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는 그리움이란 참으로 추상적이어서 고향에 도착하는 순간 비누 거품처럼 사라지는 가짜 욕망 같은 거라고 짐작했다. 여태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우연히 부딪치는 것은 거북했다. 정희의 지난 생을 한눈에 알아내고 말겠다는 듯 아래위로 훑어내리는 고향 사람들의 시선은 불편했다. 그 불편이 어설픈 욕망을 이겼다. - P216
"얼고, 녹고, 수축하고, 팽창하다가 붉은 사암의 중심이 뚫렸어. 중심의 느슨해진 돌이 떨어져내리며 구멍은 넓어졌지. 그 사이로 바람이 드나들어 구멍은 점점 더 자랐고." - P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