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노동 분업 사회에서 가장의 근심은 생계부양자의 역할에 있다면, 집사람의 근심은 생계에 부수적인 용돈벌이 나마 해야 한다는 데 있다. 벽보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만큼이나 집사람의옆모습은 어둡다. 그럼에도 집사람들은 내일의 근심을 떨치고 오늘 하루의 장바구니를 힘차게 흔들면서 위풍당당하게 귀가한다. 일자리를 찾다가 돌아가는 그녀들을 맞이하는 것은 <식사 준비>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우리 영혼의 뼈는 사도들의 설교에 있다기보다 <식사 준비>를 하는 여자들의 신성한 노동에 있다. <식사 준비>는 우리 곁에 있으면서도 보이지 않던 존재들이 그동안 내 곁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경이의 순간이다. 보는 행위는 보잘것없어서 보면서도 보지 못했던 존재들이 느닷없이 반짝 빛을 발하며 보는 사람의 눈에 생생하게 들어오는 순간에 가능해진다. <식사 준비>는 무가치한 것으로 무시되었던 집사람의 집안일이 삶의 기본값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 P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