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살상수학무기 - 어떻게 빅데이터는 불평등을 확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캐시 오닐 지음, 김정혜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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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인류 문명을 오늘날처럼 찬연하게 가꾸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학문 분야이며, 인간에게 있어 영원한 벗이자 진리를 향한 지침과도 같습니다. 이런 수학이, 그 칼날을 반대로 향하여 "많은 사람을 죽이고, 다치고, 불행하게 만드는 무기"로 쓰인다면 고개가 갸웃해질 만하죠.

weapon(s) of mass destruction이란 말은 예전부터 널리 사용되었으나, 15, 6년 전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 공격의 명분을 마련하기 위해 자주 거론한 이래 부쩍 널리 회자된 단어입니다. 결국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보니 WMD에 넣을 만한 아무런 심각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이에 그는 "사담 후세인이 바로 대량 살상 무기"라고 대꾸하여 빈축을 사기도 했죠.

이 책의 저자는 위의 용어 구성부분 중 mass를 math로 바꾸어, 수학이 무고한 대중을 궁지에 몰거나, 삶을 피폐하게 만들거나, 인종 차별과 부의 양극화를 고착시키는 데에 악용되는 많은 사례를 들며, 통계라는 허울을 쓰고 이뤄지는 많은 조사, 연구 결과, 시스템, 워킹 툴이 실상은 그닥 확고한 신빙성이나 타당성 검증도 없이 마구잡이로 쓰여지는 개탄스러운 현실을 고발합니다. 고위 관료나 정치인의 농단, 재량권 남용이라면 즉시 지탄의 대상이 되는데, 빅데이터와 실증 연구의 휘광을 둘러친, 외관만 정교해 보이는 많은 통계 연관 데이터베이스들은 그런 비판 대상에서 비껴갑니다. "수학과 통계학을 기반으로 도출된 결과인데 오죽하겠어?" 대중과 전문가 모두 눈먼 신뢰를 보내는 이들 장치가, 실은 고의적으로, 혹은 우연히 개입한 편견과 불의만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미국 중등 교과과정의 학력저하는 심각한 문제죠. 특정 거주지역의 교사들은 학생들의 교과 이해도를 높이는 일에 매우 성과가 낮습니다(여기까지는 객관적 팩트). 상당수 교사가 제 할 일을 태만히하니 대거 해고를 단행해야 한다! 정치인, 학부형, 교육 당국 모두 이의가 없으니 그대로 실행될 밖에요. 헌데, 여태 학생들과 밀착하여 범죄로부터 보호하고, 어려운 가정을 방문하여 최소 생존 여건을 보살피는 등 지역 사회에서 호평 받았던 인력조차 해고되었기에(이런 이들이 많지는 않았겠죠), 일부에서는 이런 눈먼 정책의 융통성 없는 집행에 큰 반대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 역시, 수학과 통계학의 다양한 기법을 편입하여(또한, 막대한 비용과 우수 인력의 노고가 투입되어) 고안된, 비싼 도구입니다. 그러니 그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놓고 오히려 "정치적 의도"를 담았다며 불순하게 보는 여론도 생겼죠. (학교 교사 해고 이슈에 대해서는 p26, 한참 뒤 p228 등에서 두어 번 언급합니다)

수학이나 통계학 기법이 아무리 정교히 고안되어 구현되었다 쳐도, 이 기법의 전체 프레임이나 그에 투입된 raw data가 "공정성, 형평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오히려 편견이나 오류가 엉뚱하게도 "과학이 가져가야 할 영예"를 가로채는 셈입니다. 이 문제는 "정성"과 "정량"사이에서 얼마나 균형 감각 있게 조화로운 선택을 할지의 지혜와 연관되었기에, 새삼스러운 게 아니라 인류 역사의 오랜 딜레마입니다. 문제는, 그저 "수학, 통계학"이란 포장만 둘러치면 그 타당성에 대해 아무도(이 중에는 그로 인해 직접 피해를 본 이들도 포함합니다) 이의를 제기하려 들지 않는다는 거죠.

저자가 책 여러 군데에서 개탄과 유감, 분개감을 표현하는 건, 혹여 프로그램 자체에는 그 구조의 엇나감을 들여다 볼 엄두를 안 낸다 해도, 이 프로그램이 실제 낳는 결과가 과연 타당한지, 엉뚱한 부작용이 발생했다면 어느 부분과 연관이 있었는지, 아무도 피드백 검증조차 시도를 안 한다는 겁니다. 피드백 검증에서 자유로운 대상은 아무것도 없고, 수학 아니라 어떤 학문이라도 자체 기준 아닌 다른 시선에서 타당성 점검 절차에 노출되어야만 하죠. 이걸 운용하는 중인데 결과가 좋은지, 아니면 전보다 더 나빠졌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신뢰하며 눈을 감는 건 무지몽매한 반계몽적, 미신적 행태에 가깝습니다.

저자가 규정한 WMD의 공통점, 혹은 필요충분조건은, 불투명성, 확장성, 피해, 이 세 가지입니다. 앞서 말했듯 도대체 왜 특정 모델이 옳은지 아무도 의심하려 들지 않으며, 타당성에 대한 의혹 제기는 묵살되기 일쑤입니다. 혹 피드백이 있다 해도, "자기 강화"만 유발할 뿐인 악성의 메커니즘입니다.

"확장성" 요소는 특히 우리 한국 독자들이 읽으며 뜨끔해하거나, 폭풍 공감을 유발할 만한 대목입니다. 우리도 이른바 "입시 위주의 서열화 교육"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찌를 듯한데, 저자는 "획일적 기준으로 대학들에 한줄세우기를 강요하여, 1) 정작 필요한 분야에는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겉치장에만 돈이 낭비되며, 2) 등록금은 등록금대로 천정부지 상승하고, 3) 데이터 날조, 왜곡 등 온갖 편법이 난무하여 교육 풍토의 타락을 유발한 주범으로, <US 뉴스 앤 월드 리포트>誌의 "대학 랭킹 평가"를 들고 있습니다. 저자가 통렬히 비판하는 게, 정작 이 어리석은 관행과 상업적 폐단을 창조해 낸 잡지 본체는 몇 년 전 수익성 악화로 문을 닫았으나, 엉뚱하게도 "대학 랭킹 매기기"는 별개 사업체로 독립하기까지 하며 덩치를 키우는 현실입니다.

저자는 보장된 종신교수직을 버리고 현실의 매력에 참여하기 위해 헤지펀드의 퀀트로 일한 적 있는 분인데(그래서, 책의 신뢰도나 주장의 권위가 더욱 높아지는 면도 있더군요), 이른바 리스크메트릭스, 혹은 그 이전 이론적 바탕을 이룬 몬테카를로 기법 등에 대해, 기계적이고 비창의적이며 비논리적인, 어제까지 반복되던 관행이 오늘, 내일도 변함없으리라는 잘못된 기대에 기대었다며 비판합니다.

빅데이터는 이른바 약탈적 광고주, 즉 취약계층을 집중적으로 노리며 그들이 잘못된 구매나 지출을 행하게 유도합니다. 또, 구직에 필사적인 젊은이들을 현혹하여 왜곡된 "취업률"을 내세운 후, 비싼 등록금을 챙기며 4년 후 학위를 발급한 후, 정작 취업에는 별 도움도 안 되는 헛된 경험에 인생을 낭비하게 조장하는 "for-profit college", 즉 영리추구 대학(학위 공장)들 역시, 수학과 통계학에 의해 고안된 사악한 알고리즘으로 돈을 버는 집단이라고 저자는 신랄히 꾸짖습니다.

불투명성은 피드백 절차 부재로 더 심각한 악성 영향을 낳는 WMD의 특성입니다. 저자는 실제 자신의 경험을 들며, 도대체 금융사들이 외부에서 자문(상품)을 구한다면서 대외적으로 생색만 낼 뿐, 전혀 제3자 조언이나 비판에 귀를 안 기울이다 지난번처럼 큰 재앙을 낳았다고 통박합니다. 그나마 이런 사람들은 머리나 좋고 자기 분야에서 과거 한때라도 뚜렷한 성과나 내고서 남의 말을 안 듣는다고나 하지만, 한국 사회의 상당 부분 섹터에서는 무능하고 어리석은 이들일수록 더욱 자신만의 엉터리 같은 세계관에 사로잡혀 나오지를 못합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치안 문란, 부재가 심각한 사회 문제이죠. 저자는 경찰 당국의 범죄 예측 프로그램이 주로 빈민가, 유색 인종 밀집 구역을대상으로 이뤄진다며,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불심검문에 걸려들거나 경범죄로 입건된 이들이, 오히려 낙인 효과를 통해 "돌이킬 수 없는 악성 상습범"으로 재생산된다며, 분별 없는 통계와 모델이 문제를 악화시키는 장본인임을 지적합니다.

채용에서도 이른바 인적성검사는 여러 회사들이 우수한 인재를 잘못된 도구 하나만 믿고서 대거 외면한다거나, 구직 희망자들의 인생을 황폐화시키는 족쇄 노릇을 한다고 저자는 비판합니다. 저자께서 참 두뇌가 명석하신 분인 게, 이후 이 구직자가 의학 소견을 바탕으로 한 채용 차별을 사유로 해당 기업에 소송을 건 경위를 소개하면서, "이제 책임은 이 테스트를 고안, 유통, 판매한 연구자 측과, 이 테스트를 통해 해당 구직자를 채용 거절한 회사 중 누군가가 져야 하겠다"고 한 마디로 요약한 구절입니다. 어쩜 이렇게, 독자가 궁금해할 만한 포인트만 정확히 짚어, 짧은 말로 요령껏 전달할 수 있을까 싶더군요.

p102, p207 등에서 언급되는 이른바 false positive란, 쉽게 말해 "~라면 파리가 새다"같은 주장을 뜻합니다. 파리가 새일 수는 없는데, 잘못된 가정 하에서는 어떤 황당한 주장도 다 참(true)으로 도출될 수 있다는 논리학 이슈를 가리킵니다. p225에서는 같은 맥락의 "false negative"가 언급됩니다.

앞으로 인공지능 도입이 이뤄질 많은 산업 분야에서도, 그저 "빅데이터와 고성능 신경망 AI가 도출한 결과이니 무작정 믿고 보자"는 위험한 맹신 풍조가,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고 중세의 암흑으로 퇴보시킬 가능성이 큰 요인입니다. 책에도 나오듯 GIGO, 쓰레기가 투입되면 쓰레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도대체 애초에 인풋된 데이터셋, 프록시 데이터 자체가, 오염되지 않고 특정 환경과 부합하지도 못하는 부적절한 material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냐는 거죠. 또, 원인에서 결과가 도출되기까지의 명확한 알고리즘이 투명히 밝혀지지 않는 이상, 과거 몇 번의 유효한 성과가 나왔다고 앞으로도 마냥 믿을 수는 없는 겁니다. 과거 제사장이나 무당의 말을 덮어놓고 믿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과학, 수학, 전산학" 같은 간판, 타이틀이 문제가 아니라, 이를 내건 개인이나 전문가, 집단이 과연 얼마나 합리적인 사고 과정과 검증 절차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기계나 학문의 외관만을 무분별하게 신뢰하는 행태는, 그 안에 감춰진 또다른 불순한 의도나 정치적 흉계를 강화, 추인하는 결과만 낳을 뿐이죠. 공동체의 정의와 질서를 회복하고 가꾸는 소명은, 오직 인간만이 행할 수 있고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입니다. 저자의 이 책은 "사람이 먼저"임을 모든 페이지에서 강조하는 인간미가 느껴져서 더욱 좋았습니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저자의 수다, 열변 등이 지면 너머로 와 닿는 이야기 톤이라서 금세 읽히는 것도 장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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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사코리아 수학 퍼즐 - IQ 148을 위한 IQ 148을 위한 멘사 퍼즐
멘사코리아 퍼즐위원회 지음 / 보누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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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지수와 퍼즐 푸는 능력이 반드시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다고는 못 하지만, 지능지수(대체로 IQ로 정의되는) 높은 이들이 퍼즐 풀이를 즐기는 건 사실입니다. <문제적 남자>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분들은 알겠지만, 퍼즐은 일단 그것을 만들어 풀어 보라고 제출하는 과정도 (만드는 이들에게는) 남의 문제 푸는 것 못지 않게 큰 기쁨이고 오락입니다. 또, 일단 출제한 문제를 어떻게 하면 다양하게 해석하여, 출제자의 의도와는 또다른 답을 여럿 창의적으로 도출할지도 쏠쏠한 재미를 줍니다. <문제적...>을 시청한 분들은 패널들이 그런 "창의적 풀이"를 두고 "아름답다"고 평하는 것도 들어 보셨을 겁니다.

입체파 등 추상화풍이 등장한 이래 수집가들은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이들 작품을 놓고 새로운 취향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명작은 이처럼 취향이 고상한 이들이 앞다퉈 선호를 형성하고 높은 호가를 경쟁하지 않으면 탄생하기 어렵습니다. 퍼즐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퍼즐의 고수들이 이처럼 산뜻하고 기발하며, 마치 두뇌의 오랜 유휴 파트까지 살뜰히 자극하여 두루 피가 통하는 듯 상쾌한 정신 체조를 유도하듯, 뒤에 제시된 해답과 나의 풀이가 과연 일치하는지, 문제 하나당 10분 정도 바짝 정신을 집중한 후, 무릎을 치며 환호하든, 아니면 조금만 더 생각해 볼 걸(혹은 눈을 크게 떠 볼 걸) 같은 아쉬움을 토로하든, 출제자 못지 않게 이런 책은 열성적으로 풀이에 임하는(그를 즐기는) 독자들이 같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에이터를 크리에이트하는 몫은 안몫 높은 감정가와 수집가들의 것이듯 말입니다.  


아래는 제가 제 나름대로 이 책에 수록된 문제들에 대해 시도한 유형화입니다.

(언급이 따로 없는 문항들은 패턴 파악 - IQ 테스트의 가장 기초 포맷) 


1번(p28)과 9번(p36), 16번(p43), 34번(p61), 44번(p72), 61번(p89), 93번(p123), 96번(p126), 110번(p130), 135번(p166), 141번(p173), 144번(p176) 같은 경우, 한국에서는 중등 교육 과정 수학(중에서도 중학교 2학년)만 정확히 이수해도 이원일차 연립 방정식을 다룰 수 있기 때문에, 쉽게 해결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출제자의 의도는, 연필과 종이를 쓰지 말고 직관(에 가까운 방법)을 통해 해결해 보라는 쪽이겠습니다.

20번(p47), 117번(p147) 같은 경우, 수학보다는 논리적 추론을 통해 경우의 수를 차차 줄여나가며 유일한 해(상황)를 구하는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도 종이에 일일이 순서도를 그려 가며 모순 선택지를 소거하면 답은 금방 나옵니다. 그러나 출제자의 의도는, 어디까지나 두뇌 훈련(시냅스 활성화)과 풀이 자체의 기쁨을 시행하거나 느끼라는 것이므로, 정 안 되면 어쩔 수 없다 해도 가능하면 머리 속에서만 메모해 가며 문제를 풀어 보십시오. 입시도 아니고 입사 필기 시험도 아니니 말입니다. 


7번(p34)를 보시면, 책 뒤에는 답이 한 가지 경우만 제시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문제는 직관과 몇 번 안 되는 시행착오를 통해 경로를 발견할 수 있죠.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요? 아래 이미지를 보십시오.





이상이 제가 찾아낸, 책에서 제시한 것 말고 문제의 조건을 충족하는 모든 답들입니다. 모두 다섯 개죠.

일단 맨마지막 배열이 (뒤, 뒤, 뒤)가 되어야 하므로, 끝에서 둘째줄에는 (뒤, 뒤, 앞), (앞, 뒤, 뒤), (뒤, 앞, 뒤)가 반드시 와야 합니다.

그런데, 세 칸 중 하나는 반드시, 아래의 네 줄에서 "뒤"로만 채워져야 합니다. (물론, 위의 네 줄은 "앞"으로만 채워지겠고요)

이 경우, 만약 (뒤, 뒤, 앞)이라면 셋째 칸에는, 마지막 네 줄이 "뒤뒤뒤뒤"가 될 수 없습니다. 첫째 칸과 둘째 칸에만 "뒤뒤뒤뒤"가 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앞, 뒤, 뒤)라면, 둘째 칸과 셋째 칸에만 "뒤뒤뒤뒤"가 올 수 있습니다. (앞, 뒤, 앞)이라면, 첫째 칸과 셋째 칸만 "뒤뒤뒤뒤" 배열이 가능하죠.

그러므로 답은 2x3 해서 모두 6개가 나옵니다. 이 외에는 답이 있을 수 없음도, 이상에서 증명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한 번에 한 개씩만 동전을 뒤집을 수 있고, 중복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으므로, 각 단계(6단계. 처음과 끝이 정해져 있으므로)에서 일일이 가지치기 식의 경우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 그림을 다시 보십시오. 빨강색과 녹색은, 절대 같은 열에서 만나지 않는다는 패턴이 발견됩니다.

"하노이의 탑" 문제의 구조와 대조해 봐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이 책 서문에 나온 교훈을 다시 읽어 봅시다.


"은밀한 규칙을 찾아라."

"전략을 갖고 문제 풀이에 임하라."


즉, 우연과 직관에 의존해서 문제를 푸는 것도 (재미를 위해서는) 좋겠으나, 문제 풀이를 넘어 나의 뇌를 보다 활성화한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풀이과정에서 보다 일반화한 절차를 의식적으로 추출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현상의 배후에 숨겨진 원리를 지긋이 응시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우리의 크리에이티브 향상을 위해 필요한 절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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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막의 게르니카
하라다 마하 지음, 김완 옮김 / 인디페이퍼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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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막의 게르니카"라고 하니 무슨 뜻일까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있겠는데요. "검은 장막을 둘러친(~이 드리워진) (피카소의) 게르니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게르니카는 작품 이름일 뿐 아니라, 해당 작품의 창작 모티프가 된 (나치 독일에 의해 민간인 살상이 벌어졌던) 바스크의 지방 이름이기도 합니다. 일본어 "の"는 종종 너무 광범위한 뜻을 담기도 하죠.

이 소설은 상당 부분이 실화에 근거를 두었으며, 실존 인물의 이름들이 그대로 나오는 등 "팩션(요즘은 트렌드가 지나가서인지 이 말을 잘 안 쓰더군요)"의 성격도 짙게 풍깁니다. 물론 소설의 뼈대가 된 줄거리, 즉 이미 40여년 전에 스페인으로 돌아간 해당 대작(大作)이, 대서양을 건너 뉴욕 MoMA로 다시 전시차 여행을 떠나며, 무사히 특전이 성사되기까지, 해당 기획을 추진한 큐레이터가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납치된다거나 하는 기묘한 곡절이 다 개입했다는 등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상상입니다. 소설 중에도 여러 번 강조되듯, 이 예술 작품이 워낙 큰 규모를 가진 터라 웬만해서는 거동이 어렵죠. 일본에서는 구미에 비해 고급 문화 창작, 향유의 주변부라는 컴플렉스가 널리 자리해서인지, 문예나 영상물 속에 이런 마스터피스들의 전시회 성사를 어렵사리 이뤄낸다는 동기가 여럿 등장하는 편입니다. 단, 이 작품은 주인공 여성이 일본인일 뿐 배경은 미국이고, 일본스러운 피처를 작중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주제에 대해선 선명하게 "반전(反戰), 평화, 정의로운 시민들의 연대, 휴머니즘"임을 명확히합니다만, 그 평화의 "적(敵)들"로 규정된 무리라면 나치 독일, 프랑코 원수 추종세력, 파시스트 이탈리아, 호전적인 미국 매파 진영, 바스크 분리주의자 등이 거론될 뿐 지난시절의 "제국주의 일본"은 빠져 있습니다. 물론 작가님의 주제의식 그 순수성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겠고요. 구태여 언급 않아도 수치스러운 과거사에 대해서는 당연한 반성이 전제되었다는 쪽으로 독자는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일본풍의 서술, 소재가 거의 발견 안 된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이 장편이 더욱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지향함도 확인 가능하죠.

소설은 각 장(章)이 두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오가며 교차하는 식의 편제입니다. 우선 1930년대, 파리에 거주하며 미술 트렌드의 첨단을 소화하고, 타고난 재능 덕을 입어 이를 자신만의 표현양식으로 경이롭게 소화하는 한 천재,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라기보단 이미 명성을 확고히 굳혀 가는 신성으로 군림하던 시절의 그를 다루는 과거가 펼쳐집니다. 이어, 2000년대 초반, 요코 야가미라는 젊고 유능한 MoMA의 기획자와 그를 둘러싼 여러 인물(하나같이 높은 신분, 탄탄한 사회적 지위를 갖춘 이)들의 사연이 소개되죠. 이런 juxtaposition의 의도라면, 시대적- 공간적 배경은 달라도, 평화와 반(反)폭력, 연대(solidarity)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영혼들의 결단과 행동, 그 숭고한 노력의 결실이란, 반 세기라는 간격을 두고서도 그 평가에 차이를 둘 바 없이 소중하다는 쪽이겠습니다. 그렇다고, 파블로 피카소와 요코 야가미를 놓고, 서로 미러링하는 관계로까지 볼 건 아닌 것 같고요. 파블로 피카소에 대해서는 작중에서도 도라 마르의 입을 빌려 "창조주"로까지 극구 칭송되지만, 요코는 비록 선한 마음을 지닌, 똑똑한 유명인사일망정 그 정도의 신적 재능을 부여받은 이는 아니니까요.

각 장에 교차하는 두 별개 흐름의 이야기들에 모두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스페인 유수의 공작 가문 출신인 파르도 이그나시오는, 1930년대 후반 파리에서는 갓 실연(연인을 조국에게 빼앗겼습니다)한, 유약하고 소심한 청년으로, 열렬히 이 예술의 "신"을 숭배하고, 도라 마르에 대해서는 누나를 향한 애틋한 우애를 간직하는 모습으로 세팅됩니다(단, 나중에는 <게르니카>의 반출, 소장을 위해 미국 측 거물들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특유의 교섭력을 발휘하는 등 귀족 가문 핏줄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 주죠). 이랬던 그가, 배경을 바꾸어 2000년대 서유럽에서는 "자국 총리를 시종처럼 졸졸 따르게 만드는" 위엄과 관록 넘치는 실력자의 중후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두 세계를 넘나들며(물론, 이 두 세계는 시간적으로 연속된 구조고요) 숭고한 정신의 단절을 막으려는 듯 때로는 필사적으로, 때로는 초연하며 우아하게, 때로는 야속하게 처신하는 이 노귀족은 많은 독자들에게 주인공 못지 않은 흥미와 매력을 발산하는 듯합니다.

파블로 피카소는 물론 실제 역사에서의 모습 그대로, 변덕스럽고 색(여러 의미겠죠?)을 밝히며 격정적인 성품으로 우리에게 제시됩니다만, 단 소설 속의 모습은 이무렵 이미 50대를 넘어선 것치고는 다소 젊은 언동들입니다. (과거에서의)비중이 좀 적긴 하나 두 무대를 넘나드는 인물은 파르도 이그나시오 공작 말고도, 루스 록펠러 여사 한 분이 더 있긴 합니다. 이분은 젊어서 파르드와 끈끈한 유대를 쌓았고, 나이 들어서는 이 소설의 주인공 요코 상을 결정적인 순간마다 후원하고 평생의 커리어를 쌓게 돕는 은인이기도 합니다. 소설에서는 그녀의 아버지가 넬슨 록펠러(부통령까지 지낸)라고 나오는데, 이는 픽션 안에서의 가공이며, 루스 같은 딸을 둘 만큼 나이 든 인물이 아니죠. 실제 역사를 따지자면, UN의 태피스트리 포맷 복제품은 넬슨 록펠러의 부인 마그리타 여사의 소유였습니다. 소설과 현실의 차이가 어느 지점들에서 목격되는지 따져 보는 것도 이 장편을 읽는 재미 중 하나입니다.

소설의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메인 이벤트는 "게르니카의 탈취, 훼멸을 통해 독립의 대의를 전세계에 호소하려는 ETA의 테러리즘과, 연약한 여인 요코의 대결"이지만, 전반부에서는 특히 독자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화제가 "과연 누가 게르니카(태피스트리 모조품)에 암막을 씌웠나?'하는 것입니다. 미국 국무장관 파워가 대(對) 이라크 강경 조치를 UN에서 발표할 때, 거장의 평화주의를 불멸의 예술혼으로 표현한 대작 <게르니카>가 그 배경으로 우뚝 서 있다면 이런 난감한 모순이 또 없죠. 만일 정말 그 세팅으로 보도 사진이 찍히기라도 했다면 세계의 평론가들로부터 두고두고 풍자 대상으로 회자되었을 겁니다. 주인공 요코와 그녀의 후원자 루스 여사는 이에 크게 실망하여, UN 측에 경위 해명을 요구합니다. 이 사건은 콜린 파월(극중 캐릭터와 이름도 비슷하죠)의 발표 당시 실제로 있었던 해프닝입니다. 당시 드리워졌던 커튼은 실제로는 청색이었는데, 소설 속에서는 진남색이었다고 서술합니다. 물론 "암(暗)"은 진실을 가리려는 떳떳지 못한 흉계를 비판하려는 비유적 의미이지, 색채로서의 "블랙"을 가리키는 건 아니겠습니다.

소설 중에도 나오지만 MoMA와 경쟁 관계인 구겐하임 미술관 측이 스페인 바스크 지방 빌바오에다 분점을 연 건 사실이고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한국에서도 여길 다녀오신 분이 많죠). 또, 이 구겐하임 빌바오 분관 당국에서 "게르니카는 우리가 영구 소장할 자격이 있다"며 마드리드 측에 양도 요구를 한 사실도 있습니다. 하지만 ETA가 세계의 주목을 끌기 위해, 특히 그 극단주의자들이 어떤 흉계를 꾸몄다든가 한 적은 없죠(그 전에, 세계 어느 미술관 측에서도 "게르니카를 우리에게 임대해 주시오" 같은 대담한 발상을 하는 것 자체가 거의 무망한 일입니다). 좀처럼 상정하기 힘들지만, 루스 같은 재력가가 파르도 같은 실력자의 힘을 빌려, 요코 같은 당차고 정의로운 기획자의 의지를 실현시키지 말라는 법도 없기에, 가능성의 경계를 아슬아슬 넘나드는 이런 사연의 전개가 더욱 독자의 주목을 끄는 듯합니다. 이는 또한 작가 상상의 전속적 특권이기도 하겠고요.

소설 중에는 어느 카탈루냐 인의 입을 빌려, "우리도 마드리드와 사이가 안 좋지만 바스크 사람들은 진짜...."라며 혀를 내두르는 대목이 나오는데, 현 시점에서는 (얼마 전에도 뉴스에 났듯) 카탈루냐 자치정부에서 시행하려던 주민 투표 행정 관리자들이 대거 체포되는 등 스페인 정국이 꽤나 심상찮게 돌아가는 판국입니다. 황해도 신천 사건이 전파를 타자 피카소가 <한국에서의 학살>을 발표한 일도 있는데(단, 이 작품은 그리 평가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 소설 중에는 "고야의 귀환"이라는 구절도 나오는데, 이 사건 관련해서 다소 의미심장한 말이죠),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지역의 정세가, 험한 말이 오가며 일촉즉발의 긴장을 자아내는 판입니다. "평화"는 그 무엇보다, 우리 한국 독자들의 입장에서 가장 간절히 희구되어야 할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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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위인전"이라는 말 속에는 얼핏 보아 역설이 배어 있습니다. "위대하지만 평범하다"라는 뜻도 되니까요. 하지만 이 책 제목은, 특히 책을 다 읽고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는 독자에게, 어쩌면 반성을 촉구하는 뜻을 담았을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위인'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당신의 오늘이 있게 한 진짜 위인들을, 위인으로 생각하고 대접해 본 적이 있는가? 그분들께 그저 무심한, 평범한 이웃이나 보듯 열의 없는 시선이나 주고 지나치지는 않는가?"

개인 단위에서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그 개인이 속한 민족 전체가 다른 겨레에 의해 노예 취급을 받고, 다른 나라로부터 자존을 인정 못 받는 형세라면, 그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번영한 독립 국가을 일구는 데 피와 땀을 바친 애국지사들께 각별한 감사와 존경을 가져야 하는 거죠.

헌데, 아직도 정정히 살아계신 유공자, 지사들께 대해 우리는 조금의 관심이라도 과연 품고 있을까요? 사실 우리들 중 많은 수는, 독립 투사들의 활약과 족적을 그저 과거에 속한 일로 치부합니다. 이처럼 곱씹고 되새기고 현재의 맥락으로 재해석해야 할 과거를 그저 망각의 늪에 묻어 두는 민족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죠. 당장 애국지사, 독립유공자들에 대해 물어 보면, "응? 그분들 중에 아직 생존해 계신 분도 있나?" 같은 대답이 고작입니다.

겨레의 생존과 자존을 위해 일생을 바치신 분들을 그저 이처럼 무덤덤히 지나치니, 침략자의 후손들이 여전히 우리를 우습게 여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작 우리는 최상의 사의(謝意)와 존경을 바쳐야 할 인물들에 대고는, "그저 평범한 장삼이사를 대하듯" 소홀한 마음만 가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제목은 그래서인지, 마음아프고 죄스럽게도 "평범한 위인전"입니다.



지금부터는 "진짜 위인, 우리가 마땅히 기리고 우러러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던" 오희옥 여사님에 대해, 이 짧지만 긴 책을 통해 그 생애를 살펴 보겠습니다.

사실 이 책은 80페이지의 분량임에도, 그리 짧은 책 같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일단 한 페이지에 수록된 텍스트의 양이 꽤 많아서도 있고, 텍스트가 담은 그 가슴아프고 장엄한 사연의 무게 때문에도 그런 이유가 있습니다.

오희옥 여사는 아버님 오광선 선생, 어머님 정현숙 여사의 슬하에서, 두 분이 20대 중후반이던 시절 태어나셨습니다. 1926년생이니 아흔을 훌쩍 넘기신 나이이건만, 당신 스스로 자랑하시듯 여전히 정정하시고 맑은 정신으로 그 먼 과거(정작 기억해야 할 젊은 우리들은 까맣게 잊고, 아예 챙기려 들지도 않는 과거)를 생생히 기억하고 증언하십니다. 특히 독자로서 눈여겨 본 점은, 사항이나 행적을 일일이 새기시는 일도 그 연세에 쉽지 않겠건만, 목격하고 체험하신 일들에 대해 하나하나 그때의 진솔한 감정까지 그대로 재현, 토로하신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보죠.

"(전략)일어는 몰라. 포로수용소 갔을 때야 봤는데, 뚱뚱해. 돼지같이 앉아서 장기 뜨고 있었어."

저는 이 인상깊은 술회에서, 마치 그 시절 극우파 세력의 연합에 맞서 투쟁한 서양의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파시스트 돼지"라고 즐겨 조롱하던 정해진 문구가 생각났습니다. 일제도 분명 이탈리아- 나치 독일의 전범 진영과 "축"의 연대를 이뤘으니, "돼지" 맞죠. 뭐 일인들의 평균체형이야 남달리 뚱뚱한 편인지는 (당시건 지금이건)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하필 오희옥 지사님의 눈에 띈 그 자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신적 특질을 (용케도) 혼자 대변하고 있었나 봅니다. "뜨고"는 "두고"의 강한 발음으로 짐작되나, 지사님의 생생한 육성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여 좋았습니다.

"'자'는 일본식이야. 우리는 희, 옥, 숙, 영을 주로 썼지." 사실 지사님보다 훨씬 이후 세대들(여성분들)도, 자신의 세대 명명 관습에 대해 민감히 의식들을 잘 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이들의 특징은, 자신을 외부의 객관적 틀에다 놓고 보지를 못한다는 거죠. 이런 사람들이 예를 들어 "노래는 일본 노래가 최고야!"라며 큰 소리로 술자리 등에서 정체 모를 가사와 곡조를 열창하곤 하는 모습도, 우리는 그리 드물게만 보지는 않습니다. 지사님은 일상을 스쳐지나가는 사소한 모습에서도, 이족의 지배가 할퀴고 간 아픈 상처를 일일이 체감하시는 듯합니다.

이 책에는 컬러판 여러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물론 사진술 발달의 한계로, 찍힐 당시에 모노톤인 사진은 어쩔 방법이 없습니다만, 그 시절 특유의 세피아색채, 흐릿하게 빛이 바랜 귀퉁이 등이 그대로 표현된 도판들은, 텍스트 못지 않게 소중한 기록을 후대인, 독자들에게 남겨 주고 있습니다.



오 지사님과 함께 사진에 실린 분들은, 아무리 못난 후손들이라도 그 함자나 존영을 알아챌 만한, 정말 쟁쟁하신 순국 선열들이십니다. 오 지사님은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백범이나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성재 이시영 선생 같은 분의 함자를 예사롭게 거론하십니다. 그도그럴것이, 오 지사님이 어린 소녀였던 시절, 이들 까마득히 거룩한 애국 지사들께서 딸처럼 손녀처럼 돌보고 교양도 가르치셨던 환경이었으니 말입니다. 평생을 헌신하여 조국의 광복만을 도모하신 이 어르신들은, 그 마음씀도 이처럼 다정하고 자애로우십니다. 얼마나 공사에 다망하셨을 텐데도 말이죠. 우국지사들은 평소에 학문도 게을리하지 않고 연마하셨기에, 학식도 풍부하고 필체도 어쩜 그런 명필이 다시 없을 만큼 글에서 풍기는 혼과 얼이 누구 눈에도 두드러집니다. 그런 분들을 사사하신 오 지사님 역시, 얻다 내놓아도 고아한 품격이 느껴지는 멋진 필체를 선보이십니다.



오 지사님의 부친께서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선대 어르신들도 예외 없이 무장 투쟁 계열의 항일 운동가들이셨습니다. 모친 정현숙 여사는 비교적 최근에 타계하신 편인데, 여전히 우리 일반인들에게 그 함자가 낯설게 들리니 근현대사 교육의 부실함과 방향 없음이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실감합니다. 오 지사님께선 또 남달리 총명하시고, 운동 신경까지 빼어나셔서 당신이 직접 회고하시는 과거사 중 재미있는 대목이 꽤 많았습니다. 노령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귀중한 기록과 구술을 남겨 주신 것도, 유달리 맑고 청명한 정신에 그 육신이 그대로 조화를 이룸을 증명합니다. 이처럼, 대의를 위해 헌신한 영혼은 위인됨을 언제나 "승자"로 자리매김하게 마련입니다. 부정한 권력과 재물을 건사해도 사악한 자들은 언제나 건강도 나빠진 채 패자로 죽듯이 말입니다.


오 지사님은 평생을 교직에 복무하다 정년을 맞아 퇴임하셨습니다. 이렇게 불꽃처럼 올곧게 사신 분은 어떤 처지에서도 여한이 안 남는 정정당당한 마음과 뜻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으시고, 그 자체가 거대한 축복입니다. 문제는 우리들이죠. 어느 버스기사가, 오 지사님이 내민 "보훈대상자 카드"를 보자, "여자는 이런 것 안 될 텐데"라고 했답니다. 미국 같으면 전쟁 영웅이 모습을 드러내는 어느 공공장소에서도, 시민들이 기립하여 숭고한 애국심을 기리는 게 보통이죠. 하물며 노령의 애국지사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여자"라니요. 그 기사 욕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저 분별 없는 기사가, 다 은혜를 모르는 우리들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누가 누굴 나무라겠습니까. 오희옥이라는 함자를 들어 본 적도 없는 우리, 아예 들어보고자 노력도 않은 우리들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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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바꾸는 미래 비즈니스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업 경영 전략
노무라 나오유키 지음, 임해성 옮김, 김진호 감수 / 21세기북스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꼭 AI 섹터가 4차 산업혁명의 유일한 동력, 본진은 아닙니다만 이 AI를 빼놓고는 해당 메가트렌드의 미래를 논하는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AI의 최근 발전상, 지향점, 혹은 한계(현 시점에서의)까지를 정확히 파악하면, 많은 이들에게 (부푼 희망보다는) 적잖은 동요와 불확실성을 안기는 이 거대한 흐름에 대해, 거품 없이 비교적 정확한 실체로 접근히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AI의 급속한 발전이 산업 제반에 파급할 영향을 점치려면(이런 시도는 전문가나 경영자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중요합니다. 성인보다 차라리 어린 학생들에게 더 다급한 과제죠), 1) 먼저 인공지능에 대해 울타리밖에서 빈약한 식견으로 희미하게 관찰하는 외부인(혹은 일반인만도 못한 엉터리 전공자)이 아니라, 그 성과를 최전선에서 주도해 가는 전문가의 이해가 필요하고, 2) 산업계의 현재 형편에 대해 정통해야 합니다. 그래야 3) 인공지능이 미래 비즈니스를 어떻게 바꿀지(이 책의, 바로 제목이기도 합니다)에 대해, 독자 대중이 믿을 수 있는 충언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2)와 3)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저 1), 즉 정확히 현재의 인공지능 개발 붐이 어느 방향을 좇고 어디까지 가까운 장래에 도달 가능한지만 정확히 짚어 줘도 유익한 참고가 됩니다. 그런데 많은 저술가들은 부정확한 마케팅 차원의 홍보나 호들갑만 반성 없이 따라하곤 해서, 독자들에게 혼란을 안기는 경향이 요즘 보입니다. 2)는 차라리, 한눈에 이 현황을 꿰뚫을 수 있는 전문가가 더 드뭅니다. 기술 섹터는 언제나 그 영역에만 빠삭하면 충분한 엑스퍼트들이 배출이 되지만(단, 그 개인들 간에도 전문성의 차이는 천차만별이긴 하죠), 먹고사는 문제(즉 경제, 산업 문제)를 훤히 통찰하는 전문가는 훨씬 귀합니다(이런 분이 많다면, 지금 불경기라며. 혹은 물가고라며 아우성치는 이들이 안 보일 겁니다). 3)이라면, 독자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니, 자기 나름 심사숙고해서 개별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책은, 1)에 최고 권위를 지닌 전문가께서, 2)에도 깊은 소양을 갖고, 3)까지 잘 정리해서 독자들에게 정성껏 정보와 유익한 충고, 전망을 제시한다는 게 정말 놀라웠습니다. 1)만 해도, 탁월한 성과를 내는 테크니션이들이야, 대중들에게 잘 소개가 안 되어 그렇지 우리나라에도 그 수가 적지는 않습니다(그렇다고 많지도 않지만). 그렇지만 이 저자처럼, 학문과 연구의 추세를 선봉에서 이끌어가는 분은 당연히 극소수이며, 그런 성과(자신뿐 아니라 다른 학자들의 것까지)를 알기 쉽게 소개, 소통시킬 능력을 가진 분은 더욱 희귀하죠. 연구진을 이끄는 리더급 시니어 학자는, 업계와도 두루 접촉해서 그들의 니즈를 먼저 파악한 후 제자, 후배들의 장래를 책임져야 하는 위치이기도 하기에 2)의 현황까지 훤히 꿰뚫고 계신 것 아닌가 추측합니다. 여튼 책 한 권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 충언이 너무 많아서 독자로선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네요.

인공지능이 꼭 자신의 장래나 직업을 위협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지성이나 두뇌, 혹은 소중히 가꿔온 고유한 관점 등에 자긍심이 가득한 분들이라면, "감히" 기계, 전산처리장치가 인간의 영역을 넘본다는 데에 감정이 상할 법도 합니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의 파급력은 단순 반복 노동직에 더 큰 위협이 될 뿐인데도 말입니다. 일본이나 우리나 최고학부에 입학하려면 한 분야 지식과 적성만 뛰어나서 되지를 않았죠. 전방위에 걸쳐 모르는 게 없어야 합니다. 저자 노무라 나오유키 박사님도, 우리와 비슷한 구조의 학생 선발 시스템을 갖춘(이분 시절에는) 일본 최고 명문대를 나오신 분이라, 이처럼 인문, 상경계 쪽 사정에도 밝으시고, 무엇보다 본인이 이 분야 성과를 이끄는 엘리트이면서 인공지능의 부작용, 한계, 현황보다 과장된 대목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입니다. 오히려 반대편 논자들의 주장을 옹호하기도 하고, 권위자 입장에서 그들이 심각하게 착각, 오해하는 대목은 적절히 교정하기도 합니다.

혹 인공지능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분들이라면, 이 책의 일독이 꼭 필요합니다. 기술과 과학의 발전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또 그런 성과들은 어디까지나 가치중립적이어서, 누구한테 딱히 정치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하는 게 아닙니다. 본인이 지혜롭게, 성실히 다방면에 걸친 지식을 여태 습득하고 정리했다면, 이 새로운 트렌드에 대해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떤 기술적 진보이건, 노력하지 않고 머리도 나쁜 요행꾼에게 벼락 행운을 가져다 주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혹 그런 사람이 어떤 혜택을 새로 누리게 되어도, 그 사람뿐 아니라 누구나 다 접하는 반사효과일 뿐이며, 그런 사람이 누리는 몫은 상대적으로 적을 가능성이 더 크죠). 식자층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필연적 대세에 대해 무작정 회피한다면, 저런 게으르고 어리석은 이들과 별 차이 없는 불리한 사회적 위상으로 미래에는 재조정될 것입니다. 인공지능이건 뭐건 기본적으로는 사회와 경제에서 비효율 요소를 제거하고 한정된 자원으로 더 나은 성과를 거두기 위한 인류의 필사적 노력, 그 산물이니 말입니다.

1장에서는, 우리가 미래의 파괴적 혁신 트렌드를 논할 때 항상 그 선구자로서 언급, 인용이 빠지지 않는 레이 커즈와일에 대한 저자의 비판(꽤 신랄합니다)이 나옵니다. 우선 기하급수적 발전이라는 추세 자체가 그리 큰 설득력이 없다고 하시네요. 사실 기술의 발전을 무엇으로 가중, 평가하여 총량 지표를 낼 것인지부터가 벌써 모호하지만 말입니다. 또, 커즈와일이 다소 방만하게 도입한 "진화에의 유비"에 대해서도, 진화론의 정확한 동향도 모른 채 꺼낸 무지의 소치라는 쪽으로 비판을 가합니다(저자는 심지어 "폭력적"이란 말까지 쓰네요ㅋ). 커즈와일은 냉정히 말해 인문적 담론가일 뿐인데, 진짜 전문가께서 체급간 차이도 고려 않고 이처럼 정색하고 나오시면 좀 반칙이라는 생각도 들었구요(ㅎㅎ). 커즈와일의 진단 중 물론 허황된 게 많았으나, 저는 일반 독자 입장에서, 불확실한 미래 추세에 대해서는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실체보다 다소 과대평가를 해서라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쪽이라, 커즈와일(싫지만ㅋ)의 주장에도 여전히 경청이 요구된다고 여깁니다.

혹시 1990년대 중반, "퍼지 원리를 이용한 세탁기의 탁월한 효과(이 책 다른 파트에서도, 신경망 원리를 도입 어쩌구 하던 당시의 홍보 문구가 또 인용됩니다)"에 대해 들어 보신 적 있습니까? 저자께서는 당시 젊은 방문 연구자 자격으로 한창 경력 쌓기에 열심이신 시절이었겠는데, 이 과장 광고가 몹시도 귀에 거슬리셨나 봅니다. 이 비슷한 맥락으로, 저자는 동료, 혹은 경쟁 관계인 연구자들의 "거짓말"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십니다. 이 책은 건조하게 주제 관련 논의, 증명, 반박, 사례 소개만으로 채워진 게 아니라, 저자분(다시 말하지만 공저가 아닙니다. 한 분이 이 무거운 멀티 토픽을 다 커버하신 거에요)의 개인사까지 여러 대목에서 소개하는 톤이라서 더 친근감이 느껴졌습니다. <평행우주> 등 여러 베스트셀러 대중서를 쓴 미치오 가쿠 박사의 스타일과도 이 점에서 좀 비슷합니다. 제 개인적 느낌으론 (전공 분야가 현격히 다르다고는 하나)그분보다 이분이 훨씬 치밀하고 이지적이지만요.

미치오 가쿠 박사의 책이 괜한 추억 회고에 머무는 대목도 있었다면, 이 책은 설령 개인사를 토로하는 서술이라 해도, 꼭 관련 토픽으로 넘어가며 논의의 본지를 이탈하지 않는 꼼꼼함이 돋보입니다. 우리 같으면 <장학퀴즈>와 비슷할, 방송국의 퀴즈 경연대회에서 학생 시절 준우승 입상한 저자의 술회가 등장합니다만, 거기서 여담으로 머무는 게 아니라, 예전 IBM의 왓슨이 퀴즈쇼 <제퍼디>에서 보인 활약, (꽤 시간이 지났으니) 지금 기준에서 본 평가 등등해서 책의 주제, 독자의 긴장된 니즈와 언제나 밀착해 가는 서술 방식이 믿음직했습니다.

저자가 일본인인만치, 일본의 현황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모든 토픽에 대한 해명을 이어가는 개성도 두드러집니다. 물론 한국인인 우리가 일본의 사정을 대단한 기준틀로 여전히 여길 이유는 없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유사한 지점, 닮은 사정들에 한해서 참고할 사항이 많다는 뜻에서입니다.

예컨대 인공지능이란, 어디까지나 성과도 떨어지고 현장의 불만도 많으며, 생산성 대비 임금이 높게 책정된 분야에서 더 도입 필요성이 커지게 마련인데(미국, 혹은 다른 어느어느 나라도, 항공사 노조가 꽤 강성입니다. 자동 항법 장치나 정비 시스템[AI의 효시격이죠]이 일찍부터 연구되었다는 점을 떠올려 보십시오. 몇 달 전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갑질 사건도 현지인들 말 들어보면 무책임한 경영진과 서비스 정신 제로의 막무가내 노조가 함께 일으킨 참사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그런 분야의 대표적 예로 "감시 업무"를 듭니다. 이는 물론 교도소 등 고정 서비스를 행하는 공공기관도 있겠지만, 아파트나 생산 시설, 재고 창고, 혹은 대형 매장의 무인 경비 시스템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KT 등이 선도한 아파트 무인 경비는 벌써 17년 전부터 도입이 되었거든요(해당 아파트 사셨던 분들은 잘 아실 거에요). "감시 업무"를 어디서 접하셨는지는 모르겠는데 꽤 사무친 경험(ㅋ)이 있으셨는지, 책의 여러 군데에서 자주 언급됩니다.

저자는 또 갈수록 출산율이 떨어지고 고령화 추세가 심각해지는 일본이야말로, 이 인공지능의 "일당백" 효율이 시급히 자리잡아야 하는 환경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는 저자의 지적을 떠나서, 이미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는 경영계의 현실이 일찍부터 현장에 경각을 촉구했기에, 현재의 일본이 (3차 산업혁명때와는 달리) 글로벌 경쟁에서 다소 앞서나가는 결과이기도 합니다. 반면 한국은 기업이 마음 놓고 자체 생존 전략을 짜기가 어렵고, 정치권과 변덕스러운 대중의 분위기에 휘둘리는 팩터가 큰 편이라서, 보다시피 이처럼 성과가 지지부진하죠.

저자는 현재의 인공지능 열풍이, 결코 평지돌출격으로 갑자기 발생한 것도 아니며, 오히려 지난 백 년을 돌이켜 볼 때 단속적으로 일어났다 수그러들다 하던 것이 빅데이터라는 새로운 환경을 맞아 큰 활력을 새삼 얻는 과정이라고 평가합니다. 이런 통시적 고찰은 인문적 소양과 시야가 갖춰져야 가능한데, 그 점에서도 저자의 식견과 시야가 믿음직했습니다. 저자의 회고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 아니 금세기 초만 해도, 머신 러닝에 있어 "신경망 방법론"을 연구한다고 하면, 주위에서 대뜸 보이는 반응이 "아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그걸 파세요?"였다고 합니다. 이미 일찍부터 컨셉의 맹아가 여러 번 보였고, 다만 인풋-아웃풋 세트가 워낙 미비하던 시절이었는데다, 각별히 창의적이거나 천재적(경제적) 발상이라기보다는 무식한 노가다처럼 다가왔기 때문이엇겠죠. 그러던 게 지금은 시대의 총아처럼 새로 각광을 받으며 찬사를 한몸에 접수하는 겁니다. 트렌드라는 게 참 무상하다는 식의, "인간 냄새 물씬 나는" 구절이 여러 번 보여 더 친숙한 게 이 책이기도 하고요.

"강한/약한"의 한정 표현은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널리 쓰입니다. "강한"은 효과가 강력하다는 뜻이 아니라(경우에 따라 정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가장 엄격한 기준까지 다 충족하는 정의(definition)란 뜻입니다(누가 봐도 이견 없이, 저건 진짜 지능, 지성체라고 말이 나올 만하다는 것). "강한 인공지능"은 그래서, 정말 지능의 가장 깊숙한 영역까지 낱낱이 해명된 후, SF에나 나올 법한 미래상(디스토피아까지)도 부를 수 있는 성과물이겠죠. 저자의 말씀이 재미있는 게 "약한 인공지능이 기능이 약하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소한 일상까지 파고들어 많은 효용을 낳을 수 있는 '강한' 녀석이다" 같은 서술입니다. 사실 이 책을 읽을 독자 중에 그 점을 헷갈릴 만한 이가 있겠는지는 좀 의문이지만, 이어지는 저자의 언급은 "인공지능에 대해서 이처럼 여러 강도, 레벨의 정의가 통용되고 있으니 현장의 학자, 연구진에 대해 너무 사기꾼들이라며 매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 다양할 독자들의 (잠재적)성향, 반응에 대해 일일이 신경 써 가며 말 한 마디를 해도 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주 절차는 업무 자동화와는 그간 가장 거리가 먼, 인간 고차원 소통과 판단, 혹은 감성까지 같이 개재한 영역으로 여겨저 왔습니다. 다른 누구의 판단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우리 독자들도 생각을 해 보면 압니다. 아니 거래사와 접촉하여 치열한 협상(혹은 경쟁사와의 레이스)를 거쳐 일감, 프로젝트를 따내는 게 인공지능에게 맡겨서 가능이나 할 법하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pp. 82~83에 나오는 알고리즘은 이게 어떻게 인간의 손을 떠나 체계화할 수 있는지 잘 알려 줍니다. 뿐이 아닙니다. "일드 매니지먼트"를 호텔 예약 접수 업무에도 적용하여, 고객의 정보 중 입수 가능한 사항을 토대로, 과연 이 고객이 "노 쇼" 행태를 보이지는 않겠는지, 앞으로 우리 호텔에 얼마나 로열한 소비 패턴을 가질지 등을 미리 예측한 후(이에는, 상담 당시 실시간으로 고객의 음성이라든가 말투, 버릇 등 미세한 요소까지 다 AI가 감지해서 자료로 쓴다는 뜻입니다), 공실이 있음에도 만실이라며 거절한다든지, 혹은 직접 찾아온 고객의 옷차림이나 표정, 안색에서 드러나는(빅데이터를 통해 일정한 모델, 판단 경로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정보를 통해 어느 수준의 응대를 할지까지 결정하는, 참으로 영악하고 놀라운 접객이 가능하다고도 저자는 말합니다.

이게 가능하다면 가장 강한 의미의 "인공지능"이라 불려 마땅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인데, 현장에서 달인으로 통하는 전문가, 대가들에게 "어떻게 해서 그런 손놀림, 혹은 빠른 판단이 가능한지"를 물어 보면 그들도 설명 못 합니다. 설명을 못 하므로, 그런 지식은 타인에게 전수하기도, 매뉴얼화하기도 힘듭니다. 과거 프로그래밍을 통한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이었다면 이런 건 결코 기계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개발자가 뭘 알기나 해야 기계한테 가르치죠. 이런 대체 불가능의 "암묵지"를, 이제 방대한 양의 인풋-아웃풋 세트를 컴퓨터에게 학습시켜, 전산처리장치가 자동적으로 "해답을 찾는 경로"를 그 내부에 형성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저자에게는 너무도 당연할 이런 기본 개념을, 혹 낯설어할 독자들을 위해 책의 여러 파트에서 반복적으로, 적실한 예와 함께 설명해 주는 태도 역시 자상하다고나 해야겠습니다. 빅데이터의 반복 학습, 이런 말은 어떤 책에서나 설명하지만, 저런 호텔 접객 사례와 함께 생동감이 느껴지게 이해시키는 건 쉽게 발견되는 여유, 요령이 아니죠.

특히 머신 러닝은 언어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 왔습니다. 저자께서도 회고하시듯이, 이십 여 년 정도 간격을 두고 매번 인공지능 열풍이 일었다가 잦아든 것도, 도대체 "번역"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서 연구진이 번번이 좌절했기 때문이죠. 일본어(한국어가 몇 배는 더합니다만)가 가진 고유의 복잡한 통사 구조를 놓고, 컴퓨터의 단조로운 논리 체계(사실은 프로그램, 소프트웨어의 한계입니다만)로는 도저히 접근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만, 저자는 긴 문장 요약, 집필자의 의견 파트와 팩트의 구별까지도 이제는 능숙히 해 내는 추세라며 현황을 소개합니다.

요즘 모 포털 사이트 TV 광고에서도 자주 만나지만, 종류가 다양한 고양이들의 품종을 가리는 작업은, 특별히 그 분야에 관심이 있는 전문가라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제 발전된 안면인식기술(바로 이 저자께서 깊숙히 관여했던 프로젝트이기도 하죠)로, 사람으로서는 엄두도 못 낼,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 준별 기능이 이제 실용화의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 점이 꽤나 중요한 건, 일찍부터 노엄 촘스키가 이 시각적 인지 회로와 관련, 인간만이 언어로 소통 가능한 동물이라며까지 신비한 예언을 내놓았었기 때문이죠(소양이 풍부하신 저자는 이 대목도 놓치지 않고 적소에 언급하시네요). 당시에는 그를 두고 무모하며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입장이 다수였습니다. 이제 AI 연구 섹터에서는, 그의 "예언"에 근거하여 이처럼 사람 일상의 편의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놀라운 성과를 내어 놓는 중이고요.

인공지능은 인간의 일자리를 뺏는 괴물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만이, 지혜롭고 융통성 있으며 자기 논리로 생각할 수 있는 인간만이, 더욱 큰 가능성과 혜택을 누리게 해 주는 고마운 장난감이자 생계의 도구입니다. 4차 산업혁명에 발 맞춰 교육 과정을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단순 반복이나 창의적이지 못한 업무, 활동은 그저 기계에게 맡기도, 인간은 보다 고차원적인 창조에 몰입할 수 있게 돕기 때문이죠. 빅데이터를 투입해서, 여태 사람이 채 발견 못 한 패턴을 컴퓨터는 알아내고 작업을 수행합니다. 그러나 과연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가 뭔지 녀석이 알겠습니까? 영리한 인간은 녀석이 열심히 하는 노동의 결과를 보고, 이 결과가 갖는 다른 차원의 의미를 해석해 냅니다. 이 해석은 전혀 뜻밖의 영역에 적용되고(그래서 잡스가, 혁신의 본체는 "연결"이라고 했던 겁니다), AI와 친한 인간은 남들이 생각도 못한 분야에서 막대한 수익과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은 어떤 환경에서도 훼손되지 않고, 고유의 영역을 지키며 더 아름답게 가꾸기까지 합니다. 단 우리의 존엄이 지켜지려면, 더 풍요로운 성과를 누리려면, 우리가 남의 말을 그대로 베껴 따라한다거나, 대세에 쥐떼처럼 편승하는 동물적 하등 상태를 빨리 탈피하는 게, 그 자격을 갖추는 선결 조건이라 하겠습니다. 영혼 없는 인간이 도태되는 게 바로 "4차 산업 혁명"의 의의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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