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는 동사는 ‘이다tobe‘이다. 빈센트는 빈센트였고, 지금도 빈센트이며, 언제까지나 빈센트일 것이다. 제임스는 제임스였고, 지금도 제임스이며, 언제까지나 제임스일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부모였고, 지금도 그들의 부모이며, 언제까지나 그들의 부모일 것이다. 지금과 그때로 나뉘지도, 지금과 나중으로 나뉘지도 않는다. 오직 지금, 지금, 지금, 또 지금만이 있을 뿐이다. - P145
이제는 안다. 공간 바깥의 장소는 이 극단이란 것을, 이 심연이란 것을. 이 심연 속에서는 빈센트가 죽고 나서그 아이와 나눴던 것과 같은 대화를 제임스와 나눌 수 없다. 내가 빈센트를 위해 했던 일을 제임스에게는 해줄 수없다는 사실을 아는데도 근본적 수용이 필요하다. 빈센트는 말로써 삶으로, 나에게로, 자기 단짝에게로, 자기를 알지 못했던 세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제임스는 결코 그렇게 돌아올 수 없다. - P157
어쩌면 그 아이에게는 그 여섯 해하고도 넉 달이란 기간이 지금과 그때, 나중, 훨씬 나중이아니라 지금, 지금, 지금, 또 지금으로 살아낸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극한 하나의 심연. 내가 아무리 그 아이를 사랑해도 바꿀 수 없었던 상황이다. - P161
음악은 제자리걸음을 하는 일이다. 그러다 어쩌면 언젠가 쇼팽의 녹턴을 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른다. 한번은 이렇게 말했다. "십 년? 저 자신한테 십년을 주겠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때쯤이면 제가 녹턴을 칠 수 있을까요?" - P1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