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매끄럽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반발과 저항이 있었다. 하지만 매끄럽지 않다고 안 되는 것은 없었다. 반발하든 저항하는 모두 귀결하는 것은 단 하나의 사실이었다. 이제 선길은 이곳에 없다. - P109

진행이 될수록 사고는 흔하고 뻔한 사고가 돼 갔고 사람들은자신들을 속였다. 자신들이야말로 선하다고, 약자와 피해자의편에 서 있고 그것을 아름답고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여겼다.
공정한 판관의 역할에, 도덕적 우월감에 심취해 갔다. 정작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그저 자기 자신들을 중심에 놓기만 하면서. - P124

결국 도덕적 우월감과 도덕적 무력감은 거울에비치는 똑같은 허상이었다. 낙관과 공감이냐, 비관과 체념이냐는 거울의 종류만 달랐을 뿐. - P124

결국 자기 역시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살아 있고 계속 살아야 하는 사람의 숙명인 것 같았다. 잔인하고 비겁하게 거짓말하거나 침묵하면서, 자신의 잘못과 죄를 죽은 사람에게 떠넘기면서. 그것이 산 사람의 몫, 생존의 대가 같았다. - P141

"너무 큰책임은 책임이 아니지. 너무 작은 책임도 책임이 아니듯이. 대마불사라는 말 들어 봤지? - P150

무슨 말을 한다는 것이, 소장과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이 혐오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더 끔찍한 것은 반박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 P153

선의나 공감에 대해 그러듯. 그건 별게 아니었다. 왜 부모 말, 선배 말, 상사 말 잘 듣는가? 소용이 있으니까, 그러면 뭐라도 하나 생기니까. 착하다는 건 화폐였다. 당장이든 나중이든 돌아올 뭔가를 위해 지불하는 사람들 역시 정말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을 뿐이다. 부자 대우 받으면좋아하는 것과 매한가지다. - P155

세상에서 제일 참혹한 일을 벌였던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이 바로 자신은 착하고 항상 착하다는 믿음이었다. 그 사람들은 양민을 칼로 총으로 베고 쏴 죽이면서도 생각했다. 해방시켜 주는 것이라고, 오로지 선행을 베푸는 것뿐이라고, 오, 세상에 정말! - P157

"다 똑같아요. 저 같은 대학 나와서 갈 수 있는 회사는 얼마 있지도 않고 동기들도 다 시궁창 같은 중소기업 들어가서별짓거리 다 하면서 살아요. 참고 견디고 그러고들 버텨요."
1 - P175

소설의 말미에서 현경이 개의 얇고 따스한 뱃가죽을 만질때 떠올린 것은 연약함이었다. 우리는 모두 그같이 얇고 따스하게, 희망이라는 단어처럼 연약하게 살아 있다. 이 이야기는한편으로 그 연약함과 희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보전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연약함은 나약함에 불과한 것인지, 희망은 욕망에 그쳐야 하는지, 인간에게는 나약함과 욕망뿐인지. _ 작가의 말 중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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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일을 잘 못했다. 일을잘하느냐 못하느냐가 항상 현경에게는 사람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는데 일 못하고 착한 사람만큼 현장에서 골치아픈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 P13

아내나 자신이나 서로 절박했지만 절박하기만 했다.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절박해지고 감정을 드러낼수록 그럴 여지도 여유도 없어졌다. - P27

책임은 지는 게 아니야. 지우는 거지. 세상에 책임질 수 있는 일은 없거든,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멍청한 것들이나 어설프게 책임을 지네 마네, 그런 소릴 하는 거야. 그러면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자기 짐까지 떠넘기고 책임지라고 대가리부터 치켜들기나 하거든. 텔레비전에서 정치인들이 하는 게 다 그거야.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지우는 거, 자기 책임이라는 걸 아예 안 만드는 거. 걔들도 관리자거든. 뭘 좀 아는. - P46

"그건 이기적인 게 아냐. 자기를 중심에 놓는 거지. 나한테 이로운 걸 하는 건 남도 그럴 수 있다는 거지만, 날 중심에 놓는 건 남은 그러면 안 된다는 거거든 그건 다른 소리야."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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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소감 - 다정이 남긴 작고 소중한 감정들
김혼비 지음 / 안온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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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혼비 작가의 신비감이 벗겨진 글들이다. 만나서 술한진 하면서 이런저런 유쾌한 일들을 하고픈 마음이 글속에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다정’이 어떻게 다감으로 만들어지는지 각각의 에세이에서 만나면 좋겠다. 특히, 승무원 경험 이야기는 혼자 히히 웃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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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소감 - 다정이 남긴 작고 소중한 감정들
김혼비 지음 / 안온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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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술이 삶을 장식해주는 형용사라면 커피는삶을 움직여주는 동사다. 원두를 갈면 하루가 시작되고페달을 밟으면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디카페인커피를 마시면 하루가 끝난다. 형용사는 소중하지만, 동사는 필요하다. _ 커피와 술, 코로나 시대의 운동 중 - P196

결코 내 것일 수 없다고 여겼던, 내가 소중하다는 감각과 나를 다시 이어준 한 끼의 식사. 어떤 음식은 기도다. 누군가를 위한. 간절한. _ 한 시절을 건너게 해준 중 - P211

‘다정다감‘을 장난스레 비튼 느낌도 좋았지만, 결국 모든 글이 다정에 대한 소감이자, 다정에 대한 작은 감상이자, 다정들에서 얻은 작고 소중한 감정의 총합인 것 같아서. 내 인생에 나타나준 다정패턴 디자이너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보낸다. 디자인에 워낙 재주가 없는 나에게 다정한 부분이 있다면그건 다 그들의 다정을 되새기고 흉내 내며 얼기설기 패턴을 만들어간 덕분일 것이다. _ 에필로그 중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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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오늘도 쓴다. 잘 보이지 않고 잊히기 쉬운 작고 희미한 것들을 통에 담는 마음으로. _ 마트에서 비로소 중 - P20

타인이 더 나은 경험을 해보길 진심으로 바라서 하는 조언과, 무작정 던져놓는 냉소나 멸시는 분명 다르다. ‘세상의 빛을 보자‘는 게 ‘관광(觀光)‘이라면, 경험에 위계를 세워 서로를 압박하기보다는, 서로가 지닌 나와 다른 빛에도 눈을 떠보면 좋지 않을까. _ 여행에 정답이 있나요 중 - P30

그렇다. 여성들도 소리 지르고 때리고 맞는 훈련을해야 한다. 미지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원초적 싸움의세계‘를 경험을 통해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내려야 한다. _ 축구와 집주인 중 - P50

그러니까 가식의 영역 안에서, 비록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속속들이 모든 걸 말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에게 끝까지 좋은 사람이고자 하는 노력과 노력이 만나 빚어내는 존중과 다정이 존재했다. 나중에는 가식이 섞여들었다고 한들 B가 무려 3년 가까이 저런 태도를 꾸준히 유지하는 걸 보면 이제는 가식이 아니라 그냥 성품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가식과 진실의 경계도 흐릿해졌다.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그를 믿고 좋아했고 따랐다. 더는 연기할 필요없이. _ 가식에 관하여 중 - P60

남에게 충고를 안 함으로써 자신이 꼰대가 아니라고 믿지만, 남의 충고를 듣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꼰대가 되어가는 걸 모르고 사는 것. 나는 이게 반복해서 말해도 부족할 만큼 두렵다. 내가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것, 입맛에 맞는 것들로만 만들어낸, 투명해서 갇힌 줄도 모르는 유리 상자 안에 갇혀 있을 때, 누군가 이제 거기서 잠깐 나와 보라고, 여기가 바로 출구라고 문을 두드려 주길 바란다. 때로는 거센 두드림이 유리 벽에 균열을 내길 바란다. 내가 무조건적인 지지와 격려와 위로로 만들어진 평온하고 따듯한 방 안에서 지나치게 오래쉬고 있을 때, 누군가 ‘환기 타임!‘을 외치며 창문을 열고 매섭고 차가운 바깥 공기를 흘려 보내주기를 바란다. _ 나만을 믿을 수가 없어서 중 - P75

우리 눈에 ‘기본‘ 너머의 세계가 보이지 않는다고 세상에 없는 것은 아닌데, 맞춤법 하나로 무시받아서는 안 되는 삶들이 도처에존재한다. 당신 곁에도 나의 곁에도. _ 그의 SNS를 보았다 중 - P108

관심이란 달짝지근한 음료수 같아서 한 모금 마시면 없던 갈증도 생긴다는 것을, 함께 마실 충분한 물이 없다면 건네지도 마시지도않는 편이 좋을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한다. 순간의기분으로 문 너머 외로운 누군가에게 다가가려다가도, 가장 따뜻한 방식으로 결국에는 가장 차가웠던 그때의내가 떠올라 발을 멈춘다. 끝까지 내밀 손이 아닐 것 같으면 이내 거둔다. 항상성이 없는 섣부른 호의가 만들어내는 깨지기 쉬운 것들이 두렵다. 그래서 늘 머뭇댄다. ‘그럼에도 발을 디뎌야 할 때’와 ‘역시‘ 디디지 말아야 할때 사이에서. 이 사이 어딘가에서 잘못 디딘 발자국들사이에서. _ 문 앞에서 이제는 중 - P136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흔히말하는 ‘연대‘의 감각 아닐까. 망했다는 생각에 손마저얼어붙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는 손들 같은 것. 그 손들이 누군가를 필요한형태로 만들어가는 과정 같은 것. 등 뒤로 따뜻한 눈빛들을 가득 품고 살짝 펴보는 어깨 같은 것. 누군가 박살날까 봐 걱정될 때 가만있지 못하는 것. _ 비행기는 괜찮았어 중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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