니다. "나는 사막이 아니고 절벽이 아니다/쉽게 떠나랴고 하지 말아라." 같은, 박력 있으면서도 담백한 구절은 뭐 나태주 시인의 시그니처 스타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p148의 <지나가는 길> 외 1편은 허미정이라는 분께 드리는 시인 것 같습니다. 

저는 지우펀(p102)이라는 지명을 처음 들어봐서 인터넷에서 찾아 보고 알았습니다. 이 시집에는 시인께서 다녀온 외국지명이 이곳 말고도 여러 번 언급되네요. 우리들 범상한 사람들은 고작해야 사진 몇 장 남기는 게 큰 보람인데, 시인은 그때그때 떠오른 영감(inspiration)을 바탕으로 이렇게 작품을 남길 수 있으니 부럽습니다. 우리가 다 알듯 시인께선 교사이셨는데 후배들을 향해 덕담만 하시는 게 아니라 교직이라는 게 전쟁터(p176)임을 잊지 말라는, 너무도 뜻밖의 말씀을 하셔서 전율이 일었습니다. 진정성과 걱정하는 마음이 지면밖까지 전하는 듯했습니다. 교직과 아무 관계 없는 독자도 이런데 현장의 젊은 스승들은 어떤 느낌이었겠습니까.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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