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 마음속에 새기고 싶은 인생의 키워드 20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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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포기한 삶에서 벗어나라."
-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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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어휘 - 모호한 감정을 선명하게 밝혀 내 삶을 살게 해주는 말 공부
유선경 지음 / 앤의서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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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동안 견디기 힘든 아픔을 무수히 겪는다.
묵묵히 견디는 것이 최선일까.
아픔을 보다 세밀하게 표현하면 해결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아픔을 좌우하는 요소들로 나눌 수 없는 기쁨,
애도 받지 못하는 슬픔, 존중받지 못하는 분노, 물리칠 수 없는 혐오,
보호받지 못하는 공포(불안·걱정 · 두려움), 발견할 수 없는 희망.
인정받지 못하는 신뢰 등이 있으며 충족되지 못할 때
슬픔과 걱정·불안·두려움 · 상실감 등을 느낀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감정 그 자체가 아니라
감정에 대한 스스로의 반응이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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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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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늘 그렇게말했으니까. 남편이 아내를 때려도 여자도 잘한 것 없다고 했고,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여자도 잘한 것 없다고 했으니까. 남자가 그런 행동을 하도록 여자가 부추겼으리라는 생각이 그런 말의 핵심이었다. - P248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에는 진심으로 사과받지 못한 사람들의 나라가 있을 것이다.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야, 그저 진심어린 사과만을 바랄 뿐이야,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를 바랄 뿐이야,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연기라도 좋으니 미안한 시늉이라도 해주면 좋겠다고 애처롭게 바라는 사람과, 그런 사과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이런 상처도 주지 않았으리라고 체념하는 사람과, 다시는예전처럼 잠들 수 없는 사람과 왜 저렇게까지 자기감정을 주체하지못하고 드러내? 라는 말을 듣는 사람과, 결국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없다는 벽을 마주한 사람과, 여럿이 모여 즐겁게 떠드는 술자리에서미친 사람처럼 울음을 쏟아내 모두를 당황하게 하는 사람이 그 나라에 살고 있을 것이다. - P252

할머니와 엄마는 대체 어떤 사이인 걸까. 둘이서굳은 표정으로 서로에게 날을 세웠더라면 답답할지언정 이해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오랜 세월 서로 연락도 거의 하지 않았으면서 막상 만나서는 저렇게 멀쩡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 P266

엄마는 평범하게 사는 것이 제일 좋은 삶이라고 말했었다. 아빠와의 결혼으로 자신도 평범한 가족을 꾸리게 되어서 좋았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런 말을 습관적으로 하던 엄마를 예전에는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머릿속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고 그 안에 평범이라는 단어를 적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삶, 두드러지지 않은 삶, 눈에 띄지 않는 삶, 그래서 어떤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고, 평가나 단죄를 받지 않고 따돌림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 동그라미가 아무리좁고 괴롭더라도 그곳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엄마의 믿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잠든 엄마의 숨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 P271

부모 앞에서 친지들에게 이혼 소식을 알리고자 했던 목적을 달성했지만 생각만큼 후련하지도,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내가 부끄러운일을 한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이 일로 인해 부모가 나의 이혼을 얼마나 부끄러워하는지 다시 확인한 기분이었다. - P272

"차라리 울고 소리치고 화를 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정확히 해. 돌려서 하는 말로 공격받는 것도 지겨워." - P279

공공장소에서 남편이나 자식에게 화를 내는 여자들, 버스에서 훌쩍이며 눈물을 흘리는 여자들, 길에서 전화 통화를 하며 분노를 쏟아내는 여자들을 엄마는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런 상스럽고 저급한 짓을 하는 건 자기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도 했다. 그런 엄마가 본인이 평생을 피해가고자 했던 모습을 내게 보여주었다. 엄마의 지적이 마음에 내리꽂히는 것과는 별개로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신의 분노를 발산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나는 어떤 해방감을 느꼈다. - P283

나는 그와의 결혼으로 내가 지닌 문제와 내가 가진 가능성으로부터 동시에 도망치고자 했다. 나의 원가족으로부터, 해결하기 어려워보이는 상처로부터, 상처받을 가능성으로부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정한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사람을 진심으로 깊이 사랑하고가슴이 찢기는 고통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감정적인 가능성으로부터 차단된 채로 미지근한 관계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내가 나를 속이는 것만큼 쉬운 일이 있었을까. 이혼 후 내가 겪었던 고통스러운 시간은 남편의 기만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에 대한 나의 기만의 결과이기도 했다. - P298

"미선이는 정연이 일을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했어. 미선이 잘못이전혀 아닌데도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몰라……… 미선이는 네말이 맞는다고 생각하고 자기를 미워하고 있을 거야. 너를 미워하는게 아니라."
할머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마음을 찔렀다.
"엄마한테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넌 나랑 달라. 그애의 딸이잖아. 엄마가 딸을 용서하는 건 쉬운 일이야." - P311

그런 식의 굴욕적인 삶을 원하지 않는다고 저항했다. 하지만 왜 분노의 방향은 늘 엄마를 향해 있었을까. 엄마가 그런 굴종을 선택하도록만든 사람들에게로는 왜 향하지 않았을까. 내가 엄마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났다면, 나는 정말 엄마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내 생각처럼 당당할 수 있었을까. 나는 엄마의 자리에 나를 놓아봤고 그 질문에 분명히 답할 수 없었다. - P314

한 사람의 삶을 한계 없이 담을 수 있는 레코드를 만들면 어떨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릴 때의 옹알이 소리, 유치의 감촉, 처음 느낀 분노,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과 꿈과 악몽, 사랑, 나이듦과 죽기 직전의 순간까지 모든 것을 담은 레코드가 있다면 어떨까.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삶의 모든 순간을 오감을 다 동원해 기록할 수 있고 무수한 생각과 감정을 모두 담을 수 있는 레코드가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삶의 크기와 같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가시권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습인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할 테니까.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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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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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령에 도착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나는 할머니에게 마음을 열었다. 아이들은 귀신같이 아니까, 이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자신을 해치려 하는지 돌보려 하는지. - P10

천문대에 첫 출근을 한 날, 결혼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예전에 한번 했었다고 답하고는, 더 설명해달라는 눈빛을 읽고 작년에 이혼했다고 덧붙였다.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려고 했지만 심장이 뛰었고아지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다른 주제로 말을돌렸다. - P12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 P14

엄마는 남자와 그 가족으로부터 착취당하기만 한 거 아니었나.
자기 엄마를 보러 갈 시간조차 허락받지 못할 만큼의 착취, 아들 셋인집의 장손과 결혼한 엄마는 명절에 친정에 가지 않았다. 방학 때 아빠쪽 식구들이 찾아오는 경우는 있었지만 할머니가 온 적은 없었다. 할머니와의 관계가 지금처럼 된 게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게 아니었더라도 엄마가 할머니를 만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 P17

할머니와 재회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어색함뿐이었다. 정말 저사람이 예전에 알던 내 할머니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기만 했다. 앞으로 마주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할머니가 내 할머니라는 이유로 내 생활을 간섭하지는 않을지, 익명으로 살고 싶은 내 의지와 반대로내가 서울에서 내려온 할머니의 손녀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는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 P23

나도 데리고 가라. 그녀의 치마를 꼭 붙들고 있던 엄마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떼어내던 그녀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때 증조모는 고작 열일곱 살이었다. - P46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죄가 있다면 그건 여자로 태어나고, 여자로 산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때 그 사실을 알았다. - P57

그렇게 침묵 속에서 밥을 먹으며 그녀는 처음으로 체념이라는 걸배웠다. 발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아팠지만 그걸 남편에게 말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피가 배어든 버선발을 뻔히 보고서도 아프냐고 단 한 번도 묻지 않는 사람에게 무슨 기대를 할 수 있을까. 어쩌다밥을 쏟았는지, 복구네 아이가 무슨 짓을 했길래 그랬는지 물어주기를 바란다는 건 욕심이었다. 장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별다른 말과 행동이 없었던 사람이니까. 남편은 나의 고통에 관심이 없어. 그녀는 생각했다. 일말의 관심조차 없어. 그런데 왜 그랬을까. 왜 내가 군인들에게 잡혀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말했던 걸까. 그것이 그녀 평생의 의문이었다. - P60

"미선이는."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너희 엄마 미선이는 잘 지내?" 나는 할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P77

내가 기원하든 그러지 않든 그것이 인간의 최종 결말이기도 했다. 지구가 수명을 다하고, 그보다 더긴 시간이 지나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순간이 오면 시간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그때 인간은 그들이 잠시 우주에 머물렀다는 사실조차도 기억되지 못하는 종족이 된다. 우주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곳이 된다. 그것이 우리의 최종 결말이다. - P82

내가 누리는 특권을 모르지 않았으므로 나는 침묵해야 했다. 내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부모 밑에서 자라며 느꼈던 외로움에 대해서, 내게 마음이 없는 배우자와 사는 고독에 대해서 입을 다문 채 일을하고, 껍데기뿐일지라도 유지되고 있었던 결혼생활을 굴려나가면서, 이해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는 감정에는 눈길을 주지 않아야 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으니까.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 P85

울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한 뒤 집으로 가는 아이였다.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만은 아니었던것 같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방어할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공격당하곤 하던 내 존재를 부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존심도 있었던것 같다. - P95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듯이, 어떤 이유 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나는 지우를 보며 알았다. - P102

원자폭탄으로 그 많은 사람을 찢어 죽이고자 한 마음과 그 마음을실행으로 옮긴 힘은 모두 인간에게서 나왔다. 나는 그들과 같은 인간이다. 별의 먼지로 만들어진 인간이 빚어내는 고통에 대해, 별의 먼지가 어떻게 배열되었기에 인간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해 가만히 생각했다. 언젠가 별이었을 그리고 언젠가는 초신성의 파편이었을 나의 몸을 만져보면서. 모든 것이 새삼스러웠다. - P130

나는 희자가 높은 하늘에 연을 띄우듯이, 기억이라는 바람으로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을 마음에 띄워 올리곤 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바람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일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으리라고 짐작하면서.
잠깐만 앉아 있자고 했으면서도 우리는 말없이 오래도록 바다와 달과 흰 연을 바라봤다.
멀리서 폭죽 터뜨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 P152

그때의 내 마음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이 측량할수 없는 무한한 세계가 지구 밖에 있다는 사실은 나의 유한함을 위로했다. 우주에 비하자면 나는 풀잎에 맺히는 물방울이나 입도 없이 살다 죽는 작은 벌레와 같았다. 언제나 무겁게만 느껴지던 내 존재가 그런 생각 안에서 가벼워지던 느낌을 나는 기억했다. 무리를 이루는 듯보이는 밤하늘의 별들도 철저히 혼자이며, 하나의 점으로 응축되어있던 물질들이 팽창하는 우주 속에서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서 멀어져가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어린 시절부터 줄곧 느껴왔던 슬픔을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그 순진무구한 사랑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차츰 빛을 잃어갔고, 그 자리는 현실적인 크기의 희망으로 대체됐다. 나의 숨쉴 구멍이었던 존재가 일이 되고, 나의 가능성이 한계가 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P158

피난길을 가는 여자에게는 인민군, 국군, 미군, 중공군의 구분이 중요하지 않았다. 밤마다 민가를 다니면서 여자를 강간하는 군인들이 어느 쪽인지 구분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었으니까. - P165

그믐밤이었다. 별 무리가 아주 낮게까지 내려와 밝게 빛났다. 그걸 보면서 할머니는 생각했다. 우리는 이런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자격이 없는 존재들이라고. 짐승만도 못한 존재들. 천한 존재들.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들이라고 - P167

전남편에게는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는 시간은 흘러가는 강물이 아니라 얼어붙은 강물이라는 말을 즐겨 했다. 시간은 환상일 뿐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자유의지나 선택이라는 것 또한 커다란 환상일지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 식의 생각에는 분명 이점이 있었다. 그런 믿음은 무엇보다도 인간을 후회의 덫에서 구원해준다. 과거의 내가 다른선택을 했더라면 현재의 고통이 없었으리라는 사고의 공회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속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을까. 이건 일어날 일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 P173

어마이가 이야기좋아하믄 가난해진다고 해두 어쩔 수가 없었다. 기게 참 좋았더랬어. - P186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 결국 엄마를 공격하게 되는 패턴을 반복하고야 말았다. 상처 주고 싶지 않았지만 끝내 자신을 꺾지 않고 나를 비난하는 엄마를 견딜 힘이 내게는 없었다. - P191

술자리에서 앞장서 술값을 내는 사람. 그리고 그는그런 사람이기도 했다. 그 모든 지출을 아내의 돈으로 하는 사람. 나중에는 아예 액수를 정해서 그만큼을 미리 마련해달라고 했다. 그는할머니에게 무엇 하나 주는 법이 없었다. 감정적인 부분에서도 단 한순간도 할머니를 채워주지 않았다. 그 목마른 느낌은 할머니가 중조부와의 관계에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증조모의 말이 맞았다. 그는 여러모로 증조부를 닮은 사람이었다. - P219

할머니는 배려하는 남자, 아내와의 관계에서 손익을 따지지 않는 남자를 자신의 배우자로 상상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기대하고 실망하는 대신 그 안에 주저앉아 포기하는 편을 선택했다. 그편이 훨씬 더 쉬웠기 때문이었다. 남편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버리고 체념하고 나니 그런 삶도 견딜 만했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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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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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희령을 여름 냄새로 기억한다. 사찰에서 나던 향 냄새, 계곡의 이끼 냄새와 물 냄새, 숲 냄새, 항구를 걸어가며 맡았던 바다 냄새, 비가 내리던 날 공기 중에 퍼지던 먼지 냄새와 시장 골목에서 나던 과일이 썩어가는 냄새, 소나기가 지나간 뒤 한의원에서 약을 달이던 냄새…… 내게 희령은 언제나 여름으로 기억되는 도시였다. _ 밝은 밤 중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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