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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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이다. 열일곱 살이후로 단 한 순간도 쉬어본 적 없이 돈벌이를 했지만, 이렇게 집을 나서는 일이 꺼림칙한 적은 없었다. 당장 생활비가 없어서 나가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는데 발걸음이 무거웠다.

_ 왕백숙 중 - P13

백숙집 별채에는 구수한 백숙 냄새대신 치정이 만든 요사스러운 비린내가 고여 있었다. _ 왕백숙 중 - P23

고시원에서 만났을 때도 남편은 수험생이었다. 시골 노모가 보내주는 돈으로 공부를 한다고 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자기만큼 시험에 절실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했다. 절실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북돋웠다. 노모가 대는 돈은 이제 아내가 버는 돈으로 바뀌었다. 아이까지 생겼으니 절실함은 더 간절해졌을 것이다. 남편의 앉은뱅이책상 옆으로 두툼한 수험서들이 세워져 있었다. 국어, 영어, 국사, 행정법, 행정학・・・・・・. 보기만 해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_ 왕백숙 중 - P37

내가 바라는 건 신분 상승이 아니라, 꼬박꼬박 받아오는 월급, 생활비를 주는 남편이었다. 번듯한 벌이가 있는 가장이 필요했다. - P41

그런 남편이 상을 차려놓으면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내가 언제 밥해놓으라고 했나. 식당 일 하는데 굶고 올까 봐!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입술을 깨물었다.
_ 왕백숙 중 - P41

"불쌍하긴 하지. 안 아픈 데가 없는 사람인데, 저렇게 밤낮으로 일을 한다. 하긴, 식당 일 하는 여자들치고 안 아픈 여자없지. 나도 겨우 사십대 초반인데 죽겠어, 아주, 너도 조심해. ~~ 중략"

_ 왕백숙 중 - P43

참을 만큼 참고도 더 참아야 하는 건 가족이었다. 남은 반찬만 갖다 버릴 것이 아니라, 필요 없는 식구도 갖다 버렸으면 싶었다. 앓아누웠던 아버지가 죽기까지 그 생각을 버린 적이 없었다. 걸핏하면 용돈 좀 보내달라는 준영이나 빚 독촉전화를 대신 받게 하는 민영도 마찬가지였다. 밥만 축내면서밤이면 취하다시피 잠든 마누라 배 위에 올라타 남자 행세하려는 남편도 꼴 보기 싫었다. 가족이어서 더 그랬다.

_ 왕백숙 중 - P46

언제나 처음만 힘들었다. 처음만 견디면 그다음은 참을 만하고, 견딜 만해지다가, 종국에는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처음 받은 만 원짜리가 처음 따른 소주 한잔이, 그리고 처음 별채에 들어가, 처음 손님 옆에 앉기까지가 힘들 뿐이었다.
_ 그따위의 나날들 중 - P58

"듣기 싫어! 미안하단 말은 공짜지!
당신이 뭘 안다고! 시끄러워!"

_ 그따위의 나날들 중 - P62

돈을 벌기 위해 몸을 써야만 하는 사람들, 몸 아니면 돈 버는방법을 모르는 사람들, 다른 방법을 차마 꿈꿔보지 못한 사람들, 다른 이들에게는 가능한 꿈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 구부정한 허리로 느린 걸음을 걷는 이들이었다.
_ 그따위의 나날들 중 - P77

길들여졌기 때문이었다. 으레 맞아왔기 때문이었다. 이겨낼 수 없다는 오래된 좌절이 사태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없앴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_ 삼복더위 중 - P108

책을 모조리 찢으면 어떻게든 결론이나겠지. 끝이 나겠지. 남편에게 걸었던 희망이 사라진 것보다, 그런 남편을 믿었던 내가 더 측은했다. 부질없는 희망은 빨리 버려야 했다.

_ 삼복더위 중 - P126

"뜨거운 걸 먹어야 기분이 좀 풀리지 시 자가 들어가는 건다 치가 떨린다. 난 그래서 시금치도 안 먹어. 시집살이를 좀 알거든."

_ 최악과 최선 중 - P144

내가 죽어 무능한 남편 혼자 아이를 맡는 건, 최악이 될까, 최선일까. 피식 웃음이 났다. 최악을 생각해보니 지금의 상황이 그리 나쁜 것 같지 않았다.

_ 최악과 최선 중 - P154

남편이 눈물을 흘렸다. 아파서 우는지, 미안해서 우는지 알도리가 없었다. 나는 남편 옆에 붙어 있을 수 없었다. 당장 일하지 않으면 병원비를 감당할 수가 없을 터였다. 돈도 없는주제에 아프기까지 하다니. 그게 가장의 도리니? 아버지를 몰아세우던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엄마와 똑같은 사람이 되고싶지 않았다. 나는 좀 달라지고 싶었다. 이제와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_ 어서 오세요 중 - P171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경계 표지판이 심하게 흔들렸다.
시에서 도로 들어섰을 때, 안녕히 잘 가시라는 말 때문에 다른 세계로 들어간 것 같았다. 금세 물가가 나왔다. 곧 얼음이일 것이었다. 왕백숙집으로 출근하던 첫날 아침의 풍경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누구보다 참는 건 잘했다. 누구보다도 질길 수 있었다. 다시 시작이었다.

_ 어서 오세요 중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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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 숨 쉬는 법 - 철학자 김진영의 아도르노 강의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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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권력만이 아니에요. 성적 권력이 있어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적인욕망을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관리 통제하려는 권력이 사회 안에 있다는 거죠.

_ 자본주의 시대의 결혼 중 - P274

제가 불륜을 찬양하는 것은 아닌데요, 불륜은 오해의 눈빛이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영역일 수 있어요. 제가볼 때 불륜은 단순히 탈도덕적이고 탈규범적인 것으로받아들여야만 하는 영역이 아니라는 거죠. 그것은 우리의 성적 영역이 잃어버린 어떤 관계를 다시 찾고자 하는하나의 제스처일 수 있다는 거죠. 이런 의미에서 보면 불륜은 진정한 인간관계, 에로스 관계, 성적 관계를 그리워하는 하나의 모습인데 TV 드라마 같은 것을 보면 드러내는 척하면서 또다시 불륜을 성적 객관적 권력에 편입시키죠. 불륜을 드러내면서 통제해요.
_ 자본주의 시대의 결혼 중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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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 숨 쉬는 법 - 철학자 김진영의 아도르노 강의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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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하는 것입니다. 거짓말이라는 것은 인간이 인간다운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명예롭게 발견해내었던 위대한 능력인데, 이 능력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는 너무나 슬픈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이죠. 이렇게 ‘슬픈 거짓말‘이라는 테마로 이번 장을 이해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_ 자본주의 시대의 결혼 중 - P249

결혼은 공동체가 스스로 지킬 수 없는 희망이나 약속을 보장해주는 제도예요.

_ 자본주의 시대의 결혼 중 - P254

사회의 소속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누구나 결혼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어요. 자신의 죽음을 극복하는 불멸의 욕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권리, 자신의 고독한 개체적육체를 다른 육체와 사랑의 관계로 맺을 수 있는 권리예요. 그리고 동시에 무엇이죠? 약육강식의 법칙을 벗어나서 인간다워질 수 있음에 대한 권리예요. 하지만 아도르노가 볼 때 현대사회에서 결혼은 더 이상 축복의 관계가 아니라 저주와 치욕의 관계입니다.

_ 자본주의 시대의 결혼 중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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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리처드 파워스 지음, 이수현 옮김, 해도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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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이 내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별난 이론을 하나 발전시켰다. 인생은 우리가 멈춰 서서 교정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이론 내 아들은 내가 헤아릴 수 있다는희망을 품을 수도 없는 주머니 우주였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실험이며, 심지어 우리는 그 실험이 무엇을 시험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 P18

결국 연민이 올바름과 싸우다가 졌다. ‘예전에는 그런 존재가 사방에 있었어, 아빠 우리가 괴롭히기 전에는 우리가 모든 것을 빼앗았잖아! 외로워져도싸‘ - P62

모든 믿음은 시간이 지나면 맞지 않게 된다. 우주의 첫 번째 교훈은 절대로 한 가지 사례만 가지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례가 하나밖에 없다면 또 모르지만, 그 경우라면, 다른 사례를 찾아야 한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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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정의가 무엇이죠? 패어 있음이에요. 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그것이 상처가 되는 거예요. 자유와 행복이 있어야 할 장소가 움푹 패어 있다는 거죠.
_ 아도르노를 만나며 중 - P42

그런데 아도르노가 탐색하는 또 하나의 거짓말 기능은 진실을 왜곡하거나 해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보존하려 할 때 필요한 것이 거짓말이라는 얘기예요. 그래서본래의 명예로운 기능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_ 자본주의 시대의 결혼 중 - P239

니체가 보기에 그리스인들은 위대한 거짓말쟁이입니다. 이때의 거짓말은 아름다운 생이라는 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이 진실을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죠. 이것이 자연의 거짓말이 아니라 인간의 거짓말이에요. 인간은 서로 물고 뜯어야 하는 생의 운명 속에서 서로 사랑하면서 살 수 있다는 거짓말을 만들어냈어요.
_ 자본주의 시대의 결혼 중 - P243

아도르노에게 거짓말은 계략을 얘기하고, 계략이라는 것은 사실 합리성을 얘기해요. 사유는 자연의 진실을 인간의 진실로 바꾸기 위한 거짓말의 능력이라 볼 수 있는 거죠. 원래 합리성이란 이런 것이었다는 거예요. 우리가 왜 사유를 하기 시작했냐? 결국은 자연의 거짓말을인간의 거짓말로 바꾸기 위해서 인간은 거짓말이라는 능력을 배우게 되었다고 얘기하죠. 이것이 다름 아닌 예술이죠.
_ 자본주의 시대의 결혼 중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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