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셸터 - 2023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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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일으키는 일에는 게으른 사람도 열성을 다한다고. - P315

그래서 지금 사람들은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을 뿐, 정확히언제 어디서 대화가 끊겼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침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끊어진 대화를 잇는 일은 더욱 불가능해진다. 단순한 얘기다. 침묵이 침묵을 낳는다는 것.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심지어 머릿속에서 굴려보고 숨을 들이쉰 뒤 입을 벌리기까지 하지만, 이내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젓고는 안에서 문을 닫아버린다. - P317

나는 컴퓨터 화면으로 모든 것을 보았다. 수백 년 된 종과문과 창문이 있는 이 금욕적인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개조된 수도실에 처박힌 채로 말이다. 유리는 진정 놀라운 발견이었다. 우리는 오랜 세월을 견딘 건물이나 바위에는 익숙하지만 이토록 깨지기 쉬운 물건이 17세기부터 온전히 남아 있다는사실은 어떻게 보아도 기적이다. 사람의 손으로 직접 부어 거칠고 울퉁불퉁한 유리의 표면 아래에 재료가 된 모래알도 보였다. 수도원 근처 작은 농장에서 키우는 십여 마리의 암소 역시 17세기의 암소들과 다르지 않았다. 동물들은 시간 감각을 지워버린다. 나는 모든 것을 노트에 성실히 적었다. - P330

짧게 줄이면 이렇다. 재앙. 그의 가장 암울한 두려움이 현실이 되었다. 우리의 가장 암울한 두려움이. - P330

이미 생겨났다고 추정되는 어떤 일이 정말로 일어나기 위해서는 시간과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지연되어 발생한다. 사진을 인화할 때 이미지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나타나듯이....
1939년도 1939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불확실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두통을 느끼며 깨어나는 아침들이 있었을 뿐. - P334

당신을 절망하게 하는 것은 충돌, 깨진 창문, 망명자, 수감자, 폭행과 강간 피해자, 심지어 살해된 자가 아니라, 훗날 어느 오후에 거리에서 웃고, 함께 어울리고, 당신을 오래삶에서 내쫓은 그 똑같은 체제 안에서 아이를 낳는 사람들을볼 때 미묘하게 찾아오는 오싹한 허무감이다. 역사에는 수천, 수만 년의 세월이 있으니 오륙십 년 정도는 망쳐도 별 탈이 없다. 역사에게 그 정도는 고작 일 초나 될까 말까 한 시간이다. 하지만 역사의 일 초가 일생인 인간-하루살이는 무엇을 해야하나? 68에 뒤이은 그 오후들 때문에 프라하는 60년대를 선택하고픈 마음이 없었다. - P350

1989년이 최초의 혁명이었던 그들 무리 속에서 나는 일인칭으로 말할 수있다. 마침내, 발생하지 않았던 일이 발생하게 될 것 같았고모든 것이 우리 앞에 놓여 있었으며 모든 것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것도 세기의 막바지에

경고, 백미러에 나타난 역사는 항상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깝습니다...... - P361

사람은 하나의 몸과 하나의 시대라는 감옥에서 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 P364

만일 누군가 그 순간에 행복이 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소용히 그들 쪽을 가리킬 것이다. 이런 광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늙어가는 것, 훈훈한 밤에 오래된 건물로 둘러싸인 사각형 안뜰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잡담을 나누는 것, 잠시 대화가 끊겨도 개의치 않고, 그러다 또 와르르 웃음이 터지고, 당신은 세상에서 그것보다 더 낫거나 더 못한 것을 원치 않는다. 침묵과 웃음의 그 리듬을 보존하는 것 말고는, 앞으로 다가올 세월과 노년의 피할 수 없는 밤에도. - P371

아직 아닌 미래와 더이상 아닌 미래는 어떻게 다를까? 그 부재는 어떻게 다를까. 전자는 많은 것을 기약하고 후자는 세상의 종말이다………… - P401

나는 앞으로 걸어가 과거가 된다. - 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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