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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얼굴 -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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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독일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문학의 교황'이라 불리는 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향년 93세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었다. 그의 저서 <작가의 얼굴>이 우리나라에서 재출간된 지 약 한 달만의 일이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그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에 받아든 이 책은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독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고, TV 프로그램 <문학 4중주>를 통해서 일반 시청자들을 고전 독자로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영향력을 지녔다는 사람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니. 게다가 이 책에 소개된 40명의 작가 중 이름조차 낯선 사람이 거의 절반에 가까운 것을 깨닫고 조금 충격이었다. 나의 독서력이 얼마나 미약한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이제 나는 그의 이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라는 위대한 평론가와 세계문학사에 족적을 남긴 작가를 스무 명 가까이 새로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작가의 얼굴>에 실린 작가들의 초상화는 하나같이 개성이 넘친다. 마치 시사만화처럼 다소 익살맞아 보이는 로레다노의 그림들은 특히 눈길을 끈다. 화풍 때문이라고 해도 같은 작가가 그린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 보이는 것을 보면, 역시 그림이란 그리는 사람의 마음을 담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수십장의 초상화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툴리오 페리콜리가 그린 막스 프리슈의 초상화이다.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인상 속에서도 작가로서의 고집 같은 것이 느껴지는 이 그림을 보고 있자면 라이히라니츠키가 페리콜리에게 "재치와 풍자만이 아니라, 존경과 연민까지도 담아낼 줄 아는 화가"라는 찬사를 보낸 이유를 알 것 같다. 



문학을 사랑한 사람답게 라이히라니츠키는 글 속에 작가들에 대한 애정을 가감없이 담는다. 하지만 그는 '좋은 게 좋다'는 두루뭉술한 표현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랬다면 그는 진짜 스타 평론가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라이히라니츠키가 신보다도 믿는다는 셰익스피어와 괴테에 대해서는 각각 "역사 이래 가장 뛰어난 작가"와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표현했지만 하인리히 만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그의 책을 좋아한 적은 없다"고 말한다. 


자신을 "반편의 폴란드인, 반편의 독일인, 그리고 온전한 유대인"이라고 말했던 라이히라니츠키는 유대인 작가들에 대해서는 감정을 더 많이 드러낸다. 그는 구스타프 말러를 "도달 불가능한 것을 동경하고 갈망하다가 최고조에 이르러 좌절한" 작가로, 알프레트 되블린은 "바보라서, 측은히 여겨질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요제프 로트는 "고향을 찾아 헤맨 동구의 유대인"으로 표현했다. 유대인들은 세계 곳곳에서 부자와 천재의 상징이 될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음에도 여전히 '약속의 땅'을 찾아 헤매는 실향민이다. 그런 동포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라이히라니츠키는 굳이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지독한 유대인 혐오주의자"인 리하르트 바그너를, 그를 감동시킨 <트리스탄>이나 <명가수>를 썼다는 점에 있어서만은 인정하는 객관성도 지니고 있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라이히라니츠키의 글솜씨이다. 평론가이니 글을 잘 쓰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의 놀라운 표현력과 비유는 책 여기저기에 지뢰처럼 도사리고 있다가 독자의 입에서 감탄을 끌어낸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말이다. 

토마스는 시민이면서 귀족이었고, 하인리히는 구제불능의 보헤이만이면서 준엄한 예술가였다.(164쪽)

그는 위트를 갖춘 설교자였고, 유머를 아는 세계 변혁가였으며, 풍자를 구사하는 정의의 사도였다.(67쪽) 

읽을 때는 무척 쉬워 보이지만 아마 글을 써본 사람들은 이런 문장을 써내는 것은 녹록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작가의 얼굴>은 에세이라기보다 라이히라니츠키의 사진 일기 같다. 읽고 나면 왠지 라이히라니츠키의 삶의 단편들을 엿본 느낌이 들어 그가 무척 친근하게 느껴진다. '누군가가 읽은 책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그는 책이 삶이고 삶이 책인 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책을 말하고, 인용하고, 권한다. 그래서 어려운 작가론과 어려운 책들이 가득한데도 가벼운 수필을 읽듯 편안하게 읽힌다. 그가 소개한 작가와 작품이 궁금해서 자꾸만 기웃거리게 된다. 어려운 글을 어렵게 쓰는 것은 재능이 아니고, 쉬운 글을 어렵게 쓰는 것은 자랑이 아니다. 어려운 글을 쉽게 쓰는 것이야말로 진정 글쓰는 재주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라이히라니츠키는 최고의 작가다. 


작가 지그프리트 렌츠와 "너무 가까웠기에, 평론에 필수적인 '거리'를 확보하기 힘들"어지자 그의 작품에 대한 비평을 자제한 것에서 평론가로서의 단단한 신념도 느껴진다. 그는 "평론가의 첫째 의무는 정직함"이라 했고, "명료함은 예의"라고 했다. 나는 읽은 책에 대한 리뷰를 쓸 때 '내가 책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할 자격은 없다'는 생각과 누군가 반박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언제나 모호한 태도를 견지해 왔다. 비록 평론가도 전문가도 아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리뷰어로서의 내 태도는 책에 대한 예의도 독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라이히라니츠키라는 평론가를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 정말 많이 아쉽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가 글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영화 <러시안 소설>에서 김기진 작가가 한 대사처럼 '말은 뱉으면 사라지지만 글은 남으니까'. 앞으로 그의 글을 좀 더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아,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 한 가지. "살아 있는 한 최종 결말이 어찌 날지" 모른다던 귄터 그라스와의 악연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답은 이제 귄터 그라스만이 알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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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 2013-11-02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수리뷰로 선정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마법고냥이 2013-11-02 23:05   좋아요 0 | URL
정말 감사합니다^^ 처음이라 얼떨떨하네요~

남희돌이 2013-11-02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수 리뷰 선정 축하합니다.

마법고냥이 2013-11-03 00:2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제7여자회 방황 1
츠바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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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귀여운 여고생 두 명이 사이좋게 머리를 빗겨주는 표지 그림(다소 괴상한 형태의 물건도 보이지만 크게 신경쓰지 말자) 위에 핫핑크색으로 박힌 제목 <제7여자회 방황>. '제7여자회 방황'이라니? 제목을 아무리 곱씹어보아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만화를 읽다 보면 알게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일단 끝까지 읽어보아도 제목의 뜻은 알 수가 없다. 다만, 만화를 읽고 나니 '제7여자회 방황'의 뜻을 아는 게 뭐 그리 중요하겠냐 싶어졌다.



'카네양'이라는 별명을 가진 카네무라와 그녀의 친구 타카기가 이 만화의 주인공이다. 평범한 여고생으로 보이지만 둘의 일상은 눈에 띄게 특이하다. 카네양의 방은 핵 셸터이고, 그녀들이 사는 시대에는 죽은 사람의 마음을 데이터로 추출하여 디지털 천국에 재생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해 있다. 카레라이스, 오므라이스, 만두 등 온갖 음식의 맛이 나는 껌도 있다. 시대적 배경이 현재인지 미래인지 아니면 4차원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또한 뭐 어떠랴. 



핵 셸터에 살면서 디지털 천국을 통해 죽은 친구를 만나고, 외계인이나 괴물까지 출몰하는 일상이 평범하다니... 오히려 해저 콜로니 쪽이 훨씬 더 평범해 보이는데 말이다. 하지만 웃자고 그린 만화에 대고 밀리미터 단위까지 진지하게 따지고 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이나 <할시온 런치> 같은 만화에서 논리를 찾는 것은 우습지 않은가. 


하지만 이 만화를 그냥 웃고만 넘기기도 어려운 것이, 중간중간 촌철살인과도 같은 대사들이 튀어나온다. 얼척없어서 웃음이 터지는 개그만화에서 순간순간 진지하게 반성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 나온다는 말이다.  

하긴 뭔지 알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우는 많으니 일일이 다 상관할 수는 없어.

카네양의 무심한 이 한마디라든가, 

왠지... 나는 부모님 마음대로 살려두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가짜 천국에서 급히 부활해버려서... 뭘 어떻게 하면 좋은 건지 아직 전혀 모르겠어. 이건 정말로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싶어서...

죽은 친구가 디지털 천국에서 타카기에게 남긴 이 대사를 보고 있으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연연하거나 고인을 억지로 현실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결국 인간의 헛된 욕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제7여자회 방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친구'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는 전국의 고등학교에서 입학과 동시에 '친구 선정'이라는 제도를 통해 단짝을 만든다는 설정이 나온다. 성적표에도 '친구'라는 항목이 있을 정도이다. 카네양과 타카기도 입학 후 친구 선정 시에 똑같이 '7번'을 뽑아 친구로 엮인 케이스이다. 비인간적인 제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규정만 없을 뿐이지 무한경쟁의 칼바람 속에서 순수하게 친구를 사귀는 일마저 사치가 된 요즘 10대들의 현실이 이보다 크게 나은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카네양과 타카기는 서로를 이해하며 진짜 단짝친구가 된다. 성적을 위해서도 아니고, 누구의 눈치를 보아서도 아니다. 카네양은 친구 선정 제도에 불만이 있었지만 타카기의 장점을 발견하면서 정말로 호감을 느끼게 되고, 카네양에게 잘 보이려고 눈치만 살피던 타카기도 카네양을 좀 더 편하게 대하게 된다. 비록 시작은 타의였지만 카네양과 타카기는 자신들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제7여자회'를 결성(?)한 것이다. 

 

우연 같은 필연으로 만난 단짝친구 카네양과 타카기의 황당한 일상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독자의 상상 정도는 가뿐히 뛰어넘어 줄 것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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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는 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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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일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본문화가 완전히 개방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작으로 화제가 된 1997년 작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조차 2003년에야 정식으로 극장에서 개봉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 사람들은 다 봤다고 하는 것이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었다. 나 역시도 1997년 당시 <모노노케 히메>를 정말 보고 싶어서 영어판 비디오를 구했다. 영어도 일어도 짧아 주인공 이름 외에는 거의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몇 번씩 보고 또 보았다. 지금도 내게 있어 미야자키 감독 최고의 작품은 <모노노케 히메>이다.


비록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온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은 나의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적잖이 아쉽지만, 그래도 그의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절대 가벼워지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도 띠지 속에서 자신이 만든 캐릭터 '토토로'와 똑 닮은 얼굴로 지그시 미소짓고 있는 수염 할아버지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가 소개한 50권의 책은 우리나라에도 대부분 번역서가 나와있는 것으로 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만 읽는 것이라는 편견과 미야자키 하야오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은 잠시 덮어두고, 그저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이 책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고른 이와나미 소년문고 50권에 대한 짤막한 소개로 이루어진 제1부와 책과 그림, 자신의 일에 대한 그의 에세이로 이루어진 제2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50권 중 첫번째 책으로 <어린 왕자>를 꼽았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 처음 읽은 후로 2~3년에 한 번씩 다시 읽는 책이라서 무척 반가웠다. 그의 말대로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이다. 소개된 책 중 가장 읽어보고 싶은 책은 미야자와 겐지의 <주문 많은 요리점>. 이미 유명한 책이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개글을 보면 지금 당장 이 책을 읽어야만 할 것 같다. <파를 심은 사람>이라는 한국 민화 모음집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웃 나라 사람에 의해 우리나라의 책을 알게 되는 기분은 무척 기묘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작품 속에서 한결같이 평화와 자연의 소중함을 이야기해 온 감독이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서도 눈을 돌리지 않은 예술인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예전만 못하다는 비판과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애니메이션을 꿋꿋이 만들어 온 장인이다. 그래서 그의 창조 기반에 어린이책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책은 읽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그가 책 읽기를 정말 즐길 수 있게 된 계기가 어린이책이었던 것도 그리 놀랍지는 않다. 그의 말처럼 '살아남는 것은 재미있'는 것이니까. 그는 자신에게 재미있는 책을 읽었고,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어 할 작품을 만들었다. 


애니메이션 감독답게 그는 책의 표지와 일러스트에도 관심이 많다. 어린이책에 실린 유럽 작가들의 정교한 일러스트에 감탄하는 것을 보면 그의 지독한 장인정신과 순수한 예술혼이 느껴진다. 아름답고 섬세한 배경으로 유명한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바탕이 그의 이런 성격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책에 대한 그의 생각에 나는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가 바라는 '단 한 권만 있으면' 되는 책을 나는 바라지 않는다. 세상에 책이 너무 많아서 평생 다 읽지 못한다는 것이 꼭 안타깝지는 않다. 죽는 순간까지 내게는 열리지 않은 책의 내용을 상상하며 설레는 기대감을 가지는 것도 무척 낭만적일 거라 생각한다. 좋은 책이 많은 곳에 사는 것은 축복이다. 그래도 '나만의 책 한 권'은 가지고 싶다. 누가 뭐래도 내게는 최고인 책, 마치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애인 같은 책 한 권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스스로 책 읽는 법을 깨닫고, 좋아하는 책을 찾고, 자신만의 책 한 권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자라서 기억에 남는 책이 수학 참고서나 영어사전이 되는 세상은 상상하기조차 싫다. 


아무도 현실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현 시대에서 '종말'을 보고 있지만 어린이들에게서 '미래'를 보고 있다. 빠르고 쉽게 소비하며 금방 잊어버리고, 왜곡된 현실과 진짜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다시 해볼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 바로 어린이문학이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한때 아이였던 어른들을 위해서도 그가 권하는 50권의 책들은 의미가 있다. 


책 읽기의 즐거움도 잊은 지 오래, 책을 읽어야 할 이유도 잃은 지 오래인 사람들에게 이 책에 소개된 어린이책들로 다시 독서를 시작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뽑은 책이라서가 아니라, 세상에는 재미있는 책이 아주 많다고 말해주며 사람좋게 웃는, 어린이책을 무척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권하는 책이라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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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 정글 라이프 / 반디울 / 매일경제신문사

 지친 일상을 위로하는 것은 거창한 조언이나 채찍질이 아니라 아주 소소하지만 그래서 더 따스한 이야기들이다. 작고 귀여운 그림과 짤막한 글이 어우러진 이 책은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고, 읽으면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자신을 반성하게 되기도 한다. 읽기 쉬우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라서 골라보았다.






 2. 같이 밥 먹을래? / 여하연 / 이봄

 '혼자' 하기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바로 밥을 먹는 것이다. 혼자 먹는 밥은 왠지 맛이 없고, 심심하고, 창피하다. 자신만의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은 그래서 동경의 대상이다. 저자의 부엌에서 만든 음식과 그 음식을 함께 먹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잊고 있던 사람들에게 '같이 밥 먹을래?'라고 연락하고 싶은 기분이 들 것만 같다. 




 3. 홈메이드 라이프 / 몰리 와이젠버그 / 앨리스

 예쁜 표지만큼이나 예쁜 글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의 에세이. 표지에서 달콤한 향기도 풍겨나올 것만 같다. 가족과 음식이라는,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존재를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골라보았다. 레시피가 함께 나와 있다는 점이 또한 매력적이다. 





 4. 노 보더 / 장은선 / 세상의모든길들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그것으로 평생 직업을 삼는 것은 많은 오타쿠의 꿈이기도 하다. 하지만 덕업일치의 길이란 절대 쉽지 않다. 좌절을 새로운 길로 바꾼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용기 혹은 내일에 대한 기대를 되찾고 싶어서 골라보았다. 







 5. 고양이와 느릿느릿 걸어요 / 박용준 / 예담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동물이 바로 고양이이다. 특히나 길고양이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은 일본의 길고양이들은 특유의 한가로움과 당당함이 매력적이다. 우리나라의 길고양이들도 좀 더 편안하고 고양이답게 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면서 이 책을 추천한다. 일본여행정보는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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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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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라고 하면 베르사유 궁전 정원이나 영화에 나오는 비밀의 정원처럼 화려하고 신비로운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무의식적으로 정원은 부유한 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고 나서 정원은 '사람의 보살핌 속에서 풀과 꽃이 자라는 평화와 안식의 장소'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그리고 문득 내가 아주 어릴 때 보았던 외할머니의 꽃밭이 떠올랐다. 시골에 있었던 외갓집의 넓은 마당에 외할머니는 키 큰 꽃들을 많이 심으셨다. 외갓집에 놀러갔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외할머니는 크고 튼튼한 꽃들을 한아름 따서 내 품에 안겨주시곤 했는데, 그 꽃들은 하도 탐스러워 절대 시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결혼 후 힘들게 사셨다는 외할머니는 꽃들을 돌보며 마음의 평화를 찾으셨던 걸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높이 들어라.
한 조각의 하늘, 초록빛 나뭇가지들로 덮인 정원의 담장,
멋진 개 한 마리, 떼를 지어가는 어린아이들, 아름다운 여성의 머리 모양.
그 모든 것들을 놓치지 말자.(51쪽)
독일을 대표하는 대작가 헤르만 헤세가 밀짚모자를 덮어쓴 채 땀을 흘리며 정원을 가꾸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을 쓴 헤르만 헤세가 동명이인 아닐까 잠시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작가이기 이전에 우리 외할머니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이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헤르만 헤세에게 정원은 생명이고, 여유이고, 휴식이며, 마침내 인간이 머물러야 할 곳이었다. 

헤세는 '정원을 가꾸면서 마치 자신이 창조자가 된 듯한 즐거움과 우월감(17쪽)'을 즐겼다. 이것이 바로 정원이 가진 힘이다. 작은 식물 하나라도 키워본 사람이라면 그 기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씨앗에서 싹이 나고, 잎이 하나하나 늘어나고, 키가 커지고, 마침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을 보고 있자면 이런 생명체를 키워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뿌듯하기 그지없다. 

당연하게도 헤세는 공업의 발전에 무척 부정적이었다. 문명은 태고의 견고한 형태를 '어설프며 새로울 뿐 무의미하고 유희적인(27쪽)' 형태로 대체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오랫동안 공들인 것에 애정을 쏟기보다는 빨리빨리 새 것으로 바꾸기에만 열중하는 요즘의 경향을 보고 있자면, 우리는 정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정작 모르고 사는 것 같기도 하다. 


1차 세계대전은 헤세의 마음에 무엇보다 큰 상처를 남겼다. 그에게 전쟁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나게 추악한 짓(115쪽)'이며 '아무에게도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것(115쪽)'이었다. 이는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소설 <어제>에서 묘사한 전쟁의 모습과 맥을 같이 한다. 사람의 인생을 한순간에 왜곡시켜버리는 끔찍한 일 말이다. 

반면 헤세는 '죽음'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다. 그는 '가장 무상한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96쪽)'이라고 말하며, '그래서 죽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꽃이며 가장 사랑스러운 것일 수 있(96쪽)'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체념이나 삶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정원을 가꾸며 탄생에서 소멸로 이어지는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인 결과로 보인다. 

모든 생명의 단계는 맹아로부터 시작하여 죽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184쪽)
책을 덮을 때쯤에는 나도 나만의 정원을 가지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다. 그냥 작은 화분 하나라도, 아니, 실체가 없이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정원이라도 좋을 것 같다. 자신의 손으로 생명을 탄생시키고 책임진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 그 속에서 소소한 기쁨을 느끼는 법을 터득한다면 우리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슬픔에 잠겨 당신이 가진 것들한테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이따금 좋은 구절을, 한 편의 시를 읽어보라. 아름다운 음악을 기억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당신의 삶에서 느꼈던 순수하고 좋았던 순간을 기억해보라! 만약 그것이 당신에게 진지해진다면 그 시간은 더 밝아지고, 미래는 더 위안이 되며, 삶은 더 사랑할 가치가 있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리라!(157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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