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내가 사랑한 작가 중 누가 정확히 내가 경험한방식으로 심연을 불러냈던가? 심연은 공유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심연에 홀로 머문다. - P193

할 만한 가치와 할 능력사이의 그 간극이 젊은이에게는 열망이 머무는 곳이고 노인에게는 쇠퇴가 도사리는 곳이다.
. - P199

그는 그리스 비극에 니오는 어머니들처럼 곡하지도 않고, 콘스턴스처럼 머리칼을 쥐어뜯지도 않으며, 그곳에 있지도 않은 벽을 쳐대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목소리가 일단 높아지는 순간 생각하는 정신이 아니라 생각할 여지조차 남기지 않는 원초적 고통의 목소리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제임스처럼 나도 생각하며 살아가는 편이 좋다. - P206

진정한 연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 P212

진부함, 희망적 자기기만, 다양한 종류의 자기중심주의에 물들어 싸구려로 전락한 ‘애도‘. 이것이 내가 아이들을 생각할 때 ‘애도‘나 ‘애도하는‘이라는 말을 절대 쓰지않는 또 다른 이유다. ‘애도‘는 내게 오는 이메일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 P218

나는 그 순간 타인이 나를 밀어 넣은 그 깊은 심연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 P223

자식들은 죽고 부모는 심연 속에서 계속 살아간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것이 최악이 아님을 안다. 그 심연 너머에는 또 다른 심연이 있고, 더 의미 있는 심연에 머물려면 생각에 의지해야 한다. 사람들이 우리의 감정은 상하게할 수 있어도 생각은 그럴 수 없으니까. 우리가 정신의 독립을 놓아버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마지막으로 의도적으로든 의도치 않게든 타인에게상처를 주는 사람들에 대해. 나는 그들이 자기 자신도 어쩌지 못할 뿐 아니라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인정일 뿐 이해도, 용서도 아니다. 나는 그 어느 것도 해줄 생각이 없다. - P225

학대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커서 반골이 되거나 탈출의 달인이 된다. 나는 공공연한 반골이 되진 않았지만, 평생에 걸쳐 탈출의 기술을 갈고닦았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이건 오직 학대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만 아는 욕구지. 어느 한 가지를 자기 것으로 지켜내아무도 절대 빼앗지 못하게 하려는 욕구. 당신도 그게 있고 나도 그게 있어. 그런데 우리 아이들한텐 그게 없었어.
만약 있었더라면 자살을 택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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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 동사는 ‘이다tobe‘이다. 빈센트는 빈센트였고, 지금도 빈센트이며, 언제까지나 빈센트일 것이다. 제임스는 제임스였고, 지금도 제임스이며, 언제까지나 제임스일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부모였고, 지금도 그들의 부모이며, 언제까지나 그들의 부모일 것이다. 지금과 그때로 나뉘지도, 지금과 나중으로 나뉘지도 않는다. 오직 지금, 지금, 지금, 또 지금만이 있을 뿐이다. - P145

이제는 안다. 공간 바깥의 장소는 이 극단이란 것을,
이 심연이란 것을. 이 심연 속에서는 빈센트가 죽고 나서그 아이와 나눴던 것과 같은 대화를 제임스와 나눌 수 없다. 내가 빈센트를 위해 했던 일을 제임스에게는 해줄 수없다는 사실을 아는데도 근본적 수용이 필요하다. 빈센트는 말로써 삶으로, 나에게로, 자기 단짝에게로, 자기를 알지 못했던 세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제임스는 결코 그렇게 돌아올 수 없다. - P157

어쩌면 그 아이에게는 그 여섯 해하고도 넉 달이란 기간이 지금과 그때, 나중, 훨씬 나중이아니라 지금, 지금, 지금, 또 지금으로 살아낸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극한 하나의 심연. 내가 아무리 그 아이를 사랑해도 바꿀 수 없었던 상황이다. - P161

음악은 제자리걸음을 하는 일이다. 그러다 어쩌면 언젠가 쇼팽의 녹턴을 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른다. 한번은 이렇게 말했다. "십 년? 저 자신한테 십년을 주겠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때쯤이면 제가 녹턴을 칠 수 있을까요?"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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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은 죽고 부모는 계속 살아간다. 그 부모가 계속 살아가는 것은 죽음이 힘들기 짝이 없는 일이긴 해도 늘 가장 힘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두 아이 모두 힘든 일을 택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가장 힘든 일, 그들의 죽음 이후를 살아가는 일이 남았다. - P88

자식들은 죽고 부모는 계속 살아간다. 다만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뿐이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제임스가 죽고 두어 주 뒤에 나는 친구 데버라에게 월리스 스티븐스의 시집에 실린 마지막 시 「사물에 대한 관념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NotIdeas About the Thing but the Thing Itself」의 마지막 줄을 인용하며 그렇게 적어 보냈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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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 나의 필연은 극한이고 극한 앞에는 어떤 형용사가 놓인들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하기에. - P17

이 일을 좋게 말할 방법은 없다. 사실은 삶에서 가장 냉혹하고 견디기 힘든 부분이지만 바꿀 수 없기에 어떤 질서와 논리를 가져다준다. - P22

아무래도 세상은 강한 확신과 빈약한 상상력, 보잘것없는 이해에 의지해 굴러가는 듯하다. - P17

맞는 말이다. 내 정신은 그때도, 지금도 혼란스럽지않다. 오직 언어에 한계가 있을 뿐. 그 첫 번째 증거는 이것이다. 내가 느끼는 것을 설명할 새로운 글자와 새로운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 P27

나는 상실을 슬퍼하는 과정 grieving, 즉 비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길 쭉 거부해 왔고, 상실을 떠나보내는 과정mourning, 즉 애도라는 단어도 거의 쓰지 않아왔다.  - P42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아이들이 존재할 공간을 내어주고, 그들이 진정한 자신이 되는 데 필요한 일을 하도록 허용하는 일밖에 뭘 더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부모가 아무리 노력한들, 아이가 자라면서 아무리 다양한 존재 방식과 행동 범위를 경험해 본들 어떤아이들은 결국 주어진 삶을 다 살지 못하고 죽는다.
아이들은 죽는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다. - P55

직감이란 다양한 잠재력, 가능성, 선택지를 다루는 서사다. 그런 의미에서 직감은 허구다. 삶으로 확인돼 마침내 사실이 될 때까지는. - P66

그러나 사랑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자기 삶을 끝내기로 한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하리라.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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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말한 아이도 이와 비슷하다. 아이는 반항하기 위해 반항하지 않는다. 규칙을 깨뜨리는 데 집착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만의 세계를 새롭게 창조한다. 니체가 말하는 성숙은 규범을 잘 따르는 것도, 반항하는 것도 아니다. 남이 만든 가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피카소가 평생 추구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아이의 정신이었다. - P177

피카소가 평생 도달하고자 했던 것은 아이의 창조성과 어른의 책임감을 함께 품는 일이었다. 진짜 어른이란 세상에 적응하는사람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돌보며 삶을 창조해 나가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운명에 의해 그려지는 존재가 아니다. 주어진 삶의 재료를 가지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창조적 예술가다. 피카소가 자신만의 예술을 창조했듯, 우리도 각자의 삶을 창조할 수 있다. - P181

남녀 간의 사랑, 우정, 가족 간의 애정 또한 다르지 않다. 생명이 있는 것은 소멸하고, 그 관계 역시 끝이 있다. 이 유한함을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일 때 다른 태도를 가질 수 있다. 결국 덧없음이라는 시간의 한계가 ‘지금-여기‘를 더욱 의미 있게 한다. 사라지는 순간이기에 함께하는 지금이 더욱 소중해진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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