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나타샤 >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새출판사에서 재출간 된 시집.
시적 몽상과 사유가 좋은 시인이다.
재출간이 되는 행운(?) 이 누구에게나 있는건 아니기에 축하한다고 말하는것도 조심스럽긴 하다.
시인보다 오래 멀리 가는 건 시다.
건강한 시. 오래 꿈 꾸어도 늘 낯선 그런 시.
어쨌든 반가운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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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팅은 밖으로 나가는 상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건 무슨일이 일어났느냐의 문제가 아니야. 우리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의 문제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증거를 떠받치던 기둥이 무너지자 다른 가능성이 열렸다. 당시에는 DNA 검사 결과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고, 넓은 범위에서 진행되던 수사의 초점은 갑자기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한 지점, 한 남자에게 집중되어버렸다. 광범위한 영역에서하 개인으로, 그후 이 사건을 법정으로 끌고 갔을 때, 경찰 수사는기소장을 뒷받침하는 정황증거를 찾는 데만 주력하게 되었다.

"우리가 세실리아 린데를 죽인 겁니다."비스팅이 되풀이했다.
"차장님이 언론에 접근해서 카세트테이프에 대해 발설한 순간, 차장님은 살인범에게서 다른 대안을 빼앗아버린 겁니다. 그는 어쩔수 없이 그녀를 처리해야만 했을 테죠."
"기자들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어. 난 그저 확인해준 것뿐이라고."
"그 때문에 그녀가 죽은 겁니다."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대부분은 결국 해결된다. 이러한사실 자체가 당시 그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세실리아 사건이자신을 무겁게 짓누른다고 느끼던 사람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루돌프 하글룬이 나타났을 때, 형사들은 마치 어깨 위에 놓인
‘짐을 더는 기분이었고, 비스팅은 성공을 거두었다는 만족스러운감정을 경험했다. 끝내 돌파구를 찾아내고 용의자를 확보해 그에게 수사의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성취한 그 모든 것들이 그들만의 관점에 따라 해석한 것이었다. 

전에도 비스팅은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있었다. 주위의 압박과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이 성급한 결론으로 이어지는 상황.
형사들은 첫 번째 증거에 근거하여, 말하자면 그 증거에 얼마나잘 들어맞는지에 따라 다른 요소들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다.
음부터는 시야가 좁아진 나머지 냄새를 쫓아다니는 사냥개처럼 자신들의 가설에 들어맞는 증거만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다른 곳으로 통하는 길이나 자신들의 집중력을 방해하는 것은 무시해버린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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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쓰기전에 먼저 세 가지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일단 집을 한번 둘러보고, 피해자의 신분을 확인한 다음, 이웃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봐야 했다.

"꽁꽁 싸맸다고요?"
"검은색 일색이었어요. 바지, 스웨터, 신발, 장갑, 복면 모두 말이에요. 심지어 스웨터와 장갑 사이에도 테이프를 둘렀다니까요.
바지도 테이프로 양말에 단단히 붙여두었고요."
살인과 주거침입 모두 사전에 신중히 계획한 것이 분명했다. 언젠가 머리카락이나 피부 각질에서 채취한 DNA 증거 때문에 덜미를 잡히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특수 복장을 갖춰 입은 강도들에 대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하나의 살인 사건에는 늘 몇 사람들의 얼굴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가 대답했다. 이 사건에 얽힌 얼굴은총 다섯이었다.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 오빠, 남자친구 그리고차갑고 파리하며 무표정한, 생명이 빠져나간 그녀의 얼굴. "그녀의 어머니가 매년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와."


자신의 일이 힘들고 부담이 큰 업무라고 항상 생각하면서도 그는 그런 도전을 즐겨왔다. 가끔 통제권을 상실하거나 전체적인 개요를 그릴 수 없다는 기분을 느낀 적도 있고, 의심이 생기거나 확신을 품을 수 없었던 일 또한 다반사였지만, 그는 항상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갖고 일을 처리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는 언제나 자신의 결단력을 옹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이순간, 세실리아 사건에서 평소와는 다르게 처리되었을 가능성이있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 그로서는 도무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가 그토록 말을 아낀 이유를 깨달았다. 워크맨에 대한 정보를 흘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피해자가 감금된 장소와 관련한단서를 확보한 마당에 워크맨에 대한 정보가 누설되면, 이는 납치범에게 경찰이 확보한 단서를 알려주는 셈이었을 테니 말이다. 만약 그 정보가 기사화된다면 범인은 그녀를 억류하고 있는 장소를바꿀 것이고, 혹은 더 나쁜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언론이 그 단서의 냄새를 맡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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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그에게 꿈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비스팅은 잘 모르겠다.
고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있는 그대로 마음에들었다. 경찰관을 천직으로 여겼기에 다른 삶은 바라지 않았다.
형사로서 마주하는 업무는 그에게 명확한 목적의식을 부여했고,
그의 삶에도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리네는 경찰의 역할에 대한 그의 관점을 변화시켰다. 그녀가 제시하는 외부인으로서의 관점 덕분에 자신의 고루한의견을 재검토할 수 있었던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경찰대학생도들 앞에서 강연했을 때 그는 시민들의 안심과 신뢰를 얻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무릇 경찰이라면 품위와 예의를 갖추고 진심 어린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대중의 믿음을 얻어야 한다는내용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비스팅은 리네의 견해가 자신의중심추를 형성하는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리네가 막 시스템에서 로그아웃하려는 순간, 편집장 요아킴 프로스트가 돌아왔다. 그는 이름 그대로 서릿발 같은 사람으로 통했다. 그가 편집장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건 뉴스 표제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비극을 이해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수군댔다. 공감 능력의 부재, 그야말로 완벽한 자격증 아닌가.

리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언뜻 고상해 보이는 프로스트의 주장은 겉치레에 불과했고, 사실 그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따로있었다. 바로 신문 판매 부수였다. 그녀 아버지의 이름을 선정적인 표제 한가운데 박아 넣거나 기사의 초점을 특정 개인에게 맞추는 짓을 하지 않고도 신문의 진실성을 지킬 수 있는 길은 찾을 수있었다. 비난의 초점을 개인이 아닌 경찰 조직에 맞추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 판매 부수가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은 명백했다

그는 경비견이라는 언론의 역할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언론의 사명은 정치인들과 직위에 따른 권력을 보유한 사람들, 그리고 공공 기관을 향해 비판을 가하는 것이다. 정의를 추구하며 부정과 부당함을 폭로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 그는마치 부당한 언론에 마구 짓밟히는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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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그 사람은 어떤 나쁜 일을 겪었을까요? 나쁜 일을 당한 사람이 아니면 나쁜 짓을 하지 않아요."
손님이 외쳤다.
"호이 씨, 당신은 너무 사람을 잘 믿어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겁니다.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그게 진실입니다!"
호이 씨는 미소를 지으며 겸손하게 대답했다.
"어쩌면 전 진실보다는 사탕을 더 잘 알지도 몰라요."

안은 침묵했다. ‘더 이상 여기 존재하지 않음‘을 연습하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해 보려 했으나 아주 잠깐 동안만 성공했다. 

"피셔 따위는 집어치워!"
아그네스 K가 착각하지 않았다면, 그 말은 다름 아닌 증조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이었다. 죽기 전에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을 테니, 틀림없이 훨씬 나쁜 마지막 말을 속삭였을 것이다. 우리 가족 가운데는 아무도 그날 저녁과 뷔페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분명 아무도 관심이 없을 터였다. 왜냐하면 모두들 갑자기 끔찍하게 많은 것을 계획하고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증조할아버지가 영원히 세상에서 도망쳐 더는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하는 지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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