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소년 문학동네 청소년 29
오문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1. 싸우면서 크는 아이들.


한 아이가 친구들(친구라는 개념을 의심하지만 일반적인 지칭을 해본다)에게 맞았다. 때린 아이와 맞은 아이를 선생님은 불렀다.

두 아이에게 싸우게 된 계기를 묻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결정해야 할 때.

객관적인 시선은 교육적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사라지고 두 아이에게 화해를 요구한다. 어차피 이렇게 될거라고 기대했던 때린 아이와, 어쩐지 화해하지 않으면 옹졸한 사람이 될 것같은 무언의 압박을 받는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정말 화해한 것이고 친구가 된 것일까?

때린 아이의 비웃음이 복도에 흘려지고 맞은 아이의 설움이 복도 창에 부딪힌다.

상담실 안의 교사는 큰 사단없이 상황이 종료된것에 안심하고 자신의 교육적 처치가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자족하고 있다.

이정도 상황이라면 뭐 큰 소란없이 정리된 셈이다.

그러나 맞은 아이가 한사코 화해를 거부하고 때린 아이가 잘못한거 없다고 어깃장을 놓는 상황이면 부모가 소환된다..

부모가 만나 상황을 설명듣는다.

자신의 아이가 피해를 볼까봐 걱정하는 부모는 한 마디를 던진다.

"아이들이 싸우기도 하고 그러는거죠. 싸우면서 큰다고 하잖아요. 어릴 때 한번쯤은 친구랑 싸워봤잖아요."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한다.


그런가?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건가? 이 대목에서 궁금해졌다. 나도 친구들과 꽤나 싸워봤지만 일방적인 모욕과 폭력을 내용으로 한 것은 없었다.

사소한 언쟁과 얼마간의 말 안하기정도? 그러다 다시 사소하게 풀어지고 떡볶이 한접시를 마주한 채 언제 싸웠냐는 듯 깔깔거리며 웃곤했다.

싸우면서 큰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잔잔한 상처들과 그 상처들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시간들이 있었다. 친밀감과 신뢰..그것이 바탕이 되었기에 싸우면서 크는게 가능했다.

멸시와 무시, 군림과 복종의 관계가 이닌 말 그대로 수평적관계였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그렇게 단단해지는 것이 아닐까?


여기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소년의 이야기가 있다.

아이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소년. 소년이라 지칭한 이유가 분명 있을게다. 아직 덜 성숙한, 그리고 여물지 않은 혼란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남자아이.

소년인것이다.


#2. 상처를 품은 사람들.


친구의 사고를 목격한 소년. 그 사고에 책임이 없지 않음을 느낀다. 달리는 트럭으로 뛰어들고, 병원.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별일 없이 살아내는 그 사람들이 품은 아픔과 상처를 알아간다.

관계는 이어지고 서로의 상처를 살피며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딱 한사람을 패주고 싶어서 권투를 시작하고..

복수? 그런걸까? 그 아이를 패주고 나면 속이 시원해질까?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에게 날리는 펀치일 것이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다는 어린 계획이다.

산이 누나. 주관장. 도도새아줌마. 박씨 할아버지. 수 간호사, 서찬희, 강준혁, 안승범, 양아영..

소년의 시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깊어지고 생각은 구체화된다. 세상은 꿈처럼 모호한 것이 아니라 수직수평의 관계 속에 서로를 기대며 살아내는 링이라는 것을 말이다.

링 위에서 기대며 산다는 것은 어쩌면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링은 승패를 결정 짓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싸워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아무도 싸우고 싶어하지 않으면 링은 그저 사각의 빈 공간일 뿐이다. 싸워야 한다면, 승리하고자 한다면, 먼저 기대야 한다. 자신을 세우고, 더불어 팀이 되어버린 가족과 친구에 기대어야 한다.

두드려 맞고 깨지고 찢어져도 돌아올 자신의 자리가 있어야 한다. 싸움은 그렇게 돌아올 장소와 사람이 있을 때, 믿고 나설 수 있게 하는 서로의 기댐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상처는 서로를 이어주는 표식인지도 모를일이다.


#3. 아이들의 언어


청소년 소설들을 자주 보는 편이다. 아이들을 이해하고 싶다? 그런 몰상식한 이유는 아니다. 아이들을 이해하겠다는 건 자만이니까 말이다.

대부분 어른의 언어로 아이들의 목소리를 내려한다는 느낌이 컸다. 딱 아이들의 언어로 풀어 놓는 작품은 놀랍도록 강한 흡입력을 갖는다.

섬세한 심리의 묘사와 행동들. 무리한 설정이나 모호한 해명 없이 자연스레 읽게 된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만 설득력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이미 걸어왔던 시간, 그리고 지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 그 시간들과의 화해같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 덮어두려했던, 아이라서..어려서..버릇이 없어서..고생을 안해봐서..등등등..

아이들의 행동과 사건들을 바라보는 자기편의적 시선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만을 배운 아이들은 어디에서든 우열을 가리려 든다. 강자와 약자는 늘 존재하고 비겁과 폭력은 매개가 되어 그 관계를 공고히한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관계의 폭력을 견디는 아이들의 이야기..


이현세의 만화를 돌려 읽던 시간, 이문세의 노래를 들으며 별이 빛나는 밤을 지냈던 시간을 오문세의 "싸우는 소년"을 읽으며 되돌아본다.

친구가 친구인 시간.

그런 시간이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을까.


아이들은 무수히 싸우며 자란다. 친구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세상과 편견과 부당함과 싸우면서..잊혀져가는 기억들을 붙잡고 그렇게 자란다.

어른이 된다는 건..그 싸움의 판이 조금 더 커지는 것이리라. 비겁해지면 어른이 아닌것처럼..


#4. 밑줄과 그리고..


타인을 괴롭히는 행위의 악랄함은 나이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개새끼는 열일곱 살을 먹든 여든일곱 살을 먹든 개새끼다. 나쁜 놈들은 언제나 나쁜 놈들인 것이다. (p56)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당연해질 때, 사람은 그렇게 병신 같아 진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짐승이나 다를 바 없다. (...) 어떤 일이든 당연하게 벌어지는 일 같은 건 없는 것이다. 무언가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으면 하지 말아야 하고,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그러나 그러는 사람은 드물다. 어쩔 수 없다, 는 변명의 다양한 변주를 방패로 들고 회피하기에 급급할 뿐이다. 적어도 내가 학교에서 본 인간들은 그랬다.(p136~137))


그냥 우리 모두가 잘못한 거다. 이 얼마나 편리한 말인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뭔가 좆같은 일이 벌어지면 항상 모두에게 책임을 물으려 한다. 너희 모두가 잘못했다. 아니, 너희를 가르친 우리 모두가 잘못했다. 아니, 이런 세상을 만든 전 세계의 모든 인간들이 잘못했다. 그러고 나서 잠깐 근엄한 표정을 짓고는, 잊어버린다.

모두의 잘못이라는 건 다시 말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거라는 말과 같다. 너나 나나 똑같이 잘못했다는 건 너도 나도 벌을 받지 않기 위해 꺼내는 개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럴 수는 없다. (p170~171)


아무도 이럴 때는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 주지 않는다. 교과서 속의 세계에는 균열이 없다. 언제나 공정하게 흘러가는 이치들로 가득할 뿐이다. 구름에 물이 차면 비가 되어 내린다. 하나에 둘을 더하면 셋이 된다. 그러나 그따위 것들은 실질적으로 교실 안의 난장판을 헤치고 살아 나가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p205~206)


석고로 감싸인 손가락을 쥐고 위로 쭉 뻗는다. 나는 서찬희의 아버지가 원하는 진실을 모두 전할 것이다.하나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 비겁하게 고개를 드는 온갖 변명들, 핑계들을 쓰러뜨려야 한다 미래에 어떤 일이 닥쳐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쨌거나 내가 앞으로 걸어갈 거라는 사실이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싸우면서.

이렇게 시작한다.(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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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09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서로 싸우다가 좋게 화해할 줄 안다면 싸우면서 크는 법인데 요즘 아이들은 한 번 싸우면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싸워서 이기면 상대보다 강하게 보일 거라고 생각하니까 약한 친구를 일부로 괴롭히는 일이 많아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