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 김영민 논어 연작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자는 영생하는 신이 아니었기에, 괴력난신으로부터 거리를 둔 사람이었기에, 『논어』가 전하는 이러한 공자의 페르소나는 실로 삶이라는 유일무이의 이벤트에 집착했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삶이라는 이벤트에서 끝내 욕망이 사그라들지 않았던 사람, 과잉을 찬양했던 사람, 노년에 이르러도 그치지 않는 배움이라는 긴 마라톤에 출전하기를 꺼리지 않았던 사람. 『논어』는 그렇게 분투한 사람에 대한 재현이다. 누가 그랬던가. 아무리 배고프다는 데 국민적 합의가 있어도 누군가 밥을 짓지 않으면 굶주림이라는 난관은 타개되지 않는다고. 인간은 생각보다 게으르다고. 보통 사람들은 사채를 빌리지 않는 한 열심히 살지 않는다고. 공자는 사채 빚 없이도 삶 속에서 분투한 사람이었다.

_ 삶이라는 유일무이의 이벤트 욕 중 - P108

즉 예를 꾸준히 지키다보면, 단순히 예라는 행동을 반복하는 단계를 넘어서, 예를 지키는 ‘사람‘이 되어버릴지도 모르죠. 마치 아름다운 그림을 보다보면, 단순히 아름다운그림을 보는 단계를 넘어서,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_ 실연의 기술 습 중 - P132

공맹자도 바로 이런 식으로 말한 거다. 사람들은 신에게뭔가 얻기 위해 기도하고 전례를 행하지만, 거기에 응답할 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렇지만 예를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고. 예를 통해서 신에게 뭔가 얻어낼 수는 없지만, 예를 통해 인간은 비로소 인간끼리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게되는 거라고.

_ 완성을 향한 열망 경 중 - P141

"나는 이제 삶의 책임과 걱정을 면한다!"(吾免고 기뻐날뛰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제 삶의 책임과 걱정을 면함을 ‘안다‘고 말한다. 즉 삶의 긴장, 구속, 고단함을 면한다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그 사실 자체를 메타 시선으로 바라보아 ‘안다‘(知)는 선언이다.

_ 알다, 모르다, 모른다는 것을 알다 중 - P1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 김영민 논어 연작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히려 대체로 관행을 따르면서, 그 안에서 관행을 비틀어야, 자신의 메시지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기존의 권위를 공개적으로 공격하기보다는, 민감한 부분에서 침묵하거나, 생략하거나, 관행을 비트는 방식으로 에둘러 자신이 가진 이견을 표출한다.

_ 자유주의 송편 중 - P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전거여행 1 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63빌딩에서 김포 쪽으로 앵글을 잡았다. 도심 구간에서 강은 겨우겨우 흐른다. 한강은 우리에 갇힌 맹수와도 같았다.
이 부자유한 강이 하류 쪽으로 강폭을 넓혀가며 마침내 바다에 닿는다. 김포 쪽에 노을이 비치어 강은 멀고 아득하다.

_ 강물이 살려낸 밤섬 중 - P2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 김영민 논어 연작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렇다면 생각이 죽어 묻히는 자리는 어디인가? 생각의무덤을 우리는 텍스트text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텍스트가 죽어 묻히는 자리는 어디인가? 텍스트의 무덤을 우리는 텍스트context라고 부른다. 콘텍스트란 어떤 텍스트를 그 일부로 포함하되, 그 일부를 넘어서 있는 상대적으로 넓고 깊은 의미의 공간이다.

_ 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 중 - P24

생각의 시체가 주는 이 서먹함을 즐기기 위해서는 서둘러 고전의 메시지라는 목적지에 도달하려고 들지 말고, 그 목적지에 이르는 콘텍스트의 경관을 꼼꼼히 감상해야 한다.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려고 달리는 동안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는 모두 놓쳐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경주가 끝날때쯤엔 자기가 너무 늙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진 웹스터, 키다리 아저씨」 중에서)

_ 메니페스토 중 - P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전거여행 1 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마의 아름다움은 보이는 것이 아니어서 몽상으로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_ 가마속의 고요한 불 중 - P226

배낭이 무거워야 살 수 있지만, 배낭이 가벼워야 갈 수 있다. 그러니 이 무거움과 가벼움은 결국 같은 것인가.
같은 것이 왜 반대인가. 출발 전에 장비를 하나씩 빼 버릴 때 삶은 혼자서 조용히 웃을 수밖에 없는 비애이며 모순이다.

_ 가을빛 속으로의 출발 중 - P237

유가(儒)의 산은 인간의 마을에 가깝다. 퇴계의 등산 코스인 청량산과 소백산은 인간의 삶을 새롭게 해주는 도덕적 소생력으로서만 아름다울 수가 있었다. 퇴계의 산은 인간의 마을이 이루어내야할 꿈의 원형이었으며, 그 산은 마을에 이르는 정확한 하산로를 갖는 산이었다. 그는 은둔과 적멸로서의 산을 부정했고, 산에 가서 계곡 물을 퍼먹고 구름과 안개를 마시며 살려는 자들을 경멸했다. 그러므로 한산자(당나라의 전설적인 거렁뱅이 시인)는 길 없는 산으로올라가는 뒷모습이 아름답고 퇴계는 길 있는 마을로 내려오는 앞모습이 아름답다. 동양의 산들은 거기에 의탁된 마음의 힘으로 높거나깊어서, 산은 때때로 교조적이었다.

_ 마지막 가을빛을 위한 르포 중 - P243

김병운 씨와 최정운 씨는 전적으로 무죄인 사람처럼 보였다. 그들이 도대체 무슨 책임져야 할 일을 저질렀기에 이 고생을 해야 하는가. 고향은 아직은 그리던 고향이 아닌 것만 같았다. 이 고단한 고향에서, 돌아온 고향 사람들이 새로운 고향의 희망을 길러낼 수 있을까. 고향에서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리던 고향이 아닌 고향도 결국은 그리던 고향일 터이다. 자전거는 눈부신 섬진강길을 미루어놓고 이틀 동안 이 마을에 머물렀다.

_ 노령산맥속의 IMF 중 - P254

산하의 음악과 산하의 리듬이 길러낸 이 바위들은 바위 안에 물의본질을 수용함으로써 바위의 단단함을 완성해내고 있었다. 그것은 바위라기보다는 생명의 안쪽을 통과해가는 시간의 모습이었다. 그것들은 수만 년을 깎인 과거의 바위였고, 변화와 생성을 거듭해갈 미래의 바위였으며, 박힌 자리에서 흐르고 또 흐르는, 출렁거리는 바위였다.


_ 시간과 강물 중 - P2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