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총리 체임벌린과 프랑스 총리 에두아르 달라디에ÉdouardDaladier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 1938년 9월 29~30일 뮌헨으로 갔고히틀러와 합의를 보았다. 히틀러가 주데텐란트를 합병하는 대신체코슬로바키아 나머지 지역의 독립을 존중하기로 약속하고, 영국과 프랑스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체코•대표단은 협상이 진행되던 방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_ 제2차 세계대전 중 - P371
1944년 미국의 전쟁 물자 생산을 100이라고 하자. 이를 기준으로 보면 1940년 영국의 생산은 7이고, 나치 독일과 일본 두 나라의 생산은 11이었다. 1942년 연합국 전체의 생산은 92였고, 독일과 일본은 16이었다. 그리고 1944년에는 150대 24였다.
_ 제2차 세계대전 중 - P396
혹시 과학의 도움을 얻어서 나치 독일이 그 불리한 처지를 만회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아니었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았을당시 독일에는 세계 최고의 원자물리학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치는 원자물리학을 ‘유대인의 과학‘이라고 완전히 무시했다. 원자물리학자들 중 운이 좋은 이들은 독일에서 도망쳤고, 일부는 미국과 영국으로 건너가서 나치 독일을 무너뜨릴 수 있도록 자신들의 지식을 활용했다.
_ 제2차 세계대전 중 - P397
항복이 받아들여진 뒤, 세계가 직면한 현실은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독일은 패배했고 폐허가 되었다. 러시아는 승리했지만 폐허가 되었다. 일본은 패배했고 폐허가 되었고 일부 지역은 방사능에오염되었다. 유럽 각국은 다양한 경로를 거쳐서 파괴에 이르렀다. 영국은 승리했지만 탈진했다. 미국은 승리했고, 영토에도 아무 손상이 없었고, 경제적으로는 지배적인 국가가 되었고, 새로운 자신감까지 얻었다. 이 세계는 1933년 심지어 1938년에 누군가가 예측했을 법한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_ 제2차 세계대전 중 - P399
게다가 냉전은 어찌 보면 흐루쇼프가 희망했던 방식으로 종식되었다. 인류의 물질적·정신적 삶을 개선하는 더 큰 기회들을 제공하는 한 체제와 함께.
_ 냉전, 두 적대 체제의 공존 중 - P403
2차 대전 이후의 유럽은 실제로 자유방임 경제와는 아주 거리가멀었다. 유틸리티와 중공업 부문의 상당 정도를 정부가 소유했다. 정부의 소득 재분배 규모도 컸다. 2차 대전 이후의 복지국가들이제공한 ‘사회안전망‘과 사회보험 프로그램들의 규모는 1차 대전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수준으로 확대된다. 하지만 이 거대한 복지국가는 금융적 안정성 그리고 자원의 교환 및 배분을 시장 프로세스에 크게 의존했다.
_ 냉전, 두 적대 체제의 공존 중 -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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