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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바꾸는 미래 비즈니스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업 경영 전략
노무라 나오유키 지음, 임해성 옮김, 김진호 감수 / 21세기북스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꼭 AI 섹터가 4차 산업혁명의 유일한 동력, 본진은 아닙니다만 이 AI를 빼놓고는 해당 메가트렌드의 미래를 논하는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AI의 최근 발전상, 지향점, 혹은 한계(현 시점에서의)까지를 정확히 파악하면, 많은 이들에게 (부푼 희망보다는) 적잖은 동요와 불확실성을 안기는 이 거대한 흐름에 대해, 거품 없이 비교적 정확한 실체로 접근히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AI의 급속한 발전이 산업 제반에 파급할 영향을 점치려면(이런 시도는 전문가나 경영자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중요합니다. 성인보다 차라리 어린 학생들에게 더 다급한 과제죠), 1) 먼저 인공지능에 대해 울타리밖에서 빈약한 식견으로 희미하게 관찰하는 외부인(혹은 일반인만도 못한 엉터리 전공자)이 아니라, 그 성과를 최전선에서 주도해 가는 전문가의 이해가 필요하고, 2) 산업계의 현재 형편에 대해 정통해야 합니다. 그래야 3) 인공지능이 미래 비즈니스를 어떻게 바꿀지(이 책의, 바로 제목이기도 합니다)에 대해, 독자 대중이 믿을 수 있는 충언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2)와 3)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저 1), 즉 정확히 현재의 인공지능 개발 붐이 어느 방향을 좇고 어디까지 가까운 장래에 도달 가능한지만 정확히 짚어 줘도 유익한 참고가 됩니다. 그런데 많은 저술가들은 부정확한 마케팅 차원의 홍보나 호들갑만 반성 없이 따라하곤 해서, 독자들에게 혼란을 안기는 경향이 요즘 보입니다. 2)는 차라리, 한눈에 이 현황을 꿰뚫을 수 있는 전문가가 더 드뭅니다. 기술 섹터는 언제나 그 영역에만 빠삭하면 충분한 엑스퍼트들이 배출이 되지만(단, 그 개인들 간에도 전문성의 차이는 천차만별이긴 하죠), 먹고사는 문제(즉 경제, 산업 문제)를 훤히 통찰하는 전문가는 훨씬 귀합니다(이런 분이 많다면, 지금 불경기라며. 혹은 물가고라며 아우성치는 이들이 안 보일 겁니다). 3)이라면, 독자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니, 자기 나름 심사숙고해서 개별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책은, 1)에 최고 권위를 지닌 전문가께서, 2)에도 깊은 소양을 갖고, 3)까지 잘 정리해서 독자들에게 정성껏 정보와 유익한 충고, 전망을 제시한다는 게 정말 놀라웠습니다. 1)만 해도, 탁월한 성과를 내는 테크니션이들이야, 대중들에게 잘 소개가 안 되어 그렇지 우리나라에도 그 수가 적지는 않습니다(그렇다고 많지도 않지만). 그렇지만 이 저자처럼, 학문과 연구의 추세를 선봉에서 이끌어가는 분은 당연히 극소수이며, 그런 성과(자신뿐 아니라 다른 학자들의 것까지)를 알기 쉽게 소개, 소통시킬 능력을 가진 분은 더욱 희귀하죠. 연구진을 이끄는 리더급 시니어 학자는, 업계와도 두루 접촉해서 그들의 니즈를 먼저 파악한 후 제자, 후배들의 장래를 책임져야 하는 위치이기도 하기에 2)의 현황까지 훤히 꿰뚫고 계신 것 아닌가 추측합니다. 여튼 책 한 권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 충언이 너무 많아서 독자로선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네요.
인공지능이 꼭 자신의 장래나 직업을 위협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지성이나 두뇌, 혹은 소중히 가꿔온 고유한 관점 등에 자긍심이 가득한 분들이라면, "감히" 기계, 전산처리장치가 인간의 영역을 넘본다는 데에 감정이 상할 법도 합니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의 파급력은 단순 반복 노동직에 더 큰 위협이 될 뿐인데도 말입니다. 일본이나 우리나 최고학부에 입학하려면 한 분야 지식과 적성만 뛰어나서 되지를 않았죠. 전방위에 걸쳐 모르는 게 없어야 합니다. 저자 노무라 나오유키 박사님도, 우리와 비슷한 구조의 학생 선발 시스템을 갖춘(이분 시절에는) 일본 최고 명문대를 나오신 분이라, 이처럼 인문, 상경계 쪽 사정에도 밝으시고, 무엇보다 본인이 이 분야 성과를 이끄는 엘리트이면서 인공지능의 부작용, 한계, 현황보다 과장된 대목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입니다. 오히려 반대편 논자들의 주장을 옹호하기도 하고, 권위자 입장에서 그들이 심각하게 착각, 오해하는 대목은 적절히 교정하기도 합니다.
혹 인공지능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분들이라면, 이 책의 일독이 꼭 필요합니다. 기술과 과학의 발전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또 그런 성과들은 어디까지나 가치중립적이어서, 누구한테 딱히 정치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하는 게 아닙니다. 본인이 지혜롭게, 성실히 다방면에 걸친 지식을 여태 습득하고 정리했다면, 이 새로운 트렌드에 대해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떤 기술적 진보이건, 노력하지 않고 머리도 나쁜 요행꾼에게 벼락 행운을 가져다 주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혹 그런 사람이 어떤 혜택을 새로 누리게 되어도, 그 사람뿐 아니라 누구나 다 접하는 반사효과일 뿐이며, 그런 사람이 누리는 몫은 상대적으로 적을 가능성이 더 크죠). 식자층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필연적 대세에 대해 무작정 회피한다면, 저런 게으르고 어리석은 이들과 별 차이 없는 불리한 사회적 위상으로 미래에는 재조정될 것입니다. 인공지능이건 뭐건 기본적으로는 사회와 경제에서 비효율 요소를 제거하고 한정된 자원으로 더 나은 성과를 거두기 위한 인류의 필사적 노력, 그 산물이니 말입니다.
1장에서는, 우리가 미래의 파괴적 혁신 트렌드를 논할 때 항상 그 선구자로서 언급, 인용이 빠지지 않는 레이 커즈와일에 대한 저자의 비판(꽤 신랄합니다)이 나옵니다. 우선 기하급수적 발전이라는 추세 자체가 그리 큰 설득력이 없다고 하시네요. 사실 기술의 발전을 무엇으로 가중, 평가하여 총량 지표를 낼 것인지부터가 벌써 모호하지만 말입니다. 또, 커즈와일이 다소 방만하게 도입한 "진화에의 유비"에 대해서도, 진화론의 정확한 동향도 모른 채 꺼낸 무지의 소치라는 쪽으로 비판을 가합니다(저자는 심지어 "폭력적"이란 말까지 쓰네요ㅋ). 커즈와일은 냉정히 말해 인문적 담론가일 뿐인데, 진짜 전문가께서 체급간 차이도 고려 않고 이처럼 정색하고 나오시면 좀 반칙이라는 생각도 들었구요(ㅎㅎ). 커즈와일의 진단 중 물론 허황된 게 많았으나, 저는 일반 독자 입장에서, 불확실한 미래 추세에 대해서는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실체보다 다소 과대평가를 해서라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쪽이라, 커즈와일(싫지만ㅋ)의 주장에도 여전히 경청이 요구된다고 여깁니다.
혹시 1990년대 중반, "퍼지 원리를 이용한 세탁기의 탁월한 효과(이 책 다른 파트에서도, 신경망 원리를 도입 어쩌구 하던 당시의 홍보 문구가 또 인용됩니다)"에 대해 들어 보신 적 있습니까? 저자께서는 당시 젊은 방문 연구자 자격으로 한창 경력 쌓기에 열심이신 시절이었겠는데, 이 과장 광고가 몹시도 귀에 거슬리셨나 봅니다. 이 비슷한 맥락으로, 저자는 동료, 혹은 경쟁 관계인 연구자들의 "거짓말"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십니다. 이 책은 건조하게 주제 관련 논의, 증명, 반박, 사례 소개만으로 채워진 게 아니라, 저자분(다시 말하지만 공저가 아닙니다. 한 분이 이 무거운 멀티 토픽을 다 커버하신 거에요)의 개인사까지 여러 대목에서 소개하는 톤이라서 더 친근감이 느껴졌습니다. <평행우주> 등 여러 베스트셀러 대중서를 쓴 미치오 가쿠 박사의 스타일과도 이 점에서 좀 비슷합니다. 제 개인적 느낌으론 (전공 분야가 현격히 다르다고는 하나)그분보다 이분이 훨씬 치밀하고 이지적이지만요.
미치오 가쿠 박사의 책이 괜한 추억 회고에 머무는 대목도 있었다면, 이 책은 설령 개인사를 토로하는 서술이라 해도, 꼭 관련 토픽으로 넘어가며 논의의 본지를 이탈하지 않는 꼼꼼함이 돋보입니다. 우리 같으면 <장학퀴즈>와 비슷할, 방송국의 퀴즈 경연대회에서 학생 시절 준우승 입상한 저자의 술회가 등장합니다만, 거기서 여담으로 머무는 게 아니라, 예전 IBM의 왓슨이 퀴즈쇼 <제퍼디>에서 보인 활약, (꽤 시간이 지났으니) 지금 기준에서 본 평가 등등해서 책의 주제, 독자의 긴장된 니즈와 언제나 밀착해 가는 서술 방식이 믿음직했습니다.
저자가 일본인인만치, 일본의 현황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모든 토픽에 대한 해명을 이어가는 개성도 두드러집니다. 물론 한국인인 우리가 일본의 사정을 대단한 기준틀로 여전히 여길 이유는 없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유사한 지점, 닮은 사정들에 한해서 참고할 사항이 많다는 뜻에서입니다.
예컨대 인공지능이란, 어디까지나 성과도 떨어지고 현장의 불만도 많으며, 생산성 대비 임금이 높게 책정된 분야에서 더 도입 필요성이 커지게 마련인데(미국, 혹은 다른 어느어느 나라도, 항공사 노조가 꽤 강성입니다. 자동 항법 장치나 정비 시스템[AI의 효시격이죠]이 일찍부터 연구되었다는 점을 떠올려 보십시오. 몇 달 전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갑질 사건도 현지인들 말 들어보면 무책임한 경영진과 서비스 정신 제로의 막무가내 노조가 함께 일으킨 참사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그런 분야의 대표적 예로 "감시 업무"를 듭니다. 이는 물론 교도소 등 고정 서비스를 행하는 공공기관도 있겠지만, 아파트나 생산 시설, 재고 창고, 혹은 대형 매장의 무인 경비 시스템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KT 등이 선도한 아파트 무인 경비는 벌써 17년 전부터 도입이 되었거든요(해당 아파트 사셨던 분들은 잘 아실 거에요). "감시 업무"를 어디서 접하셨는지는 모르겠는데 꽤 사무친 경험(ㅋ)이 있으셨는지, 책의 여러 군데에서 자주 언급됩니다.
저자는 또 갈수록 출산율이 떨어지고 고령화 추세가 심각해지는 일본이야말로, 이 인공지능의 "일당백" 효율이 시급히 자리잡아야 하는 환경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는 저자의 지적을 떠나서, 이미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는 경영계의 현실이 일찍부터 현장에 경각을 촉구했기에, 현재의 일본이 (3차 산업혁명때와는 달리) 글로벌 경쟁에서 다소 앞서나가는 결과이기도 합니다. 반면 한국은 기업이 마음 놓고 자체 생존 전략을 짜기가 어렵고, 정치권과 변덕스러운 대중의 분위기에 휘둘리는 팩터가 큰 편이라서, 보다시피 이처럼 성과가 지지부진하죠.
저자는 현재의 인공지능 열풍이, 결코 평지돌출격으로 갑자기 발생한 것도 아니며, 오히려 지난 백 년을 돌이켜 볼 때 단속적으로 일어났다 수그러들다 하던 것이 빅데이터라는 새로운 환경을 맞아 큰 활력을 새삼 얻는 과정이라고 평가합니다. 이런 통시적 고찰은 인문적 소양과 시야가 갖춰져야 가능한데, 그 점에서도 저자의 식견과 시야가 믿음직했습니다. 저자의 회고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 아니 금세기 초만 해도, 머신 러닝에 있어 "신경망 방법론"을 연구한다고 하면, 주위에서 대뜸 보이는 반응이 "아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그걸 파세요?"였다고 합니다. 이미 일찍부터 컨셉의 맹아가 여러 번 보였고, 다만 인풋-아웃풋 세트가 워낙 미비하던 시절이었는데다, 각별히 창의적이거나 천재적(경제적) 발상이라기보다는 무식한 노가다처럼 다가왔기 때문이엇겠죠. 그러던 게 지금은 시대의 총아처럼 새로 각광을 받으며 찬사를 한몸에 접수하는 겁니다. 트렌드라는 게 참 무상하다는 식의, "인간 냄새 물씬 나는" 구절이 여러 번 보여 더 친숙한 게 이 책이기도 하고요.
"강한/약한"의 한정 표현은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널리 쓰입니다. "강한"은 효과가 강력하다는 뜻이 아니라(경우에 따라 정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가장 엄격한 기준까지 다 충족하는 정의(definition)란 뜻입니다(누가 봐도 이견 없이, 저건 진짜 지능, 지성체라고 말이 나올 만하다는 것). "강한 인공지능"은 그래서, 정말 지능의 가장 깊숙한 영역까지 낱낱이 해명된 후, SF에나 나올 법한 미래상(디스토피아까지)도 부를 수 있는 성과물이겠죠. 저자의 말씀이 재미있는 게 "약한 인공지능이 기능이 약하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소한 일상까지 파고들어 많은 효용을 낳을 수 있는 '강한' 녀석이다" 같은 서술입니다. 사실 이 책을 읽을 독자 중에 그 점을 헷갈릴 만한 이가 있겠는지는 좀 의문이지만, 이어지는 저자의 언급은 "인공지능에 대해서 이처럼 여러 강도, 레벨의 정의가 통용되고 있으니 현장의 학자, 연구진에 대해 너무 사기꾼들이라며 매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 다양할 독자들의 (잠재적)성향, 반응에 대해 일일이 신경 써 가며 말 한 마디를 해도 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주 절차는 업무 자동화와는 그간 가장 거리가 먼, 인간 고차원 소통과 판단, 혹은 감성까지 같이 개재한 영역으로 여겨저 왔습니다. 다른 누구의 판단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우리 독자들도 생각을 해 보면 압니다. 아니 거래사와 접촉하여 치열한 협상(혹은 경쟁사와의 레이스)를 거쳐 일감, 프로젝트를 따내는 게 인공지능에게 맡겨서 가능이나 할 법하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pp. 82~83에 나오는 알고리즘은 이게 어떻게 인간의 손을 떠나 체계화할 수 있는지 잘 알려 줍니다. 뿐이 아닙니다. "일드 매니지먼트"를 호텔 예약 접수 업무에도 적용하여, 고객의 정보 중 입수 가능한 사항을 토대로, 과연 이 고객이 "노 쇼" 행태를 보이지는 않겠는지, 앞으로 우리 호텔에 얼마나 로열한 소비 패턴을 가질지 등을 미리 예측한 후(이에는, 상담 당시 실시간으로 고객의 음성이라든가 말투, 버릇 등 미세한 요소까지 다 AI가 감지해서 자료로 쓴다는 뜻입니다), 공실이 있음에도 만실이라며 거절한다든지, 혹은 직접 찾아온 고객의 옷차림이나 표정, 안색에서 드러나는(빅데이터를 통해 일정한 모델, 판단 경로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정보를 통해 어느 수준의 응대를 할지까지 결정하는, 참으로 영악하고 놀라운 접객이 가능하다고도 저자는 말합니다.
이게 가능하다면 가장 강한 의미의 "인공지능"이라 불려 마땅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인데, 현장에서 달인으로 통하는 전문가, 대가들에게 "어떻게 해서 그런 손놀림, 혹은 빠른 판단이 가능한지"를 물어 보면 그들도 설명 못 합니다. 설명을 못 하므로, 그런 지식은 타인에게 전수하기도, 매뉴얼화하기도 힘듭니다. 과거 프로그래밍을 통한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이었다면 이런 건 결코 기계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개발자가 뭘 알기나 해야 기계한테 가르치죠. 이런 대체 불가능의 "암묵지"를, 이제 방대한 양의 인풋-아웃풋 세트를 컴퓨터에게 학습시켜, 전산처리장치가 자동적으로 "해답을 찾는 경로"를 그 내부에 형성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저자에게는 너무도 당연할 이런 기본 개념을, 혹 낯설어할 독자들을 위해 책의 여러 파트에서 반복적으로, 적실한 예와 함께 설명해 주는 태도 역시 자상하다고나 해야겠습니다. 빅데이터의 반복 학습, 이런 말은 어떤 책에서나 설명하지만, 저런 호텔 접객 사례와 함께 생동감이 느껴지게 이해시키는 건 쉽게 발견되는 여유, 요령이 아니죠.
특히 머신 러닝은 언어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 왔습니다. 저자께서도 회고하시듯이, 이십 여 년 정도 간격을 두고 매번 인공지능 열풍이 일었다가 잦아든 것도, 도대체 "번역"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서 연구진이 번번이 좌절했기 때문이죠. 일본어(한국어가 몇 배는 더합니다만)가 가진 고유의 복잡한 통사 구조를 놓고, 컴퓨터의 단조로운 논리 체계(사실은 프로그램, 소프트웨어의 한계입니다만)로는 도저히 접근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만, 저자는 긴 문장 요약, 집필자의 의견 파트와 팩트의 구별까지도 이제는 능숙히 해 내는 추세라며 현황을 소개합니다.
요즘 모 포털 사이트 TV 광고에서도 자주 만나지만, 종류가 다양한 고양이들의 품종을 가리는 작업은, 특별히 그 분야에 관심이 있는 전문가라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제 발전된 안면인식기술(바로 이 저자께서 깊숙히 관여했던 프로젝트이기도 하죠)로, 사람으로서는 엄두도 못 낼,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 준별 기능이 이제 실용화의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 점이 꽤나 중요한 건, 일찍부터 노엄 촘스키가 이 시각적 인지 회로와 관련, 인간만이 언어로 소통 가능한 동물이라며까지 신비한 예언을 내놓았었기 때문이죠(소양이 풍부하신 저자는 이 대목도 놓치지 않고 적소에 언급하시네요). 당시에는 그를 두고 무모하며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입장이 다수였습니다. 이제 AI 연구 섹터에서는, 그의 "예언"에 근거하여 이처럼 사람 일상의 편의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놀라운 성과를 내어 놓는 중이고요.
인공지능은 인간의 일자리를 뺏는 괴물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만이, 지혜롭고 융통성 있으며 자기 논리로 생각할 수 있는 인간만이, 더욱 큰 가능성과 혜택을 누리게 해 주는 고마운 장난감이자 생계의 도구입니다. 4차 산업혁명에 발 맞춰 교육 과정을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단순 반복이나 창의적이지 못한 업무, 활동은 그저 기계에게 맡기도, 인간은 보다 고차원적인 창조에 몰입할 수 있게 돕기 때문이죠. 빅데이터를 투입해서, 여태 사람이 채 발견 못 한 패턴을 컴퓨터는 알아내고 작업을 수행합니다. 그러나 과연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가 뭔지 녀석이 알겠습니까? 영리한 인간은 녀석이 열심히 하는 노동의 결과를 보고, 이 결과가 갖는 다른 차원의 의미를 해석해 냅니다. 이 해석은 전혀 뜻밖의 영역에 적용되고(그래서 잡스가, 혁신의 본체는 "연결"이라고 했던 겁니다), AI와 친한 인간은 남들이 생각도 못한 분야에서 막대한 수익과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은 어떤 환경에서도 훼손되지 않고, 고유의 영역을 지키며 더 아름답게 가꾸기까지 합니다. 단 우리의 존엄이 지켜지려면, 더 풍요로운 성과를 누리려면, 우리가 남의 말을 그대로 베껴 따라한다거나, 대세에 쥐떼처럼 편승하는 동물적 하등 상태를 빨리 탈피하는 게, 그 자격을 갖추는 선결 조건이라 하겠습니다. 영혼 없는 인간이 도태되는 게 바로 "4차 산업 혁명"의 의의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