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셸터 - 2023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취리히는 노년을 위한 도시다. 세상은 느려졌고 인생의 강물은 호수가 되어 고였다. 나른하고 고요한 표면, 무료함이라는 사치, 그리고 늙은 뼈마디를 위한 산기슭의 햇볕. 상대성이 도드라지는 시간. 바로 이 시간과 관련한 20세기의 주요한 발견 두 가지-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토마스 만의 『마의 산』가 하고많은 곳 중에 바로 이곳 스위스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 P41

언제나 죽는 쪽은 다른 사람들이고 우리 자신은 절대 죽지 않으니 말이야. - P42

과거에 무자비해져야 한다고. 왜냐면 과거 자체가 무자비하니까. - P49

알츠하이머병이라든가 치매라든가, 그 이름이 뭐든 기억 쇠퇴를 경험하는 환자들을 위해서 말이네. 이미 과거라는 현재에서만 살고 있는그 사람들 모두를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 P62

가우스틴의 말에 따르면 우리에게 과거는 과거이며, 우리는과거로 걸어들어갈 때조차 현재로 나가는 출구가 열려 있음을안다. 쉽게 현재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기억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이 문이 영원히 쾅 닫혀버렸다. 그들에게 현재는외국이며 과거야말로 모국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들 내면의 시간과 일치하는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 P63

반드시 경험한 일만 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상상만한 일이 과거가 되기도 한다. - P68

일어난 이야기는 모두 비슷한 이유로 일어났지만, 일어나지않은 이야기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일어나지 않았다. - P70

시간이 흐르며 깨달은 사실은 과거는 무엇보다도 다음 두 곳에 숨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오후에 (빛이 떨어지는 길을따라) 그리고 향기 속에 나는 바로 그런 곳에 덫을 놓았다. - P71

그래서 나는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향기와 오후를 수집해 목록을 만들었다. 우리에겐 정확하고 철저한 묘사가 필요했다.
어떤 향기가 어떤 기억을 불러오는지, 어떤 향기가 어느 나이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향기로 어느 시대를 불러올 수 있는지. 나는 여러 향기를 자세히 묘사해 그 결과를 가우스틴에게 보냈다. 클리닉에서는 향기를 언제든 필요할 때다시 만들어낼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특정한 향을 구성하는분자를 보존하려 했지만, 가우스틴에게 그것은 노력의 낭비였다. 그저 토스트 한 장을 굽거나 아스팔트 조각을 녹이는 방법이 휠씬 간단하고 진짜였다. - P74

"그 체제에 대한 나의 반감은정치적이라기보다는 미학적인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미스터N의 정리가 더 맘에 든다. 그 체제에 대한 그의 반감은 생리학적이었다. - P91

건망증이 심한 신,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신은 우리를 모든 의무에서 해방시킬 것이다. 기억이 없으면 범죄도 없다. - P96

숨바꼭질 놀이에서 최악의 순간은 아무도날 찾으러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때다. 그 노인은 절대로 그런 깨달음에 이르지 못할 것 같다. 다행히도. - P1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