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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읽고 리뷰를 쓰게 된 것이 무척 영광이면서도 조심스럽다. 이윤기 선생님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번역가이기 때문이다. 평어체로 쓰는 리뷰에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어울리지 않지만 그 밖에 다른 호칭은 생각나지 않는다. 글로 밥먹고 사는 것도 아닌 내가 감히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되나 하는 걱정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이윤기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와 『변신』을 '재미있게' 읽지 못했을 것이다. 어려운 책은 어렵게 번역될 수밖에 없다는 편견을 바꿔준 것이 바로 이윤기 선생님의 번역이었다.
이윤기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윤기 선생님은 읽고 쓰기를 좋아하고, 언어에 관한 모든 것을 즐겼으며, "길을 따르지만 길에 갇히지 않는 말, 정교하고 섬세하면서도 살아 펄떡이는 말에 대한 집착"을 가진 사람이었다. 책 속에서 살아 펄떡이는 글들처럼 선생님도 생명력이 넘치는 분이었을 것 같다. 잘못 사용하는 표현을 꼬장꼬장 지적하는 학자의 모습을 보이다가도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마치 첫사랑에 빠진 해맑고 수줍은 소녀 같다. 글 속에서 이윤기 선생님은 보수적이면서도 자유롭고, 공정하면서도 애정이 넘친다.
이 책은 이윤기 선생님의 '번역'에 대한 생각, '문학'에 대한 생각, '우리말'에 대한 생각을 엿보기에 딱 좋다. 특히 「잘 읽은 말을 찾아서」라는 글은 두고두고 읽어볼 만하다. 좋은 문장을 뽑아내거나 짧게 요약할 수 없을 만큼 글 전체가 유익하다.
'번역이나 하는 사람'으로는 안된다. '번역까지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121쪽)
영화 『러시안 소설』에서 소설가를 지망하지만 문장력이 형편없는 신효에게 소설가의 딸 가림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밀도는 문장이나 단어 하나하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글자 하나, 점 하나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글자를 막 다루면 안된다고. 하물며 다른 이의 글을 옮겨야 하는 번역가에게 있어서 글자 하나하나란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이윤기 선생님의 글이야말로 글자 하나하나를 허투루 다루지 않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윤기 선생님은 문법을 정확하게 지킨 글이 좋은 글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입말(구어)을 글말(문어)로 쓰는 것에 적극적이다. 구어체로 쓰면 재미있고 문어체로 쓰면 딱딱한 글이 된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전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말을 쓰는 것이 좋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어도 독자가 이해할 수 없으면 소용없다. 한편으로는 "언어는, 살짝 보수적인 사람들이 이렇게 까다롭게 굴지 않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서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며 바른 말 사용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나도 그 고삐를 잡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 공부가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깨닫고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결국 "문제는 소통이다". 전세계가 공통 언어를 쓸 수 없기 때문에 번역은 소통의 필요조건이다. '소통'은 '공감대'가 있으면 더욱 빠르고 활발해지는 법이다. 같은 작품을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다. 이렇듯 더 많은 사람들과 더 좋은 것들을 공유하기 위해 번역에 사용되는 언어는 정확성, 융통성, 유연성, 시대성을 모두 지녀야 한다. 번역만이 아니라 어떤 글이라도 마찬가지다.
이윤기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앞으로 글을 쓸 때 좀 더 '고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글은 끝까지 내가 책임져야 한다. 뱉어놨다고 남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더 고민하고 공부하고 읽을 사람을 생각하면서 써야 한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는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했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준 책이었다. 앞으로도 옆에 두고 틈날 때마다 읽고 또 읽어야겠다. 내 글에서도 '땀과 자유'가 날뛰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