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인 여자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엄지영 옮김 / 푸른숲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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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두에 -  [[  모든 것은 30년 전, 마을 공터에서 온몸이 토막 난 채 불에 탄 소녀의 시신이 발견되며 시작된다. 소녀의 이름은 ‘아나’, 사르다 가족의 셋째 딸이었다. 아나의 끔찍한 죽음은 그간 하느님의 보살핌 아래 살아가던 사르다 가족을 산산조각 낸다. 급기야 범인마저 잡히지 않고 사건이 미제로 종결되자, 아나의 둘째 언니 리아는 종교와 가족과 나라를 모두 버리고 타국으로 떠난다. “내가 믿음을 버린대도 얼마나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가족 중 유일하게 배교자가 된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해준 아버지와만 편지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동안 종교적인 이유에서든 아님 사회적인 이유에서든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낙태는 불법시 되며 , 해당 당사자는 죄인의 취급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어왔다.  한국의 경우는  최근에 와서에 헌법 제판소의 낙태죄 불일치 판결을 받아 내어 많은 여성드이 맘속의 낙인을 지울 수가 있었다. 아래는 그 해당 전문 이다. 


[[    한국에서는 2021년 법정 명령에 따라 낙태가 비범죄화되면서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2019년 4월에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형사상 범죄로 규정하는 것이 위헌이라고 판결하고, 국회로 하여금 2020년 말까지 관련 법률을 개정할 것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여성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숙고 끝에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임신 22주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낙태는 1953년 이후 계속 불법이었다. 낙태를 하는 여성들은 1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2백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낙태를 시술하는 의료인에게는 2년 이하의 징역형이 규정되었다. 강간 또는 근친강간으로 인한 임신인 경우, 임신으로 인해 산모의 건강이 위협받는 경우, 산모나 배우자가 유전성 또는 전염성 질환을 갖고 있는 경우에만 예외가 인정되었다. 기혼 여성은 낙태를 하기 전에 배우자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  Source from 휴먼 라잇 워치 . 


2019년 당시  천주교는 아래와 같은 입장문을 내고 생명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반대 입장을 내었다.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입장문 전문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낙태죄(형법 제269조 1항과 제270조 1항)의 위헌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헌법 소원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선고를 내린 데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선고는 수정되는 시점부터 존엄한 인간이며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존재인 태아의 기본 생명권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고착시키고 남성에게서 부당하게 면제하는 결정입니다. 낙태는 태중의 무고한 생명을 직접 죽이는 죄이며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라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Soure 의협신문 . 


하지만 세상은 다양성이 존재 하며, 이글 소설 주제에서도 나와 있듯이 수백년 동안 이어져온 사회적 관습과 이웃의 눈초리 , 그리고 해당 당사자의 의도치 않는 태아의 혹은 생명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당사지에게 지워져 왔기 마련이었다.  그 어떤 이유로도 , 이미 잉태된 태아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거부 할 수 없는 생명권 이었겠지만 ,  본인이 의도치 않게 발생한 결과에 대한 부정을 할 수 없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불법 적인 방법으로도 자신의 일상을 되돌려 놓고 싶은 마믐이 간절 하였을 터이다. 


다시 글의 주제로 돌아가면,  배경은 어느 마울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가족들은 어느날 아침 청전 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는다.  자식중 하나인 아니가 공터에서 심하게 훼손된 사체로 사지 절단된 채로 발견된 사건이다. 이사건으로 가족 모두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고 , 일부는 선망증과 아울러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다. 부친 알프레도는 이일로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었고 , 범인에 대한 수사가 미완된 상태로 남은 이래 약 30여년간을 흔적을 잧아서 그 만의 일기를 기록 한다.   


아래는 목차인데 인상적인 흐름은 사람들 이름으로 관점을 달리 본다라는 것이다. 저마다의 사실을 알고 있던 아님 그날의 기억과 전후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퍼즐 마추기라는 하는 듯이. 


리아 

 --  그것은 내가 생각 하고 싶은 것이자 믿고 싶은 것이다 . 하지만 나는 그것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될까봐 두렵다 그것을 그토록 굳게 믿는 다는 것이 이제는 믿지 않는 다는 증거가 아닌지 의심 스럽다. -  엠마위엘 카레르 . -- 


리아는 당시 받은 충격으로 이국으로 떠난다. - " 산티아고 데 코포스텔라 - 스페인 서북부 칼리시아 자치주의 주로로,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특히 유명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각지에서 피레네 산맥과 스페인 북부를 가로질러 산티아고 대ㅅ성당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


마테오

마르셀라

엘메르 

  -우리에게 알려진 사건들 뒤에는 우리에게 알려 지지 않는 다른 사건들이 있다. 그것들은 실제 사건들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게 되낟. - 베르톨브 브레히트 < 문학과 예술의 참여 >


홀리안 ;  신학교의 학생 , 신학을 공부하며 장치 신부 수업을 받는 줄이안 그리나 카르멘과의 사랑과는 다르게 우연히 않는 여름 켐프에서 안나를 만나 죄없는 생명을 잉태 하게 된다. 


카르멘 ;  안나의 언니 ,  모든것을 자신의 미래와 홀리안과의 같이 가느 길을 선택 하지만 안나 와 리아 동생 사이에서 갈등 하며, 안나의 이기적인 질투심이 결국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한다고 생각 , 아무도 모르게 무시무시한 계획을 실행에 옴기게 되고 , 그 일은 이후 약 30여년간 미궁에 묻히고 만다. 


다시 글주제로 돌아가면 아나의 아버지 알프레도는 결국 병환으로 숨지고 말지만 그의 손자가 다시 찾아와 그간 오랜 기간 그가 추적 하였던 사건의 단서들을 들고 다시 나타난다.  결국 , 이러한 비극은 한 가족사에 얽힌 비극 이기도 하고 , 자식이 다른 죽은 자식을 죽이듯 , 카인과 아벨의 아픈 상처처럼 어던 사실을 인지 하고 운명을 다햇을 알프레드 조차 카르멘 죄값과 , 신학교를 탈퇴 하게된 훌리안의 멋 훗날 고백으로 다신 표면에 오르게 되엇지만 이마저도 , 그땐 그렇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죄과를 애써 무마 하고 , 또한 자식들의 죄과를 같이 가져 가려는 부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족사를 되집어서 시간을 다시 되 돌릴수만 있다면 , 아마도 그 여름날 뜨껍게 사랑을 나누었던 안나과 훌리안의 과거는 다시 재구성 될 수 있었을까 ..  안나에게  이제는 편한 안식을 취하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축원을 보내 본다.   Written by E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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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헬레나에서 온 남자
오세영 지음 / 델피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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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두에 

『세인트 헬레나에서 온 남자』는 비슷한 시기, 동아시아와 유럽에서 발생한 ‘홍경래의 난’과 ‘프랑스 대혁명’이란 두 사건이 미묘하게 닮아있음을 발견하고 이 두 역사적 사건의 연결고리를 찾아보려고 한 시도로부터 시작된다. 바로 그 열쇠는 ‘세인트 헬레나 섬!’


주인공인 조선 청년 ‘안지경’은 홍경래의 최측근으로 활약하다가 난이 실패로 돌아가자 관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천신만고 끝에 세인트 헬레나 섬에 이른다. 세인트 헬레나 섬은 대서양 한복판의 작은 섬으로 나폴레옹의 유배지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 섬에서 ‘안지경’은 운명처럼 나폴레옹을 만나게 되는데……]] 


작가적 상상력을 빌려 조선에서 발생 하였던 홍경래의 난과  이국 프랑스 대혁면의 연대기를 맞추어 팩션인듯 흘러 내린 소설은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간략한 역사적인 연대기를 살펴 보자 


" 홍경래의 난(洪景來ㅡ亂)은 1811년(순조 11년) 음력 12월 18일(양력 1812년 1월 31일)부터 1812년(순조 12년) 5월 29일(음력 4월 19일)까지 홍경래·우군칙 등을 중심으로 평안도에서 일어난 넓은 의미에서의 농민 반란이다.'"  Source ;나무 위키 


" 홍경래가 뜻을 결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당시의 국정에 비위가 거슬린 그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각지의 부호·명사들을 농락하면서 기회를 보았을 것이다. 그는 가산(嘉山)에 있는 재략이 풍부하고 풍수복좌를 업으로 하는 우군칙, 가신의 역속(驛屬)이며 졸지의 부호로 무과에 급제한 이희저(李禧著), 문재(文才)가 뛰어난 곽산의 진사 김창시(金昌始) 등을 심복으로 하여 거사에 참여시켰으며, 태천의 김사용(金士用), 곽산의 홍총각개천의 이제초(李濟初) 등으로 지휘부를 구성하고 그 밑에 평양의 양시위(楊時緯), 영변의 김운룡(金雲龍) 등을 비롯한 장사들을 모두 선봉장 겸 군사 지도자로 하였다. 이 장사들은 주로 홍경래의 조직활동에 의해 봉기의 인근 지역뿐 아니라 멀리 평안도 남부 및 황해도로부터 모여든 인물들이었으며, 봉기 당시 30∼40명 가량이 적극적으로 항쟁하였다.


박천의 김혜철(金惠哲), 안주의 나대곤(羅大坤) 등 상인들도 아랫사람들을 거느리고 참여하였다. 상인들은 특히 봉기 준비 단계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군졸을 모으는 데 절대적인 성과를 올렸다. 주도 세력은 또한 철산의 정경행(鄭敬行), 선천의 유문제(劉文濟) 등 청천강 이북 각처의 권력을 쥐고 있는 명망가들과 행정 실무자들을 포섭하여 내응세력으로 삼았다. 그들은 봉기군을 맞아들이고 자기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였다. 가산의 대령강(대령강) 인근 다복동(多福洞)에 비밀 군사 기지를 세워 내응세력을 포섭하고, 거사하기 전부터 이곳에 옮겨와 금광 채굴을 구실로 유민을 꾀어 장정 일꾼을 모아들였다.

이리하여 준비를 하면서 기회를 보다가 1811년(순조 11년)에 종래에 없었던 큰 흉년이 들게 되어 민심이 흉흉한 틈을 타서 궁민(窮民)을 끌어들여 스스로 평서대원수라 칭하고, 우군칙을 참모로 한 본대는 가산·박천을 함락시킨 후 한양으로 남진케 하고, 1대는 김사용을 부원수, 김창시를 참모, 박성간(朴聖幹)을 병참장(兵站長)으로 하여 곽산·정주를 점령하고, 선천의 이서의 여러 고을을 함락시키고, 안주를 공략할 방책으로 거병하였다. 그런데 거병이 막히지 않고 잘 이어갔다. "   Source ; 위키 백과  


아래는 프랑스 대혁명 시기 이다.

"  프랑스 혁명(프랑스어: Révolution française [ʁevɔlysjɔ̃ fʁɑ̃sɛːz]영어: French Revolution, 1789년 5월 5일 ~ 1799년 11월 9일)은 프랑스에서 일어난 시민 혁명이다. 프랑스 혁명은 엄밀히 말해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도 함께 일컫는 말이지만, 대개는 1789년의 혁명만을 가리킨다. 이때 1789년의 혁명을 다른 두 혁명과 비교하여 프랑스 대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프랑스 혁명 기념일은 매년 7월 14일로 국경일이자 공휴일이다.[1] 프랑스 혁명의 발단이 된 바스티유 감옥 습격이 발생한 1789년 7월 14일을 기리기 위해서 이듬해 1790년 7월 14일에 진행된 혁명기념 축제가 그 기원이다."    source ; 위키백과  


" 프랑스 사회는 절대왕정이 지배하던 앙시앵 레짐(구체제) 하에서 18세기에 모든 선진국에서 나타난 일반적 특징처럼 자본가 계급이 부상하고 있었다. 또한 미국 독립혁명의 영향으로 자유의식이 고취되어 있었다. 이런 가운데 발생한 심각한 경제불황은 인구의 절대다수(98%)를 차지하던 평민들의 불만을 가중시켰으며 마침내 흉작이 발생한 1789년에 봉기하게 되었다. 시민과 농민의 개입으로 민중혁명의 단계로 변화된 이 혁명은 3년간에 걸쳐 모든 체제를 전복시켰다. 혁명 소식을 접한 피지배 민족들이 자유와 독립 쟁취 의식에 고취되자 여러 민족을 거느린 유럽의 군주들은 불안감을 느꼈다.[2] " Source ; 위키백과 


나폴레옹의 세인트 헬레나의 유배시기 


"  세인트헬레나(영어: Saint Helena)는 앙골라 서쪽 해안으로부터 2,800km 떨어진 남대서양 가운데에 있는 섬이다. 면적은 425㎢로, 부산광역시 기장군(218.04㎢)의 2배 정도가 되며, 경기도 남양주시(458.535㎢), 평택시(458.2㎢) 보다는 약간 작다. 영국의 해외 영토인 세인트헬레나 어센션 트리스탄다쿠냐 속하며, 수도는 제임스타운이다. 나폴레옹이 이 섬으로 유배온 것으로 유명하다." Source ; 위키백과 


나폴레옹과 세인트 헬레나[편집]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엘바 섬을 탈출한 후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자, 빈 회의는 그의 신변 처리를 영국에 일임하였다. 영국은 나폴레옹의 망명 수용을 거부하고 보호를 명목으로 세인트 헬레나 섬에 가두기로 하였다. 나폴레옹은 1815년 10월 세인트 헬레나에 도착, 1821년 5월에 사망할 때까지 섬 중앙의 롱우드 하우스에서 살았다. 영국은 허드슨 로 총독에게 나폴레옹의 감시를 지시했다. 이를 “유배”라고 표현하나, 이는 재판이나 조약에 근거하지 않은 불법 구금이었으며, 허드슨 로는 나폴레옹에게 온갖 가혹행위를 자행했으며 심지어는 나폴레옹이 병으로 몸져눕자 나폴레옹의 주치의를 영국 본토에 강제로 내보냈다. "   Source ; 위키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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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의 난는 1812년도에 막을 내렸으나 , 그 주인공 중 하나인 최측근 안자경은 목숨을 부지 하여 이영선을 타고, 남중국 , 대서양 항해를 하였으며,  어디에도 기착 할 수 없는 신분 이었음에도 불구 하고 , 찰스턴 경의 도움으로 이국의 향해를 계혹 하던중 ,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또한 조선 대 혁명과 무관 하지 않다라는 전제 하에 , 세인트 헬레나 섬에 기착 우연 찮게도 나폴레옹을 마주한 안자경과 황제를 급진 자코뱅당파로부터 구해준 댓가로 받은 금괴를 바탕으로 다시 중국의 대상단의 거상 행수로서 조선을 다시 찾은 그의 감정은 요동 친다. 


그 엤날 , 정주성의 함락올 목전에 두고 , 전우들을 배반 하여 , 이제는 어였던 포도청의 종사관이 된자와 벼슬아치 그리고 , 행수 상단의 상군 노릇을 하는 그들을 좌시 할 수 없는 안자경과 그의 연인 홍차련을 다시 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까지도 


한편의 대하 드라마 같기도 하고, 태평양과 대서양 그리고 유럽과 중극의 문물을 오고 가며 다시 조선이라는 현실의 바탕에서 갈등 하여야 하는 주인공은 역성 혁명고  농민 대혁명의 볼쏘시게가 되기를 다짐 하며 , 한 많은 가슴을 움켜 쥐고 , 이양선의 도움을 받아 다시 마포 나룻터를 벗어 난다.  


당시 평안도 서북 지방의 만란을 소재로한 홍경래의 난이기는 하지만 한편 어느 정도 성공적인 거병 동기를 내새웠으나 , 이해 집산들의 사리 사략과 당리 당략에 따른 결집도에는 분명 문제가 있어왔고 , 시간과 물자의 한 계점,  일사 불란한 거병의 통제의 시기를 놓쳐 버린 점은 역사적인 사료로서도 한번 검증 해볼 만한 일이다.  


다시 올수 없는 거사의 날이 가까워질 무렵 , 그들 혁명자들은 그날 그밤  어떤 생각들을 하였던 것일 까 , 역사는 어쩌면 숙명과 운명의 날줄과 씨줄 처럼 한치 오차도 없이 얽여져 있어 ,  혁명의 태동을 예고 하기도 하도 , 실패 또한 예견 되는 것이기도 하는 것인가.    Written by E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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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간 고등어
조성두 지음 / 일곱날의빛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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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두에 ] 

1866년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에서 동남구 북면에 걸쳐 있는 해발 579m 성거산에는 신앙의 박해를 피해 숨어살던 이들이 있었다. 화전과 옹기를 굽고 살던 이 산골 마을에 고등어를 들고 온 소년이 등장하며 피바람이 예고된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연상하듯 소나기와 함께 산골소녀 초향과 봇짐장수 아들이자 간잡이 소년의 순수한 사랑이야기는 아름답지만 비극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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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스토리는 3대에 걸친 여인의 구한말에서 근대에 이르기 까지 약 150여년을 걸친 대서사 이다. 지역도 구한말 조선과 중국으로의 이주 그리고 근대 한국 6.25 전쟁을 겪으면 격동의 세월 속에서 살아 남은 여인들의 이야기 ㅡ 디아스포라 ,  이국으로의 삶을 전개 하며 마지막 미국에서의 삶을 마무리 하기 까지의 지나한 세월들  


글의 제목이 고등어가 들어간 까닭은 , 1대 주인공 여인 초향과 붓짐 장수의 아들 원이와의 사랑 이야기가 시초이고 원이의 엄마는 고등어를 염장해 파는 어머니가 간접이 였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 하며 고난 박해의 삶을 살아 왔던 시절 ,  어쩌면 단순한 소설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가족의 혹은 한 인간이 써내려간 끝간데 없는 고난의 세계사이다.  


다시 책 내용으로 돌아 가자면 -- 


[[ 곧 집안 내부 고발자로 인한 인간 사냥과 가정의 풍비박산. 당시의 사건으로 오늘날 무수한 주검이 묻혀있는 제1, 제2 돌무덤이 있는 성거산의 진실을 캐는 듯, 서사는 1801년 신유년, 1839년 기해년, 1866년 병인년을 오가며 충청남북도와 경상북도 일대에서 벌어진 순교의 현장을 생생히 담았다. 과정에서 소설은 보부상단의 거래를 비롯 사랑의 약속과 신뢰라는 한 측면을 부단히 다룬다.]] 


1대 여인 초향 

2대 여인 송이 (초향의 딸 ) 

그리고 3대 여인 유화 ( 초향의 손주 ) 로 이어지는 모진 목숨들은 우리네 서글픈 한의 역사와도 맥락이 닿아 있다. 


천주교 박해에 대한 간략 역사적 기술이다. 


신유박해(辛酉迫害)는 1801년(순조 1년)에 발생한 조선 천주교 박해 사건이다. 시파·벽파의 정치 투쟁에서 시파 제거를 오랜 숙원으로 한 벽파가 천주교 탄압을 명분으로 일으킨 사건이다.


천주교 전래


종교가 아닌 학문으로 받아들여진 천주교는[1] 보유론(補儒論)적 관점에서[2][3] 실학이라는 흐름과 맞물려 학인들의 탐구의 대상이 되었고 부패한 지배체제에 반발한 민중속으로 퍼져나갔다.[4] 북경에서 조선 최초로 세례교인이 된 이승훈이 귀국한후 은밀히 신앙모임을 만들었으나[5] 1785년에 형조에 적발되며 유생들의 거센반발이 있었다.(명례방 사건) 이 사건으로 김범우가 유배지에서 사망하고 모임을 이끌던 이벽이 문중의 압박에 못이겨 자진하면서 '명례방공동체'는 와해되었다. 곧 조직이 재건되어 교세가 성장했으나 제사금지라는 교리속에 배교자가 속출하였고, 이 교리는 천주교 탄압의 좋은 명분이 되었다. 1787년 반회사건으로 천주학 서적이 색출된후 불태워지고 탄압의 강도가 점차 증가하였다.


사교철폐

신해박해(1791년, 정조 15) 이래 “정도(正道)인 유학은 ‘사학’(邪學)인 천주교를 소멸시킬 것”이라면서, 천주교에 대해서 온건한 정책을 써 오던 정조가 1800년 8월 18일(음력 6월 28일) 승하하였다.[9] 1800년 8월 23일(음력 7월 4일)에 순조가 11세의 어린나이로 왕위에 오르면서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시작으로[10] 노론 벽파가 정권을 장악하였다.[11][12] 이후 벽파가 정순왕후를 움직이면서 사학엄금을 명분으로 남인과 시파에 대한 숙청작업을 시작했다.[13][14] 1801년 2월 22일(음력 1월 10일) 정순왕후는 천주교 엄금에 관해 하교를 내렸다.[15] 그 내용은 “천주교 신자는 인륜을 무너뜨리는 사학(邪學)을 믿는 자들이니, 인륜을 위협하는 금수와도 같은 자들이니 마음을 돌이켜 개학하게 하고, 그래도 개전하지 않으면 역률로 처벌하라”는 것이다.[16] 정순왕후는 이 하교에서 오가작통법의 적용을 언급하였는 바,[17][18] 다섯 집 중 한 집에서 천주교 신자가 적발되면 모두 처벌하는 가혹한 연좌제를 예고한 것이었다.


남인숙청

사교철폐는 빌미일뿐으로 최우선적인 목표는 선왕 정조의 총애를 받던 이가환권철신, 정약용 3인의 제거에 있었다.[28] 이가환과 권철신은 채제공 사후에 남인을 이끌고 있었고 정약용은 남인을 이끌 차세대 주자였기 때문이다. 특히 이가환은 반드시 죽여야 했는데, 이는 이가환의 가문이 조상때부터 있었던 노론 벽파와의 악연 때문이었다. 이가환의 증조부 이하진은 홍문관 제학을 지냈는데 1680년 경신환국 때 집권한 서인들에 의해 유배를 가서 2년뒤에 억울하게 죽었다.[29] 또한 이가환의 종조부(從祖父)[30]중 한 사람인 이잠(1660~1706)은 숙종때 노론을 공격하다 장살당했다.

이런 집안 내력은 그 동안 두고두고 공격대상이 될 정도로 노론이 가장 기피하는 인물이 이가환이었다.[31] 또한 그는 당대에 제일가는 천재로 박학다식함이 동서양의 학문에 막힘이 없었고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요직을 두루거쳤고, 정조가 생전에 오회연교(五晦筵敎)를 통해 이가환을 재상으로 등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친적이 있었다.[32] 이가환이 1791년 진산사건 직후 배교하며 천주교 탄압에 앞장섰다는 사실을 노론 벽파도 알고 있었으나 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노론 벽파가 원했던 것은 이가환이 천주교를 버렸다는 증거가 아니라 그의 목숨이었다.[33] 이가환과 권철신은 모진 고문 끝에 4월 8일에 옥사하였다. 시신은 목을 벤후 길거리에 버려졌다.[34]


박해 진행 일지

3월 17일 - 천주교 신자임이 밝혀진 은언군의 부인 송씨와 며느리 신씨가 사약형을 받았다.

4월 8일 - 이승훈(충청도 예산군에 유배 중이었음)·정약종·최필공(崔必恭)·최창현(崔昌顯)·홍교만(洪敎萬)·홍낙민(洪樂敏)이 서대문 형장에서 사형되었다.[60]

4월 24일(음력 3월 12일) -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의금부에 자수하였다. 그는 황해도 황주로 갔다가 한양으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4월 28일(음력 3월 16일) - 김건순이 체포되었다.

5월 31일(음력 4월 19일) - 주문모가 한강 새남터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6월 1일(음력 4월 20일) - 김건순이 서소문 밖에서 참수당하였다.

6월 30일 - 은언군이 유배지 강화도에서 사약을 받고 사사되었다.

7월 2일(음력 5월 22일) - 강완숙과 자신이 전교한 궁녀들이 함께 서소문에서 참형으로 순교하였다.

10월 4일 - 홍필주가 서소문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10월 29일 - 황사영이 충북 제천에서 체포되었다.

그 외에도 고광성(1839년 기해박해로 순교한 고순이의 부친)이 사형당하다. 


다시글주제로 돌아 가면 , 장소는 도촌 ( 1860년대 부터 1920년대 사이에 세워진 천주교인 산속 마을 교유촌 중 하나) 에서 부터 시작 하여 외진 산속 생활을 이어가다 병인 박해 , 신유 박해를 피해 더욱 산속 깊이 숨어든 어느 신자 들의 가슴 서린 이야기들 , 마치 떠살이 ( 평생 물살을 헤치며 살아가는 고등어는 대표적인 떠살이 물고기이다) 를 빗댄 백성들의 고난한 삶을 3대에 걸친 여인들의 귿건함, 거룩함으로 이루어진 억척스런 조선와 타향살이 상하이에서의 서구 열강들의 대척점에 서있는 힘없는 민초들 , 중일 전쟁으로 피하지 목한 피붙이 들은 다시 떠돌이로  자식의 하나는 나성으로 또 다른 이는 다시 조선으로 스며 들며 목숨을 부지 한다.   


30년의 세월이 지난하게 1945년 해방이 되었지만 또다시  1950년의 한국 전쟁으로 피란민 생활을 해야 했던 가족들 , 그들 사이 사이 삶의 지탱이 되어 왔던 기술은 다름아닌 , 그 깊은 산속에서도 구워 먹던 고등어 구이 이다. 혹은 찜이던가 .. 일제시기 경성의 내노라 하는 멋쟁이들이 모였다는 모던 걸과 모던 뽀이의 거리에도 근대의 바람은 불어 왔고, 짤은 스커트와 반바지에 정구 ( 테니스)를 치던 모던걸 송이의  타향살이 마지막 종착지로 떠난 미국에서의 이별은 뜻 박에도 낙마사고 이다. 이미 독일 아저씨 피터와의 막역한 사이 . - 그녀 송이의 마지막 묘비명은 이렇게 되어 있다. " 아 , 미국도 좁다. 나 먼저 가마 , 엘리사벳 송이 박  1892.9 - 1978.12. 24  - 신시내티 오크힐 묘지 .  그 어미의 어미 , 그리고 그어미를 산속에서 살뜰이 제몸처럼 보살펴서 새생명의 씨앗을 잉태 하게한 춘삼 까지 ,  그녀들이 내리 거쳐온 세월 만큼이나 이땅의 역사의 골곡에 상흔이 묻어 있다..  Written  by  E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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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인생 앤드 앤솔러지
권제훈 외 지음 / &(앤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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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두에 ,  

[[  우리에게 ‘집’은 더 이상 평온과 휴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쁜 하루를 보낸 뒤 지친 몸을 누일 수 있는 따뜻한 공간, 치열한 일상 속에서 나를 지켜 주는 든든한 울타리, 친밀한 사람들과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보금자리. 우리의 일상을 보호해 주리라 믿었던 집이 언제든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근원적인 불안이며 공포이다. 이렇듯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는 ‘집’의 의미를 소설적 상상력을 통해 살펴봐야 할 시점이 아닐까? ]]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사는 사람중에 ,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한 존재를 생각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듯 하다.  사는 지역과 , 위치에 따라 아파트의 평형과 가격이 정해지고, 자가인지 , 전세 인지 혹은 월세 인지에 따라 사는 등급이 ? 묘하게도 나위어 지기도 한다. 더군다나 사정이 어려워 임대 아파트에라도 사는 처지이면 보통 사람 취급을 받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주변의 20대 청년들은 어떠 할까, 금수저로 혹은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대부분 직장 초년 생들인 그들은 대부분의 직장들이 수도권및 서울에 몰려 있는 바람에 , 어쩔수 없이 근처 숙소를 구하게 되는데 대부분 엻악 하기 짝이 없는 고시원등이거나 상가를 개조한 원룸인 경우가 많다. 


판교등지에서 IT 분야로 입사한 초년생들은 높은 년봉으로  처음부터 , 잘 갖춰진 빌트인 ? 원룸 / 투룸에 입주 하는 경우도 많지만 , 대부분의 청년 세대 들이 그러한 것은 아닐 것이다. 


30-40대로 올라가면 사정이 나아질듯 하지만 , 이역시도 아이들의 육아와 교육 과정에 진입 하는 집이라면 한쪽은 벌어서 생활비를 써야 하고 , 한쪽은 벌어서 청약 적금 붙다가 , 다행스럽게도 수도권 아파트 라도 당첨이 되면 운이 좋은 줄로 생각하며 살아 간다. 


서민들읜 삶은 이전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 주택의 자가 보급 율은 이미 한국은 100% 를 넘어서도 있는 마당에서도 전세 난민과 월세 난민이 넘쳐 나고 있는 일들은 , 소수의 다주택자의 지위에 따란 불평등의 재구조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  그도안 이어져 왔던 주택 수요와 공급 그리고 적절한 지역적 배분이 생각 처럼 잘 이뤄지지 않는 부분도 많다. 거기 더해서 , 시중 금리와 전 세계 환률에 따른 변동성을 모두 알고서 투자 에 나서기는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정책적인 면을 보앙도 지난 수년 혹은 수십년간 되될이표 처럼 부동산 정책에 울고 웃기도 한다. 그리고 지역 개발의 지하철 혹은 도로의 확중, 기번 시설과 산업단지의 호재에도 주변 부동산은 움직이는 재화 이므로 누구도 앞서서 예단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시 글주제로 돌아간다면 , 신혼 부부라면 누구나 꿈꿀만한 멋지 뷰와 인테리아가 있는 아파트를 선호 하지만 현실적인 벽은 너무나 높다. 자신의 일자리와 상관없이 벌어 들이는 소득에 맞춰 이사를 가거나 학군을 선택 하여야 하는 일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아주 기본적인 선택적인 일들이 되어 온지 오래이다. 


최근 신문 지상을 오르내리고 있는 깡통 전세와 전세 사기범들 , 그리고 공모한 바지 사장들은 극소수의 일부만의 폭리를 위해 , 일반 다수의 피땀 흘려 벌어 놓은 전세자금을 홀라당 떼어 먹고는 잠적을 감춰 벌인다. 


안전 장치를 강구 한다 하더라도 , 기본 원칙만으로 전세자금 대출을 해주는 HUG같은 SH  LH 공사들의 보증 제도 또한 허점이 있어 이를 이용한 깡통 사기에 국가의 세금이 동원 된다는 사실에도 아연 실색 할 따름 이다.  공적 자금에 대한 불량 채권의 회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 일반 은행 처럼 대손 충담금으로 손해 비용을 산정해서 대차 대조표에 부가 하여 처리 하면 , 제로섬 게임이 되는 것일까 . 


보다 촘촘하고 시스템적인 통계 치가 필요 한데도 , 그간 부동산 통계치의 다수가 허수였다라는 것이 감사원의 감사에서 밝혀 졌어도 떳떻하게 거리를 활보 할수 있는 자들이 오히려 역적이 아닐까 생각 해본다. 


대한민국만의 독특한 전세 시장의 시장 경제화와 맞물려서 , 환률과 금리 그리고 주변 국들과의 커플링에 따른 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새로운 주택 시장의 재편성이 도래 할 날도 오리라고 기대해 보는 것은 기우일까 . 


혹자는 그러한 주택과 토지 시장의 변동성이야 말로 아는 사람에게는 돈을 벌 수 있는 그것도 아주 많은 기회를 제공 한다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라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래서 현제 시점 그렇게도 많은 반전세 빌라와 다세대 주택 들이 동 전체로 경매 시장에 떠리로 팔리우고 있다..  


당사자인 어떤 자들은 과련 이사실을 어떨게 받아 들여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Written by E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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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하우스 - 한국 드라마 EP 이야기
김일중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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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와 케이블 TV를 통해서만 드라마를 볼 수 있었던 시대를 지나 티빙, 웨이브, 왓챠,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애플티비플러스 등 OTT를 통해서도 드라마를 소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게다가 넷플릭스가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시작으로 2019년에 드라마〈킹덤〉과 2021년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통해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이에 글로벌 OTT들은 제2의 〈오징어 게임〉의 탄생을 기대하며 한국 콘텐츠 업계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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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리마 , 그리고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알수 있는 OTT의 여러 제목들,  오징어 게임을 필두로 , 카지노, 파칭코 , 이상한 변호가 우영우 ,  더 글로리, 최근의 무빙까지 ,  


이전의 방송 극화작업의 테두리 안에서라면 표현의 수위 라던가 , 드라마의 연결성과 자유도 특히나 , 이러한 작품을들 전두 지휘한 사람들의 크리에이터들이 , 자막이나 마지막 연출 화면에 제대로 크랭크인 되어서 올라가본 적이 별로 없다라는 사실이 놀라웁다. 


수직적은 조직 문화와의 결별 , 그리고 수평적 자유 분방함과 이제는 먼화와 웹툰에서 오히려 원작을 찾아 좋은 작품을 각색 하는 문화의 양방향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 


음악회에 가면 ,아름다운 관현악 현악 , 그리그 금관악기등의 조화로운 음율을 들을 수가 있는데 이는 가 단원들의 노력도따르지만 교향악단의 지휘자의 역할이 크다. 드라마의 제작도 이와 같이서,  작가의 대본 부터, 이에 맞는 배우들을 오디션을 거쳐서 선발하고 , 일정에 맞는 로드케이션 과 셋트장 설치를 하며, 기간에 따른 장르의 길고 짧은 길이의 몇 부작의 대미를 장식 할 것까지 모든것이 EP의 총괄아래 이뤄진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EP , Executive Producer 의 약자이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 이다. 

여기 이책자에는 소개된 10인의 EP가 있다. 같이 장르별 작품들도 소개해 본다. 


윤신애 ; 개와 늑대의 시간, 인간수업 , 글리치 등 제작 

이동훈 ; 엔터미디어픽처스 대표 - 재미 한인 프로듀서 , 

 - 시티 헌터 , 슈츠 , 파친코 , the good doctor 

- 한국인으로서 미국에 거꾸로 , 드라마의 장르와 스토리라인을 제작 배급한 장본인,  더 굿닥터는 이제 시즌 6를 제작 돌입 하고 있다. 특히나 일반적인 병원물의 전개 방식 과는 다른 주인공의 1;1 대응 부터 도입부분부터 바짝 긴장감을 더하는 스토리 전개자체로도 매회 흥미 진진함을 선사 한다. 아직 보지 못한 분들은 꼭 보시길 ,, .. 


박민엽; 길픽쳐스 대표 

- 스토리브리그, 소년 심팜, 더 패뷸러스 등 , 이중 소년 심판은 촉법소년의 법정 판결을 다룬 작품으로서 배우들의 연기도 일품이엇지만 선을 오가는 스토리 텔링도 좋은 작품이었다..  


변승민;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대표 얻너 

-지옥 , DP, 몸값 등  

- 이분의 경우 영화 산업으로 일을 시작 하여 영화와 드리마ㅡ 극장과 텔레비젼, 스마트 기기의 경계가 사라진 미디어 환경에서 프로듀서가 어떤 시각으로 어떤 방식으로 콘텐츠를 기획 하고 제작 하는지, EP로서의 중요도는  어떤 점인지가 궁금한 일이다. 


우리나라 몇년 사이 한국 영상 콘텐츠 산업변화의 큰 에너지와 계기는 넷플릭스를 제일 첫손으로 꼽을 수 있는 사건이다... 


일반 극장에 올리지 않아도 시청 뷰가 불과 몇 주만에 수천만명 수억 명이 되는 신기함, 그와중에 다른 작품의 릴레이 데뷰작이 되기도 하고, 할리우드 배급 방식 과는 다른 OTT만의 시장 게임에서 처음에는 한국 제작자들이 서툴렀던 작품 IP에 대한 지적 재산권 분야 또한 뜨거운 감자로 남게 되엇다. 


이제는 제작환경이 보다 자유로와 져 , 왭툰 작가와의 협업과 지면에 실리지 않는 부분의 미세한 스토리 텔링 까지도 시즌 드라마에 가능한 지점에 도달 한다.


한석원 ; 하이지음 스튜디오 대표 

- 이태원 클래스 , 런온, 종이의 집 등  , 수년전 유행했던 드라마중 하나인 이태원 클래스 또한 젊은 층의 문화적 분출구로서 이태원지역 들 핫 플레이스롤 만드는데 일조 한것을 부인 할 수 없다. 

-한국적 지형과 맛과 식당, 그리고 게임 체인저들와의 피튀기는 경쟁은 드라마 자체를 놓고 보더라도 손색이 없고, 원작과의 비교에서도 사실감이 상당히 드러난다. 


특히나 , 종이의 집읜 이전 스페인 드라마의 리메이크 작품이란 점에서도 전셰게 드라마 시장은 이젠 양방향 소통의 창고또한 원할이 이행 중인 듯 하다. 


김희열 ; 팬엔터테인트 부사장 ㅡ 드라마 부문 대표.

- 겨울연가 , 동백꽃 필무렵 , 라켓 소년단 등 . 

- 일본에 대대적인 아줌마 신드롭을 일으킨 대표적인 한류 작품 - 겨울 연가  - 지금도 이작픔으로 남이섬의 관광객 숫자는 줄어 들지 않고 있다고 한다. 


김동래 ; 래몽래인 대표 

- 상귬관 스켄들, 시맨틱 에러 , 재벌집 막내 아들 등 제작사 . 

 - 드라마의 IP전략을 제대로 이끌고 나가는 대표 , IP를통한 부가 사업이 가능 하였고, 해와 판매 수익은 시간이 지나도 들어올수 있다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이밖에도 , 신인수 - 빅오션이엔엠 

 - 그해 우리는 , 내일 , 너의 밤이 되어줄께 등 제작 


이재문 ; 히든기퀀스 대표 

- 구해줘  돼지의왕 ,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등 제작  - 한국형 새드 스릴러 작품중의 하나인 돼지의 왕은 학폭을 배경으로 불행했던 어린시잘의 상황속에도에서도 특이한 장르를 개척한 공로가 크다. 

구해줘의 경우에도 왭툰이 원작이다. 


이민석 ; 와이낫 미디어 대표 

- 전지적 짝사랑 시점, 오피스워치, 오늘부터 계약연애 등 제작 , 

-유튜브, 페이스북을 기번으로 한 숏폼 플렛폼에 아이디어를 입힌 작품들 ,  이쪽 제작사의 특징이로는 기술 기번한 회사라는 점이다. 프스트 프로덕션과 음악제작팀도 별도로 잇다. 이는 전적으로 온전히 자신만의 IP를 창출 하고자 하는 대표의 의지 이기도 하다. 


- 기존 방송 미디어의 문제점을 극복 하는 방식으로 가볍고 각 세대별 맞춘 창작자의 도입으로 활기를 띠는 방식이다. 

- 좀더 풀이하면, ' 제곧내'  제목이 곧 내용이라는 말이다.  무조권 직관적을 선호하는 편 , ,제목만 보아도 알수 있는 작품들 , 애들 들면 < 사당보다 먼 의정부 보다 가까운 >  < 오피스 워치 > < 전지적 짝사랑 시점>등이 그러하다. 


이젠 바야흐로 한류는 진화 하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드라마의 부문읜 앞도적인 창발적인 사고와 다양성을 기반으로한 다면적인 문화 현상이라고까지 할 수있는 만화 ㅡ 영상 영화, 콘텐츠 ,  왭툰 , 소설 , 미디어 , 1인 방송국 ,  유튜브 , 페이스북등 . 


가능한 모든 매체에서 빠르게 그리고 더 전파력있게 공중파를 앞도 하는 시장이 도래 하였고 이젠 그 시작점에 서 있다. 인공 지능 AI  EP 까지 합세 하는날이면 과연 어떤 모양의 드라마 문화 컨텐츠가 지구상을 휘감을 지 상상 하기 어려운 마래이다.. 


약 수년전 BTS가 발돋음 하게 기반을 뛰워준 매체는 라디오도 아니고 지상파 방송의 채널도 아니 엇다. 유튜브속의 음원 과 절제된 동작의 춤과 ,  새로운 싱어 송 라이터의 탄생을 그 시대 그 새대들이 제대로 알아 보았을 뿐이다.  약 4- 50 여년전 비틀즈가 영국을 떠나 미국이라는 시장을 통해 전세계 미디어로 전파 되었듯이 말이다..  제각각 제작 방식와 스토리 접근 방식이 다른 10여명의 EP들의 이야기들은  우리들의 영상 선택권을 보다 폭 넓게 가져 갈수 있을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그리고 그 후예들이 더욱 청출 어람 하였으면 좋겠다.. 


이미 전세계 많은 시청자들은 더빙이 아닌 한국어ㅇ 대사와 노래를 들르며 오히려 자막으로 커뮤니 케이션이 가능 하다..  바야흐로 One -World 이다.  Written by E D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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