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부인이

손끝으로 종이를 넘기며

글자로 그린

소식을 읽고 있네

 

변하지 않는 표정 속에

비스듬히 앉은 채로

낡은 의자처럼

삐걱거리며

<이선욱 -우편>

 

시인의 말 :타이프로 친 시도 있고

              시로 친 타이프도 있다.

 

 

 

 

 

 

 

 

풍경이다. 손 대면 바스라질 듯 아슬아슬한 평온을 드러낸 채 별일 아니라는 듯 미소를 띠고 있는 풍경이다.

불룩해진 배가 신경쓰여 한껏 공기를 들여마시고 홀쭉해진 배를 보아달라고 눈짓하는 간절함 같은..그런..

그렇다고 억지스럽거나 위장된 풍경이라는 말은 아니다.

 

처음 시집의 출간소식을 듣고, 아니 시집의 제목을 듣고 음란마귀에 휩싸인 영혼임을 인증이라도 하듯, 뭐라고? '탁탁탁'이라고? 되물으며 어느 음침한 방구석을 떠올렸다.

시집을 받고 그 표지를 본 순간 맥이 풀린다.

아니 이건,

 

토이크레인의 색과 닮았어.

 독한연애의 도발적인 색도 아니고,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의 붉은 색도 아닌..

뭔가 배신당한 느낌적인 느낌?

 

 

 

 

 

 

 

 

 

 

그러니까..박현욱의 "동정없는 세상"을 읽었을 때의 느낌 같은 것이었다.

 

"한 번 하자."라는 도발적인 말로 시작하는 그 소설을 읽으며 얼마나 낄낄대며 공감했던가. 첫 문장의 강렬함이 이야기 속에 녹아버려 중간중간  "한 번 하자."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한 번 해라 쫌."이라고 대꾸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었다. 재밌었다.

그런건가?

 

 

 

 

 

 

두번째 시, 표제와 같은 '탁탁탁'의 뒷부분을 읽는다.

 

(....)

사방으로 길이 없는

벌판의 한가운데였지

끊이지 않는 서술의 소리를 따라

손끝에는 굳은살이 피어났고

그렇게 타자를 치던 어느 날이었다네

어둠에 날리는 글씨들은

점점 더 흐려졌고

타자기에선 부서진 낙타의 뼈가

흘러내리고 있었네

연달아 같은 문구들을 치고 있을 때였지

모가 닳은 자판 하나를

누르는 순간

무형의 뒤늦은 타점이 울렸네

무언가 손등에 떨어졌지

빗방울이었네.

 

가문 들판에서 염소들도 떠난 들판에 홀로 남아 타자기를 두드린다. 정확한 타법인지 익숙한 타법인지, 그것이 정타인지 오타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사실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척 한다.) 그곳에서 타자기를 두드릴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사막과 닳아버린 잉크들, 때때로 제법 묵직한 소리가 나거나 경쾌한 소리가 나기도 하지만 일순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은살이 배기도록 타자기를 두드리는 그 일을 멈추지 않는다.

시인의 노래. 가뭇없이 사라져버린, 모래로 그득해서 비어버린 사막 한복판에 하나의 문구가 그득하게 사라져버린 그 곳에 무형의 타점이 불러온 유형의 증명.

탁탁탁...

타자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라, 바람에 모래에 텅 빔으로 가득한 그곳에 안간힘을 다해 다듬는 소리였을것이다.

 

제목을 헤아리고 나니, 모든 시들은 거대한 사막의 한 가운데 경쾌하게 쏟아지는 건조한 풍경을 닮았다. 어디에도 오아시스는 없다는 팻말이 입구에 있을것도 같다.

(입구도 출구도 없을테지만) 바람이 불거나 어둠이 스쳐가면 변검술사의 표정처럼 순식간에 바뀌어지는 풍경이겠지만 그곳에 펼쳐졌던 '탁'의 흔적도 없어지겠지만..

그는 끝없이 탁탁탁 소리를 흩어 놓는다. 그렇게 열심히 쪼거나 새기며 발자국을 남긴다.

어쩐지, 이 건조하고 변화무쌍한 곳에서 살아남진 않을테요. 하는 결기마저 느껴지는 것이다.

그의 마지막은 "탁"소리와 마무리 될지도 모르겠다.

타자기 치는 소리?

아니, 마지막에 떨어지는 차갑고 명징한 노랫소리..또는 그의 숨이 닫히는 소리.

 

그의 타자기 소리에 맞춰 빠른 속도로 다가서는 사이드와인더 한마리 쯤 있을 것 같은 시집.

 

타자기 하나 얻지 못한 사람은..뜨겁게 달구어진 사막에 손가락을 푹 찔러넣어 파도라도 그려보고 싶게 만든다.

탁,탁,탁..

모르스 부호처럼 저편에서 들려오는 시인의 노래에

톡,톡,톡..

아직 남은 이야기를 보태 사막으로 돌려보낸다.

 

나는..시인이 계속 투박했으면 좋겠다. 세련되려 애쓰지도 계획하지도 말고..굳은 살이 배긴 그 자리에서 빗방울을 기다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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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소년 문학동네 청소년 29
오문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싸우면서 크는 아이들.


한 아이가 친구들(친구라는 개념을 의심하지만 일반적인 지칭을 해본다)에게 맞았다. 때린 아이와 맞은 아이를 선생님은 불렀다.

두 아이에게 싸우게 된 계기를 묻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결정해야 할 때.

객관적인 시선은 교육적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사라지고 두 아이에게 화해를 요구한다. 어차피 이렇게 될거라고 기대했던 때린 아이와, 어쩐지 화해하지 않으면 옹졸한 사람이 될 것같은 무언의 압박을 받는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정말 화해한 것이고 친구가 된 것일까?

때린 아이의 비웃음이 복도에 흘려지고 맞은 아이의 설움이 복도 창에 부딪힌다.

상담실 안의 교사는 큰 사단없이 상황이 종료된것에 안심하고 자신의 교육적 처치가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자족하고 있다.

이정도 상황이라면 뭐 큰 소란없이 정리된 셈이다.

그러나 맞은 아이가 한사코 화해를 거부하고 때린 아이가 잘못한거 없다고 어깃장을 놓는 상황이면 부모가 소환된다..

부모가 만나 상황을 설명듣는다.

자신의 아이가 피해를 볼까봐 걱정하는 부모는 한 마디를 던진다.

"아이들이 싸우기도 하고 그러는거죠. 싸우면서 큰다고 하잖아요. 어릴 때 한번쯤은 친구랑 싸워봤잖아요."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한다.


그런가?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건가? 이 대목에서 궁금해졌다. 나도 친구들과 꽤나 싸워봤지만 일방적인 모욕과 폭력을 내용으로 한 것은 없었다.

사소한 언쟁과 얼마간의 말 안하기정도? 그러다 다시 사소하게 풀어지고 떡볶이 한접시를 마주한 채 언제 싸웠냐는 듯 깔깔거리며 웃곤했다.

싸우면서 큰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잔잔한 상처들과 그 상처들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시간들이 있었다. 친밀감과 신뢰..그것이 바탕이 되었기에 싸우면서 크는게 가능했다.

멸시와 무시, 군림과 복종의 관계가 이닌 말 그대로 수평적관계였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그렇게 단단해지는 것이 아닐까?


여기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소년의 이야기가 있다.

아이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소년. 소년이라 지칭한 이유가 분명 있을게다. 아직 덜 성숙한, 그리고 여물지 않은 혼란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남자아이.

소년인것이다.


#2. 상처를 품은 사람들.


친구의 사고를 목격한 소년. 그 사고에 책임이 없지 않음을 느낀다. 달리는 트럭으로 뛰어들고, 병원.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별일 없이 살아내는 그 사람들이 품은 아픔과 상처를 알아간다.

관계는 이어지고 서로의 상처를 살피며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딱 한사람을 패주고 싶어서 권투를 시작하고..

복수? 그런걸까? 그 아이를 패주고 나면 속이 시원해질까?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에게 날리는 펀치일 것이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다는 어린 계획이다.

산이 누나. 주관장. 도도새아줌마. 박씨 할아버지. 수 간호사, 서찬희, 강준혁, 안승범, 양아영..

소년의 시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깊어지고 생각은 구체화된다. 세상은 꿈처럼 모호한 것이 아니라 수직수평의 관계 속에 서로를 기대며 살아내는 링이라는 것을 말이다.

링 위에서 기대며 산다는 것은 어쩌면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링은 승패를 결정 짓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싸워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아무도 싸우고 싶어하지 않으면 링은 그저 사각의 빈 공간일 뿐이다. 싸워야 한다면, 승리하고자 한다면, 먼저 기대야 한다. 자신을 세우고, 더불어 팀이 되어버린 가족과 친구에 기대어야 한다.

두드려 맞고 깨지고 찢어져도 돌아올 자신의 자리가 있어야 한다. 싸움은 그렇게 돌아올 장소와 사람이 있을 때, 믿고 나설 수 있게 하는 서로의 기댐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상처는 서로를 이어주는 표식인지도 모를일이다.


#3. 아이들의 언어


청소년 소설들을 자주 보는 편이다. 아이들을 이해하고 싶다? 그런 몰상식한 이유는 아니다. 아이들을 이해하겠다는 건 자만이니까 말이다.

대부분 어른의 언어로 아이들의 목소리를 내려한다는 느낌이 컸다. 딱 아이들의 언어로 풀어 놓는 작품은 놀랍도록 강한 흡입력을 갖는다.

섬세한 심리의 묘사와 행동들. 무리한 설정이나 모호한 해명 없이 자연스레 읽게 된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만 설득력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이미 걸어왔던 시간, 그리고 지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 그 시간들과의 화해같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 덮어두려했던, 아이라서..어려서..버릇이 없어서..고생을 안해봐서..등등등..

아이들의 행동과 사건들을 바라보는 자기편의적 시선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만을 배운 아이들은 어디에서든 우열을 가리려 든다. 강자와 약자는 늘 존재하고 비겁과 폭력은 매개가 되어 그 관계를 공고히한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관계의 폭력을 견디는 아이들의 이야기..


이현세의 만화를 돌려 읽던 시간, 이문세의 노래를 들으며 별이 빛나는 밤을 지냈던 시간을 오문세의 "싸우는 소년"을 읽으며 되돌아본다.

친구가 친구인 시간.

그런 시간이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을까.


아이들은 무수히 싸우며 자란다. 친구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세상과 편견과 부당함과 싸우면서..잊혀져가는 기억들을 붙잡고 그렇게 자란다.

어른이 된다는 건..그 싸움의 판이 조금 더 커지는 것이리라. 비겁해지면 어른이 아닌것처럼..


#4. 밑줄과 그리고..


타인을 괴롭히는 행위의 악랄함은 나이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개새끼는 열일곱 살을 먹든 여든일곱 살을 먹든 개새끼다. 나쁜 놈들은 언제나 나쁜 놈들인 것이다. (p56)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당연해질 때, 사람은 그렇게 병신 같아 진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짐승이나 다를 바 없다. (...) 어떤 일이든 당연하게 벌어지는 일 같은 건 없는 것이다. 무언가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으면 하지 말아야 하고,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그러나 그러는 사람은 드물다. 어쩔 수 없다, 는 변명의 다양한 변주를 방패로 들고 회피하기에 급급할 뿐이다. 적어도 내가 학교에서 본 인간들은 그랬다.(p136~137))


그냥 우리 모두가 잘못한 거다. 이 얼마나 편리한 말인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뭔가 좆같은 일이 벌어지면 항상 모두에게 책임을 물으려 한다. 너희 모두가 잘못했다. 아니, 너희를 가르친 우리 모두가 잘못했다. 아니, 이런 세상을 만든 전 세계의 모든 인간들이 잘못했다. 그러고 나서 잠깐 근엄한 표정을 짓고는, 잊어버린다.

모두의 잘못이라는 건 다시 말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거라는 말과 같다. 너나 나나 똑같이 잘못했다는 건 너도 나도 벌을 받지 않기 위해 꺼내는 개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럴 수는 없다. (p170~171)


아무도 이럴 때는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 주지 않는다. 교과서 속의 세계에는 균열이 없다. 언제나 공정하게 흘러가는 이치들로 가득할 뿐이다. 구름에 물이 차면 비가 되어 내린다. 하나에 둘을 더하면 셋이 된다. 그러나 그따위 것들은 실질적으로 교실 안의 난장판을 헤치고 살아 나가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p205~206)


석고로 감싸인 손가락을 쥐고 위로 쭉 뻗는다. 나는 서찬희의 아버지가 원하는 진실을 모두 전할 것이다.하나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 비겁하게 고개를 드는 온갖 변명들, 핑계들을 쓰러뜨려야 한다 미래에 어떤 일이 닥쳐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쨌거나 내가 앞으로 걸어갈 거라는 사실이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싸우면서.

이렇게 시작한다.(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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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09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서로 싸우다가 좋게 화해할 줄 안다면 싸우면서 크는 법인데 요즘 아이들은 한 번 싸우면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싸워서 이기면 상대보다 강하게 보일 거라고 생각하니까 약한 친구를 일부로 괴롭히는 일이 많아졌어요.
 

윤이형의 '루카'가 자꾸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요즘 SNS를 통해 자주 만나고 읽고 보게 되는 '무지개 재단'의 소식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어째서였을까? 성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건..

 

크라잉게임 때문이었을것도 같다.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 사람인데도 몇번인가 찔끔거렸던 기억이 있다.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있던 영화였지만 말이다.

 

소외와 외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다름을 감추거나 다름을 드러내어 밀려나는 사람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것인가를 생각한다.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며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어..'라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며 비참한 말인지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동성일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강요되는 것. 안타깝다.

 

 

 

 

 

 

 

 

 

 

 

 

 

 

 

사실 뭔가 근사한 말로 성소수자들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만한 능력도 뭣도 안되는 것이 속상할 뿐이다.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끝없이 배척받는 것이 얼마나 아픈일이겠는가.  최후의 아군인 가족에게서조차 외면당한다면 말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많이 공론화되어지고 있지만(물론 문화권에 따라, 종교적으로라도 더 엄격한 나라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전보다는 더 밖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응원할 수 있게 말이다.

비가 오는 날엔, 문자 메세지를 보낸다. 순전히 나 혼자 자족적인 의미지만,..그 메세지 하나에 3000원인가 기부된다고 들어서 말이다.

충분히 공론화시키자. 그들도 내 가족이고 내 이웃이지 않은가.

동성애라는 것이 공격되는 몇가지 이유중 에이즈문제도 있고, 그들의 성생활에 대한 것들도 있다.

에이즈의 문제는 비단 그들만의 문제는 아닐거고, 어떤 이들의 성생활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간섭할 이유도 권리도 없다.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했던 탓일까?

어른이 되서도 한참이나 지나서 만나게 된 다양한 성소수자들, 그들을 이해하기까지 오랜시간 듣고 보고 했어야했던 시간들..

아이들에게 잘 설명이 되어져야할 일이다.

 

 참 구하기 힘든 책이 되어버렸지만, 아이를 키우거나 혹은 아이들과 부대끼는 직업을 갖고 있다면 한번 읽어볼만하다.

 성교육의 최고봉을 "구성애"씨로 알고 있을만큼..우리는 아직도 모른다.

 

 다시 읽고 손 닿기 쉬운 곳에 던져놓아야 겠다.

아무라도 집어가서 읽고 오도록..

 "한번 하자" 로 시작되던 소설이 생각난다.

 아들 녀석이 문을 잠그고 들어가게 만들었던 그 책..

 

 

 

 

 

 

 

 

 

 

 

 

성이란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닌 상처투성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게 가슴아프다.

이것이 자본의 논리와 맞물려 있는 것이라고 이해되어지면서 슬프기까지 하다.

청춘과 성. 그 사이에 풋풋하게 자라나던 씨앗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건지..

어쨌든 보호받지 못하는 성과 이해받지 못하는 성과차별당하는 성..이 모든 性들은..사실 聖스럽게 부여받은 고유권한이지 않을까? 누구도 참견할 수 없으니 더더욱 침범해서는 안되는...

 

날이 덥다..그냥 주절거리는거다.

아..포스터!

 

 

이런 행사가 있댄다.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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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정지돈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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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돈..낯선 이름과 낯선 작품들..그의 후장사실주의의 본질을 이해할 때까지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유쾌한 변종으로서의 정지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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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6-29 0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으며, 음? 으로 시작해서 음!...이었다가 , 정지돈 작가는 금정연 (별책부록)까지 세트로 읽어줘야 제맛이 나는 것 같은..
뭔가 되다 말아서 건들이긴 다 건들였는데..오!...까지 가다 말아요.^^ 감탄까지 는 못 미치는, 그런데 해설부분마저 읽으며
재치 그, 전 편 정지돈의 소설에 약간 빠진 아귀가 톡 껴드는 느낌.이랄까..그래서 아,,하하! 재치있는 사람들 여러의미로..
즐겁게 실험적인..기분, 웃었네요..이 책 읽으며 웃은 유일한..
 
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정지돈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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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뉴를 소개합니다.


이런 목차를 가지고 있다.


정지돈 - 건축이냐 혁명이냐

이장욱 - 우리 모두의 정귀보

윤이형 - 루카

최은미 - 근린

김금희 - 조중균의 세계

손보미 - 임시교사

백수린 - 여름의 정오.


작년에 본 작가도 있고, 이 사람도 아직 '젊은 작가'여야 하는건가? 라는 본질과 상관없는 질문을 하게 한 작품도 있고, 새로운 신예(?) 작가도 있다.

잘 삭은 묵은지와 늘 넣어야 하는 나물과 새순을 넣은 비빔밥처럼 고르게 선정되어진 느낌이었다.

잘 어우러질까? 라는 의문과 함께 잘 비비는 건 어차피 내몫이잖아? 라는 책임 같은 것도 느끼며 책을 읽는다.

작년의 정서가 건조한 쓸쓸함이었다면, 올해의 정서는 잃어버린 사람인건가?  싶어졌다. 말 그대로 사람의 이야기 관계의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쨌든, 싸고 맛깔나는 비빔밥이 차려졌고 이제 맛있게 비비고 그 맛을 음미하면 될 일이다.


# 2. 기대와 기대.


제일 첫 작품은 대상수상작이라는 정지돈 작가의 "건축이냐 혁명이냐"였다.

사실 정지돈 작가의 작품에 큰 기대를 품었다. 우연히 보게 된 사빈꼬프의 창백한 말과 교차되는 "창백한 말"과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를 모티브로 한 "눈 먼 부엉이"를 흥미롭게 본 까닭이다.

교묘하게 교차되어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조잡하지 않고 섬세하게 조립되는 이야기들은 그의 눈이 얼마나 깊은지 그의 손은 얼마나 예민한지를 알게 해 줄만했다.

과한 기대는 얼마만큼의 상실을 가져오는가..기대만큼인가, 기대이상인가, 혹은 견딜만한가..를 확인해야했다.

어쩐지 산발적이다 싶어지는..예의 그 날카로움과 섬세함이 탈모가 시작된 머리처럼 듬성듬성 보여진 까닭이다.

실존 인물인 이구의 시선을 빌어 온 이야기는 어쩐지 몰입되지 않았다. 많은 연구와 탐독의 흔적들의 안타까울정도로 말이다.

정지돈의 '후장사실주의'.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긴 했지만..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만, 소설의 전위대같은 느낌이랄까?

그렇다면..나는 뒤에 남아 열심히 읽고 실망과 기대를 반복하며 동력을 생산하는 '후방야매주의'로 남겠다는 생각만 덩그러니 해본다.

과한 기대였을 것이다.


새순의 향이 좋다고 너무 많이 뜯어 넣은 탓에 풋내가 심해졌다.

이건 독자의 잘못일지도 모른다. 잘 비볐어야 했는데..


이장욱의 우리 모두의 정귀보.

등단을 기점으로 젊은 작가의 기준을 잡은 탓에 적지 않은 나이에 젊은 작가가 된 이장욱.

그의 '천국보다 낯선'을 읽고 '기린이 아닌 모든것'에 환호했던 사람으로서 내공을 의심하지 않는다.

앞서 한번의 기대와 상실의 변주를 맛 본 후여서였을까? 내심 소박한 시선으로 이장욱을 따라 나선다.

조근조근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글에서 정귀보는 너이거나 나이거나 알지 못하는 누구이거나 알고 싶지 않은 그거나 알기를 강요받는 그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자신으로의 삶을 살아가던 정귀보가 사라진다. 그렇게 벌어지는 일대 헤프닝.

내가 살아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 오해와 이해의 선을 넘나드는지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슬며시 웃음이 지어지는 이장욱의 글을 덮으며 '역시'라는 말을 같이 내어놓는다.


잘 익은 김치를 적당히 송송 썰어넣은 것이 감칠맛을 더하고 있다.

오래 묵은 것이 상큼할 수도 있다는 반증처럼..


윤이형.

이 반가운 이름을 어쩌면 좋지? "쿤의 여행"을 읽으며 눈여겨 보게 된 작가다. 소설가 이제하님의 딸이리고도 한다. 필력도 유전이 되는가? 

윤이형의 루카는 퀴어적인 이야기이다. LGBT. 성소수자의 문제는 이제 그 임계점을 넘어 밖으로 밖으로 튀어나오고 있다. 사랑의 틀과 대상이 규정되어지는 폭력 속에 숨쉬는 이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자발적 커밍아웃과 타의에 의한 아웃팅이 죽음만큼 힘들고 두려운 사람들의 이야기..

그녀의 이전까지의 환상적인 이야기들에서 많이 걸어나왔구나 싶어졌다.

쿤의 여행을 읽으며 "쿤"이 도대체 뭐지? 라며 사전을 찾아보기도 했었다. 그런 단어가 없다.

개념이 설정되어 있지 않은 글자를 끌어올 수 있다는 건 많은 고민과 연구를 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진 않았을테니까. 그녀를 믿기 시작한 지점이다.

섬세하게 그려내는 감정선들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동성애라는 뜨거운 감자를 가감없이 그려내는 작가가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되기도 했다.

'존재 자체가 투쟁'이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던 소수자들의이야기여서 말이다.


매운 고추장을 듬뿍 넣어본다. 뒷맛이 달 것 같아서 말이다.


최은미의 근린.

'너무 아름다운 꿈'에서 최은미의 서사력은 증명되었다.

근린. 가까운 이웃.

동네 근린공원의 풍경을 읽는다. 천천히 슬로우 비디오로 끊김 없이 쭉 이어 찍는 듯한 풍경은 어디선가 본 듯하다. 어쩌면 저 곳에 내가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만 같다.

공간이 통째로 들어와 앉은 글. 그 속에 출연자들은 능숙하게 자신의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그러나 사건은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공간 속에서 시간은 제각각 움직인다. 제각각의 캐릭터들이 제맘대로 끌어다 쓰는 시간과 부여받은 공간.

그렇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부채꼴 모양이다. 확산되는 것인지 수렴되는 것인지는 읽어보아야 알일이다.


둥근 대접 모서리에 앉은 밥알까지 꼼꼼하게 훑어서 비빈다. 언제 그곳까지 밀려 올라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붉은 비빔의 광장에서 탈출할 수는 없다. 허락된 공간은 그리 넓지 않다.


김금희. 조중균의 세계

산다는 건 저마다의 색으로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덧대고 기워서 바래지지 않도록 제 색을 내는 일이라고 말이다. 얼마간은 남았을지 모를 처음의 색이 내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하지만 삶은 얼마나 많은 거짓말과 강제함으로 나를 옭아매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야기가 단지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이 섬뜩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무리 중자에 나눌 균자를 쓴다는 그 남자의 이야기 속에 얼마나 많은 색들이 뒤엉키고 있는지 짠해지기까지 했다. 짠해진다는 것, 그것은 공감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게다. 누군가는 그렇게 모여들어 다채로움이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모여들어 새까만 암흑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것이다.


하얀 줄기의 콩나물이 남아있지 않다. 노란 콩나물의 머리도 빨간 고추장을 덧입었다. 비벼댄 결과겠지만..그 맛이 빨갛게 변하지는 않았다. 고추장의 색이 덧발라져있어도 그것이 흰 줄기 였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아삭하고 고소한 맛이라는 것도..


손보미의 임시교사

임시라는 말은 불안함과 기대가 공존하는 말이다.

정식이라는 말로 바뀔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바뀔 수도 있다는 기대 말이다.

임시로 살아보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임시의 순간들..

그 순간을 그려낸다. 손보미 특유의 어법으로..

감정을 고스란히 들어내어 상하지 않게 문자화하는 건, 흔들거리는 푸딩을 잘 잘라 접시에 올리는 것만큼 아슬아슬한 일인것이다.

P부인의 목소리로 읽어내는 임시와 임시가 끝나는 순간의 당혹감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사는 건 그런거지'라는 말로 대답이 되는 쓸쓸함을 견딜만한 대답으로 수긍하게 하는 것이다.


시금치 대신 초록색을 맡은 오이도 빨갛게 비벼지고 있다.

시금치의 달짝지근한 맛과 보드라운 식감대신 아삭하고 말끔한 맛을 넣어도 나쁘지 않다.

어쩌면 다음 비빔밥엔 의도적으로 오이를 넣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은 임시의 역할을 정식으로 받아들이며 존재하는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백수린, 여름의 정오.

한번쯤은 만나보았을 격정의 순간들 떠올린다. 그것이 겨울이든, 가을이든 봄이든 상관없지만, 그 뜨거운 열기와 반쯤은 나신이 되어버린듯 자신을 드러내야했던 순간임을 떠올리면 그것은 여름인 것이 적당하다.

기억의 폴더 속에 잠겨있는 다른 폴더, 그 속에 봉인된 또 다른 폴더..그렇게 기억을 파고 들어가 만나게 되는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 때의 열기와 모든 풍경을 고스란히 되살려낸다.

'폴링 인 폴'에서도 느껴졌던 단단히 틀어쥐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견디지 못하는 사랑을 그려내는 재주가 있다고 밖에..그런 기억들이, 그렇게 감춰두었던 체온들이 시린 세상을 살아갈만 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더 풍부하게 하는건지도..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떨군다.

모든 색과 맛을 뒤덮을 듯한 향이 진동한다. 마무리로 서너번 휘젓고 입에 넣는다.

그래..

할머니의 비빔맙도 이런 맛이 났었어. 엄마의 비빔밥도..

서로 다른 삶의 양태들이 모여 서로 부딪고 밀어내고 끌어안으며 그려내는 세상에 이런 갓 짜낸 참기름 한방울이 필요한거였어.


맛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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