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의 묵언
김택근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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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바람대로 잘 살고 있는가. 빛나는 도시인이 되었는가." 스스로에게 답한다. "평상의 어른들처럼 속기 없는 웃음을 터뜨린 적이 없구나. 도대체 잘 산다는 기준이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구나.‘

_ 프롤로그 중 - P11

비운의 한반도에서 전쟁이 없는 시대를 살았다. 행운이다. 어쩌면전쟁을 치르지 않고 생을 마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무수한 폭력에시달렸다. 학교, 마을, 거리, 직장에서 폭력은 흔했다. 폭력은 반드시 희생 대상이 있다. 폭력은 또 삽시간에 전염된다. 무서운 돌림병이다.

_ 프롤로그 중 - P13

우리는 ‘조국 근대화‘와 ‘정의사회 건설‘ 같은 구호에 마냥 나부껴야 했다. 그것들은 국가 폭력의 다른 명칭이었다. 아픈 시절이었다.
세상에 순수한 폭력은 없다. 욕망의 그림자가 폭력화하지 않으려면참회를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참회하지 않았다. 모두가 공명하는 과거를 씻기는 거대한 의식을 치르지 않았다. 공적인 반성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국가와 직장, 심지어 종교마저 폭력을 품고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미 군정, 독재 정권의 폭력이 남아 있다. 돈과 권력은 물론이고 학연, 지연이란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그 폭력의 실체를 발가벗기고 폭력 유발자들을 고발하고 싶었다.

_ 프롤로그 중 - P15

김민기는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세상을 바꾸려는 거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세상 속에 들어가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작은 오두막 하나 짓고 작은 일을 하고 싶어 했다. 투쟁 속에도 절망, 희망, 휴식, 연민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세상을 편 가르는 어떤 행위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_ 사람 김민기 중 - P28

워낭소리가 낭랑했던 시대와 기계음이 낭자한 시대에는 서로 다른 인류가 살고 있는지 모른다. 부리는 소와 먹는 소 사이에 우리가있다. 마른 일소와 살찐 육우 사이에 우리가 있다. 배가 움푹 패었던 아버지와 뱃살이 오른 젊은이들 사이에 우리가 있다.

_ ‘워낭 소리’ 끊긴 곳에서 우리는 중 - P40

열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세상의 출구‘에서 ‘추억의 입구‘로 변해버린 간이역. 이제 무엇이 우리를 추억 속에 내려줄 것인가. 열차는서지 않아도 간이역은 그대로 보존했으면 좋겠다. 이제는 설렘과 격정이 지워진 채 그리움으로 서 있는 간이역.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곳에 모일 수 있다.

_ 퇴출 간이역 중 - P43

가난한 나라의 입을 줄여준 사람들. 슬퍼할 겨를도 없던 사람들. 가난을 벗어났어도 여전히 허전한 사람들. 모국의 무관심에도 한국만을 바라보는 사람들. 그리고 서서히 잊혀가는 사람들. 이제 누가 저들을 기억할 것인가. 삼가 치열한 삶에 두 손을 모은다.

_ 미나리와 애틀린타 누나 중 - P50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공포다. 시골집을 떠나올 때도 막막하고 두려웠을 것이다. 자식들을 떠나보냈지만 정작 자신이 떠날 때가 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이웃이 죽거나 도시로 떠나가면 그때마다 가슴이 떨렸을 것이다. 어머니가 아프면 집에도 검버섯이 피었다. 어머니들을 잃은 마을은 여기저기 움푹움푹 꺼졌다. 그렇게 마을 공동체가 속절없이 무너졌다. 떠나간 피붙이들이 돌아오지 않을 때부터 예견된일이었다. 별수 없이 도시로 나와 자식들에게 얹혀살아야 했다. 어머니들은 도시 어딘가에서 더듬더듬 길을 묻고 가만가만 숨을 쉴 것이다. 어머니는 이제 돌아갈 곳이 없다. 그때마다 죽음을 떠올릴 것이다.

_ ‘효’가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중 - P55

이념은 한때 횃불이며 총구였지만 인간의 땅에서는 한 줌의 비료도 되지 못했다. "아버지는 생각했겠지. 우리가 싸워야 할 곳은 산이 아니라고. 사람들이 불빛 아래 옹기종기 모여 밥 먹고 공부하고 사랑하고 싸우기도 하는 저 세상이라고." 그렇게 산을내려와 사람냄새를 풀풀 풍겼고 죽어서 빨치산도 빨갱이도 아닌 아버지로 돌아왔다.

_ 아버지 해방일기가 가리키는 곳 중 - P61

제자리를 지켰던 아버지는 영원한 북극성이었다. 나는 천둥 치는 무서운 밤에 눈앞의 번개를 보며 태연히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지나온 세월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자식들보다 항상 먼저 일어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자식들의 눈높이에서 반짝거리고 있을까. 아이들이 나를 절대로 알고 있을까.

_ 돌며 흘러야 붙박이별이다 중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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