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산 - 삶은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이야기다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이경식 옮김 / 부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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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점점 더 좋아지는 건 부분적으로는 전혀 역사적이지 않은 자잘한 행동들 덕분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을 수도 있었던 것처럼, 당신이나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그다지 고약하지 않을 수있었던 것의 절반쯤은, 남에게 드러나지 않은 인생을 충실하게 살았으며 지금을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에 편안히 잠들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 덕분이다." _ 한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공생하는 것 중 - P541

"인생을 살아가는 비결은 어떤 과제를, 평생을 바칠 무언가를, 남은 인생 동안 매 순간마다 모든 것을 쏟아부을 무언가를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 과제가 당신이 도저히 완수할 수 없을 것처럼 어렵고 힘든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_ 한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공생하는 것 중 - P558

이 상황은 좋은 삶을 살아가는 것, 즉 사랑과 연결을바라는 깊은 인간적 갈망을 채우는 것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든다. 모든 연령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지만 특히 청년들은 더 그렇다. 이들은 구조화되어 있지 않고 불확실하기만 한 세상에 던져진다. 믿고의지할 권위나 방호책도 거의 없다. 그런 것들은 오로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자기 인생 여정에 올려놓는 일 자체가 놀라울 정도로 어렵다. _ 가장 바람직한 삶은 어떤 삶인가 중 - P74

능력주의meritocracy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가장 자신만만한 도덕 체계이다. 이것이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고 또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 버렸는지, 이것 때문에 사람들이 비경제적인 대상조차 경제 관련 용어로 가리키거나 설명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의식하지 못한 채살아간다. 사람들이 쓰는 단어들은 자기가 의미하는 내용을 바꾸어나간다. ‘인격character‘은 이제 더는 사랑, 봉사, 보살핌 등과 관련된 어떤 도덕적 자질이 아니라 끈기, 생산성, 자기 규율 등과 관련된 일련의 업무 특성이다. 능력주의는 ‘공동체(community)‘를 재능 있는 여러 개인들이 서로 경쟁하는 집단으로 규정한다. _ 경쟁은 영혼의 나태함을 부추긴다 중 - P91

실용주의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실용주의가 먹히지 않는다. 불안정한 과잉성취자는 어떤 것에는 온전히 모든 의지를 발동하지 않으며, 따라서 온전히 만족하는 경우는 결코 없다. 그의 뇌는 움직이고 있으며 지위는 올라가지만 그의 심장과 영혼은 결코 온전하게 관여하지 않는다. _ 경쟁은 영혼의 나태함을 부추긴다 중 - P95

내 경험으로 볼 때 텔로스 위기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걷는 형태, 하나는 잠자는 형태이다. 걷는 형태에서는 고통당하는 사람이 그저 계속 터벅터벅 걷기만 한다. 이 사람은 어떤 충격을 받거나 깊은 권태감에 시달리는 상태이지만,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또는 자기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야 옳은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그저 자기가 하고 있던 것을 계속 하고 있을 뿐이다. 똑같은 일거리, 똑같은 장소, 똑같은 일상, 똑같은 인생……. 이 사람은 자기가 안주하고 있다는 심리적 자각과 함께 살아간다. _ 고통은 때로 지혜로 나아가는 관문이다. 중 - P103

부족주의는 공동체적 유대감을 회복하려는 시도인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사람들을 강한 유대감으로 묶어 주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공동체의 어두운 이면이다. 공동체는 구성원들이 함께 나누는 애정을 토대로 한 결속체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사용하는 의미의 부족주의는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증오와 공동으로 설정하는 적을 존재론적 토대로 삼는다. 부족주의 정신은 희소성을 토대로 하는 전사의 사고방식이다. 이 사고방식에서 인생은 최소한 자원을 놓고 ‘우리’와 ‘그들’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이며, 따라서 제로섬 게임일 뿐이다. 여기에서는 결과가 수단을 합리화한다. 정치는 전쟁이다. 사상은 전투이다. 죽느나 죽이느나만 존개할 뿐이다. 불신은 부족주의의 세계관이다. 부족주의는 외로운 자아도취가들을 위한 공동체이다._ 고통은 때로 지혜로 나아가는 관문이다 중 - P112

계곡은 우리가 낡은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자기를 만날 수 있는곳이다. 지름길은 없다. 아주 오래전부터 시인들이 묘사해 왔던 동일하고 영원한 세 단계 과정, 고통에서 지혜로 그리고 다시 봉사로 이어지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낡은 자기를 죽이고, 텅 빔 속에서 깨끗이 씻고, 새로움 속에서 부활하는 것이다. 계곡의 고뇌로부터 사막의 정화를 거쳐 산봉우리의 통찰에 이르는 것이다. _?자기 인생에 귀 기울인다는 것 중 - P117

개인주의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힘쓰라고 말하지만, 두 번째 산에 있는 사람은 인생의 의미와 도덕적 기쁨을 추구하는 데 힘을 더 쓴다. 개인주의는 독립성을 찬양하라고 말하지만, 두 번째 산에 있는 사람은 상호 의존성을 찬양한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의존할 수 있는 기회를 찬양하고 그들이 자기에게 의존하게 되는것을 찬양한다. 개인주의는 자율성을 찬양하지만, 두 번째 산은 관계성을 찬양한다. 개인주의는 적극적인 목소리로 말하며(설교하기, 주장하기) 결코 수동적인 목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두 번째 산의 반란은 귀 기울여 듣고 응답하고자 한다. 주고받는 친밀한 목소리로 소통한다. _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깊은 헌신 주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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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산 - 삶은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이야기다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이경식 옮김 / 부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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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첫 번째 산에서 사람들이 설정하는 목표는 자신이 속한 문화권에서 규정하는 통상적인 목표이다. 성공하기, 남들에게 존경받기, 제대로 된 사회 집단에 초대받기, 그리고 개인적인 행복 누리기, 전부 통상적인 것이다. 좋은 집, 화목한 가정, 멋진 휴가, 맛난 음식, 좋은친구들. _ 서론 중 - P14

이 두 번째 산은 첫 번째 산의 반대가 아니다. 이 산에 오른다고.
해서 첫 번째 산을 내팽개친다는 뜻이 아니다. 두 번째 산에 오르는것은 첫 번째 산에 오르는 것에 이어지는 또 하나의 여정이다. 이 여정은 좀 더 관대하고 만족스러운 인생 국면이다. _ 서문 중 - P18

이제 자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소명이다. _ 서론 중 - P18

첫 번째 산이 자아ego를 세우고 자기self를 규정하는 것이라면 두번째 산은 자아를 버리고 자기를 내려놓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무언가를 남에게 주는 것이다. 첫 번째 산이 계층 상승의 엘리트적인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 사이에 자기 자신을 단단히 뿌리내리고 그들과 손잡고 나란히 걷는 평등주의적인 것이다. _ 서론 중 - P21

60년 동안 자기 숭배(자기의 틀 짜기, 자기에게 투자하기, 자기 표현하기 등)는 우리 문화의 중심적인 관심사로 군림해왔다. 자본주의와 능력주의 그리고 현대 사회학은 이기심을 표준화해 왔다. 인간에게 유일한 실질적 동인은 이기적인 것들(돈, 지위, 권력을 향한 욕구)이라는 명제를 당연시하도록 만들어 온 것이다. 그러면서 베풀고 보살피고 사랑하는 일은 사회라는 케이크가 아름다워 보이게 하는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은밀하게 확산시켰다. _ 서론 중 - P33

행복은 우리가 첫 번째 산에서 목표로 삼는 것이고, 기쁨은 두 번째 산에서 살아갈 때 저절로 생기는 부산물이다. _ 서론 중 - P36

기쁨은 강력한 의도와 자기 망각이 만나는 지점이며, 형식적으로는 바깥에 있는 듯이 보이는 것과 우리 내면에 놓여 있는 것이서로 소통하는 신체적 화학 반응이다. 이제 그것은 그 어느 쪽도아닌, 살아 움직이는 경계선, 우리와 세상 사이에서 말하는 목소리이다. 춤, 웃음, 애정, 스킨십, 자동차 안에서 노래 부르기, 부엌에 흐르는 음악,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다정다감한 딸의 조용한 존재감, 우리가 예전에 자신이라고 여겼던 모습과 자신이 아니라고 여겼던 모습 사이의 어떤 가장자리로 존재하는 세상의 순수하고 도취적인 아름다움이다. _ 서론 중 - P41

자기를 알고자 한다면 자기를 버려야 한다. 자기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_ 서론 중 - P51

행복은 첫 번째 산에 있는 사람들이 설정하는 당연한 목표이다. 그리고 행복은 위대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인생은 단 한 번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을 한층 더 큰 어떤 것을 구하는데, 즉 행복을 즐기되 행복을 넘어 기쁨으로 나아가는 데 사용해야 마땅하다. 행복은 개인적인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질문으로 행복을 측정한다. 이에 비해 기쁨은 자기를 초월하는 경향이 있다. 즉 기쁨은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서 우리를 덮치는 어떤 것이다. 행복은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데서 비롯되지만, 기쁨은 남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데서 비롯된다. 행복은 서서히 사라진다. 우리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 것들에 익숙해진다. 하지만 기쁨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쁨을 가지고 사는 것은 경이로움과 감사와 희망을 가지고서 사는 것이다. 두 번째 산에 있는 사람들은 예전의 모습에서 완전히 달라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깊이 헌신하는삶을 살아간다. 이들이 내뿜는 사랑은 우리 모두에게 변함없이 꾸준한 힘이 되어 준다. _ 서론 중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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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리커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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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책들을 자주 읽어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 시절을 거치지만, 어린이를 모두 알다는 믿음을 무너뜨린다. 경험의 과신을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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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리커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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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성‘이라고 하면 유별난 점, 뚜렷이 드러나는 특징, 남들과 확실히 구분되는 독보적인 무언가를 떠올리곤했다. 그러면서도 장점이나 장점으로 봐 줄 만한 무언가여야 개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것이 없으면 평범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들 덕분에 개성이란 ‘고유성‘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린이들이 저마다 가진 고유한 특징을 몇 가지만 꼽아 보아도 알 수 있다. _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중 - P86

사람들이 각자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우주는 활기차다.
서로 달라서 생기는 들쭉날쭉함이야말로 사무적으로 보일만큼 안정적인 질서다. 그런 우주 속에서 살아간다는 게 나는 안심이 된다. 우주가 우리 모두를 품을 수 있을 만큼 넓다는 사실도. - P92

어떤 어린이는 여전히 TV로 세상을 배운다. 주로 외로운. 어린이들이 그럴 것이다. 어린이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가장 외로운 어린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이 이기는 모습을, 함께 노는 즐거움을, 다양한 가족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가족이 아니어도 튼튼한 관계를, 강아지와 고양이를, 세상의 호의를 보여 주면 좋겠다. 세상이 멋진 집이라고 어린이를 안심시키면 좋겠다. _ 가장 외로운 어린이를 기준으로 중 - P102

특수학교 선생님들에 대해서는 그 길에 들어선 것 자체를 ‘헌신에 대한 약속‘으로 여기고 그분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아닐까? _ 마음속의 선생님 중 - P118

가해자가 성장 과정에서 겪은 일을 범행을 정당화하는 데소비하는 것은 학대 피해 생존자들을 모욕하는 일이다. 학대 대물림‘은 범죄자의 변명에 확성기를 대 주는 낡은 프레임이다. 힘껏 새로운 삶을 꾸려 가는 피해자들을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예비 범죄자‘로 보게 하는 나쁜 언어다. 가정에서 아이를 학대해선 안 되는 이유는 아이를 아프게 하고, 존엄을 무너뜨리고,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이유는 충분하다. 가해자의 잔인한 범행을 나는 악惡이라는 개념 말고 다른 것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악행의 기승전결은 전혀 알고 싶지 않고, 합당한 벌을 받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러니까 칼국수를 먹다가, 빨래를널다가,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가 갑자기 생각하는 것은, 다섯 살 어린이의 삶이다. _ 삶을 선택한다는 것 중 - P162

다만 어린 나는 부모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사랑도 감사의 표현인 양 생각했던 것 같다. 고마워서 사랑한 게 아닌데. 엄마 아빠가 좋아서 사랑했는데, 은혜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응답이었다. 어린 나도 몰랐고, 아마 부모님도 모르셨을 것이다. 어린이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지 않는다. 다만 서툴러서 어린이의 사랑은 부모에게 온전히 가닿지 못하는지 모른다. 마치 손에 쥔 채 녹아 버린 초콜릿처럼. _ 남의 집 어른 중 - P179

의외로 반말을 쓸 때보다 대화의 분위기도 훨씬 부드러워진다. 어린이를 존중한다는 의지가 명확히 표현되는 순간, 어른의 여유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진짜 권위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_ 저 오늘 생일이다요? 중 - P194

어린이는 어른보다 작다. 그래서 어른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큰 어른과 작은 어린이가 나란히 있다면 어른이 먼저보일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 하지만 어떤 어른들은 그 사실을 깜빡하는 것 같다. _ 한 명은 작아도 한 명 중 - P197

어린이는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어디서 배워야 할까? 당연하게도 공공장소에서 배워야 한다. 다른 손님들의 행동을 보고, 잘못된 행동을 제지당하면서 배워야 한다. 좋은 곳에서 좋은 대접을 받으면서그에 걸맞은 행동을 배워야 한다. 어린이가 어른보다 빨리 배운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다. _ 배운 문제 중 - P213

우리에게 자녀가 있든 없든, 우리가 어린이와 친하든 어색하든, 세상에는 어린이가 있다. 절망의 말을 내뱉기 전에어린이를 떠올려 보면 좋겠다. _ 어린이가 ‘있다’ 중 - P220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는 대상화된다. 어른이 마음대로 할수 있는 존재가 된다.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해서 꼭 어린이를 존중한다고 할 수는 없다. 어른이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자기중심적으로 사랑을 표현할 때, 오히려 사랑은칼이 되어 어린이를 해치고 방패가 되어 어른을 합리화한다. 좋아해서 그러는 걸 가지고 내가 너무 야박하게 말하는것 같다면, ‘좋아해서 괴롭힌다‘는 변명이 얼마나 많은 폐단을 불러왔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어린이를 감상하지 말라. 어린이는 어른을 즐겁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의 큰 오해다. _ 오해 중 - P227

어린이의 직관은 무엇을 꿰뚫어 보는 신통한 능력이 아니라, 있는 것을 그대로 보는 힘이다. _ 어린이라는 정치적인 전재 중 - P235

내가 이렇게 큰소리치는 것도 다 어린이 때문이다. 어린이가 그림을 망쳤을 때 "다 소용없는 일이란다. 구겨 버리렴"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고칠 수 있는지 보고, 안 되면 새 종이를 주고, 다음에는 더 잘 그리도록 격려할 것이다. 우리 자신에게도 똑같이 말해야 한다. 실제로 어린이라면 어떻게 할까? 내가 새 종이를 주며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늘어놓기도 전에 어린이는 종이를 뒤집어 뒷면에 새로운 그림을 시작한다. 냉소주의는 감히 얼씬도 못 한다. _ 길잡이 중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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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
조장훈 지음 / 사계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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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부동산, 그 욕망의 콜라보레이션

<대치동>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수험생 부모로써 교육에 관심 자체가 없지만, 회피가 최선이라는 학습효과가 전제되었기에, 그런 만큼 읽기 자체가 도전이었다.

이 책은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고딩 교육 컨설팅 도서가 아니며, 더더욱 부동산 투자 분석 및 현장체험과도 상관없다.

20년 대치동 사교육 현장에서 저자는 주요 시간대별 변화 흐름과 공간적 변동을 주목한다. 인류학 전공자의 연구방법이 빛나는 지점이다. 현장에 들어가 (물론 교육의 일주체였지만) 한발 떨어져 교육정책에 따른 방법의 전환점을 주목한다. 현장의 연구자의 시계열 분석방법이랄까...사교육 시장의 대치동 공간적 분포 특성을 분류하고 그 그룹별 특징을 살펴본다. 어찌보면, “특정 사물”이 있는데 그 이유와 원인을 밝히는 상상력의 소유자와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인내의 연구자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본 도서는 크게 4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 교육 정책 변천, 2) 대치동 부동산의 특성, 3) 대치동 사람동, 4) 대치동에서 바라본 교육 제언이다. 20년 대치동 논술강사와 학원원장의 현장경험은 글의 구체성을 생명을 불어넣어준다. 연구의 추상성이 배제된 구체성을 추구한다. 저자와 같이, 부동산과 교육의 욕망이 만나는 지점이 “수능 정시”와 “재수확장”이다. 즉, 사교육비와 상관관계가 가장 높은 시험은 정시 선발이고, 유리한 학생은 바로 재수생이라는 실증적 근거를 제시한다. 대원족부터 원정족까지 4그룹 유형을 제시하면서 대치동 부동산의 수요를 말한다. 절대 떨어질 수 없는 대치동 부동산의 어마어마한 대기수요까지 머리에 그려진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지인 2명이 생각난다. 한명은 수능시험 초기부터 거의 20년 가까이 ㄱ대학 입학처 실무책임자인 선배의 분노였다. 정시확대는 일반고교정상화를 포기하는 정책이라고, 수시와 정시 전국 고등학교 학교분포를 알고 있는데, 정시로 들어오는 학교가 수시의 약20%밖에 안된다는...능력주의의 허상이 또다른 불평등의 포로인 세상이다. 또 한명 친구 감정평가사는 항상 부동산 가치를 분석하거나 흐름을 판단할 때 대치동을 기준점으로 삼는다. 그 근거는 2부의 글이 제시하고 있다.

읽어내려감에 따라, 질문을 계속 던진다. 학벌이라는 욕망이 가지는 특권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대치동 사교육 시스템을 공교육에 이식 가능할까? 설사 이식한다고 해도 또 다른 문화자본 형태의 갈라치기는 있지 않을까? 자문해본다.

개인적으로는 현정권의 최대 패착은 부동산 폭등이 아닌 일관된 교육정책의 부재와 능력주의의 화신이자 사교육 확대정책인 정시확대에 있다고 본다. 이제 고3 수험생 자녀를 두고 나이스 한번 안들어가 본 자녀의 3대 성공요건중 하나 “아빠의 무관심”이 읽은 대치동 소감이다. 또 하나, 읽기와 글쓰기 교육의 필요성은 저자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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