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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식사 - 위화 산문집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위화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허삼관 매혈기]로 부터이다. 가슴에서부터 발하는 감동을 미처 추스리지 못해 끝내 엉엉 소리내어 눈물 짓게 만들었던 그를 심장에 박아넣으며, [인생]이란 책으로 그 두번 째의 만남까지 이어갔다. 그와의 두번 째 만남에서 역시 나는 또 주책맞게 눈물로 가슴을 적셨고, 그렇게 그는 나에게 감동만을 심장 속으로 몰아쳐 왔다. 그의 쓰나미같은 감동에 무방비 상태로 있는 것이 오히려 감사한 행복이었을만큼 위화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무한한 축복처럼 여겨졌었다.
이번은 그를 만나는 세번 째이며 산문집은 처음이다. 소설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위화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엿본다는 것은 얼굴을 발그레하게 만드는 일인 것 같아, 산문집 읽기가 매번 조심스러웠으나 이번에는 용기를 내어 보았다. 이 책은 위화가 자신의 아들을 가지게 되면서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해서 자신의 어린시절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간다. 세 살이 되기 전의 그의 아들은 외출을 하기만 하면 택시를 잡아 타자고 말했다고 하고, 야단을 치며 벌로 집 밖에 내놓았더니 어느 날은 잽싸게 들어와 오히려 집 현관을 걸어잠궈 자신이 내쫓겨나 버린 적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한다. 그리해서 겹쳐지는 영상은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으면 밀밭으로 숨어들어갔던 위화의 어린시절의 추억담이다. 아버지의 노기가 사그라질 때까지 은신처인 밀밭에 숨어 있다 들어갔는데, 어느날은 금세 들켜버려 엄청 혼이 났다는 일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위화 아버지가 손수 만들어주시던 찐빵과 만두 이야기도 들려준다. 위화는 치과의사로 5년간 생활을 하다가 작가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한국 방문기도 실려 있어 반갑기가 그지없다. 그가 생각하고 있던 한국의 인상을 들으며, 그를 더욱 자세히 알게 되는 것 같다.
그가 진정한 책읽기라는 것을 한 것은 20대부터였다고 한다. 나 역시 늦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책읽기의 바다 속을 헤엄치기 시작했는데, 그와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다니 입이 헤벌죽해진다. 그 역시 고전의 중요성을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그가 읽었다는 빅토르 위고의 글이나 보르헤스의 글들을 나는 아직도 못 만나고 있으니 반성의 숙연한 시간을 가져본다. 장편소설을 쓰는 일의 힘겨움을 토로한 부분을 보면서 작품을 하나 탄생시킨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도 된다.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이 작가인 자신한테 말을 걸기 시작했다는 [허삼관 매혈기]는 정말이지 그의 작품 중에서 최고 걸작이라고 말함을 주저함 없게 한다. 1996년작인 그 작품의 발문과 중국어판 서문, 한국어판 서문, 독일어판과 이탈리아판 서문이 실려 있다. 이외에도 [살아간다는 것], [가랑비 속의 외침], [현실일종] 등 그가 쓴 작품들의 서문이 있다.
인간 위화의 삶이라던가, 생각들을 만나는 일이 조심스러웠던 것은 그의 작품 속에서 느꼈던 감동이 너무나 커서 작가 자신에게 가지는 이상이 커져버려서였다. 내 안의 그와 실제의 그 안에서 충돌하게 될 무언가를 만나게 될까봐 그를 알아가는 일에 거침없는 발걸음을 내어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그의 산문집을 덮는 시간, 실제의 그를 알아가게 된 이 순간이 무척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허세에 쩔어 있는 작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작가를 응원한다. 나는 위화를 좋아한다.
[인상적인 구절]
나는 내 작품이 점점 쉽게 변하고 있고, 점점 더 많은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시대의 변화인지 사람의 변화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그저 살아 숨쉰다는 사실과 살아 숨쉰다는 느낌을 더 좋아하게 됐고, 문학의 위대한 점은 바로 동정과 연민의 마음에 있으며, 이런 느낌을 철저하게 표출해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실험이 아니라 이해와 탐색이며, 형식상의 탐색은 형식 자체의 창조나 다른 어떤 표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인간의 마음 속으로 깊이 들어가기 위함이며, 인간의 내심을 표출하기 위함이지, 결코 내분비물을 표현하기 위함이 아니다.
- 중략- 앞으로 나올 작품 소게는 더 많은 의의가 담겨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그 의의는 영혼과 희망이 담겨 있는 작품을 쓰는 것을 말한다.
-208에서 209쪽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