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부인이

손끝으로 종이를 넘기며

글자로 그린

소식을 읽고 있네

 

변하지 않는 표정 속에

비스듬히 앉은 채로

낡은 의자처럼

삐걱거리며

<이선욱 -우편>

 

시인의 말 :타이프로 친 시도 있고

              시로 친 타이프도 있다.

 

 

 

 

 

 

 

 

풍경이다. 손 대면 바스라질 듯 아슬아슬한 평온을 드러낸 채 별일 아니라는 듯 미소를 띠고 있는 풍경이다.

불룩해진 배가 신경쓰여 한껏 공기를 들여마시고 홀쭉해진 배를 보아달라고 눈짓하는 간절함 같은..그런..

그렇다고 억지스럽거나 위장된 풍경이라는 말은 아니다.

 

처음 시집의 출간소식을 듣고, 아니 시집의 제목을 듣고 음란마귀에 휩싸인 영혼임을 인증이라도 하듯, 뭐라고? '탁탁탁'이라고? 되물으며 어느 음침한 방구석을 떠올렸다.

시집을 받고 그 표지를 본 순간 맥이 풀린다.

아니 이건,

 

토이크레인의 색과 닮았어.

 독한연애의 도발적인 색도 아니고,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의 붉은 색도 아닌..

뭔가 배신당한 느낌적인 느낌?

 

 

 

 

 

 

 

 

 

 

그러니까..박현욱의 "동정없는 세상"을 읽었을 때의 느낌 같은 것이었다.

 

"한 번 하자."라는 도발적인 말로 시작하는 그 소설을 읽으며 얼마나 낄낄대며 공감했던가. 첫 문장의 강렬함이 이야기 속에 녹아버려 중간중간  "한 번 하자."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한 번 해라 쫌."이라고 대꾸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었다. 재밌었다.

그런건가?

 

 

 

 

 

 

두번째 시, 표제와 같은 '탁탁탁'의 뒷부분을 읽는다.

 

(....)

사방으로 길이 없는

벌판의 한가운데였지

끊이지 않는 서술의 소리를 따라

손끝에는 굳은살이 피어났고

그렇게 타자를 치던 어느 날이었다네

어둠에 날리는 글씨들은

점점 더 흐려졌고

타자기에선 부서진 낙타의 뼈가

흘러내리고 있었네

연달아 같은 문구들을 치고 있을 때였지

모가 닳은 자판 하나를

누르는 순간

무형의 뒤늦은 타점이 울렸네

무언가 손등에 떨어졌지

빗방울이었네.

 

가문 들판에서 염소들도 떠난 들판에 홀로 남아 타자기를 두드린다. 정확한 타법인지 익숙한 타법인지, 그것이 정타인지 오타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사실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척 한다.) 그곳에서 타자기를 두드릴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사막과 닳아버린 잉크들, 때때로 제법 묵직한 소리가 나거나 경쾌한 소리가 나기도 하지만 일순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은살이 배기도록 타자기를 두드리는 그 일을 멈추지 않는다.

시인의 노래. 가뭇없이 사라져버린, 모래로 그득해서 비어버린 사막 한복판에 하나의 문구가 그득하게 사라져버린 그 곳에 무형의 타점이 불러온 유형의 증명.

탁탁탁...

타자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라, 바람에 모래에 텅 빔으로 가득한 그곳에 안간힘을 다해 다듬는 소리였을것이다.

 

제목을 헤아리고 나니, 모든 시들은 거대한 사막의 한 가운데 경쾌하게 쏟아지는 건조한 풍경을 닮았다. 어디에도 오아시스는 없다는 팻말이 입구에 있을것도 같다.

(입구도 출구도 없을테지만) 바람이 불거나 어둠이 스쳐가면 변검술사의 표정처럼 순식간에 바뀌어지는 풍경이겠지만 그곳에 펼쳐졌던 '탁'의 흔적도 없어지겠지만..

그는 끝없이 탁탁탁 소리를 흩어 놓는다. 그렇게 열심히 쪼거나 새기며 발자국을 남긴다.

어쩐지, 이 건조하고 변화무쌍한 곳에서 살아남진 않을테요. 하는 결기마저 느껴지는 것이다.

그의 마지막은 "탁"소리와 마무리 될지도 모르겠다.

타자기 치는 소리?

아니, 마지막에 떨어지는 차갑고 명징한 노랫소리..또는 그의 숨이 닫히는 소리.

 

그의 타자기 소리에 맞춰 빠른 속도로 다가서는 사이드와인더 한마리 쯤 있을 것 같은 시집.

 

타자기 하나 얻지 못한 사람은..뜨겁게 달구어진 사막에 손가락을 푹 찔러넣어 파도라도 그려보고 싶게 만든다.

탁,탁,탁..

모르스 부호처럼 저편에서 들려오는 시인의 노래에

톡,톡,톡..

아직 남은 이야기를 보태 사막으로 돌려보낸다.

 

나는..시인이 계속 투박했으면 좋겠다. 세련되려 애쓰지도 계획하지도 말고..굳은 살이 배긴 그 자리에서 빗방울을 기다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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