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위인전"이라는 말 속에는 얼핏 보아 역설이 배어 있습니다. "위대하지만 평범하다"라는 뜻도 되니까요. 하지만 이 책 제목은, 특히 책을 다 읽고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는 독자에게, 어쩌면 반성을 촉구하는 뜻을 담았을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위인'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당신의 오늘이 있게 한 진짜 위인들을, 위인으로 생각하고 대접해 본 적이 있는가? 그분들께 그저 무심한, 평범한 이웃이나 보듯 열의 없는 시선이나 주고 지나치지는 않는가?"

개인 단위에서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그 개인이 속한 민족 전체가 다른 겨레에 의해 노예 취급을 받고, 다른 나라로부터 자존을 인정 못 받는 형세라면, 그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번영한 독립 국가을 일구는 데 피와 땀을 바친 애국지사들께 각별한 감사와 존경을 가져야 하는 거죠.

헌데, 아직도 정정히 살아계신 유공자, 지사들께 대해 우리는 조금의 관심이라도 과연 품고 있을까요? 사실 우리들 중 많은 수는, 독립 투사들의 활약과 족적을 그저 과거에 속한 일로 치부합니다. 이처럼 곱씹고 되새기고 현재의 맥락으로 재해석해야 할 과거를 그저 망각의 늪에 묻어 두는 민족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죠. 당장 애국지사, 독립유공자들에 대해 물어 보면, "응? 그분들 중에 아직 생존해 계신 분도 있나?" 같은 대답이 고작입니다.

겨레의 생존과 자존을 위해 일생을 바치신 분들을 그저 이처럼 무덤덤히 지나치니, 침략자의 후손들이 여전히 우리를 우습게 여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작 우리는 최상의 사의(謝意)와 존경을 바쳐야 할 인물들에 대고는, "그저 평범한 장삼이사를 대하듯" 소홀한 마음만 가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제목은 그래서인지, 마음아프고 죄스럽게도 "평범한 위인전"입니다.



지금부터는 "진짜 위인, 우리가 마땅히 기리고 우러러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던" 오희옥 여사님에 대해, 이 짧지만 긴 책을 통해 그 생애를 살펴 보겠습니다.

사실 이 책은 80페이지의 분량임에도, 그리 짧은 책 같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일단 한 페이지에 수록된 텍스트의 양이 꽤 많아서도 있고, 텍스트가 담은 그 가슴아프고 장엄한 사연의 무게 때문에도 그런 이유가 있습니다.

오희옥 여사는 아버님 오광선 선생, 어머님 정현숙 여사의 슬하에서, 두 분이 20대 중후반이던 시절 태어나셨습니다. 1926년생이니 아흔을 훌쩍 넘기신 나이이건만, 당신 스스로 자랑하시듯 여전히 정정하시고 맑은 정신으로 그 먼 과거(정작 기억해야 할 젊은 우리들은 까맣게 잊고, 아예 챙기려 들지도 않는 과거)를 생생히 기억하고 증언하십니다. 특히 독자로서 눈여겨 본 점은, 사항이나 행적을 일일이 새기시는 일도 그 연세에 쉽지 않겠건만, 목격하고 체험하신 일들에 대해 하나하나 그때의 진솔한 감정까지 그대로 재현, 토로하신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보죠.

"(전략)일어는 몰라. 포로수용소 갔을 때야 봤는데, 뚱뚱해. 돼지같이 앉아서 장기 뜨고 있었어."

저는 이 인상깊은 술회에서, 마치 그 시절 극우파 세력의 연합에 맞서 투쟁한 서양의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파시스트 돼지"라고 즐겨 조롱하던 정해진 문구가 생각났습니다. 일제도 분명 이탈리아- 나치 독일의 전범 진영과 "축"의 연대를 이뤘으니, "돼지" 맞죠. 뭐 일인들의 평균체형이야 남달리 뚱뚱한 편인지는 (당시건 지금이건)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하필 오희옥 지사님의 눈에 띈 그 자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신적 특질을 (용케도) 혼자 대변하고 있었나 봅니다. "뜨고"는 "두고"의 강한 발음으로 짐작되나, 지사님의 생생한 육성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여 좋았습니다.

"'자'는 일본식이야. 우리는 희, 옥, 숙, 영을 주로 썼지." 사실 지사님보다 훨씬 이후 세대들(여성분들)도, 자신의 세대 명명 관습에 대해 민감히 의식들을 잘 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이들의 특징은, 자신을 외부의 객관적 틀에다 놓고 보지를 못한다는 거죠. 이런 사람들이 예를 들어 "노래는 일본 노래가 최고야!"라며 큰 소리로 술자리 등에서 정체 모를 가사와 곡조를 열창하곤 하는 모습도, 우리는 그리 드물게만 보지는 않습니다. 지사님은 일상을 스쳐지나가는 사소한 모습에서도, 이족의 지배가 할퀴고 간 아픈 상처를 일일이 체감하시는 듯합니다.

이 책에는 컬러판 여러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물론 사진술 발달의 한계로, 찍힐 당시에 모노톤인 사진은 어쩔 방법이 없습니다만, 그 시절 특유의 세피아색채, 흐릿하게 빛이 바랜 귀퉁이 등이 그대로 표현된 도판들은, 텍스트 못지 않게 소중한 기록을 후대인, 독자들에게 남겨 주고 있습니다.



오 지사님과 함께 사진에 실린 분들은, 아무리 못난 후손들이라도 그 함자나 존영을 알아챌 만한, 정말 쟁쟁하신 순국 선열들이십니다. 오 지사님은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백범이나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성재 이시영 선생 같은 분의 함자를 예사롭게 거론하십니다. 그도그럴것이, 오 지사님이 어린 소녀였던 시절, 이들 까마득히 거룩한 애국 지사들께서 딸처럼 손녀처럼 돌보고 교양도 가르치셨던 환경이었으니 말입니다. 평생을 헌신하여 조국의 광복만을 도모하신 이 어르신들은, 그 마음씀도 이처럼 다정하고 자애로우십니다. 얼마나 공사에 다망하셨을 텐데도 말이죠. 우국지사들은 평소에 학문도 게을리하지 않고 연마하셨기에, 학식도 풍부하고 필체도 어쩜 그런 명필이 다시 없을 만큼 글에서 풍기는 혼과 얼이 누구 눈에도 두드러집니다. 그런 분들을 사사하신 오 지사님 역시, 얻다 내놓아도 고아한 품격이 느껴지는 멋진 필체를 선보이십니다.



오 지사님의 부친께서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선대 어르신들도 예외 없이 무장 투쟁 계열의 항일 운동가들이셨습니다. 모친 정현숙 여사는 비교적 최근에 타계하신 편인데, 여전히 우리 일반인들에게 그 함자가 낯설게 들리니 근현대사 교육의 부실함과 방향 없음이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실감합니다. 오 지사님께선 또 남달리 총명하시고, 운동 신경까지 빼어나셔서 당신이 직접 회고하시는 과거사 중 재미있는 대목이 꽤 많았습니다. 노령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귀중한 기록과 구술을 남겨 주신 것도, 유달리 맑고 청명한 정신에 그 육신이 그대로 조화를 이룸을 증명합니다. 이처럼, 대의를 위해 헌신한 영혼은 위인됨을 언제나 "승자"로 자리매김하게 마련입니다. 부정한 권력과 재물을 건사해도 사악한 자들은 언제나 건강도 나빠진 채 패자로 죽듯이 말입니다.


오 지사님은 평생을 교직에 복무하다 정년을 맞아 퇴임하셨습니다. 이렇게 불꽃처럼 올곧게 사신 분은 어떤 처지에서도 여한이 안 남는 정정당당한 마음과 뜻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으시고, 그 자체가 거대한 축복입니다. 문제는 우리들이죠. 어느 버스기사가, 오 지사님이 내민 "보훈대상자 카드"를 보자, "여자는 이런 것 안 될 텐데"라고 했답니다. 미국 같으면 전쟁 영웅이 모습을 드러내는 어느 공공장소에서도, 시민들이 기립하여 숭고한 애국심을 기리는 게 보통이죠. 하물며 노령의 애국지사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여자"라니요. 그 기사 욕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저 분별 없는 기사가, 다 은혜를 모르는 우리들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누가 누굴 나무라겠습니까. 오희옥이라는 함자를 들어 본 적도 없는 우리, 아예 들어보고자 노력도 않은 우리들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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