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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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어려서부터 소리 내지 않고 우는 법을 알았다. 입을 최대한 꽉 다물고 침을 삼키면 됐다. 눈물이 흐르면 재빨리 옷소매로 닦으면 됐다.

_ 파종 중 - P198

세상은 온통 뿌옇게 보였다. 누구도 그녀에게 지금 무슨 일이벌어지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때 그녀는 처음으로 막연함을 느꼈다. 막연한 두려움, 막연한 슬픔, 막연한 외로움,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 시간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 P204

핸드폰을 집에다 두고 나온 채 이십 분을 늦은 친구에게, 내가좀 있다 연락할게, 기다려봐, 이야기하고 다시 전화하는 것을 잊은 애인에게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깊이 상처받았다. 기약 없이 기다리는 일이 꼭 버려지는 것 같아서였다. 눈물이 났지만 그마음을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해서 그저 참았다. - P206

그녀도 소리를 따라 무릎을 세우고 앉아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바라지않아도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을 거야. 그녀는 속으로 말했다. 푸른 무청이 가득한 텃밭을 그리면서 그곳으로 찾아올 햇볕과 비와 바람과 작은 벌레들을 기다리면서. - P211

아빠는 혀를 차며 말했다. 집안에서는 숟가락 하나도 자기 손으로 챙기지 않으면서, 엄마나 이모가 집에 없으면 밥통에 밥이 있어도 상을 차리지 않으면서, 늘 누군가 닦아놓은 변기를 사용하면서 아빠는 그렇게 말했다. 쪼그리고 앉아 바닥을 걸레질하는 이모를 멀뚱히 바라보던 아빠의 얼굴이 떠올라서 나는 마음이 차가워졌다.

_ 이모에게 중 - P239

나는 더는 돌봄을 받아야 할 존재도 아니었지만, 온전히 자기힘으로 설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아무도, 나를 포함한 누구도 나를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지금과는 달라져야 한다고, - P244

이모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 느꼈던 내 마음을 선선히 인정했다. 내가 거듭해서 이모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결국 비슷한 주름을 얼굴에 새기면서 싫어하는 것들의 목록만 늘려가는 인간이 될까봐, 자기 상처에 매몰되어 다른 사람의 상처는 무시하고 별것도 아니라고 얕잡아 보는 편협하고 어두운 인간이 될까봐 겁이 났다는 사실을. - P256

이모를 은근히 무시하고 하대하는 아빠의 모습에 분노하면서도 나는,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은 언제나 이모를 나보다 낮은 곳에있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 내세울 것도 없으면서 뭐라도 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고 자신이 더 나은사람인 것처럼 군다고 삐딱하게 바라봤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모를 그런 식으로 취급하는 내 모습을 부정했다. 그런 사람이 되고싶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모의 몇 벌 되지 않는 옷가지들을 만지면서 나는 그것 또한 나의 모습임을 인정했다. 그러한 판단이 이모라는 사람의 진실과는 무관하다는 사실도 - P263

옛날 사람들은 하늘 위에 하늘나라가 있다고 생각했다. 밤하늘의 별빛들을 보고 하늘에 구멍을 뚫어 지상의 인간들을 바라보는저 너머 누군가의 눈빛이라고 믿기도 했다. 그들에게 별빛은 신의 눈빛이거나 더는 만날 수 없는 사랑하는 존재들의 시선이었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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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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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그런 방문들은 뜻밖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다정했고,
그녀가 겪은 고통을 위로했다. 그녀는 잠시였지만 그들에게 정성껏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다. 그 느낌은 수술 후 그녀의 혈관을흐르던 모르핀처럼 부드럽고 달았고, 그녀는 덜 아플 수 있었다. 그들이 한때 누구보다도 그녀를 아프게 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잊은 건 아니었지만.

_ 일 년 중 - P88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자기 마음을 의심했다. 괜찮다고 했지만 정말 괜찮은지, 좋다고 말했지만 좋기만 한지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경계를 허물어준 다희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숨김없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다희의 마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P98

다희와 만나고 그녀는 지금껏 자신이 해온 대화가 사실은 서로를 향한 독백일 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을 메우기 위해,
혹은 최소한의 사회적인 관계를 위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했던말들이 어른이 되고 나서 그녀가 나눈 대화의 전부였으니까. 그제야 그녀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자기 방에서 온전히 혼자가 되기를 바랐던 마음,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듣기 싫었던 마음 안에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걸 알게됐다. - P102

그런데도 몇몇 분명한 순간들이 있었다. 모두가 받은 동료의 청첩장을 받지 못했을때, 탕비실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질 때, 아주 사소한 주제라도 그녀와는 사적인 대화를 이어가지 않으려는 기미가 느껴질 때, 어떤 말도 없었지만 그녀와 함께 있어서 버겁고 불편하다는 분위기가 감돌 때, 우리의 세계에 온전히 소속될 수 없는 당신을 나는 안타깝게 여기지만 도울 생각은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때, - P108

창에 달라붙은 눈은 금세작은 물방울이 되었지만 바닥까지 내려간 눈은 지상의 사물들을 흰빛으로 덮었다. 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그녀인 채로 살아 있었다.

_ 일 년 중 - P124

그때 내가 느꼈던 가장 큰 두려움은 다른 사람들이 내게 실망하는 거였어. 나는 절대로, 절대로, 누군가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어.

_ 답신 중 - P133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상황에 자기 자신을 몰아넣은 언니의 어리석음에 화가 났지. 그래, 언니를 비난할 수 없다고 애써 생각하면서도 내 마음은 그런 순간순간마다 언니를 원망했어. - P140

그게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오래된 습관이었던 거야. 그건 서로가 서로에게 결정적으로 힘이 되어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방식이기도 했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거야. 다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들쑤셔봤자 문제만더 커질 뿐이라고. - P150

내가 그애보다 잘났거나 현명해서 충고하는 게 아니라고, 누군가의 작은 호의나 관심에도 마음이 활짝 열릴 정도로 정이 고프고 외로운 마음이 무엇인지 안다고했지. 그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터놓은 건 처음이었어. 언니에게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어쩌면 나는 언니에게 하고 싶던 말을그애에게 했는지도 몰라. - P157

교도소에서 노트에 써내려간 글은 남겨두는 글과 찢어버리는글로 나뉘었어. 도무지 견딜 수 없을 때, 내가 나를 수습할 수 없을 때 나는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노트에 적은 후에 바로 찢어서없애버렸어. 글은 글일 뿐이라고, 예전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지. 하지만 어떤 글을 남기기로 선택하는 것은 결국 그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 바람을 담는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 마음은 실제로 전해지지, 상대가 그 글을 읽든 읽지 않는 말이야. - P172

내 마음 안에서 나는 판관이었으니까, 그게 내 직업이었으니까.
나는 언니를 내 마음의 피고인석에 자주 앉혔어. 언니를 내려다보며 언니의 죄를 묻고 언니를 내 마음에서 버리고자 했지. 그게 내가 나를 버리는 일이라는 걸 모르는 채로. - P175

내가 너를 더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건 그 순간이었어. 내가 영원히 너에게 다다를 수 없는 타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건, 나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울었지. 그 순간에도 너의 세계에서 나는 빠른 속도로 지워지고 있다는 걸 알아서, 그래도, 그래도……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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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견문 3 -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유라시아 견문 3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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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간적이고 이웃 같은 교황은 가장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교황이기도 했다. - P64

고로 교회의 가장 시급한 임무 또한 심판이 아니라 힐링이다. 곁에 있어주어야 하고, 곁을 주어야 한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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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이야기 한국 근대 문학 기행
김남일 지음 / 학고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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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절대적인 곤경에 처했을 때 ‘타자‘, 즉 적이나 소수자 같은 약한 고리를 통해 그 어려움을 물리치거나 해소하려는 경향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할 것이다. 식민지조선에서도 1931년 말도 안 되는 오해에서 비롯한 평양의 화교 학살 폭동에서 그 끔찍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정도가 달랐다. 만행의 규모는 차치하고, 그 모든 일이 의도적이었고 조직적으로 일어났다는 데 큰 차이가 있다.

_ 관동대지진과 불령선인들 중 - P205

1923년 일본 사회에 작동하던 초국가주의적 시스템, 그것밖에 더는 책임질 데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시스템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시스템에게 죄를 물어 감옥에 가둘 수는 없지 않겠는가. - P208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동경 유학생들이 등장하는 그 많은 작품들 중에서 그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우는지친절하고도 자세하게 적은 작품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허다한 근대 소설에서 동경 유학생들이 도쿄에서 그저 연애만 한양 그려지고 있다고 해도 크게 무리한 지적은 아닐 것이다.

_도쿄는 공상의 낙원 중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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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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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라는 말이 거짓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대로라고 말하는것은 그 많은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예전의 당신이 존재한다고, 그 사실이 내 눈에 보인다고 서로에게 일러주는 일에 가까웠다.

_ 몫 중 - P51

희영이 가진 장점들의 상당수는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었지만, 몇 가지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타인의 상처에 대해 깊이 공감했고, 상처의 조건에 대한 직관을 지니고 있었다. 글쓰기에서는 빛날 수 있으나 삶에서는 쓸모없고 도리어 해가 되는 재능이었다. - P59

그러나 당신 또한 집회의 참가자였다. 비록 집회의 중심이 아니라 맨마지막 줄, 가장자리에 서 있었더라도. - P69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 편집부 할 때, 나는 어느 정도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 내가 그랬다는 거야.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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