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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정지돈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평점 :
#1. 메뉴를 소개합니다.
이런 목차를 가지고 있다.
정지돈 - 건축이냐 혁명이냐
이장욱 - 우리 모두의 정귀보
윤이형 - 루카
최은미 - 근린
김금희 - 조중균의 세계
손보미 - 임시교사
백수린 - 여름의 정오.
작년에 본 작가도 있고, 이 사람도 아직 '젊은 작가'여야 하는건가? 라는 본질과 상관없는 질문을 하게 한 작품도 있고, 새로운 신예(?) 작가도 있다.
잘 삭은 묵은지와 늘 넣어야 하는 나물과 새순을 넣은 비빔밥처럼 고르게 선정되어진 느낌이었다.
잘 어우러질까? 라는 의문과 함께 잘 비비는 건 어차피 내몫이잖아? 라는 책임 같은 것도 느끼며 책을 읽는다.
작년의 정서가 건조한 쓸쓸함이었다면, 올해의 정서는 잃어버린 사람인건가? 싶어졌다. 말 그대로 사람의 이야기 관계의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어쨌든, 싸고 맛깔나는 비빔밥이 차려졌고 이제 맛있게 비비고 그 맛을 음미하면 될 일이다.
# 2. 기대와 기대.
제일 첫 작품은 대상수상작이라는 정지돈 작가의 "건축이냐 혁명이냐"였다.
사실 정지돈 작가의 작품에 큰 기대를 품었다. 우연히 보게 된 사빈꼬프의 창백한 말과 교차되는 "창백한 말"과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를 모티브로 한 "눈 먼 부엉이"를 흥미롭게 본 까닭이다.
교묘하게 교차되어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조잡하지 않고 섬세하게 조립되는 이야기들은 그의 눈이 얼마나 깊은지 그의 손은 얼마나 예민한지를 알게 해 줄만했다.
과한 기대는 얼마만큼의 상실을 가져오는가..기대만큼인가, 기대이상인가, 혹은 견딜만한가..를 확인해야했다.
어쩐지 산발적이다 싶어지는..예의 그 날카로움과 섬세함이 탈모가 시작된 머리처럼 듬성듬성 보여진 까닭이다.
실존 인물인 이구의 시선을 빌어 온 이야기는 어쩐지 몰입되지 않았다. 많은 연구와 탐독의 흔적들의 안타까울정도로 말이다.
정지돈의 '후장사실주의'.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긴 했지만..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만, 소설의 전위대같은 느낌이랄까?
그렇다면..나는 뒤에 남아 열심히 읽고 실망과 기대를 반복하며 동력을 생산하는 '후방야매주의'로 남겠다는 생각만 덩그러니 해본다.
과한 기대였을 것이다.
새순의 향이 좋다고 너무 많이 뜯어 넣은 탓에 풋내가 심해졌다.
이건 독자의 잘못일지도 모른다. 잘 비볐어야 했는데..
이장욱의 우리 모두의 정귀보.
등단을 기점으로 젊은 작가의 기준을 잡은 탓에 적지 않은 나이에 젊은 작가가 된 이장욱.
그의 '천국보다 낯선'을 읽고 '기린이 아닌 모든것'에 환호했던 사람으로서 내공을 의심하지 않는다.
앞서 한번의 기대와 상실의 변주를 맛 본 후여서였을까? 내심 소박한 시선으로 이장욱을 따라 나선다.
조근조근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글에서 정귀보는 너이거나 나이거나 알지 못하는 누구이거나 알고 싶지 않은 그거나 알기를 강요받는 그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자신으로의 삶을 살아가던 정귀보가 사라진다. 그렇게 벌어지는 일대 헤프닝.
내가 살아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 오해와 이해의 선을 넘나드는지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슬며시 웃음이 지어지는 이장욱의 글을 덮으며 '역시'라는 말을 같이 내어놓는다.
잘 익은 김치를 적당히 송송 썰어넣은 것이 감칠맛을 더하고 있다.
오래 묵은 것이 상큼할 수도 있다는 반증처럼..
윤이형.
이 반가운 이름을 어쩌면 좋지? "쿤의 여행"을 읽으며 눈여겨 보게 된 작가다. 소설가 이제하님의 딸이리고도 한다. 필력도 유전이 되는가?
윤이형의 루카는 퀴어적인 이야기이다. LGBT. 성소수자의 문제는 이제 그 임계점을 넘어 밖으로 밖으로 튀어나오고 있다. 사랑의 틀과 대상이 규정되어지는 폭력 속에 숨쉬는 이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자발적 커밍아웃과 타의에 의한 아웃팅이 죽음만큼 힘들고 두려운 사람들의 이야기..
그녀의 이전까지의 환상적인 이야기들에서 많이 걸어나왔구나 싶어졌다.
쿤의 여행을 읽으며 "쿤"이 도대체 뭐지? 라며 사전을 찾아보기도 했었다. 그런 단어가 없다.
개념이 설정되어 있지 않은 글자를 끌어올 수 있다는 건 많은 고민과 연구를 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진 않았을테니까. 그녀를 믿기 시작한 지점이다.
섬세하게 그려내는 감정선들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동성애라는 뜨거운 감자를 가감없이 그려내는 작가가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되기도 했다.
'존재 자체가 투쟁'이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던 소수자들의이야기여서 말이다.
매운 고추장을 듬뿍 넣어본다. 뒷맛이 달 것 같아서 말이다.
최은미의 근린.
'너무 아름다운 꿈'에서 최은미의 서사력은 증명되었다.
근린. 가까운 이웃.
동네 근린공원의 풍경을 읽는다. 천천히 슬로우 비디오로 끊김 없이 쭉 이어 찍는 듯한 풍경은 어디선가 본 듯하다. 어쩌면 저 곳에 내가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만 같다.
공간이 통째로 들어와 앉은 글. 그 속에 출연자들은 능숙하게 자신의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그러나 사건은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공간 속에서 시간은 제각각 움직인다. 제각각의 캐릭터들이 제맘대로 끌어다 쓰는 시간과 부여받은 공간.
그렇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부채꼴 모양이다. 확산되는 것인지 수렴되는 것인지는 읽어보아야 알일이다.
둥근 대접 모서리에 앉은 밥알까지 꼼꼼하게 훑어서 비빈다. 언제 그곳까지 밀려 올라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붉은 비빔의 광장에서 탈출할 수는 없다. 허락된 공간은 그리 넓지 않다.
김금희. 조중균의 세계
산다는 건 저마다의 색으로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덧대고 기워서 바래지지 않도록 제 색을 내는 일이라고 말이다. 얼마간은 남았을지 모를 처음의 색이 내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하지만 삶은 얼마나 많은 거짓말과 강제함으로 나를 옭아매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야기가 단지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이 섬뜩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무리 중자에 나눌 균자를 쓴다는 그 남자의 이야기 속에 얼마나 많은 색들이 뒤엉키고 있는지 짠해지기까지 했다. 짠해진다는 것, 그것은 공감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게다. 누군가는 그렇게 모여들어 다채로움이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모여들어 새까만 암흑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것이다.
하얀 줄기의 콩나물이 남아있지 않다. 노란 콩나물의 머리도 빨간 고추장을 덧입었다. 비벼댄 결과겠지만..그 맛이 빨갛게 변하지는 않았다. 고추장의 색이 덧발라져있어도 그것이 흰 줄기 였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아삭하고 고소한 맛이라는 것도..
손보미의 임시교사
임시라는 말은 불안함과 기대가 공존하는 말이다.
정식이라는 말로 바뀔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바뀔 수도 있다는 기대 말이다.
임시로 살아보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임시의 순간들..
그 순간을 그려낸다. 손보미 특유의 어법으로..
감정을 고스란히 들어내어 상하지 않게 문자화하는 건, 흔들거리는 푸딩을 잘 잘라 접시에 올리는 것만큼 아슬아슬한 일인것이다.
P부인의 목소리로 읽어내는 임시와 임시가 끝나는 순간의 당혹감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사는 건 그런거지'라는 말로 대답이 되는 쓸쓸함을 견딜만한 대답으로 수긍하게 하는 것이다.
시금치 대신 초록색을 맡은 오이도 빨갛게 비벼지고 있다.
시금치의 달짝지근한 맛과 보드라운 식감대신 아삭하고 말끔한 맛을 넣어도 나쁘지 않다.
어쩌면 다음 비빔밥엔 의도적으로 오이를 넣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은 임시의 역할을 정식으로 받아들이며 존재하는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백수린, 여름의 정오.
한번쯤은 만나보았을 격정의 순간들 떠올린다. 그것이 겨울이든, 가을이든 봄이든 상관없지만, 그 뜨거운 열기와 반쯤은 나신이 되어버린듯 자신을 드러내야했던 순간임을 떠올리면 그것은 여름인 것이 적당하다.
기억의 폴더 속에 잠겨있는 다른 폴더, 그 속에 봉인된 또 다른 폴더..그렇게 기억을 파고 들어가 만나게 되는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 때의 열기와 모든 풍경을 고스란히 되살려낸다.
'폴링 인 폴'에서도 느껴졌던 단단히 틀어쥐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견디지 못하는 사랑을 그려내는 재주가 있다고 밖에..그런 기억들이, 그렇게 감춰두었던 체온들이 시린 세상을 살아갈만 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더 풍부하게 하는건지도..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떨군다.
모든 색과 맛을 뒤덮을 듯한 향이 진동한다. 마무리로 서너번 휘젓고 입에 넣는다.
그래..
할머니의 비빔맙도 이런 맛이 났었어. 엄마의 비빔밥도..
서로 다른 삶의 양태들이 모여 서로 부딪고 밀어내고 끌어안으며 그려내는 세상에 이런 갓 짜낸 참기름 한방울이 필요한거였어.
맛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