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야기 ㅣ 한국 근대 문학 기행
김남일 지음 / 학고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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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한옥의 문제점들을 파악해, 예를 들어 수도를 내부에 설치하고, 부엌 바닥에 타일을 깔거나 석탄 아궁이를 설치하고, 햇빛이 잘 드는 남쪽 면을 넓게 설계하고, 식당, 세탁장, 하수구 등을 모두 물을 사용하는 주방에 가깝게 배치하는 식으로 해서 위생적이고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점에 초점을 맞춘 것이 새 한옥의 특징이었다. 그런 작업들은 결국 일본인의 북촌 진출을 막아낸 공로로 이어진다. - P239

그렇지만 하루 종일 이발소에 갇혀 지내야 하는 신세의 소년이 행하는 관찰과 스스로 고현학자임을 자처하는 소설가가 시도하는 관찰은 종류 자체가 엄연히 달랐다. 방법과 목적도 달랐다. 소설가가 말하는 관찰에 가장 유효한 수단은 산보였다. 그리고 그 산보란 특히 근대적 시가지의 산보를 뜻했다. 그리고 근대적 시가지의 이상적 산보법은.… 가장 교묘하게 ‘거짓말‘을 하는 데 있었다.

_ ‘대경성’의 산책자들 중 - P263

미로에서는 새로운 것도 실상은 낡은 것이었다. 새로움의 거죽만동어반복적으로 자꾸 핥는 거였다. 신화는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가르쳐주지 않던가. 다만 이제 과거의 신이 있던 자리에 상품이 있을 뿐이다. 상품의 그 물신은 현대의 대도시를 따라서 그들의 백성을 반쯤 잠든 지루한 노예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마법을 건다.

_ 미쓰코시 백화점, 날개 그리고 이상 중 - P274

소설에서 대영의 자격지심은 당대 조선의 지식인들이 마주친,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솔직하게 반영한다. 우선, 매일같이 그 곁을 지나가야 하는 종각(보신각). 그것은 먼지를 수북하게 뒤집어쓴 채 ‘만국박람회의 아프리카 토인관‘처럼 저 멀리 사멸된 시대를 상징하면서, 생동하는 시대를 가장 첨예하게 반영하는 근처 종로의 번화가와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있었다. 물론 그래봐야 그건 한껏 주접이 든 낡은 유물일 뿐이다. 그걸 거울이라 치고 들여다보면, 눈곱이 다닥다닥 끼고 분 자국마저 얼룩진 얼굴이 비쳐 보인다. 스스로 불쾌하리라. 그래도 어찌할 것인가. 그게 제 얼굴인 것을!

_ 채만식의 종로 산책 중 - P298

한때 카프의 맹장이었던 회원 박영희는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 (1934)이라고 선언해 충격을 던졌다.

_ 김남천과 야마토 아파트 중 - P308

"옛날과는 모든 것이 다른 것 같애. 인제 사상범이 드무니까 옛날 영웅 심리를 향락하면서 징역을 살던 기분도 없어진것 같다구 그 안에서 어떤 친구가 말하더니…. 달이 철창에 새파랗게 걸려 있는 밤, 바람 소리나, 풀벌레 소리나 들으면서 잠을 이루지 못할 때엔 고독과 적막이 뼈에 사무치는 것처럼 쓰리구...."

_ 김남천과 아파트 중 - P318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 쟝,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별 헤는 밤」, 1941)

_ 서울의 별 헤는 밤 중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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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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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있다면 누가 희망 따위를 바라겠는가. 이 세상에 이토록 많은 희망이 필요한 이유는 힘없는 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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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야기 ㅣ 한국 근대 문학 기행
김남일 지음 / 학고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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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전당포라 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에게는 없지 못할 큰 기관일 뿐 아니라 오히려 가난한 사람에게는 전당포 한집이 조선은행이나 한성은행 100개보다도 필요하고 전당놀이하는 사람은 어느 방면으로 보면 소위 겉으로 꾸미고 떠벌이는 자선가나 공익사업을 한다는 사람보다는 휠씬 정직한 자선가라 할 수도 있고 정직한 공익 사엊을 하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_ 꿂주린 서울 중 - P192

이렇듯 ‘성장‘하는 남촌에 비해 북촌은 도시 행정의 모든 면에서 상대적으로 푸대접을 받았다. 예를 들어 1920년대에 수도는 남촌의 전유물이어서 북촌에서는 여전히 우물물을 길어먹었다. 대소변이나 쓰레기를 치우는 문제에서는 북부와 남부사이에 마치 국경선이라도 있는 양 차별이 심했다. 가령 남부에 청소 담당자가 16인인 데 비해 지역이 더 넓고 인구도 더 많은 북부엔 고작 두 명이었다. 변소와 도로의 개수, 살수 청소문제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_ 남촌, 소시지의 거리 중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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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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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한번 더 살 수 있다면, 아마도 이모는 정방동 136-2번지, 그 함석지붕집을 찾아가겠지. 미래가 없는 두 연인이 3개월 동안살던 집. 말했다시피 그 집에서 살 때 뭐가 그렇게 좋았냐니까 빗소리가 좋았다고 이모는 대답했다.

_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중 - P89

매일 밤, 밤새 정감독의 팔을 베고 누워서는 혹시 날이 밝으면 이 사람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어 자다가 깨고, 또 자다가 깨서 얼굴을 들여다보고, 그러다가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또 움직이면 그가 깰까봐 꼼짝도 못하고 듣던, 그 빗소리 말이다. 바로 어제 내린 비처럼 아직도 생생한, 하지만 이제는 영영 다시 들을 수 없는 그 빗소리.

_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중 - P90

아무튼 내 배로 낳은 자식이지만, 그 속까지 내가 낳은 건 아닌 모양이야.

_ 일기예보의 기법 중 - P109

"고통이란 가장 강한 놈이 독점한다는 것을.

_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중 - P166

우리의 맹세를 잊지 말라고 너는 내 손을 깨물었지. 오 해맑은 눈동자의 내 사랑아! 오 잘 물어뜯는 어여쁜 내 사랑아! 맹세는 제대로 된 것이었지만, 물어뜯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었네

_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중 - P179

우리는 나이가 들었고, 세계는 점점 나빠지고, 그 동네는 폐허가 됐다. 이사갈 곳을 마련하지 못해집을 비워주지 못하는 세입자들만이 그 폐허를 지키고 있었다.

_ 동욱 중 - P200

나는 용서해달라는 말을 하려고 거기까지 애들을 따라간 거였는데, 철교 아래까지 가서야 나는 일방적으로 용서받을 수 있을 뿐, 내게는 용서해달라고 간청할 자격 자체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 그래서 나는 강을 등지고 서 있었던 거야. 그래서 내가 볼 수 있는게 그 담배 불빛들뿐이었던 거야.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또 위로솟구쳤다가 아래로 떨어지는, 빨간 불빛들, 남편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_ 동욱 중 - P202

어쩌면 속죄와 정화의 연소일지도 모를, 외로운 불. 이제 그 불은 내 안에서, 관계의 불이 되어, 나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내가 죽는 순간까지도 그 불은 꺼지지 않으리라. 거기에 비하면 15년이란 얼마나 짧은 시간일까!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_ 동욱 중 - P204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뿐이리라. 한 번뿐인 인생 앞에서 도덕은 무엇이며, 또 윤리란 무엇일까?

_ 우는 시늉을 하네 중 - P225

"영범, 타인의 진심이라는 건 꽤 부담스러운 거야. 원치 않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사슬이기도 해.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진심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사슬을 채우는 건 옳지 않아."

_ 우는 시늉을 하네 중 - P227

행복은 자주 우리 바깥에 존재한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하지만고통은 우리 안에만 존재한다. 우리가 그걸 공처럼 가지고 노는 일은, 그러므로 절대로 불가능하다. 만약 실제로 그가 코끼리에게 갑자기 그 공을 던졌다면, 코끼리는 그 자리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곤충들은 그렇게 죽지 않겠지만, 적어도 말할 줄 아는 코끼리라면 그렇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죽으니까.

_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중 - P302

. 커츠가 마지막으로 알게 되는 건 세상의 모든 악의 근원이자, 암흑의 핵심이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_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가지 즐거움 중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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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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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한번 우려낸 국화차에 다시 뜨거운 물을 붓는 짓이나 마찬가지니까. 아무리 기다려봐야 처음의 차맛은 우러나지 않는다. 뜨거운 물은 새로 꺼낸 차에다만 그게 인생의 모든 차를 맛있게 음미하는 방법이다. 마찬가지였다. 봄날의 거리에서 재회하니 그런 식으로 정연은 예뻤다. 그에게예뻤던 여자들은 여전히 예쁘고, 또 그런 식으로 영원히 예쁘겠지만 ‘다시‘ 예쁠 수는 없었다.

_ 벚꽃 새해 중 - P19

"이 자리에서 고백하는 말이지만, 우리 아들은 마음이 닫힌 아이입니다. 아무리 큰 목소리로 사랑한다고 말해도 그 말들은 우리아들에게 가 닿지 않습니다. 제게 말들이란 얼마나 무기력한 것인지 모릅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말들은 외롭고 슬픕니다. 한때는 너무 힘들어 같이 죽겠다고 자동차를 몰고 어두운 밤거리로 달려나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마지막으로 우리 아들에게 엄마의 꿈들에 대해서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아들이 좋아하는 치킨집에서 중학교 시절의 제 꿈에 대해서 들려줬습니다. 그때 프라이드치킨을 한 마리 다 먹는 동안, 저는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프라이드치킨이 없었다면 지금 저는 이 자리에 서지도 못했을겁니다. 제 시가 누군가에게도 그런 따뜻한 프라이드치킨 같은 게됐으면 좋겠습니다."

_ 깊은 밤, 기린의 말 중 - P61

함석지붕집이었는데, 빗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우리가 살림을 차린 사월에는미 정도였는데, 점점 높아지더니 칠월이 되니까 솔 정도까지 올라가더라. 그 사람 부인이 애 데리고 찾아오지만 않았어도 시 정도까진 올라가지 않았을까?

_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중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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